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6. QT큐티체조. 고난주간입니다.

간단설명. 수요일에 예수님은 베다니로 오셔서 잠시 휴식을 취하셨다. 이 날은 침묵의 날이라고 불린다. 목요일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십자가를 준비하신 준비의 날이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2:24-30
한글본문.
24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영어본문.
24 Also a dispute arose among them as to which of them was considered to be greatest. 25 Jesus said to them, “The kings of the Gentiles lord it over them; and those who exercise authority over them call themselves Benefactors. 26 But you are not to be like that. Instead, the greatest among you should be like the youngest, and the one who rules like the one who serves. 27 For who is greater, the one who is at the table or the one who serves? Is it not the one who is at the table? But I am among you as one who serves. 28 You are those who have stood by me in my trials. 29 And I confer on you a kingdom, just as my Father conferred one on me, 30 so that you may eat and drink at my table in my kingdom and sit on thrones, judging the twelve tribes of Israel.

도움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27절). 유대 식사 풍습에 주인이나 귀빈은 기대어 거의 눕는 자세로 앉아서 먹고, 종들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크다고 하셨는가(26절)?
⬇ 아래로 인간.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갈 때 약속된 영광은 무엇인가(29-30절)?
? 물어봐.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셨는가(27절)?
! 느껴봐. 나는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더 크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더 겸손히 낮아져서 섬겨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Meditation. 하늘에서 큰 자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는 ‘인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내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제자들은 ‘우리 중에 누가 크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었다(24절).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지위는 세상 나라와 같지 않음을 교훈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오셔서 죽기까지 낮아지시며, 겸손히 섬김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제자들 역시 서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섬겨야 한다(25-27절).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섬기는 사람이다(마 20:26-27). 예수님은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다(요 13:1-17). 그리고 하나님이 그 나라를 예수님께 맡기셨듯이, 이제 예수님도 그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시겠다고 선언하신다(28-29절). 이 땅에서 섬기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 당신이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 겸손히 섬겨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young2080애서 가져왔습니다>

2014-04-15. QT큐티체조. 고난주간입니다.

간단설명. 화요일은 예수님이 논쟁을 일으키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신 변론의 날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하지는 않고 계속해서 논쟁만 걸어오며 배척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버린 돌과 머릿돌 비유를 통해 경고하신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0:17-19
한글본문.
17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9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영어본문.
17 Jesus looked directly at them and asked, “Then what is the meaning of that which is written: ”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apstone’? 18 Everyone who falls on that stone will be broken to pieces, but he on whom it falls will be crushed.” 19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chief priests looked for a way to arrest him immediately, because they knew he had spoken this parable against them. But they were afraid of the people.

도움말.
백성을 두려워하더라(19절).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첫째, 백성들이 예수님을 큰 선지자로 알고 있다는 사실(눅 7:16)과 둘째, 백성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크게 기뻐하고 찬양했다는 점(눅 19:37)과 셋째, 그 이전에도 백성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일(요 6:15)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묘사되고 있는가(17절)?
⬇ 아래로 인간.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심판이 경고되고 있는가(18절)?
? 물어봐.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19절)?
! 느껴봐. 내 삶은 예수님을 머릿돌과 기초로 삼아 세워져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삶 가운데 더욱 주님을 머릿돌로 삼아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Meditation. 버린 돌과 머릿돌
돌을 보는 전문가들인 건축자들이 모퉁잇돌로 쓸 만한 귀한 돌을 알아보지 못하고, 쓸모없는 돌이라고 버린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겠는가? 그런데 종교 전문가들을 자처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고 있다(17a). 그들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다윗 시대와 같은 황금기를 다시 한번 열어줄 수 있는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기대에 비추어볼 때, 예수님은 쓸모없는 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이 진정으로 해방되어야 할 대상은 로마가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였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머릿돌로 삼아 그를 믿어 죄로부터 구원받는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17b).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그 돌에 부딪혀 산산이 깨지고 말 것이다(18절).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회개하기보다는 더욱 예수님을 배척하며 잡아들이고자 했다(19절).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 당신은 그분을 머릿돌 삼아 견고하게 세워져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2014-04-14. QT큐티체조. 고난주간.

간단설명. 성 고난주간(Holy Passion Week)의 첫째 날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개선의 날이고, 둘째 날인 월요일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권위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권위의 날이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19:45-48
한글본문.
45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영어본문.
45 Then he entered the temple area and began driving out those who were selling. 46 “It is written,” he said to them, ” ‘My house will be a house of prayer’; but you have made it ‘a den of robbers.'” 47 Every day he was teaching at the temple. But the chief priests,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leaders among the people were trying to kill him. 48 Yet they could not find any way to do it, because all the people hung on his words.

