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Origns-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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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오리진 – 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 (IVP)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학이 보여 주는 자연 세계는 황홀하다. 100억 년 이상의 시공간에 담긴 우주의 역사나 지구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생물의 세계는 끝없는 감탄을 자아낸다. 자연과 초자연을 혼동한 고대인들이 우상으로 숭배했던 자연 세계의 구성원들은 선명한 인과관계를 통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 세계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은 자연 세계 안에서 찾을 수 없다. 신비로운 자연 세계의 존재 그 자체가 어떤 초월자를 어렴풋이 가리키는 셈이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의 시각을 자연 세계 안에 가두어 놓기도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자연주의 세계관은 일상적 경험에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빈틈없이 자연법칙을 따르고, 초월자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과학은 그저 자연 세계의 인과관계를 다룰 뿐인데 초자연적 세계를 부정하는 범인으로 몰리기도 한다. 그래서 과학은 종종 신앙의 적으로 간주된다.
주일학교에 잘 다니던 아이가 더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며 고민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더니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내용은 다 거짓말이었다며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했단다.
얼마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분의 남편 이야기도 비슷했다. 미국 남부에서 근본주의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대학에 들어간 후에 무신론자가 되었다. 지구의 나이는 1만 년이고 진화론은 거짓이라고 배웠기에 과학을 전공하면서 큰 갈등을 느꼈다. 몇 년 동안 고민하면서 지구가 45억 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지질학의 주장이 기독교와 모순되지 않음을 깨달았지만, 생물진화론은 결국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과학자가 된 그에게 진화는 분명한 사실이었고, 자신이 배운 기독교 신앙과 모순되었다. 결국, 그는 과학을 택하고 신앙을 버렸다. 이런 안타까운 일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 걸까?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주일학교가 위축되고 기독교인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든 캠퍼스에서는 학생 선교 단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과학을 무기로 종교를 공격하고, 복음의 능력을 보여야 할 교회는 교회 사유화와 세습을 비롯한 도덕적 타락으로 한국 사회에 퍼져가는 반(反)기독교 정서에 오히려 기름을 붓고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미국 유학생 수련회에서 만난 어느 젊은 교수는 우주와 생물의 역사를 다룬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창조주의 존재를 깊이 느꼈으며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과학이 커다란 유익을 주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광대한 우주의 시공간과 다양한 생물의 세계를 보면서 은혜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어지럽다. 과학은 위대한 창조주의 창조 역사를 드러내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아이들과 청년들 그리고 지성인들을 신앙의 길에서 밀어내기도 한다. 창조-진화 논쟁으로 대표되는 과학과 기독교의 불편한 관계는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을 거부하고 지성인들이 기독교를 버리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 어그러진 상황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분명 균형 잡힌 창조 신학 교육이 시급하다.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무기로 사용한다고 해서 과학 자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어리석은 대응은 이제 멈춰야 한다. 과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석하는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보여 준다고 가르쳐야 한다. 창조주는 그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통해 창조를 계획했고 자연법칙을 통해 하나하나 창조 세계를 구현해 왔다. 하나님의 창조가 인간의 이해를 넘어 다양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문제는 균형 잡힌 교육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과학과 관련된 주일학교 교육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과학을 부정하는 창조 과학(젊은 지구론)을 가르치는 일 정도가 고작이다. 목회자나 교사도 사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른다. 과학을 균형 있게 다루는 창조 신학을 신학교에서도 별로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스스로 공부하려 해도 성경적 과학적으로 균형 잡힌 책이나 커리큘럼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오리진>은 균형 잡힌 창조 신학을 가르쳐 주는 저서들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교회에 단비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은 과학과 기독교의 핵심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과학적 견해와 신학적 견해들을 하나씩 살펴 가면서 창조-진화 논쟁의 지형도를 그려준다. 또한 지구 연대나 생물 진화, 아담과 하와의 기원을 비롯한 혼란스런 주제들에 관해 복음주의 신학과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어느 선까지 신학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준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성경 해석을 자꾸 바꾸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학이 성경보다 우월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염려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많다. 분명한 한계를 갖는 과학을 맹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경직되게 읽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 책의 독자들이 누릴 한 가지 유익은 성경 해석과 과학에 관한 폭넓은 조망이다. 성경 본문과 과학이 일치해야 한다고 보는 일치론적 입장과 그렇지 않다고 보는 비일치론적 입장의 다양한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은 창조주와 창조 역사를 바라보는 풍성한 시각을 배울 수 있다.
물론 과학과 신학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이 정도 분량에 담았기에 책의 깊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학적 증거와 신학적 입장을 모두 만족시키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오히려 혼란스러워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이 바로 독자들을 더 깊은 공부로 이끌고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창조의 역사 앞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건전한 창조 신학을 가르쳐 줄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는 이 책은 21세기 과학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필독서다. 성경을 가르치는 목회자나 주일학교 교사는 물론이고, 과학을 가르치는 기독 교사들과 대안학교 교사들도 반드시 탐구해야 할 책이다. 과학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각과 돌파구를 열어 줄 것이며, 과학적 사고와 과학의 권위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자들에게는 변증의 방법과 전략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할 것이다. 과학을 무기로 삼은 무신론자들의 공격이 거세지는 시대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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