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6.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사울은 다윗을 집요하게 추적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블레셋의 침공으로 다윗 추격을 포기하고 물러간다.

성경본문. 사무엘상 23:15-29
한글본문.
15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9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21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23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24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25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27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8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9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영어본문.
15.While David was at Horesh in the Desert of Ziph, he learned that Saul had come out to take his life. 16.And Saul’s son Jonathan went to David at Horesh and helped him find strength in God. 17.”Don’t be afraid,” he said. “My father Saul will not lay a hand on you. You will be king over Israel, and I will be second to you. Even my father Saul knows this.” 18.The two of them made a covenant before the LORD. Then Jonathan went home, but David remained at Horesh. 19.The Ziphites went up to Saul at Gibeah and said, “Is not David hiding among us in the strongholds at Horesh, on the hill of Hakilah, south of Jeshimon? 20.Now, O king, come down whenever it pleases you to do so, and we will be responsible for handing him over to the king.” 21.Saul replied, “The LORD bless you for your concern for me. 22.Go and make further preparation. Find out where David usually goes and who has seen him there. They tell me he is very crafty. 23.Find out about all the hiding places he uses and come back to me with definite information. Then I will go with you; if he is in the area, I will track him down among all the clans of Judah.” 24.So they set out and went to Ziph ahead of Saul. Now David and his men were in the Desert of Maon, in the Arabah south of Jeshimon. 25.Saul and his men began the search, and when David was told about it, he went down to the rock and stayed in the Desert of Maon. When Saul heard this, he went into the Desert of Maon in pursuit of David. 26.Saul was going along one side of the mountain, and David and his men were on the other side, hurrying to get away from Saul. As Saul and his forces were closing in on David and his men to capture them, 27.a messenger came to Saul, saying, “Come quickly! The Philistines are raiding the land.” 28.Then Saul broke off his pursuit of David and went to meet the Philistines. That is why they call this place Sela Hammahlekoth. 29.And David went up from there and lived in the strongholds of En Gedi.

도움말.
네 다음(17절). 두 번째라는 뜻으로 2인자를 의미한다.
수풀 요새(19절). 수풀(히. 호레샤)은 십 광야에 있는 지역 이름으로, 원문 그대로 호레샤에 있는 요새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ESV 참조).
유다 몇 천 명(23절). 유다지파의 모든 족속들을 의미한다.
셀라하마느곳(28절). 분리하는 바위란 뜻이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16, 27절)?
아래로 인간. 십 사람들의 제보에 사울은 무엇을 주의하는가(22-23절)?
? 물어봐.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17절, 삼상 15:28 참조)?
! 느껴봐. 나는 위기 가운데 있는 지체를 감싸고 보호하는가, 아니면 더욱 위험에 빠뜨리는가?
옆으로 실천해. 내 이웃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는 사람으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다(22:5). 하나님은 아무리 위험해 보이더라도 피할 길을 내시고 보호하신다.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이 숨어든 장소를 제보해 사방을 둘러싸 포위망을 좁혀들어 가지만, 하나님은 블레셋이 침공하게 하셔서 사울을 물러가게 하신다. 요나단은 위기에 처한 다윗을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다윗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고, 사울에 이어 왕이 될 것이기에 절대 사울의 위협이 미치지 못할 것을 확신했다(17절).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요나단은 위기에 처한 다윗을 오히려 격려하고 용기를 실어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한 십 사람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강자 앞에 잘 보이기 위해 다윗을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누구 편에 서는가? 사울인가, 다윗인가? 강자인가, 약자인가?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보면서 하나님 편에 온전히 설 때 비로소 누구 편에 설 것인가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누가가 보는 예수의 희년 성취 1]

누가가 나사렛 선언에서 이해하는 예수의 희년성취는 레위기 희년의 문자적 성취는 아니다. 또한, 자신이 인용하는 레위기 희년을 바벨론 유수 상황에서 재해석한 이사야의 새 출애굽적 희년(안식년)과도 다르다. 누가는 자유로운 편집을 통해 이사야 본문을 예수의 사역에 맞추어 새롭게 설명한다. 이런 차원에서 누가복음의 희년은 기본적으로 레위기 희년의 재해석인 이사야의 희년에 대한 재해석이다. 따라서 누가의 희년 성취는 레위기와도 다르며 이사야의 재해석과도 다르다.

