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9.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야 당도하신 예수님 앞에 마르다는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스스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천명하신다.

성경본문. 요한복음 11:17-27
한글본문.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영어본문.
17 On his arrival, Jesus found that Lazarus had already been in the tomb for four days. 18 Bethany was less than two miles from Jerusalem, 19 and many Jews had come to Martha and Mary to comfort them in the loss of their brother. 20 When Martha heard that Jesus was coming, she went out to meet him, but Mary stayed at home. 21 “Lord,” Martha said to Jesus,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22 But I know that even now God will give you whatever you ask.” 23 Jesus said to her, “Your brother will rise again.” 24 Martha answered, “I know he wi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26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27 “Yes, Lord,” she told him, “I believe that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God, who was to come into the world.”

도움말.
아나이다(22, 24절). 헬라어 ‘에이도’로서 직관과 통찰을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요 8:5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25절).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자기계시(에고 에이미, I Am) 중 다섯 번째 내용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계시하시는가(25절)?
⬇ 아래로 인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되는가(25-26절)?
? 물어봐. 마르다의 신앙고백은 어떤 내용인가(27절)?
! 느껴봐. 나는 주님의 섭리의 때가 언제나 완벽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사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완전한 섭리적 타이밍을 신뢰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바라고 견뎌야 할 삶의 숙제는 무엇인가?

Meditation. 시간의 절대 주재자, 예수 그리스도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야 예수님 일행이 베다니에 도착한다. 상중(喪中)에도 마르다는 한달음에 예수님을 마중하러 달려 나온다. 그리고는 인사도 없이 말문을 연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21절). 나흘 전에 오시지 않은 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녀는 지금 과거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 애써 믿음의 고백을 잇는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2절). 예수님이 앞에 서 계신 현재가 기회임을 고백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입을 열어 말씀하신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23절). 그런데 맥 빠지게도, 정작 마르다는 주님의 응답을 “마지막 부활 때”(24절)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마르다는 지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오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시간 앞에 무력한 인생의 연약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시간의 창조자요 주재자이신 주님은 미래를 현재로 이끌어 오실 수도 있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고치실 수도 있다. 그 절대 주재자 앞에 지금 당신의 타임테이블을 맡겨드리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