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과 일치하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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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캠핑을 마치고 한 가정이 어두운 도로를 조심하며 커브를 꺾는 순간, 중앙선을 마주 달려오던 음주운전자의 차가 그의 가족을 덮쳤다. 조금 전까지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편과 아이 셋만 남긴 채 사랑하는 아내와 셋째 아이, 그리고 어머니와는 먼 이별을 고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란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럴드 싯처의 삶의 이야기이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삶의 깊은 상실 앞에서 정말 정직하게 반응하며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울었던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우리는 어둠을 뒤로 하고 도망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가 상실에 따른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연민에 빠져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들과 마음을 함께하며 그들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처럼 보듬어 줄 수도 있다.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느라 어딘가에 중독될 수도 있고, 아니면 슬픔과 벗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당한 기만의 상처들을 끌어안고 지낼 수도 있고, 아니면, 비록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 수도 있다. 악으로 악을 되갚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선으로 악을 이길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두드러지게 달라진다. 선택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성에 존엄성이 더해지기도 하고, 상황을 딛고 일어설 줄 아는 능력을 얻게 되며, 희생자의 처지에서 자유롭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선택을 내릴 능력도 있고 또 바른 선택을 내려야 하는 당위성도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종종 번민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이루어진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잔인하게도 삶은 때때로 좋고 나쁜 상황과 환경을 넘어 우리로 하여금 평소에 붙잡고 있던 정답을 경험적으로 확신하도록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한다. 이때 우리는 번민과 갈등에 사로잡혀 괴로움의 한가운데 서게 될 때가 있다. 마치 제럴드 싯처의 삶에 찾아온 상실의 순간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삶의 깊은 상실감 앞에서 이론적 확신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향한 바르고 건강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그 정답으로부터 먼 선택을 하도록 만들거나, 처한 상황이 애써 그 정답을 외면하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그 선택에 대한 변명과 명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남편을 비롯한 집안의 세 남자가 죽은 삶에 찾아온 깊은 상실감을 맞이하며 선택의 갈림길에 선 한 여인을 소개한다. 룻의 이야기다. 삶에 찾아온 위기 속에서 그녀는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선택한다. 자신 민족과 신앙을 향하여 돌아가는 길이 아닌, 왕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을 선택한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며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이스라엘의 영적으로 척박한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보다 더 깊은 상실감에 젖어 있는 노모와 함께하는 여정을 기꺼이 선택하며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왕 되심을 삶으로 고백하며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룻에게는 시어머니를 따르지 않아도 내세울 수 있는 나름대로 변명과 명분이 있었지만, 인생의 깊은 상실감 앞에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먼 미래를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이렇게 선택하면 무엇인가 보상이 따르겠지?”라는 생각조차도 그녀의 상황 속에서는 사치였을 정도로 상실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있는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고 그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계획은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깊은 상실의 자리에서 모든 갈등과 고통을 극복하며 정답을 선택한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당신을 왕으로 고백하는 연약한 여인을 왕의 가문으로 세우는 불후의 명작 완성하는 것으로 움직였다.
수 없이 반복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 가운데서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답에 일치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옳은 것, 기뻐하시는 것, 선하신 것인가? 라는 부분이다. 선택은 언제나 상황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된다. 선택은 진리를 붙잡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삶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감정적 거리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진리와의 거리를 끊임없이 좁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의 일치(엡 4:13)와, 더 나아가서 알고 있는 정답과 우리의 선택이 일치되는 하나님 자녀다움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World Teach. 사람을 세우는 사람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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