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식 교수님의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12월 에 기고한 입니다.

손동식 교수님의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12월 <활천(活川)>에 기고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신유 설교>입니다.
제가 읽은 설교 중 신유에 관한 가장 균형잡힌 설교 중 하나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명설교자의 신유설교(8)/ 마틴 로이드 존스
▪신유에 관한 설교는 어렵다. 지나치면 신자들이 기도만을 맹신하거나, 모자라면 병원만을 맹신하기 쉽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목회하는 동안 신유의 은혜를 경험하였다. 심방 중에 수 년동안 목디스크로 고생하던 신자가 간절한 기도 후 그날로 깨끗이 통증이 사라진 일이나 절망적인 실명의 상황에서 간절한 기도 후에 회복하게 해 주신 사건이나 대장암 투병을 하는 성도와 심장 이상으로 임종을 준비하던 노성도가 간절한 기도 후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기도의 힘이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모든 전후 상황과 자료들을 면밀히 조사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주시는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기도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감사할 따름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교회사에 보기 드물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학교를 졸업한 전문의 출신의 목회자이다. 뛰어난 의사요, 탁월한 성경강해자였던 로이드 존스는 신유에 대한 성경적이며 현대적인 메시지를 들려준다. 이 설교문은 필자가 읽은 신유에 관한 설교 중 가장 균형잡힌 설교 중 하나이다. 본 설교는 로이드 존스가 1971년 5월 기독 의사회 정기모임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행한 설교이다. 지면의 제한상 그가 제시한 많은 객관적 사례들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이 주제에 관한 성경적인 중요한 통찰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필자 주 ▪
<의학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것>
(야고보서 5:15)
그리스도인 의사들은 환자나 친척, 혹은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의학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독하여 의학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효과는커녕 병이 점점 더 악화될 경우, 대개 사람들은 ‘신유의 방법’을 권합니다. 결국 이 문제에 직면한 그리스도인 의사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신유에 대한 거부와 명백한 사실들
기독교인 중에는 신유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적과 같은 치유, 귀신론, 방언 등과 같은 것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그 주된 이유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심리적이거나 그와 유사한 것, 심지어는 그보다 훨씬 나쁜 것이라고 간주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주제를 고려해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어떤 이들은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서 이 입장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자연은 인과율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하며 자연 법칙상 신유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견해가 있는데, 성경에 따른 관점입니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교리적으로 기적과 같은 모든 영적 현상들은 사도들과 함께 끝났으며 신약의 정경이 완결되었을 때 이미 종료되었다는 견해를 취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많은 교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런데 신유라는 주제를 재검토해 보면 무엇보다 우리는 사실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들을 거부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비과학적인 것이며, 기독교인이 취할 입장이 못됩니다. 캐더린 쿨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믿기에 그녀는 20년 이상 피츠버그(Pittsburg)에 있는 한 침례교회의 목회자로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도시에 있는 목회자들과 또한 의사들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었는데, 그 의사들 중 몇 사람은 유명한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이들은 결코 비정상적인 열광주의자들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선천적인 병을 가진 사람들이 치료함을 받았다는 주장을 자신들이 입증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였으며 또한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캐더린 쿨만 박사의 업적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녀의 두번째 저서인 『하나님은 다시 그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God Can Do It Again)에 보면, 의사들에 의해 입증된 치유의 여러 가지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의사들의 이름과 병원 주소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사례들 중 한 두 가지 경우는 의사들 자신이 치유함을 받은 것을 기록한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에 대해서 저는 솔직히 그것들이 거짓이거나 속임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에 관해 알거나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증인들이요, 그들은 단지 그러한 것들을 사실로 믿고 말해야 할 의무감과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에 사실들을 기록하거나 지지했다는 점뿐입니다.
