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인 계시와 명제화된 계시의 구분 및 성결 체험의 필요성], 간단명료하네요.

– 인격적인 계시와 명제화된 계시의 구분 및 성결 체험의 필요성 – 장기영 박사님의 펫북에서<서울신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이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계시를 하나님께서 인격적 만남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신뢰나 헌신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둘째, 계시를 하나님께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명제들로 이해할 수 있는데, 명제로서의 계시에 대한 신앙은 명제에 대한 지적 동의로서 나타난다.

전자의 의미에서 계시는 후자의 의미에서 계시의 바탕이 된다. 즉, 하나님과의 주관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만, 신학적 작업으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변화가 생겨난다. 하나님과의 만남 자체는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만남을 가진 사람은 그 만남을 통한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먼저 자신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객관적인 언어로 정리해보고자 노력하게 되는데,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명제적 진리 (객관적 진리) 로 정리하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 즉 자신이 통제 가능한 지식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경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인격적 계시의 명제적 진리화는 진리를 이해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라는 것이다.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객관화 (명제화) 하지 않고 진리를 명확하게 하고 또 보존하고 공유할 방법이 없다.

부정적인 측면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지식을 객관적 언어로 표현 (명제화)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보다 못한 어떤 대상으로 축소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이해와 언어적 표현은,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데 부족하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진 사람이 이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표현해보려고 노력할 때 인간은 이해의 한계 및 표현의 한계라는 제약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종합하면, 인격적인 계시의 명제화는, 인격적인 계시를 인간의 이해와 표현의 한계 속에 제한시키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는 하나님의 인격적 계시를 이해하고 표현하고 전달함으로써 계시를 보존하는 방법이 된다.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계시가 객관적 명제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인격적 계시는 개인적 체험과 주관주의적 계시 해석의 함정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계시는 타인에게 전달될 수도, 그들로부터 지적 동의로서의 신앙을 일으킬 수도 없다. 따라서, 만약 계시가 개인의 이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유와 전달까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인격적인 계시는 객관화 (명제화) 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인격적 계시가 객관적 명제화의 과정을 거쳐 표현되고 전달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속에서 경험되었던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가 신학적 객관화 (명제화) 과정을 거쳐 표현되고 타인에게 전달되었다고 해보자. 믿지 않는 자에게는 명제로서의 계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신앙으로 명제로서의 계시를 수용하는 자에게는, 이 계시는 믿는 자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 결과 비록 처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격적으로 나타내신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던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처럼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명제화된 계시에 대한 동의로서의 신앙은 신자와 하나님 사이에 간접적인 “나와 그” (I-He) 의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격적인 계시를 신학적으로 설명한 명제로서의 계시는, 그 만남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전달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로 인해 크게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명제화된 계시를 믿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간접적인 관계 즉 “나와 그” (I-He) 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관계 즉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만큼 직접적이고, 충만하고, 신비롭고, 은혜로울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명제화된 계시를 받아들임으로써 맺어지는 간접적인 “나와 그” (I-He) 의 관계, 즉 인간의 제한된 이해 능력과, 제한된 표현 능력, 제한된 전달 능력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계시가 크게 축소된 채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과 직접적인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에서 인격적인 계시를 받았던 사람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직접적이고, 충만하고, 신비롭고, 더 은혜롭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처음에 언급한 계시와 신앙의 구분을 통해 설명하면, 두 번째 의미의 계시, 즉 하나님께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명제들로서의 계시에 대한 지식과 동의에서 그치지 말고, 첫 번째 의미의 계시, 즉 하나님께서 직접적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계시를 간절히 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자신을 직접적이고 충만하고 신비롭고 더 은혜롭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제적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인격적 계시로 나아가야 한다. 중생한 사람은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

참고: 밀라드 J. 에릭슨 저, 『복음주의 조직신학 (상)』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7), p. 218-226. 내용상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정통주의의 계시 이해를 다룬 에릭슨의 “특별계시: 명제적인가 아니면 인격적인가?”, 그리고 “계시로서의 성경” 을 읽은 후, 웨슬리가 강조한 성결 체험의 필요성에 대한 insights를 얻어서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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