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6.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연로해진 여호수아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백성의 지도자들을 불러 최후의 당부를 전한다.

성경본문. 여호수아 23:1-8
한글본문.
1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6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7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8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영어본문.
1 After a long time had passed and the LORD had given Israel rest from all their enemies around them, Joshua, by then old and well advanced in years, 2 summoned all Israel–their elders, leaders, judges and officials–and said to them: “I am old and well advanced in years. 3 You yourselves have seen everything the LORD your God has done to all these nations for your sake; it was the LORD your God who fought for you. 4 Remember how I have allotted as an inheritance for your tribes all the land of the nations that remain–the nations I conquered–between the Jordan and the Great Sea in the west. 5 The LORD your God himself will drive them out of your way. He will push them out before you, and you will take possession of their land, as the LORD your God promised you. 6 “Be very strong; be careful to obey all tha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without turning aside to the right or to the left. 7 Do not associate with these nations that remain among you; do not invoke the names of their gods or swear by them. You must not serve them or bow down to them. 8 But you are to hold fast to the LORD your God, as you have until now.

도움말.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4절). ‘대해’는 지중해를 가리킨다. ‘요단에서부터 지중해까지’는 가나안 본토 전체를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5절). 13:6에 나오는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라는 말씀을 가리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를 여호수아는 어떻게 요약했는가(3-5절)?
⬇ 아래로 인간. 은혜를 입은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6절)?
? 물어봐. 연로한 여호수아가 우선적으로 행한 일은 무엇인가(1-2절)?
! 느껴봐. 나는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내가 더욱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

Meditation. 은혜를 아는 사람은 순종한다
여호수아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싸워주셨고(3절),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눠주셨으며(4절), 장차 남은 대적을 다 쫓아내고 그 땅을 온전히 허락해주실 것이다(5절). 하나님이 쟁취하셨고 나눠주셨으며 정착하게 하실 그 은혜의 땅에서 은혜 입은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한다. 은혜를 기억하는지 못하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순종한다. 그리고 그 순종은 이미 받은 은혜가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매는 고리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하나님께 들었던 권면(1:6-9)을 백성들에게 반복한다(6절). 지금까지 그의 삶을 통해 거둔 모든 성취의 비결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말씀의 외줄타기에 성공한 데 있다. 여호수아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그 좁지만 형통한 길로 초대한다. 당신이 더욱 민감하게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온전히 순종해내야 할 주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은혜, 하나님의 조건만남?

성경의 문화와 동떨어지고 상당히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 문화에서 성경을 읽을 때 오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는 본인의 졸저 “신앙, 그 오해와 진실”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처럼 은혜다. 현대인이 이해하는 은혜의 개념은 조건 없는 선물이다. 이는 서구를 지배하는 칸트철학 이후 “올바른 윤리에 따른 동기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는 명제 때문이다. 베풂에 있어 우리가 수수하게 조건 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말을 할 때도 “순수함”과 “조건 없음”은 거의 동일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는 관계 지향적 집단주의사회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가치이다. 사실 오늘날도 이런 순수한(?) 조건없는 행위란 존재하기 어려운 “불가능한 선물”일 것이다. 고대 사회로 부터 선물은 여성의 마음을 사기위해 보호를 받기 위해 전쟁을 피하기 위해 바쳐저 왔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도 치밀하게 계산을 한다.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행동은 나쁜 것이 아니다. 효를 행할 때도, 이성간의 사랑에도, 친구간의 우정에도 무엇인가 얻으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얻고자 하는 것이 고차원적인 보상인가 아니면 저차원적인 보상인가가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을 결정한다. 전쟁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도 그 위대성은 물리적인 보상이냐 자기 스스로 느끼는 고차원적인 정신적 보상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보상이 없다면 인간은 행동하지 않는다. 즉 이타심이란 조건 없이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고차원적인 가치에 근거한 행동이다. 사랑을 키워가는 길, 따뜻한 마음을 실현하는 삶이 훨씬 행복한 길임이 부정될 때 사랑을 키워나갈 이유가 없다.

성경에서 은혜는 고차원적인 가치의 투자다. 여기서 투자란 베푼 것에 대한 기대가 있고 반응이 의무적이란 뜻이다. 고차원적이란 말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기대가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영광을 받기 위함이기에 무조건적이지 않다.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때 심판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신 이유도 우리가 그분께 영광 돌리기 위함이다. 그 반응이 없을 때 그 사랑은 무효화 된다.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신하의 비유에서도 보라. 무조건적인 탕감은 없다. 큰 탕감의 목적은 다른 이를 탕감해 주라는 것이 동의되어 있다. 그렇지 못하면 왕의 탕감이 취소된다. 인간에게 기대없는 순수한 동기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대없다는 것이 순수한 동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대적 발상일 뿐이다. 순수하신 하나님도 베푸실 때 기대가 많으시다. 성경의 문화에서 은혜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은혜란 자격없는 자와의 관계맺음을 위해 먼저 베푸신 하나님의 호의다. 이런 차원에서 은혜는 투자다. 고품격 가치투자!

하나님이 나를 아무 조건없이 사랑하셨다고? 성경에 그런 것은 없다. 그분의 사랑을 수용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물론 사랑과 은혜는 “계약”이 아니다. 상업적인 계약과 달리 동등 가치교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는 관계적이기 때문에 상호교환을 의무로 하고 있다. 어떤 가치와 차원에서든 상호교환의 기대가 없는 사랑, 은혜, 선물이란 없다 . 남자가 호감가는여자에게 선물을 줄 때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사귀자는 초대이듯이 하나님의 사랑도 은혜도 이와 같은 선물이다. 은혜는 관계맺음을 위한 초대다. 조건없는 사랑이나 은혜란 성경적이지 않다. 이유없는 사랑, 조건없는 사랑이란 없다. 은혜도 마찬가지다.

P.S. “남녀간의 가장 흔한 거짓말은 무조건 사랑한다는 말이다. 뭔가 얻는게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 보상이 고차원적일 수록 가치있는 것이다.^^”
<이민규 교수님의 펫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