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고백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병든 자를 치유하신다. 성서의 보도에 따르면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전능성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Nothing is impossible(불가능은 없다).’ TV 광고의 문구다. 기독교 신학이 하나님의 전능성을 말해 왔다면 우리 시대는 인간의 전능성을 주장한다. 기술과 과학을 앞세워 우리 시대는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이라는 말 자체를 부끄럽게 여긴다.

전능한 과학이 환경문제를 비롯한 미래의 염려를 깨끗이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중환자의 수술을 앞두고 ‘이것은 무모한 수술입니다.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긴다.

비단 의사뿐인가. 피로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개인도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극도의 과장 속에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전능성과 인간의 전능성은 어쩌면 서로를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은 신적 전능성과 인간의 전능성 사이의 심리적 교환이 상품화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현실적 무능함을 파괴하고 쟁취하지 못한 신적 전능성을 만끽한다. 그뿐이 아니다. 신앙의 현장에서도 전능성에 대한 인간의 애착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된다. 힘을 숭상하는 인간의 욕망은 ‘믿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전능의 딱지가 달라붙어 상한가를 차지한다.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전능으로 포장할 때, 전능은 ‘만능’으로 둔갑한다. 하나님의 전능은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아니, 도깨비방망이를 손에 들고 소원을 비는 인간 자신을 위해 뭐든지 해야 하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이 말해 왔던 하나님의 전능은 이런 의미의 만능이 아니다.

전능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고전적인 의미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것을 뭐든지 하실 수 있다.’ 이 고전적인 전능의 정의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하여 중세신학자들에게서 세밀하게 분석되고 논의된다.

하나님은 현실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하실 수 있는가? 즉, 하나님은 1+1의 답을 3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나님은 네모 난 삼각형을 만드실 수 있는가? 또한 ‘돌의 역설’이라 불리는 대로 하나님은 자신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을 만드실 수 있는가?

만드실 수 없다면 무능한 것이요. 만드실 수 있다 해도 들 수 없으니 무능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뭐든지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악을 행할 수도 있는가? 하나님은 거짓말도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병에 걸릴 수도 있는가?

설령 하나님이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무엇이든지 다 하시는 분은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것’을 하시는 분이시다. 이 말을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에 부합하는 일을 하신다고 정리해 보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이나 악한 일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인 사랑에 부합하는 일을 하신다.

즉, 기독교 신앙이 고백하는 전능은 뭐든지 다 한다는 식의 만능도 아니고, 자기 맘대로 한다는 식의 자의도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현실을 비현실로 만드시거나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무지막지한 힘만을 과시하려는 그런 괴물이 아니다.

현대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전능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 되심의 사랑을 배제한 전능은 세속적인 독재자의 무자비한 힘에 불가하다.

더 나아가 오늘날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전능의 본질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고난에 동참하신 낮아지심과 비움의 사랑에서 찾는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의 전능은 자신의 힘을 과시함이 아니라 오히려 약함에서 계시된다(고후 12:9).

그리스도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약해질 수 있는 자기 비움의 힘을 보이셨다(빌 2:7). 그리스도인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자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후 11:30, 12:10).
<한국성결신문 기독시론 에서 가져왔습니다. 박영식 교수는 서울신대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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