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0. QT큐티체조. 민수기 Numbers 3:5~13.

간단설명. 너는 여호와의 것이니라

성경본문. 민수기 Numbers 3:5~13
한글성경.
5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7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8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 9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10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영어성경.
5The LORD said to Moses, 6″Bring the tribe of Levi and present them to Aaron the priest to assist him. 7They are to perform duties for him and for the whole community at the Tent of Meeting by doing the work of the tabernacle. 8They are to take care of all the furnishings of the Tent of Meeting, fulfilling the obligations of the Israelites by doing the work of the tabernacle. 9Give the Levites to Aaron and his sons; they are the Israelites who are to be given wholly to him. 10Appoint Aaron and his sons to serve as priests; anyone else who approaches the sanctuary must be put to death.” 11The LORD also said to Moses, 12″I have taken the Levites from among the Israelites in place of the first male offspring of every Israelite woman. The Levites are mine, 13for all the firstborn are mine. When I struck down all the firstborn in Egypt, I set apart for myself every firstborn in Israel, whether man or animal. They are to be mine. I am the LORD.”

도움말.
출 12: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 하나님께서 레위인에게 주신 임무는 무엇입니까?(7~8절)
↓아래로 인간.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대신해 레위인을 택하셨습니까?(12절)
? 물어봐.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내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느껴봐. 하나님께서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옆으로 실천해. 내가 소유한 재능과 자녀, 물질과 목숨 중에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삶의 모든 영역과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합니까?

Meditation.
하나님께서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역할을 정확하게 언급하셔서 각자 역할에 대해 혼란이 없게 하셨습니다. 특히 레위 지파를 구별해 아론과 그 아들들의 제사장 직무를 돕게 하셨으며, 회막에서 시무하며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게 하셨습니다(7~8절). 또한 레위인을 모든 지파의 맏아들로 택하시고, ‘내 것’이라고 반복해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12~13절).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 당시 장자를 치심으로,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 태어난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증명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참조 출 12:29). 다시 말해 레위인을 모든 지파의 맏아들로 삼으셔서 구별된 그들로 하여금 모든 지파 역시 거룩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의 주인으로, 모든 생명이 거룩함을 입고 구별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거룩한 옷을 입고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

복음을 왜곡시키는 14가지 방법 (by 하워드 스나이더) 장기영.

