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의 성경적 균형을 위해 도움되는 글.

<이 글은 서울신대 교수로 사역 중인 장기영 박사님의 글을 그의 동의로 그의 펫북에서 가져왔음을 밝히며, 조금 어려운 용어가 있더라도 좌우 문맥과 이어 거듭 읽어보면 이해가 될듯합니다>

이 글을 올리는 목적이 고 김성수 목사의 자살 사실이나, 그의 사생활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편승하여 그에 대해 인격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비난을 가하기 위함이 아님을 밝힙니다. 단지 여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신앙적 진실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 김성수 목사의 성경적 균형을 잃은 메시지에 무비판적으로 빠져들어 성경의 일면 (복음, 칭의, 은혜) 은 취하면서도 다른 면 (율법, 성화, 인간의 자유와 책임) 에 대해서는 버리거나 왜곡되게 취급하는 경우가 있고, 2) 더 나아가 성경에서 신자에게 꼭 있어야 할 경건의 필수적 요소인 율법에 대한 순종을 다른 어떤 죄보다 더 죄악시하는 중대한 오류가 나타나며, 3) 김성수 목사의 영향을 받은 분들은 공통적으로 그의 성경적, 신학적 입장을 두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만이 진리인 듯 전파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저는 김성수 목사의 신학에서 문제의 핵심이라 생각되는 되는 점을 정리하고, 더 나아가 그의 메시지에 의해 공격받는 성경적 성화의 교리 및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성경적 경건의 중요한 요소로서 변호하고자 합니다.

전에 김성수 목사의 메시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던 저의 글을 읽었던 분들 중에 최근 다시 저의 견해를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계속 개인적 관계에서만 답할 성격이 아니라고 느껴, 예전에 올린 글을 부분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또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제가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다 들은 것은 아니지만, 김성수 목사의 설교는 성경본문은 다양하게 바뀜에도 불구하고 설교의 주제 및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모든 본문을 알레고리적으로 풀어가는 설명방식은 천편일률적이라 할 정도로 유사하기에, 제가 지금까지 듣고 읽은 정보로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판단되지만, 혹 제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저의 견해는 차후에라도 수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의 일부분에서 그를 변호할 수 있는 내용이 발견된다 하여 그것으로 반론하신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을 말씀 드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메시지의 위험성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이지, 그의 설교 전체에 대한 세세한 주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의 메시지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은 점이 많지만, 가장 중대한 위험성이라고 생각되는 점만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김성수 목사가 표명하는 자신의 신앙과 신학의 목적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신앙과 신학의 주된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구원과 인간 삶의 모든 원인을 100% 오직 하나님께로만 돌리고,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0.0001%도 돌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김성수 목사의 메시지의 주된 의도라는 사실이 읽혀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를 추종하고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많은 분들께 가장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즉, 그분의 메시지가 참으로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예수”만을 선포한다고 생각하시기에, 그분의 메시지를 접하는 분들은 자신들은 과거에 복음으로 산 것이 아니라 율법적 삶을 살았다고 여기면서 그분의 메시지에 무비판적으로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성수 목사가 제시하는 복음이 과연 성경적으로 균형 잡힌 메시지인가? 그의 복음이 성경의 다른 부분, 즉 신자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가운데 바르게 세우기 위한 성경적 율법관과도 바르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인정한다 치더라도, 그의 방법까지도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저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김성수 목사는 루터가 인간을 “노예의지”를 가진 존재로 설명한 것보다 더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묘사합니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만약 신자가 거룩한 삶을 산다면 그것도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죄에 빠져서 도덕적으로 최고로 밑바닥 인생을 사는 것도 하나님에 의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불신자와 다름 없이 신자도 도덕적으로는 언제나 가장 밑바닥이며 변화 받지 못한 존재이고,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왜 극단적으로 신자의 타락을 주장하고, 인간에게 전혀 자유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자에게도 죄로부터의 해방이 없는 것으로 가르칠까요? 쉽게 표현하자면,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유의지가 있어서 스스로 믿음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면,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 되며,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행위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신자가 어느 정도 죄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할 수 있음을 부정하는 이유는, 신자라도 도덕적으로는 전적으로 밑바닥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가 더욱 극대화될 수 있을 텐데, 신자가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하면 은혜가 훼손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김성수 목사는, 신자가 어떤 선행을 하거나 죄와 싸워 이기거나 어떤 경건한 삶의 열매를 맺는다 하더라도 거기에 인간의 공로가 0.1% 라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늘 죄인이고, 신자라 하여도 늘 죄에 빠져서 사는 존재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선행과 경건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에 의한 것으로 인간 편에서는 수동적으로 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더 나아가, 신자 안에도 하나도 변화된 것이 없다고 가르쳐야만, 신자의 의까지도 전적으로 성령께 의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종교개혁자 루터도 때로는 가르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점으로 지금부터 들어가보겠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 뿐만 아니라, 신자의 어떤 의지적 노력의 가치도 부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만 돌리는 김성수 목사의 가르침이 어떻게 이상해지는지, 삼단논법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자도 죄인일 뿐이며 스스로의 의지로는 어떤 선행도, 하나님 앞에서의 어떤 경건도 불가능하다. 2) 신자라도 죄에 빠져 살 수밖에 없지만, 그들이 가끔씩 죄를 이기고 또 가끔씩 경건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에 지배를 받을 때만 가능하다. 3) 그러므로 (여기에서부터 김성수 목사의 주장은 결국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늘 승리하게 하시지 않기 때문에 신자는 늘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늘” 지배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죄에 대해 넘어지면서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김성수 목사의 가르침은 결국 신자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죄에 대해 승리하지 못하는 책임까지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김성수 목사는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 신자가 죄에 빠져서 사는 책임까지도 하나님께 전가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주장하는 대범함을 보입니다.