도움말.
장사하는 자들(45절). 환전상들은 성전세를 내기 위해 로마 화폐를 유대 화폐로 바꾸어가는 사람들에게 고리의 환전료를 챙겼다. 또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때, 제사장들은 자신들과 담합한 상인들에게서 사온 제물만 받아주었다. 환전상들과 상인들은 제사장들에게 이익의 일부를 상납하는 대신 독점적으로 폭리를 취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45-46절)?
⬇ 아래로 인간.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대응했는가(47절)?
? 물어봐. 백성들은 예수님께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48절)?
! 느껴봐. 내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안에 주님 보시기에 더욱 정결케 되어야 할 부분은 없는가?

Meditation.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바로 그 다음날인 월요일에 성전을 찾으셨다(45절). 예수님이 첫째로 관심을 둔 곳은 성전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그런 성전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속죄의 제사가 드려지며 기도하는 곳으로서의 본 모습은 퇴색되고 탐욕과 비리가 어우러진 곳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 있었다. 성전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것은 환전상 및 상인들과 제사장들이 서로 결탁해 신성해야 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46절). 예수님은 이를 보고 격분하셔서 성전에서 환전상과 상인들을 내쫓으시고,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성전의 참의미를 가르치셨다. 이에 반감을 품은 타락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47절).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3:16). 성전 된 당신의 영혼에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울려 퍼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욕심과 불의의 소리가 가득히 울리고 있는가? 성전 된 당신의 영혼에 더욱 정결케 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관한 세 가지 진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5:22-23)”

1. 열매는 초자연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진리는, 성령의 열매는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 열매들을 맺게 하시는 장본이시다. 이 열매들은 성령께서 충만케 하시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분께서 자라게 하시고 거두시는 수확이다.

이 사실은 본문에서 ‘성령의 열매’가 ‘육체의 일’과 의도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것에서 더 분명해진다… ‘육체의 일’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원에만 의지해서 자연적으로 행하는 일들을 가리킨다면,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성령께 반응할 때 그분이 우리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 왜냐하면 우리의 자연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 만들어 내시는 특질들로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힘만 의지한다면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술취함과 방탕함’ 따위들이다 (갈5:19,21). 반면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열매는 그와 정반대의 것들로서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이다. 우리가 자신의 힘만 의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 숭배와 술수’에 빠지고 말 것이다 (20절).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사랑과 희락과 화평’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육체의 일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인 반면, 이와 반대되는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이다.

타고난 본성에 따른 우리의 모든 관계는 뒤틀려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우상으로 돌이킨 자들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사이가 뒤틀려져서 불화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을 절제하며 살기보다는 탐닉에 빠져 살아간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또 자신을 확실하게 절제하며 사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초자연적인 역사로서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의 특질들의 총화인 이 열매들은 성령의 충만한 내주하심의 가장 훌륭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이 증거는 확실하게 객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깊이 역사하시는 진정한 증거는 감정적인 경험이나 굉장한 표적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적 특질들이다. 굉장한 경험을 자랑하지만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절제 등이 결여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자. 나는 우리 모두가 그의 주장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 자신의 경험이나 은사가 무엇이든지간에 그 품성을 통해 주 예수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다른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자. 우리 모두는 분명히 그 사람과 함께 있기를 더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을 보기 때문이다.”

2. 초자연적 기원을 가졌으나, 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성장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의 초자연적인 기원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성장 역시 가르치고 있다. 이 두 진리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거룩한 삶이 성령의 산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삶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령이 그러한 삶을 그분의 ‘열매’로 생산하신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러한 성장을 위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며,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바울이 ‘열매’에 대해 썼다면, 6장에서는 모든 열매의 수확을 궁극적으로 결정하게 될 ‘심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을 인용해보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7-8).