— 복음을 왜곡시키는 14가지 방법 (by 하워드 스나이더) —
1. 복음을 주로 로마서를 통해서만 설명하라
바울을 포함하여 성경 저자들은 우리에게 성경 전체를 공부하고 성경을 그 전체의 관점에서 해석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서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로 보는 완고한 경향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은 고통을 당한다 (나의 글 “Misplacing Romans (로마서 잘못 읽기)”를 참고하라).
2. “개인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라
성경은 사적이고 이기적인 의미에서의 “개인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많은 방법과 많은 비유를 통하여 모든 것의 화해를 가르친다 (엡1장, 골1장). 그리고 심판 역시 가르친다.
3. 하늘만 목적으로 삼으라
사람들은 “하늘에 가는 것”을 구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과 초대교회 신조들은 “하늘로 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과 하나님의 창조 전체의 궁극적 구원에 초점을 두지, 우주적으로 땅과 하늘이 영원히 분리될 것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4. 성직자와 평신도를 분리시키라
이 방법은 교회에 “불법의 비밀”이 침범해 들어올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표징 중 하나이다. 사탄은 단지 우리에게 아주 소수만 (그리고 주로 특별한 종류의 남성들만) “사역”으로 부르셨다고 납득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교회의 유효한 능력을 90%나 감소시켜버린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라는 편견은 교회 안의 다른 어떤 편견보다 교회를 약화시킨다. 이 편견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성경적 교리와 성령의 은사들과 모든 성도들을 디아코니아(사역과 봉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소명을 지속적으로 파괴한다.
5. 경제와 정치 문제는 복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라
경제와 정치를 복음에서 분리시키고, 그것들을 제자도와 상관 없는 문제로 만드는 것은 비성경적 이원론이다. 복음은 경제적, 정치적 실체이며, 따라서 교회가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와 정치가 복음의 빛 가운데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는 아주 포괄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6. 공동체를 우선시하지 말라
신약성경 저자들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그리스도의 몸, 즉 우리가 그리스도께 참여하고 또 서로에게 참여하는 공동체를 중시하였다. 공동체가 성경적 코이노니아로서의 나눔에 덜 진실할수록, 교리적 논쟁이 더 중시되고, 교회는 공동체가 아닌 다른 것에 강조점을 둔다. 이것이 내가 『왕의 공동체 (Community of the King)』 및 다른 책들에서 공동체를 주제로 많이 다루는 이유이다.
7. 구약을 무시하라
두 가지 가장 일반적인 실수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라고 하는 전체적인 관점을 무시하는 것과, 신약이 구약의 모든 중요한 진리들에 영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는 잘못된 통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한 예로, “약속된 땅”은 “천국”이나 어떤 내적인 영적 체험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주 성경의 역사적 맥락이나 성경 자체의 의미와 전혀 동떨어진 “영적인 사실들”을 억지로 구약 속에서 찾으려 하게 된다.
8. 공의(justice)를 개인적 의(personal righteousness)로 제한하라
시가서, 예언서, 율법서, 지혜서로서 구약 성경은 끊임없이 공의와 개인적인 의를 동일한 종합적 실재의 양면으로 다룬다. 정의와 개인적인 의가 얼마나 자주 짝을 이루는지, 그리고 그 둘이 성경에서 얼마나 상호교환적으로 사용되는지 살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자주 다양한 방법으로 정의와 개인적인 의를 분리시켰다. 예를 들어, 의가 개인적 도덕성을 의미한다면, 정의는 하나님께서 대속이나 심판을 통해 직접 다루시는 문제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비성경적이다.
9. 중보기도를 경시하라
나는 성경에서 모세, 다윗, 선지자들, 욥,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와 모범 및 서신서들에서 기도에 대해 읽으면 읽을 수록, 나와 교회가 일반적으로 중보기도라는 중요한 사역을 경시해왔음을 확신하게 된다. 기도의 신비와 성령을 통한 하나님 백성들의 지속적인 중보기도는, 우리 자신이 당면한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나라와 백성과 종교들 간의 관계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자주 그렇게 해왔다. 중보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중요한 방편이다.
10. 제자는 되지 말고 신자만 되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이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 나라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게 하신다. 신약은 “신자들”이라는 말을 아주 드물게 사용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형제들” 또는 “그들” 같은 말 대신에 “신자들”로 번역함으로써 성경적 용어들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수가 아닌 제자들의 수, 그리고 제자를 만드는 사역이다.
11. 천국으로 하나님 나라를 대체하게 만들라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존재, 주권, 사랑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의 이원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마태복음에서의 “하늘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달리 표현한 것임을 알았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와 분리될 수도 없는 교회와의 신비한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이면서 미래적이고, 천상적이면서 지상적이고,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고, 순간적면서 점진적이고, 내적이면서 외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12. 신앙을 단지 삶의 작은 부분만이 되게 하라
우리는 일상적 삶과 신앙적 삶과 구분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은 우리의 삶 전체에서 작은 일부분이 되도록 축소시킨다. 그리고 그 작은 일부분마저도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감당하라. 성경은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큰 것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복음에 따르면, 신앙은 궁극적 실재가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이웃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우리의 전 존재로 사랑하는 사랑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항상 그러하다. 성경적으로 보면,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사랑은 믿음으로 가능케 되어서, 소망 즉 하나님께서 창조 전체를 온전히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확신에 의해 힘을 얻는다.
13. 창세기 9장을 무시하라
“언약” 혹은 “계약” 신학을 다루는 많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신학들은 거의 언제나 (창3:15절을 잠깐 언급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부터 다룬다. 하지만, 성경에서 명백한 첫 번째 언약은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세상과의 언약”(창9:13)을 맺으시는 데서 발견된다. 분명히 반복되고 강조되는 점은, 이 언약은 모든 사람들 및 모든 살아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들과의 언약이라는 것이다. 만약 구원에 대한 이해가 창세기 3장에서 12장으로 바로 뛰어넘어버린다면, 우리는 창조 질서에 대한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놓치게 될 것이고, 성경 속에 있는 다른 모든 가르침도 왜곡하게 될 것이다.
14. 제자도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돌봄과 상관없는 것이 되게 하라
우리가 창조 질서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무시하거나 왜곡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성경이 약속하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축소시키게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손해이다. 우리는 교회를 메마르게 만들고,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지나치게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게 되고, 선교의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제자도와 창조의 돌봄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안다면, 교회는 인내와 겸손 속에서 “견고한 진을 파할 정도로” (고후10:4) 강해질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복음을 왜곡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초점을 옮겨 복음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게 되면 문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뒤튼다, 왜곡한다, 구부린다, 침식한다, 중화한다, 약하게 한다, 취소한다, 꺾어버린다 등 어떤 동사를 사용하든, 문제는 지속될 것이고, 주의 깊게 성경에 기초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제자도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신약성경 속에서 제자들이 복음 왜곡의 문제와 분투했음을 본다. 그러나,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할 때까지”(사11:9) 하나님의 성령은 여전히 능력 있게 그리고 신기하게 일하시고, 여전히 약속을 성취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모든 진리” (요16:13)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출처: http://howardsnyder.seedbed.com/…/14-favorite-ways-to-twis…/
장기영박사님 펫북에서 2014년 5월 6일

