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0. 주일에는 읽는 QT큐티. 신앙의 문방사우 3.

간단설명. 자신을 위해 한 일은 우리가 죽을 때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은 영원히 남는다. - 앨버트 파인

한글본문.
사도행전 14:12-18
12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영어본문.
12 Barnabas they called Zeus, and Paul they called Hermes because he was the chief speaker. 13 The priest of Zeus, whose temple was just outside the city, brought bulls and wreaths to the city gates because he and the crowd wanted to offer sacrifices to them. 14 But when the apostles Barnabas and Paul heard of this, they tore their clothes and rushed out into the crowd, shouting: 15 “Men, why are you doing this? We too are only men, human like you. We are bringing you good news, telling you to turn from these worthless things to the living God, who made heaven and earth and sea and everything in them. 16 In the past, he let all nations go their own way. 17 Yet he has not left himself without testimony: He has shown kindness by giving you rain from heaven and crops in their seasons; he provides you with plenty of food and fills your hearts with joy.” 18 Even with these words, they had difficulty keeping the crowd from sacrificing to them.

Meditation. 붓, 주님의 손에 붙들려
그림이나 글씨의 모양은 붓끝의 놀림에서 나옵니다. 좋은 그림에서 붓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붓은 붓끝의 털 중 가장 긴 털인 명모(命毛)의 선이 가지런하고, 붓끝을 누르면 부드러운 탄력이 손가락에 전해집니다. 하지만 붓이 아무리 좋아도 붓이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닙니다. 붓을 쥔 사람이 그립니다.
붓글씨와 수묵화의 경지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논할 때 꼭 언급되는 말이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입니다. 서예든 그림이든 이게 있어야 대가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류로 치부되거나 기교가 뛰어나다는 정도의 평가밖에는 얻지 못합니다. ‘문자향 서권기’가 있는지의 여부는 좋은 붓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학식과 덕망이 그 작품에 드러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열심히 봉사합니다. 멋진 작품을 내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문자향 서권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인간의 나라’로 그려질 위험이 있습니다. 기교만 잔뜩 부려놓은 아류를 그려 놓을 수 있습니다. 붓의 사명은 붓을 쥔 사람의 손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은은한 묵향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좋은 붓이 있었습니다. 바울이라는 붓입니다. 학식과 열정이 있었지만 붓대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바울이라는 이 멋진 붓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힘이 빠지고서야 인간의 나라가 아닌 ‘신적’(神的) 문자향 서권기를 풍기는 하나님 나라를 그려냅니다. 바울은 주님의 손에 잡히자 일필휘지의 놀림으로 화선지 위를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적절한 탄성을 지녀서 손에 착착 감기는 붓대가 되어야 하고, 그림 위에 불필요한 선을 남기지 않도록 명모도 가지런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붓을 쥔 분의 신성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힘을 빼고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많이 준비되었습니까? 붓을 쥐신 분이 일필휘지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힘을 빼십시오. 섬기는 자리에서 하늘의 문자향 서권기가 드러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스스로를 자랑하게 마옵시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일필휘지로 하나님 나라를 그려내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