2014-04-17. QT큐티체조. 고난주간입니다. 매번 반복되는 인재를 보며, 어른들은 왜 이렇게 실수를 자꾸자꾸 할까요!

간단설명. 예수님은 잡하시기 전 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신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2:31-34
한글본문.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31 “Simon, Simon, Satan has asked to sift you as wheat. 32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back, strengthen your brothers.” 33 But he replied, “Lord, I am ready to go with you to prison and to death.” 34 Jesus answered, “I tell you, Peter, before the rooster crows today, you will deny three times that you know me.”

도움말.
세 번(34절). 3은 완전수로, 베드로의 완전하고도 철저한 부인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베드로에 대해 어떤 약속과 사명을 주셨는가(32절)?
⬇ 아래로 인간.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어떻게 장담했는가(33절)?
? 물어봐. 사탄의 역사로 인해 베드로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34절)?
! 느껴봐. 나는 내 힘과 결심만으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간절히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사탄은 밀 까부르듯 하나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예고하셨고(34절), 결국 그대로 되고 말았다. 베드로가 이처럼 자기의 결심과는 반대로 주님을 부인하게 된 것은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그를 청구했기 때문이다(31절). ‘밀 까부른다’는 말은 ‘체에 넣고 흔들다’는 말이다. 사탄은 베드로를 체에 넣고 흔들 듯이 흔들어 그를 실족하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다시 돌이켜 신앙을 회복하고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기 때문이다(32절).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을 회개하고 초대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그처럼 사탄의 공격을 받은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사명을 감당했다(32절, 벧전 5:8-11). 신앙생활은 인간적인 결심이나 장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된다. 당신이 더욱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감당해 나가야 할 일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 어찌 할 바를 모르겠고, 자꾸자꾸 눈물만 납니다. 푸르디 푸른 생명들은데,

당신은 신뢰받고 있는가?

Trust-Like-Know
그리스의 시라쿠사에 나오는 이야기에 핀티아스와 그의 친구인 다몬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라쿠사는 비누, 시멘트, 올리브유, 포도주의 제조 및 어업의 중심지로 제염업이 성한 곳이자 아폴로 신전과 극장이 많이 있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기에 관광지로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기원전4세기경 이 시라쿠사를 다스리고 있던 디오니소스1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핀티아스에게 음모죄를 적용하여 사형선고를 내린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핀티아스는 개인 일을 처리하려 하니 하루 동안만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왕에게 부탁한다. 고향에 다녀온 후에 사형을 받겠다는 이야기였다. 왕이 황당해하자 핀티아스의 친구인 다몬이 나서서 날짜 안에 핀티아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이 대신 사형을 받겠다고 나서며 자기 발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히려 호탕한 디오니소스 왕이 조마조마하게 핀티아스를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마침 핀티아스가 기한 내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자 이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우정에 반한 디오니소스 왕은 핀티아스를 사면하고 자기도 그들 두 사람 간의 우정에 끼어 달라고 통사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신에게는 이렇게 신뢰할 만한 친구가 있는가? 더 나아가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향한 정직한 답을 구하며 신뢰에 대한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사실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신뢰는 당신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신뢰받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먼저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당신이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한 약속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 이전에 당신 자신과의 약속이다. 다른 사람에게 믿을 만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전에 먼저 당신이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둘째, 신뢰는 당신의 부분이 아닌 당신 전체를 드러낸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어떤 한 부분을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그 부분만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부분 때문에 신뢰성이 모자라기에 그 사람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면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모든 면에서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삶의 작은 부분으로부터 구축되는 것이다. 삶의 작은 영역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지극히 작은 부분에서도 늘 신실하게 최선을 다함으로 신뢰를 쌓는 사람이 되라.
셋째, 신뢰는 당신이 쌓아가는 것이다. 신뢰는 예금계좌와 같다는 말이 있다. 신뢰는 내가 보여준 행동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주위에서는2가지의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혹은 “그 사람이? 그럴 리 없어!” 라는 반응이다. 일상의 삶 속에서 당신이 신뢰를 쌓아가는 삶을 살았다면 당신의 부족으로 인해 드러나는 실수를 향하여 사람들은 후자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신이 쌓아가는 신뢰의 예금계좌를 마이너스 통장으로 만들지 마라.

얼마 전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여론 조사는 한국교회의 낮은 신뢰는 만성적이고 구조적 문제(19.4%) 이며, 윤리와 도덕 실천을 통한 신뢰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을 나의 신뢰도의 추락으로 인식해야 한다. 나 자신의 삶 속에 만성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하며, 윤리와 도덕 실천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신뢰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작은 부분을 보며 전체를 평가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사실을 인식하며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가꾸어간다면 개인은 물론 한국교회 전체는 신뢰할 만한 공동체로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디모데 성경연구원/ 사람을 세우는 칼럼 263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4-16. QT큐티체조. 고난주간입니다.

간단설명. 수요일에 예수님은 베다니로 오셔서 잠시 휴식을 취하셨다. 이 날은 침묵의 날이라고 불린다. 목요일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십자가를 준비하신 준비의 날이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2:24-30
한글본문.
24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영어본문.
24 Also a dispute arose among them as to which of them was considered to be greatest. 25 Jesus said to them, “The kings of the Gentiles lord it over them; and those who exercise authority over them call themselves Benefactors. 26 But you are not to be like that. Instead, the greatest among you should be like the youngest, and the one who rules like the one who serves. 27 For who is greater, the one who is at the table or the one who serves? Is it not the one who is at the table? But I am among you as one who serves. 28 You are those who have stood by me in my trials. 29 And I confer on you a kingdom, just as my Father conferred one on me, 30 so that you may eat and drink at my table in my kingdom and sit on thrones, judging the twelve tribes of Israel.

도움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27절). 유대 식사 풍습에 주인이나 귀빈은 기대어 거의 눕는 자세로 앉아서 먹고, 종들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크다고 하셨는가(26절)?
⬇ 아래로 인간.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갈 때 약속된 영광은 무엇인가(29-30절)?
? 물어봐.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셨는가(27절)?
! 느껴봐. 나는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더 크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더 겸손히 낮아져서 섬겨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Meditation. 하늘에서 큰 자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는 ‘인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내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제자들은 ‘우리 중에 누가 크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었다(24절).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지위는 세상 나라와 같지 않음을 교훈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오셔서 죽기까지 낮아지시며, 겸손히 섬김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제자들 역시 서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섬겨야 한다(25-27절).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섬기는 사람이다(마 20:26-27). 예수님은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다(요 13:1-17). 그리고 하나님이 그 나라를 예수님께 맡기셨듯이, 이제 예수님도 그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시겠다고 선언하신다(28-29절). 이 땅에서 섬기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 당신이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 겸손히 섬겨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young2080애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