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이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것은 복이다. 그것 때문에 검진하고,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며 처방에 따라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몸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건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그럴싸하게 갖추어져 있는 경건의 모양에 익숙해져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며 영적 무력증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고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 갈 때는 과연 어떤 증세를 수반하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이 없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사야 29:13)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 설령 그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려 한다. 하나님의 마음보다는 내 마음의 원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고, 때로는 나의 원함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기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스스로 생각할 때 니느웨는 멸망 받아 마땅한 도시인데 그곳으로 가서 메시지를 전하라던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채 다시스로 달아났던 요나와 같은 모습이다. 자신이 원하는 곳도, 자신이 원하던 방식도 아니기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무심한 선지자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진리가 아닌 감정이나 상황을 쫓는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느끼는 안전지대에 일치되는 상황이 전개될 때 그것을 무조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붙잡고 있는 진리가 맞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러므로 그 상황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상황은 늘 변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붙잡는 자는 삶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 속에 더욱 견고해지고 진리에 일치되는 삶에 가까워지지만, 상황을 좇는 사람은 삶에 늘 요동함이 있다. 상황에 따라 늘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요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가?
공동체가 아닌 나만의 유익을 구한다(?)
목회의 현장에 있는 적지 않은 지도자들이 “요즈음 성도들이 너무 바빠서요 모이기가 너무 힘들어요! 잘 모이지 않아요!” 등과 같은 아우성을 쏟아 놓는다. 개인이 처한 눈앞에 필요에 무게중심이 이동하기에 공동체를 향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세속화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때로는 세상의 그러한 흐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며 변명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공동체적 삶을 가르친다.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고 말한다. 교회 공동체의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는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공동체를 향한 희생과 섬김이었다. 지도자들은 양들이 모여있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놓았다. 양들은 그러한 지도자들 신뢰하며 자신들의 젖과 털을 아낌없이 내어 놓았다.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시선을 고정했다. 공동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지도자들은 공동체를 통해 사사로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성도들은 편의점 드나들듯이 신앙 생활하는 부작용이 심상치 않다.
은혜를 구하는 간절함도 없고 감사도 사라진다(?)
긴 옷이 생겼다. 시장을 나가보면 사람들이 문안한다. 어디를 가도 이제는 나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어느덧 많은 것을 누리게 된 사람들에게 내부변이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망가뜨리는 암과 같이 생겨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간절함’의 상실이다. 물이 없어 황폐할 때는 주님을 향한 갈망이 극대화되지만, 갈증이 해소되고 어는 정도 필요한 물을 비축하게 되면 황폐할 때 품었던 간절함이 사라지는 현상이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삶이 풍요로워져서 은혜를 갈구함과 같은 앙모함이 없는 것보다 물이 없어 황폐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갈망과 간절함이 큰 것이 우리에게 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하여 간직된 ‘간절함’의 정도를 측정해 보라!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 5:7) 긍휼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누리는 복 가운데 하나이자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긍휼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내가 누군가를 향하여 긍휼을 흘려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선한 물을 받아들이고, 그 물을 적당히 흘려보내는 자연스러운 순환이 있을 때 호수의 건강함이 유지된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물이 범람하여 오히려 주위를 망가뜨린다. 흘려보내기만 하면 바닥이 노출되고 마른 땅으로 황폐케 된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를 은혜의 바다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케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거하고 계시지 않는다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강도들로 인해 삶에 절박함에 노출된 약한 이들을 향한 긍휼을 흘려보낼 수 없다. 나만 풍성해져 주변을 황폐케 하던가, 줄 것이 없는 메마른 심령이 되든가 할 테니까 말이다.
<World Teach. 사람을 세우는 사람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