근본적인 원리는 다음의 말씀에 나타나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행위에서 사용하시는 확고한 원리이자, 하나님의 일관성을 알려주시는 법칙으로서 물질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영역, 자연과 인간의 품성 등에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언제나, 어떤 예외도 없이 우리는 우리가 심는 것을 거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심을 것인지를 결정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거두게 될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게 된다. 만일 귀리를 추수하기 원하는 농부라면 귀리를 심어야 할 것이다… 만일 성령이 우리의 삶에 좋은 열매를 맺으시게 하려면, 우리는 좋은 씨를 심어야 할 것이다…

사도가 ‘심는 것’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습관, 생활 방식, 삶의 방향과 삶의 훈련 등으로 구성된 전체적인 삶의 패턴이다… 즉 우리 삶의 전체적인 흐름 및 그보다는 작지만 매일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무수한 사항들에 관해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것들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언제나 계속 심고 심고 또 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여러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여 이 주제를 설명한다. 어떤 곳에서는 옷으로 설명하고 (우리가 벗는 것과 입는 것), 어떤 곳에서는 운동 선수의 분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어떤 것은 피하고 어떤 것은 얻기 위해 좇아가는 것). 어떤 곳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설명하고 (우리의 죄악된 욕망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하고, 그 대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 어떤 곳에서는 빚을 갚는 일로 설명한다 (우리는 육신이 아닌 성령에 빚진 자라는 것). 이 모든 비유들이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로서 성화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두기 원한다면… 제대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 육체를 위해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된다고 사도는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령을 위해 심으면 ‘영생’을 거두게 된다… 따라서 이생에서 우리의 도덕적 품성은 물론, 내생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까지도 지금 우리가 무엇을 심는지에 달려 있다.”

3. 열매를 맺는 데는 점진적인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도가 사용하는 이 ‘열매’의 비유에서 배워야 할 세 번째 교훈은… 하나님이 무르익게 하시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곡식에 대한 한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4:28)…

… 이러한 강조는 우리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죄악된 삶을 살도록 조장하거나, 게으름을 권장하거나, 우리의 기대치를 낮추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는 열매 맺는 일에서 더 적극적으로 성령과 협력하게 되고, 좋은 결실을 수확하기 위해 심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고, 공적이고 개인적인 경건의 삶의 습관을 위해 자신을 더 훈련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풍성히 무르익게 될 것이다.”

적용

“우리는 성령의 열매들에 대한 세 가지 진리를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 각각의 진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겸손과 믿음이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는 ‘육체’의 토양에서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 및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 성령의 열매를 자라게 하실 수 있으심을 믿는 믿음이 둘 다 필요하다…

둘째, 그리스도를 닮는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 측면에서는 결실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오직 심은 것만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심어야 하며, 생각하는 것, 사는 것 둘 다를 위한 훈련된 습관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뿌리는 씨를 관리할 때 성령께서 열매를 책임지신다.

셋째, 그리스도를 닮는 열매를 맺는 것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기 때문에, 그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 인내를 ‘조급한 인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인내는 자기 만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살펴본 것처럼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주님을 기다리며’ 열매가 익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추수할 때가 오고, 이생에서는 잘 익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내생에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은 모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출처: 존 스토트, 『성령 세례와 충만』 (서울: IVF, 2002), p. 93-106.
<장기영 교수님의 펫북에서 가져왔습니다>

주일에는 읽는 QT큐티. 십자가의 비밀2

주일에는 읽는QT 십자가의 비밀 2

간단설명. 십자가는 천국 문턱에 이르기에 충분할 만큼 높으며 유일한 사다리다.
- 조지 다나 보드맨

한글본문. 요한복음 19:16-18
16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7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영어본문.
16 Finally Pilate handed him over to them to be crucified. So the soldiers took charge of Jesus. 17 Carrying his own cross, he went out to the place of the Skull (which in Aramaic is called Golgotha). 18 Here they crucified him, and with him two others–one on each side and Jesus in the middle.

Meditation. 골고다 언덕의 전투
그 날, 십자가 언덕은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습니다. 하늘과 지옥을 등에 업은 두 장수,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이 마주서서 두 나라의 영원한 판세를 갈라놓습니다.
사탄이 먼저 공격을 감행합니다.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걸어 넘어뜨리고는 손목과 발꿈치에 못을 관통시킵니다. 이제 예수님의 반격이 가해집니다. 무기는 다름 아니라 그 몸과 하나 된 바로 그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공중에 올리시더니 이내 그 언덕 꼭대기에 박아 세우십니다. 그 십자가는 큰 못이 되어 골고다 언덕 정상에 일격을 가합니다. 골고다는 해골, 정수리라는 뜻입니다. 누구의 해골이며, 누구의 정수리일까요? 바로 대적 사탄의 해골이요, 정수리입니다. 사탄은 쇠못으로 예수님의 손목과 발꿈치를 상하게 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셨습니다.
십자가의 전투 장면을 대할 때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십자가 언덕에서 벌어진 그 전투는 하늘과 지옥을 대표하는 사탄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나라의 영원한 운명을 놓고 벌인 예견된 전투였습니다. 하늘과 지옥이 함께 숨죽이고 지켜 본 그 전투에서 누구의 손이 올려졌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고, 지옥은 패배의 신음을 삭였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그 날은 인류의 역사를 진정으로 구분 짓는 분수령입니다. 죄의 부채가 완전히 상환되었습니다. 죄의 청구서가 더 이상 우리에게 날아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그 어떤 인류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날이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죄의 권세 앞에 더 이상 주눅 들지 마십시오. 죄의 소리에 더 이상 오금 절이지 마십시오. 죄에 대한 승리는 이미 따 놓은 당상입니다.

