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안녕하시냐고 묻기에 ‘한나 아렌트(2012)’와 ‘마라톤 맨(1978)’으로 답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저서.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이었지만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유태인 숙청 광풍 속에서 가까스로 프랑스, 뒤이어 미국으로 탈출했다. [1]따라서 그녀는 홀로코스트에 실존적인 차원의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0년에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름이 하필이면…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했다.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아이히만은 기소되어 1961년 4월 11일 공개재판[2]이 진행되었는데, 한나 아렌트는 이를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사상을 주장하게 된다. 이 책이 바로 오늘날 명저로 평가받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1963년)>이다. 책의 형식은 아이히만의 재판 참관기이지만, 부제인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가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3][4]

아이히만은 슈츠슈타펠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5]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이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쉽게 말해서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악이 딱히 어떤 악마적인 것에 기원하는 게 아니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비판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바로 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아이히만의 사례를 들면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던 일이 타인(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아렌트의 의견과도 동일하다.

다만 아렌트의 주장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론 내용은 아이히만은 결코 아렌트가 주장한 대로 명령에만 충실하게 따르는 ‘평범한’ 관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주장은 그가 강한 반유대주의 성향을 보이는 급진적인 나치당원이었고, 인종적 정화에 집착했으며[6], 오스트리아에서 1933년에 독일로 이주하기 이전부터 이미 열성적인 친위대 행동원이었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의 범죄는 전체와 평범함으로 희석시킬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히만은 1956년부터 자신의 범죄를 변호할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받을 점이다. 애초에 계획적으로 자신을 불쌍한 이미지로 재판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다만 독일에서의 재판을 상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 이스라엘에서 잡힐줄은 몰랐겠지 잡았다 요놈! [7]

이런 역사학자들의 반론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렌트는 역사학자라기 보단 윤리 철학자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렌트의 목적은 아이히만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라는 주장하에서 아이히만을 예로 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아렌트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극도로 분개하지 않은 것 때문에 유대 공동체들로부터 과도하게 비난을 받은 것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8] 그냥 철학자들은 우리랑 다른 생각하는 부류라고 치자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가 분석하고 관찰한 아이히만은 권력욕이 세고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이었고, 그의 반유대주의 사상이나 나치즘은 이러한 명예욕을 실현시킬수 있는 수단이었다. 실제로 그가 유대인 이주정책을 맡았던 1938년은 나치의 최종 해결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1941년 이전이었으며, 38년 당시에는 시온주의자들과의 모종의 협력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독일계 유대인들도 수천명가량 존재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동정으로 인해 유태인들을 유럽 바깥으로 이주시킨것도 아니었으며 이후 최종 해결책이 시행됬을 때에도 유태인에 대한 증오때문에 홀로코스트를 자행한것이 아니라고. 다만 중요한 것은,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생각하지 않은 죄”라고 했다고 해서 그의 사형선고 자체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히만은 사형선고를 받고 1962년 5월 31일 교수대에서 황천길로 갔다. 그의 죄를 전혀 후회하지 않으면서. [9]

참고로 아렌트는 ‘이것은 유대인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앞으로 등장할 미증유의 인류 범죄를 다루기 위한 선례를 위해서라도 국제법정으로 처리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왕따라든가 기타 작은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각종 악행들을 살펴보면 위의 사례와 유사한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12월 연말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의 사례에서 가해자 학생의 부모가 피해자 학생의 부모에게 “제 자식을 제가 잘 몰랐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낸 것을 보자. 부모에겐 착하고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자식이 그런 엄청난 짓을 했다는 데 충격이 역력한 이 문자를 통해서도 악의 평범성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내 아이가 왕따 가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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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프랑스에서 한번 체포되었다가 간신히 탈출해 포르투갈 리스본 항구에서 미국으로 탈출했다.
[2] 전세계에 생중계를 허가했다.
[3] 영어 제목은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이다. 영단어 banality는 “너무나 흔하여 쉽게 예측 가능한 대상”이라는 뜻이므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악이 평범하다기보다는 그만큼 도처에 악이 평범할 정도로 널려 있다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4] banality는 평범성, 일상성, 진부함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뒤의 두 단어는 (학살이 너무나 자주 행해져 이에)익숙해짐, 적응됨 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어 평범성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5] 일설에 따르면 개인적으로 그는 유태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고, 유태인 친척이 있었던 탓에 반유태주의자도 아니었다고 한다. 심약한 학살자
[6] 1938년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유대인 축출 및 이주계획의 전문가, 권위자로 꼽혔다. #
[7]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히만은 1937년 팔레스타인에 파견되어 유대인들의 이주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으나, 아랍계 지도자는 물론 영국조차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생기고…
[8] 한나 아렌트는 독일의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뒤에 나치 협력 혐의를 받은 마르틴 하이데거와 모종의 연인관계에 있었으나, 나치에 긍정적이었던 하이데거에 환멸감을 느끼고 그를 떠나 역시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칼 야스퍼스에게 지도받아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 그러나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어서, 이후 하이데거 청문회에서 “하이데거의 사상과 철학은 전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그를 변호하기도 했다.
[9] 가장 유력한 유언이 이렇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나하고 연고가 있는 이 세 나라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쟁 규칙과 정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나는 준비되었다” 그리고 이 유언 뒤에 참관자들을 향해 이야기했다고 알려진 유언이 있다. “여러분, 또 만납시다. 이게 운명이라는 거요. 나는 지금까지 신을 믿으며 살아왔고, 신을 믿으면서 죽을 거요.”(런던대의 저명한 홀로코스트 역사가 다비드 케사라니의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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