소그룹 사역에 독이 되는 5가지 움직임

최근 미국의 마크 하웰 목사는 처치리더스닷컴에 ‘5가지 ‘소그룹 사역에 독이 되는 5가지 움직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마크 하웰 목사는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캐년리지크리스천교회의 담임 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소그룹리소스닷넷(SmallGroupResource.net)을 설립해 건강한 소그룹 사역을 위한 상담과 코칭을 제공하고 있다.
칼럼에서 하웰 목사는 “소그룹은 때로 전혀 해가 없어 보이고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큰 위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소그룹에 독이 될 수 있는 5가지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다른 소그룹 모델의 체계와 전략 등을 가져와 바꾼다.
각각의 소그룹에는 중심이 되는 모델과 체계와 버전이 있다. 당신이 이를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변형된 모델은 독이 될 수 있다. 당신이 방금 소그룹 모델에 대한 좋은 책을 읽었거나 더 좋아보이는 콘퍼런스에 참여했을 수 있다. 그러나 소그룹의 체계를 선택할 때는 3년 정도 고민을 해야한다. 적어도 3년 동안은 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다.

2. 경험이 많은 그룹 지도자에게 다시 감독의 역할을 맡긴다.
경험이 많은 지도자들에게 감독의 자리를 소급하여 제공하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다. 이는 때로는 소그룹 감독을 영구적으로 좋지 않게 만들거나, 나쁜 장기 이식과 같이 대부분 소그룹 리더들에게 거부를 당한다. 운이 좋게, 적은 재정과 지혜로도 경험이 많은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3. 도약은 그룹에 커리큘럼을 요구한다.
이는 담임 목사가 영감을 받은 결과일 수도 있고,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은 교회 캠페인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소그룹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커리큘럼을 사용해야 하는 이러한 지시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설교를 기반으로 한 접근은 분명한 예외이다). 모든 그룹에 공통적인 과제(교회 캠페인, 모두에게 한 가지 비전을 심어주려는 욕구, 전교인 쇄신의 필요성 등)를 요구할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때 마지막 요건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4. 소그룹의 연구 주제를 선정할 때, 잘못된 이들의 선호도를 허용한다.
우리는 이 딜레마에 있어서 매우 분명해야 한다. 오랜 만남을 가진 그룹일수록, 유익한 연구의 주체를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꼭 적용이 중심이 될 필요는 없다. 평소 교류가 없던 이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영적 씨름이나 흥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제들을 우선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평소 교류가 없던 이들과의 관계성을 고려한다면, 주제를 선택할 때 이미 관계성이 있는 이들의 흥미도와 선호도를 허용하지 않도록 한다. 만약 이들이 주제를 건강하게 적용하는데 포함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리스트에 새로운 주제를 추가하는 것에도 동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5. 모든 것을 ‘그룹’이라고 부른다.
만약 이러한 일이 한 교회에서 일어났다면, 만 개의 교회에서도 일어났을 것이다. 당신은 소그룹들의 교회가 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수업(classes)이나 공부(studies)라고 부르는 것을 임의로 바꾸는 것은 망상이며 항상 독이 된다.
<크리스찬 투데이에서 가져왔습니다. 2019.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