누가복음의 희년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종말론적 구원사역과 관련 있다. 레위기의 희년은 주기적으로 빚을 탕감받고 종살이에서 자유를 얻거나 땅을 되찾는 사회 경제적 해방과 긴밀하나, 예수는 주도권을 가지고 법적인 차원에서 레위기의 희년 법을 실현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빚을 탕감해 주거나 노예를 해방시켜 주라고 하지도, 토지를 원주인에게 반환시키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레 25). 그러나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잠깐이나마 실현된 이상적인 기독교 공산사회의 모습은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지도 않고 바울서신에서도 추구하지 않는다. 종말론적 희년의 실현은 늘 부분적이고 제한된 시간에 실현할 수 있나 이상적이고 영구적인 실현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전망임을 그들도 안 것 같다. 따라서 예수의 희년 사역은 제자들이 가난한 자를 돌보고 차별을 금지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에 순종하여 동참함으로 제한된 공동체에서 부분적이고 한시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누가는 이사야의 바벨론 유수 상황에서 나타난 정치적인 해방과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희년을 약화시킨다. 비록 누가복음 1-3장의 찬가에서 정치적 해방의 언어가 수용되지만, 실제로 예수의 사역에서 그 사역은 그렇게 정치적이진 않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예수는 제국주의에 대한 복수를 외치지도 이스라엘의 국가적 재건도 외치지 않는다. 예수는 분명히 로마 제국주의에 대한 사회 정치구조의 개혁을 위한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의 저항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는 이사야 이후 진행된 유대문헌의 영성화되고 종말론적 희년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고 이를 수용한다.

누가의 종말론적 희년은 따라서 은유적인 해방의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누가가 강조하는 희년은 기본적으로 영적인 해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희년의 빚 탕감은 죄 사함에 관한 은유로(παντὶ ὀφείλοντι ἡμῖν 눅 11:4) 주로 사용되며 문자적인 종살이와 정지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귀신축출을 통한 사탄의 종살이로부터의 자유함, 영적 권세를 통한 질병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이 있다.
<이민규 교수님 펫북에서 가져왔습니다>

2017-06-25. 주일에는 읽는 QT. 시간 속에 담긴 비밀 4.

위대한 지혜자는 시간의 손실을 가장 슬퍼한다. - 단테

에베소서 5:15-17
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시간의 물길 관리하기

사무엘 스마일스는 ‘계획하지 않은 시간은 나의 약점이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땅의 시간이 물과 같이 흘러갈 때, 그것을 관리하는 물길이 없으면 ‘약점과 무의미의 하수도’로 누수되고 만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세월을 아끼라’ 곧 ‘시간 속에서 기회를 건져내라, 시간을 구원하라’고 외친다. 단지 시간을 절약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섭리적 시간과 기회를 발견하고 그것을 선용하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물길을 관리하는 수로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긴급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찰스 험멜은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에서 사람의 일을 중요성과 긴급성으로 나누고, 긴급한 일은 중요한 일을 잊게 만들도록 압력을 가하고 중요한 일을 중요하게 취급하지 못하도록 횡포를 부리는 악동이라고 지적한다. 긴급한 일이 아닌 중요한 일 위주로 타임 매트릭스를 다시 짜야 한다.
●지나친 완벽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내가 계획한 대로 해야 하고 돼야 한다는 완벽주의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이 인도하신다(잠 16:9). 사람의 완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에 시간을 맡겨야 한다.
●단순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도 ‘오직’(엡 5:15, 17, 18)이라는 부사어를 통해 삶의 단순성을 강조한다. 복잡한 삶은 시간의 도둑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가 주신 사명에 집중하는 단순성이 시간 관리의 대원칙이 되어야 한다. 시간의 물살은 사람의 죄성을 따라 악한 데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시간의 물길을 잡는 거룩한 수로를 세워야 한다. 당신은 지금 그 수로를 확보했는가?

기도
“주신 시간을 오직 주님의 뜻과 맡겨주신 사명의 물길로만 흘려보낼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