▲과학자들의 변해가는 태도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몇 년 동안 과학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특한 변화의 움직임입니다. 물론 제가 과학을 완전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논리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19세기의 지배적인 이론은 그 시각에 있어서 결정론적, 기계적, 그리고 정적이었습니다.이러한 이론은 데카르트(Descartes)와 아이작 뉴턴(I. Newton)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견해의 시조였으며 그 견해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실상 복음주의적 전통을 고수한다고 하는 우리들도 대부분 이 견해를 수용했으며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진정 유일한 참 과학적 태도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의 과학적 견해들은 이제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A. Einstein)과 다른 이들의 공로로 말미암아 상대성 원리와 양자론 등이 발견되자, 오늘날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 소위 최고의 과학자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이제 자연 법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이 현상계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거나 현상계의 인과율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기존의 자연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없는 이 현상계를 벗어난 어떤 다른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개연성(probability)이라고 말하지, 확실성(certainty)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쉽게 무시해버리지만 사실상 건강과 질병의 메카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범주 속에 나는 ‘신앙’을 포함시키고자 합니다. 내가 말하는 신앙이란 모든 종류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그 어떤 종류의 신앙도 이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치유란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분명한 사실은 많은 요소들이 질병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요소들이 치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뿐만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신앙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신앙, 심리학적인 요소, 강한 감정, 충격, 악령의 역사 등 수많은 요소들 중 그 어떤 것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치유에 대한 성경의 주장들
사람들이 신유와 같은 현상들을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할 때, 저 개인적으로는 신약시대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모든 현상들이 사도 시대와 더불어 끝났다고 하는 일반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성경에는 그러한 구절들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결과를 동의하는 구체적인 성경본문이나 심지어 간접적인 성경의 진술도 없습니다.
더욱이 성경을 보면 이러한 기적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어떤 일정한 주기적 현상(periodicity)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는 분명히 그러한 현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이적들은 명백한 이유와 함께 특정한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신약에서도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이 모든 일의 주인 되시며 그 분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은사들을 나누어 주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어느 때에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감히 이러한 일의 발생 시기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그러한 사건들은 지속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이 발생했었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사도 시대 이후로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동의할수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교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났던 위대한 부흥의 시기 동안에 나타난 주된 현상들은 이적이나 신유의 역사에 있었다기보다 설교의 강한 역사, 절대적인 확신,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 등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주권(the Lordship of the Spirit)하에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태도와 원리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가 언급했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 때문에 우리는 기적적인 것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기적이란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따라서 어느 때에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나는 새로운 과학적 안목 때문에, 그리고 건강과 질병을 새로이 보게 되었기 때문에 기적을 믿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믿는 것은 성경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와 갈릴레오(Galileo)에게 범했던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크게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은 객관적인 사실들을 그들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해 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우리의 이론이 불가능한 것으로 내세운다 해서 사실들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것들에 대해서 건전한 비판 자세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 치유에 대한 위임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신유에 관한 일반적인 원리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 원리로, 여러분께서는 성경의 기적들 중 며칠 전에 미리 알려진 기적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례들을 통해서 기적이 사람 또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즉각적인 위임(an immediate commission)이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에게 행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찬가지로 바울이 루스드라에 있는 앉은뱅이에게 행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들은 자신들이 기적을 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즉각적인 위임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시험삼아 해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는 그들이 실패했다는 기록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항상 확신과 믿음과 담대함이 넘쳐흘렀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신적인 위임(the divine commission)의 결과라고 확신합니다.
또 다른 원리를 살펴본다면, 기적이 일어난 경우 대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거나 때로는 두려움에 가득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늘 우리는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하거나 그 권능과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신유 집회에서 볼 수있는 모습은 웃음과 경박한 언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지도자들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모든 표시는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며 그 어떠한 경솔함이나 천박함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
나는 “신유”(faith healing)라는 말 속에 있는 “믿음”의 의미에 대해 서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야고보서에 기록되어 있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약 5:15)라는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마가복음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막 11:22~24) 우리 주님과 야고보 사도께서 “믿음의 기도”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믿음이란 곧 주어진 믿음(a given faith)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러한 믿음을 사도들이나 사도 시대 이후로 이적을 행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위임(commission)과 동일한 범주 속에 포함시킵니다. 이러한 믿음은 결코 실험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주일날에 “다음 주 목요일에 신유집회가 있을 예정입니다”라고 광고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참된 기적들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기도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적이란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일반적인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성경적인 태도
이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환자나 질병을 치료할 때 일상적인 방편들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질병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은 바로 이러한 수단과 방법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부여하신 치유 능력과 자연 속에 풍부하게 담겨 있는 약 등을 통해서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고치시는 방법을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 왔던 다른 요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에 대해 놀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떤 현상 때문에 우리의 신학이 영향을 받거나 우리의 성경적 입장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한 교훈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1). 우리는 놀라서도 안될 것이며 무비판적으로 경솔하게 믿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소멸’하거나 우리의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죄를 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손동식 교수님의 펫북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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