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피며 기도하는 거나, 기도하며 담배피는 거나.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사가 예수회 수도사와 말다툼을 벌였다.
예수회 수도사가 기도하는 중에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분에 찬 프란치스코 수도사는 영적인 스승을 찾아가 질문했다.
“기도할 때 담배를 피우는 것은 덕스럽지 못한 일 아닌가요?”
스승이 답했다.
“거룩한 기도 시간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요.”
프란치스코 수도사는 흐뭇해하며 이 말을 예수회 수도사에게 전했다.

그의 말을 들은 예수회 수도사도 그 스승을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기도할 수 있지 않나요?”
스승이 답했다.
“그럼요! 기도는 늘 해야 하지요.”

기도할 때 담배를 피우는 것과
담배를 피울 때 기도하는 것은 같을까, 다를까?

영성은 하나님의 뜻에 관한 것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구속이 아니다.
영성은 하나님의 뜻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로 만드는 자유를 키우는 것이다.

신앙은 하라, 하지 말라와 같은 명령으로 자신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법이 내면에서 우러나오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품과 싸우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늘 기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성품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된다.

율법으로 자신을 얽매기보다는
복음의 능력안에 안식을 얻으면
하나님의 뜻이 갈등 없이 내 뜻이 된다.

율법적인 것은 모든 종교인의 지독한 고질병이다.
<이민규 교수님 펫북에서 업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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