십자가 전투 이후 사탄은 머리가 깨진 뱀입니다. 잠시 우리를 휘감을 수는 있어도, 결코 물 수는 없습니다. 죄의 권세가 꼬리를 감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권세로 떨어내십시오. 십자가의 승리를 삶 속에서 만끽하십시오. 여전히 십자가가 보장하는 그 넉넉한 승리를 누리지 못하는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기도
“골고다 언덕에서 영원한 승리를 이루신 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승리를 삶의 모든 자리에서 풍족히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에서 온 기도요청.

수욜에 컵깨고 약 두시간 후에 긴급기도 제목이라며 전화가 왔다. 2년 반전에 돌아가신 파일럿 폴 선교사님의 절친인 밥 선교사님이 비행기 이륙도중 추락해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3년내에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파일럿 선교사님이 두분 돌아 가셨고, 우리가 2004년에 인도네시아에 온 이후로는 네번째 파일럿 선교사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부활, 영생의 소망과 주님의 주관하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고백… 소망의 메세지로 가득한 장례식이 어제 드려졌고, 오늘은 페이스북에 장례식 사진들… 남겨진 가족의 사진들이 올라왔다.
어젯밤 비가 많이 오고는 오늘 오전에도 내내 흐린 하늘에 정전으로 어둑한 집안… 돌아가신 밥 선교사님의 아내 잰 사모님이 쾌활한 웃음을 띄고 남편의 목을 끓어안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신 걸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남편을 뭍은 무덤이 비에 젖었을 걸 생각하면 어떨 마음일까… 맘이 넘 아팠다.
이런 죽음들을 대하면서도 여전히 계속 이렇게 주님을 섬길 가치가 있다고 고백하는 다른 파일럿과 그의 아내들… 남편은 또 그런 분들의 섬김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화-목 왕그말로를 방문한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다가도, 또 멍하니 흐린 하늘을 바라본다.

2014-04-12.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요단 도하를 마친 백성들은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취한 열두 돌로 기념비를 세운다.

성경본문. 여호수아 4:19-24
한글본문.
19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영어본문.
19 On the tenth day of the first month the people went up from the Jordan and camped at Gilgal on the eastern border of Jericho. 20 And Joshua set up at Gilgal the twelve stones they had taken out of the Jordan. 21 He said to the Israelites, “In the future when your descendants ask their fathers, ‘What do these stones mean?’ 22 tell them, ‘Israel crossed the Jordan on dry ground.’ 23 For the LORD your God dried up the Jordan before you until you had crossed over. The LORD your God did to the Jordan just what he had done to the Red Sea when he dried it up before us until we had crossed over. 24 He did this so that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might know that the hand of the LORD is powerful and so that you might always fear the LORD your God.”

도움말.
길갈(19절). 요단강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여호수아는 이곳을 여리고 정복의 교두보로 삼았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요단 도하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백성에게 어떤 분으로 드러나셨는가(24a)?
⬇ 아래로 인간. 백성들은 요단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24b)?
? 물어봐. 기념비를 세우는 일과 함께 반복해서 언급되는 내용은 무엇인가(21-22절)?
! 느껴봐.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하나님의 강한 손을 의지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여호와의 강한 손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그곳에 세웠다. 열두 돌 기념비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른 땅을 밟고 요단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두고 상기시킬 것이다. 백성들이 건너갈 수 있도록 홍해 바다를 말려버리셨던 하나님은 요단강도 말려버리셨다(23절). 땅의 모든 백성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손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처럼 위대하신 분의 백성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항상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24절).
40년 전 홍해를 가르셨던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강해서 요단강도 가르셨다. 그 손은 지금도 여전히 강하시다. 우리 앞에 홍해 바다 같고 요단강 같은 문제들이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능히 그것들을 가르시고, 우리 앞에도 마른 땅을 펼쳐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 마른 땅을 딛고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이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