김성수 목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자신의 주장으로부터 사람이 행하는 어떤 선행이나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어떤 경건도 절대적으로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짐, 즉 인간 편에서는 그 모든 것이 수동적으로 이루어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인간의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행하는 선행과 경건일지라도 거기에 인간의 의지적 노력이 조금이라도 들어갔다고 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바로 이 주장으로부터 김성수 목사는 심각하게 비성경적인 주장, 즉 사람이 율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든 노력은 모두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것이다, 신자가 아무리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율법에 순종하려고 노력해도… 그 모든 노력은 인간의 교만의 표현이고, 자기 의를 쌓는 것이고, 율법주의라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범죄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것이 범죄라는 아주 해괴한 논리를 모든 설교에서 끊임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율법을 행하는 것을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큰 죄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요? 그의 잘못된 논리를 바로 잡기 위해 성경적 죄의 정의를 살펴보면, 성경적 죄의 정의는 요일 3:4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는 대로, 불법, 즉 율법을 깨뜨리는 것이 죄입니다. (여러 버전의 영어성경 혹은 원어성경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죄의 성경적 정의는 율법을 어기는 것, 율법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야고보서 4장에서는 율법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으로 재판자가 되려는 이들의 잘못을 언급한 후 4:17절에서는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라고 죄를 정의하였습니다. 즉, 율법이 가르치는 선과 악의 기준에 의해 선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성수 목사는 교묘하게 죄의 정의를 완전히 뒤바꾸어버립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는 것이 죄이고, 율법이 명령하는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는데도 불구하고, 김성수 목사는 율법을 행하려 하는 것이 죄이고, 선을 행하겠다고 하는 것이 죄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뒤집어 버립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의 전복 속에는,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2:16-17) 라고 하신 말씀을 뱀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4-5) 라고 뒤집어 말한 것과도 유사할 정도도, 교묘함과 대담함이 들어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김성수 목사는 어떤 논리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할까요? 그의 설교 뿐만 아니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글들에서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논리가 바로 “선악과”의 논리 입니다. 김성수 목사는 선악과를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과 연결시킵니다. 죄의 본질은 교만이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누구나 교만하여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데,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율법을 행함으로 스스로 거룩해지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언뜻 들어보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악과 논리의 교묘함은, 선악과를 따먹은 죄란 바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그 “명령을 어긴 죄”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죄”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감추어 버리는 데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타락했다는 사실을 감추어버림으로써, 김성수 목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 즉 그의 율법을 깨뜨리는 것 (요일3:4) 과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 (약4:17) 이 죄라는 성경적 정의를 감추어버립니다. 결국, 성경이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성화의 교리, 율법에 대한 순종, 선행에 대한 권면을 뒤엎어버리기 위해서 그가 사용하는 교묘한 수단이 바로 “선악과”의 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라는 죄의 본질은 숨겨버리고 그 대신 “선악과”만 전면에 내세웁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율법을 행하려 하고 선을 행하려 한다는 표현을 통해 교묘하게 율법에 순종하려는 것을 죄로 만들어버리고, 성화로 나아가려는 것이 죄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인 순종과 성화를 인간의 교만과 자기 우상화의 죄로 뒤바꾸어버립니다. 인간의 타락을 말할 때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라면서 계속 “선악과”만 강조하는 김성수 목사의 메시지에는 아주 위험한 율법무용론적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김성수 목사는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율법을 행하려 것이 교만이고 타락이고 인간의 자기 우상화라고 말하지만, 창세기 타락 기사를 보면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 때문에 인간이 저지른 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죄가 아니라 정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뜨리는 불순종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인간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 하는 교만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이 하나님 되려는 반역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명령, 율법,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하나님 권위에 대한 반역인 것입니다.

