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30. 주일에는 읽는 QT. 부활의 신비 5.

간단설명. 예수의 부활은 궁극적 희망을 포함한다. 이것이 땅 위의 모든 문제들을 상대화시킨다. - 테레사 메이어

한글본문. 누가복음 24:13-27
13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 21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Meditation. 부활하신 주님의 엠마오 길 추격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제자가 엠마오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 주님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실존적인 추위를 녹이려 했을까? 그들은 ‘온천’이란 뜻을 가진 엠마오를 향해 긴 노정을 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뒤를 조용히 따르는 한 사람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걸음을 따라 오셨다. 그런데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왜일까? 잘못된 기대와 그에 따르는 실망감이 그들의 영적인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21절) 그들은 주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피력한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주님이 며칠 전 십자가 언덕에서 무엇을 이루셨는가? 바로 그 속량의 역사였다. 그들의 인간적 기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성취가 이미 있었음에도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실망과 불신에 사로잡혀 있다.
허망한 인간적 기대에 눈이 가려 주님이 이미 이루신 더 크고 놀라운 역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직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지 못했다고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양 불평하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는가? 개인적 기대의 성취 여부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더욱 집중하라. 나의 기도와 소원에 넘치도록 채우시는 주님의 공급을 깨닫고 누리게 될 것이다.

기도 “인간적 기대를 넘어 주님이 이루시는 더욱 큰 응답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셔서 매순간 부활을 만끽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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