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위의 구절들은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보통 자주 오해하는 본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본문을 신앙에 대하여 뜨겁거나 차갑거나, 즉 확실하게 믿거나 안 믿거나 딱 부러지게 확실한 태도를 지녀야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신앙의 태도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럽고 토할 일이란 의미로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뜨거운 것을 성령 충만한 열정, 차가운 것을 이성적 자세로 보기도 한다. 아무튼,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내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했던 라오디게아 지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물 공급이었다. 보통 로마의 도시는 물 공급이 풍부한 곳에 세워졌지만, 이곳은 예외였다. 당시 역사학자 스트라보의 말에 따르면 라오디게아의 물은 마실 수는 있어도 극도로 석회질이었다(Strabo 13.4.14). 라오디게아에는 18Km 떨어진 골로세 지역처럼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차가운 물도 턱없이 부족했고 10Km 떨어진 북쪽 히에라폴리스(히에라볼리, 한글개역 골 4:13)처럼 질병까지 치유하는 뜨거운 온천도 없었다.
그들은 남쪽 5Km 떨어진 곳의 뜨거운 광천들에서 두꺼운 돌을 뚫어 가운데 파이프를 넣은 관를 통해 온수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이 물은 라오디게아에 도달할 무렵 미지근하고 침전물이 많은 상태로 변해 있었다. 이 물은 목욕물로도 생수로도 모두 적합한 편은 아니었다. 목욕을 위해 미지근한 물을 재가열하는 것은 그들에게 고역이었는데 온도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때론 목욕탕에서 너무 뜨겁게 재가열된 물에 사람들이 화상을 입어 소송도 빈번했다. 날씨가 몹시 더운 라오디게아 지역에서 생수로 마시기에도 미지근한 석회수란 참으로 역겨운 것이었다. 크세노폰은 종들이나 씻고 마시는 미지근한 가정용 식용수에 대한 사람들의 불평을 기록한다(Xenophon, Memorabilia 3.13.3).
당시 문화로 읽을 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믿음이 히에로폴리스의 물처럼 목욕하기 좋은 ‘뜨거운 물’도 아니고, 골로세 지역의 물은 시원한 생수로 사용되는 ‘찬물’도 아닌, 마치 미지근한 석회수처럼 온천으로도 사용할 수 없고 마시기에 역겨워 토할 것 같은 쓸모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15절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것이란 우리말에서처럼 우유부단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기본적으로 헬라 문헌에서도 우리말과 비슷하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차가운’은 나에게 반대하는 그리고 ‘뜨거운’은 나에게 우호적인 태도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과 유대 문헌에서 히브리어의 ‘뜨거운’이란 은유적 표현으로 주로 ‘성급한’, ‘화를 내는’ 것으로 번역된다(잠언 15:18의 두 번역을 보라, “성급한 사람은 말썽을 일으키고[공동번역],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개역개정]). 반대로 ‘차가운’은 ‘신중함’, ‘자제력’을 의미한다(잠 17:27 “슬기를 깨칠수록 감정을 억제한다”[공동번역],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개정개역]). 요한계시록은 헬라어로 쓰였어도 구약과 유대적 배경이 철저하게 강하다. 따라서 굳이 적용하려면 유대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뜨겁지도 차갑지도’는 ‘성급하든지 신중하든지’의 의미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이 말은 그냥 온천물이 되든지 차가운 생수가 되든지 하라는 뜻이지 사람의 인격과 연결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따라서 당시 라오디게아 상황을 잘 아는 청중을 염두에 두고 쓰인 표현을 우리 식으로 마치 ‘신앙이 뜨겁고 차가운’으로 해석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15절의 ‘뜨겁거나 차든지’가 신앙이 뜨겁거나 차든지가 아니다. 이는 당시 문화를 모르기에 발생하는 오류다. 이 본문은 17~19절과 연결하여 볼 때 다음의 뜻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너희의 쓸모없는 믿음을 보자니 도대체 역겨워서 토할 것 같구나. 믿음 생활에 부자라고 착각하지 말고 쓸모 있는 믿음이 되어라.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계 3: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