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가 보는 예수의 희년 성취 1]

누가가 나사렛 선언에서 이해하는 예수의 희년성취는 레위기 희년의 문자적 성취는 아니다. 또한, 자신이 인용하는 레위기 희년을 바벨론 유수 상황에서 재해석한 이사야의 새 출애굽적 희년(안식년)과도 다르다. 누가는 자유로운 편집을 통해 이사야 본문을 예수의 사역에 맞추어 새롭게 설명한다. 이런 차원에서 누가복음의 희년은 기본적으로 레위기 희년의 재해석인 이사야의 희년에 대한 재해석이다. 따라서 누가의 희년 성취는 레위기와도 다르며 이사야의 재해석과도 다르다.

누가복음의 희년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종말론적 구원사역과 관련 있다. 레위기의 희년은 주기적으로 빚을 탕감받고 종살이에서 자유를 얻거나 땅을 되찾는 사회 경제적 해방과 긴밀하나, 예수는 주도권을 가지고 법적인 차원에서 레위기의 희년 법을 실현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빚을 탕감해 주거나 노예를 해방시켜 주라고 하지도, 토지를 원주인에게 반환시키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레 25). 그러나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잠깐이나마 실현된 이상적인 기독교 공산사회의 모습은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지도 않고 바울서신에서도 추구하지 않는다. 종말론적 희년의 실현은 늘 부분적이고 제한된 시간에 실현할 수 있나 이상적이고 영구적인 실현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전망임을 그들도 안 것 같다. 따라서 예수의 희년 사역은 제자들이 가난한 자를 돌보고 차별을 금지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에 순종하여 동참함으로 제한된 공동체에서 부분적이고 한시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누가는 이사야의 바벨론 유수 상황에서 나타난 정치적인 해방과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희년을 약화시킨다. 비록 누가복음 1-3장의 찬가에서 정치적 해방의 언어가 수용되지만, 실제로 예수의 사역에서 그 사역은 그렇게 정치적이진 않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예수는 제국주의에 대한 복수를 외치지도 이스라엘의 국가적 재건도 외치지 않는다. 예수는 분명히 로마 제국주의에 대한 사회 정치구조의 개혁을 위한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의 저항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는 이사야 이후 진행된 유대문헌의 영성화되고 종말론적 희년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고 이를 수용한다.

누가의 종말론적 희년은 따라서 은유적인 해방의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누가가 강조하는 희년은 기본적으로 영적인 해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희년의 빚 탕감은 죄 사함에 관한 은유로(παντὶ ὀφείλοντι ἡμῖν 눅 11:4) 주로 사용되며 문자적인 종살이와 정지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귀신축출을 통한 사탄의 종살이로부터의 자유함, 영적 권세를 통한 질병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이 있다.
<이민규 교수님 펫북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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