김성수 목사가 성경적 가르침인 율법에 대한 순종과 성화를 전복시키는 데 사용하는 또 다른 논리로서 “바리새인”의 논리도 중요합니다. 김성수 목사는 바리새인이 율법을 행하고도 예수님께 사탄의 자식이라는 꾸지람과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바리새인처럼 율법을 행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고 그것이 인간의 자기 우상화라는 주장을 끊임 없이 폅니다. 김성수 목사를 추종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김성수 목사는, 성경은 오히려 바리새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행한 자들이 아니라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일부러 숨겨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이 진정으로 율법을 행한 자로 나타날까요? 예수님께서 마 23:23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신 데서 알 수 있듯,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를 그들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 즉, 율법의 정신은 지키지 않으면서 행동으로는 외식하고 위선함으로써 율법을 깨뜨린 것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결의론적으로만 지켰을 뿐이지 참되게 하나님께 순종한 자들, 참되게 율법을 지킨 자들이 아닙니다. 결의론적 율법 준행이란, 율법을 몇 가지 외적인 행동규칙으로 만들어 그것만 행하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식의 잘못된 율법 준행을 말합니다. 김성수 목사는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화 있을진저” 예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설명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반대로 그들은 참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화 있을진저” 저주를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그들의 죄성을 따라 율법을 왜곡하여 지킨 척 한 것이지, 율법을 참되게 지킨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율법을 왜곡한 자, 율법을 어긴 자들입니다. 바로 이 사실,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께 책망 받은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지,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김성수 목사의 율법 비방이 아주 잘못된 논리에 근거해 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줍니다.

아주 중요하기에 다시 반복하고자 합니다. 김성수 목사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처럼 되려 했다고 말하면서, 그 논리를 신자들에게도 적용하여 율법을 지키려 함으로써 하나님처럼 되려 하지 말라, 율법을 행함으로써 거룩한 척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주장입니다. 율법의 정신과 핵심에 순종하지 않고 겉으로 몇 가지 행동을 준수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순종하여서가 아니라, 율법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자들,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난 자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 한 자들, 하나님처럼 되려 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이 율법을 행하다가 저주를 받았으니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김성수 목사의 주장 속에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성화를 깨뜨리는 교묘하고도 간교한 진리의 왜곡이 숨어있습니다.

요일3:4절 또는 약4:17절에 나타난 성경적 죄의 정의, 율법 없음 (lawlessness), 율법을 깨뜨림 (transgression of the law), 또는 율법이 가르치는 바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음 이라는 죄의 정의는 분명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는 것,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죄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경적 죄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죄 중에는 십계명의 제1계명을 깨뜨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려 하는 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바르게 말한다면, 율법의 제1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되려 할 수가 없고, 오히려 그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만을 높이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제1계명을 깨뜨리는 죄가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처럼 되려 하는 죄 자체인 것입니다.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교만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율법을 깨뜨리는 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요일 3:8절은 (4절에서 율법을 깨뜨리는 것이 죄라고 설명한 이후에 이어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을 바르게 가르치셨고, 율법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 등 율법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셨고,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 회개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회개한 죄를 다시 짓지 않도록 율법 어기는 죄의 근원인 마귀의 일을 멸하여 율법 깨뜨리는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만이 아니라 율법 어기는 죄로부터 건져주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 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란,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고 반역하던 존재였던 인간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자기 자리 이탈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 즉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 반대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인이 진정으로 자기 우상화와 교만의 죄를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율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불순종하던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그 율법에 바르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결의론적으로 왜곡시킨 율법을 다시금 인간의 마음을 살피시는 거룩한 사랑의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해야 하고, 바리새인들이 왜곡시켜 순종한 율법주의적인 율법 순종을 그치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대로 참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에서부터 행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고, 죄를 십자가에 못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의 메신저 마틴 루터가 그렇게 강조했듯, 하나님의 율법 중에서 제 1 계명, 즉 믿음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가장 먼저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다음으로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다른 모든 계명들에도 순종하는 삶을 열매로 맺는 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열매이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김성수 목사는 자신의 잘못된 논리로 교묘하게 율법에 대한 순종을 죄로 탈바꿈 시키려 하고, 율법을 비난하고 폐하려 합니다. 김성수 목사의 비성경적인 메시지는 신자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가장 근본적인 죄로 바꾸어버리고 비난함으로써 잘못된 율법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서의 율법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폐하시지 않고 오히려 모범을 보이시고 온전히 설명해주심으로 완성하신 율법 (마5:17), 바울이 폐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굳게 세운다던 율법에 대한 순종 (롬3:31)을 김성수 목사는 폐하고, 폄하하고, 비난하고, 죄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김성수 목사는 복음을 율법무용론적 복음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다 읽으셨다면 최근에 올린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왜 주셨을까요?’을 찾아 읽어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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