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9 (일) 주일에는 읽는 QT. 탕자의 귀향 2 – 작은아들

간단설명. 작은아들은 유산 분할뿐만 아니라 자기 몫을 처분할 권리까지 요구했다. 그의 요구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무언의 암시가 깔려 있다. - 케네스 베일리

성경본문. 누가복음 15:17-24
한글본문.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Meditation. 작은아들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전반부를 장식하는 작은아들의 불효와 가출, 방황, 몰락, 귀향은 워낙 상상할 거리가 많아 다양한 각색과 변주가 가능한데, 아마도 숨 막힐 것 같은 집안 분위기도 그의 가출을 부채질하는 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 일 중심의 형과는 가치관이며 인생관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대화가 안 통하고, 어쩌면 비교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아들처럼 고집부리고 만용을 부리다가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게 우리들입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뜻을 굽히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일을 저지르지만 끝내 뒷수습을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져 쩔쩔매다가 겨우 돌이켜 용서를 구하는 게 우리들입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타난 작은아들의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남루한 모습은 못 봐줄 정도인데, 실은 우리가 그런 존재는 아닐까요.

“사실은 아직도 아버지의 품에 와락 안길 만큼 자유롭지 못합니다. 여전히 탕자와 같은 처지입니다. 계속 걸으며 할 말을 준비하는 한편, 마침내 아버지 집에 도착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으로 거듭 그려봅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먼 지방을 떠나서 친밀한 사랑을 맛보러 가고 있습니다.”(헨리 나우웬, 『탕자의 귀향』, 포이에마, 35-36면)

“작은아들처럼 아버지 품을 떠나 방황하고 탕진하고서야 끝내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받아주시고 환대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맘껏 누리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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