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예언의 은사”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정경화 맥락의 성경의 예언과 신약에서 “예언의 은사”는 다르다. 정경화 과정을 걸친 성경의 계시는 대부분의 교단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지나 개인적인 감동 차원의 계시는 정경 아래의 권위이며 반드시 받아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상대적인 권위를 지닌다. .
1) 예언의 은사자가 받는 계시는 주로 마음에 떠오르는 인상, 꿈이나 환상, 말씀(단어나 구절),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정보,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느낌으로 떠오르는 성경 구절, 다른 이의 신체적 통증이나 마음의 감정상태가 자신에게 비슷하게 느껴지는 경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밀스러운 내용을 알게됨 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그가 받은 예언은 늘 해석을 필요로 한다. 은사자도 그 의미를 잘 모를 때가 있다.
2) 예언자의 심리상태는 정상에서 가벼운 헤리상태까지 다양하다.
3) 예언의 주로 교리적인 내용이 아니다. 내용은 주로 개인적이지만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르다. 예언 은사는 성경의 교훈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특별한 지식이나 인도함이 필요한 영역에서 활용된다.
4) 특히 회중 예언은 주로 고린도 전서 14:3에서 말하는 교회에 덕을 끼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역할을 성취하는 모습이다.
5) 고린도 전서 14장과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서처럼 오늘날 예언은 복합적이고 신비한 권위를 보여준다. 낮은 차원의 예언은 일반적인 권면으로(보편적인 메시지로), 높은 차원의 예언은 구체적인 지도로 나타난다. 예언의 은사는 절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예언사역자들도 자신의 예언을 성경과 동등하다거나 위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아무리 권위를 내세우는 예언사역도 성경과 비교해 상대적일 뿐이다.
6) 은사자의 예언은 조언이고 성경은 주된 가르침이다. 따라서 은사자의 예언을 반드시 따를 필요도 없다. 사도 바울도 아가보의 선지자와 빌립의 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한 내용을 따르지 않았다. 그에겐 복음전파사명이 우선이었고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이다.
7) 은사자의 예언이 다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은사는 완벽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언은 늘 회중과 다양한 은사자에 의해 검증이 필요하다.
8)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교회를 세우고 자라게 하는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야 가능하다. 성령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고전 2:16 참조). 오늘날 진지한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열심히 말씀을 연구하여 주님의 뜻을 전달하지만, 때론 성령께서 문득 깨닫게 하시는 은사적 지혜, 명령, 직관적 깨달음과 적용도 체험한다. 즉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차원의 인도하심도 있지만 주권적인 응답이나 인도하심도 체험한다. 이런 차원에서 예언의 체험이란 생각보다 더 대중적이다. 다만 은사자가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막스 터너, 성령과 은사, 553-57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