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2.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을 것을 명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신 후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신다. 그러자 수족을 베로 동인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나온다.

성경본문. 요한복음 11:38-44
한글본문.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38 Jesus, once more deeply moved, came to the tomb. It was a cave with a stone laid across the entrance. 39 “Take away the stone,” he said. “But, Lord,” said Martha, the sister of the dead man, “by this time there is a bad odor, for he has been there four days.” 40 Then Jesus said, “Did I not tell you that if you believed, you would see the glory of God?” 41 So they took away the stone. Then Jesus looked up and said, “Father, I thank you that you have heard me. 42 I knew that you always hear me, but I said this for the benefit of the people standing here, that they may believe that you sent me.” 43 When he had said this, Jesus called in a loud voice, “Lazarus, come out!” 44 The dead man came out, his hands and feet wrapped with strips of linen, and a cloth around his face. Jesus said to them, “Take off the grave clothes and let him go.”

도움말.
무덤(38절). 당시 무덤은 주로 산 중턱에 있는 석회암 바위를 파서 만들었고, 커다란 돌로 무덤 입구를 가로 막았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사로를 살리시는가(42절)?
⬇ 아래로 인간. 마르다는 예수님의 명령에 어떻게 대답하는가(39절)?
? 물어봐. 믿음의 결과는 무엇인가(40절)?
! 느껴봐. 나는 말씀에 따라 의심하지 않고 순종하며 행동하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며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공간의 절대 주재자,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무덤을 향해 서 계신다. 생명과 죽음이 서로 마주한다. 잠깐의 숨죽이는 긴장을 깨고 예수님이 열린 무덤을 향해 호령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43절). 생명의 기운이 무덤 속으로 침노해 역동하자 나사로는 잠을 깬듯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만일 예수님이 나사로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으셨다면 그 당시 무덤 속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뛰쳐나왔을 것이다. 죽음의 차원도 예수님의 통치의 영역임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죽음은 단지 인생에게만 어쩔 수 없는 한계일 뿐, 예수님께는 의미 없는 경계다. 인생의 최종결정권은 죽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절대 주재자이신 예수님이 확보하고 계신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생에게 명하시는 바가 있다.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신다(41절). 의식법상 부정함을 무릅쓰고 무덤을 열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순종을 바탕으로 생사를 막론해 통치하신다.
인생이 덮어 만든 무덤도 생명 되신 주님의 주재권 아래서는 찬미와 간증의 자리가 된다. 지금 당신이 주님 앞에 내어드려야 할 무덤과도 같은 상황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6-02-21. 주일에는 읽는 QT. 안식을 누리고 계십니까? 3

간단설명. 기독교인으로서 서로를 초대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가정으로 혹은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라고 청하는 것이다. - 로렌 위너

성경본문. 마가복음 2:27-28
한글본문.
27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영어본문.
27 Then he said to them,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the Sabbath. 28 So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

Meditation. 충분히 받아들이라(embracing)
대학 시절 주일 새벽마다 용산에 있는 철도병원에서 2, 30명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도에서 찬양하고, 병실을 돌며 환자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위로하던 병원전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 년 열두 달 매 주일 새벽 6시까지 가서 두 시간 정도 하고 교회로 가는데, 요즘 같이 추운 겨울철엔 잠에서 일어나 텅 빈 버스를 타고 추위를 뚫고 다니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어느 사역이나 봉사보다도 뿌듯하고 값진 경험으로 간직되고 있습니다.

안식을 위해 그치고 쉰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는데, 안식을 받아들인다는 개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낯설어 보입니다. 안식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측면에 익숙했던 우리 현실에선 조금 생소해 보이는 가르침입니다. 아마도 그땐 몰랐는데, 그때 몇 년간 주일 새벽마다 했던 병원전도가 안식을 받아들이는 작은 경험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마르바 던(Marva Dawn)은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쁨으로 수용하며, 완전히 거기에 따라 살며, 특별히 의도성과 힘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이라면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주변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시간을 헛되게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라고 풀었습니다(147, 161, 171, 174면).

충분히 쉬셨다면 이제 안식의 가치를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샬롬을 일상의 리듬으로 받아들이도록 힘쓰십시오. 안식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곁에 두시는 사람들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돌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쌓기보다는 나눠 주며, 자신의 필요를 요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려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일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시고, 내 주변에 주신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선용하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