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인간의 지혜와 쾌락 그리고 수고의 헛됨을 논한 전도자는 창조주의 신비로운 섭리에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는 것이 삶의 바른 자세라고 교훈한다.

성경본문. 전도서 3:1-15
한글본문.
1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영어본문.
1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heaven: 2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nd a time to uproot, 3 a time to kill and a time to heal, a time to tear down and a time to build, 4 a time to weep and a time to laugh, a time to mourn and a time to dance, 5 a time to scatter stones and a time to gather them, a time to embrace and a time to refrain, 6 a time to search and a time to give up, a time to keep and a time to throw away, 7 a time to tear and a time to mend, a time to be silent and a time to speak, 8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hate, a time for war and a time for peace. 9 What does the worker gain from his toil? 10 I have seen the burden God has laid on men. 11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 hearts of men; yet they cannot fathom what God has done from beginning to end. 12 I kno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men than to be happy and do good while they live. 13 That everyone may eat and drink, and find satisfaction in all his toil–this is the gift of God. 14 I know that everything God does will endure forever; nothing can be added to it and nothing taken from it. God does it so that men will revere him. 15 Whatever is has already been, and what will be has been before; and God will call the past to account.

도움말.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5절). 성을 허무는 것과 쌓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있는 것이…(15절). 지금 있는 것 이미 있던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신 일을 되풀이하신다. (새번역)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은 무엇인가(11, 14절)?
⬇ 아래로 인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12-13절)?
? 물어봐. 전도자는 하나님의 섭리의 적용 범위를 어디까지 보았는가(1절)?
! 느껴봐. 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진행되어 감을 확신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오늘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 삶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이 교차한다. 전도자는 삶 전체를 포괄하는 14쌍의 대조적인 일들을 제시한다(1-8절).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만,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때에 일어나게 할 수 없다(11, 14절).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만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때에 하실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는 체념적인 운명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영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믿고, 자신을 기꺼이 맡기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삶의 패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나고 보면 버릴 패는 하나도 없었음을 깨달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선물로 누릴 수 있게 한다(12-13절). 당신이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신뢰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믿음과 소망의 관계에 대한 루터의 설명과 칼빈의 설명

(아래의 글은 장기영 박사의 펫북에서 건져왔습니다.^^)

— 믿음과 소망의 관계에 대한 루터의 설명과 칼빈의 설명 —

1. 루터

“믿음은 지성 안에 있고, 소망은 의지 안에 있다… 믿음은 지성을 명령하고 인도하는… 교훈이요 지식이다. 소망은 권면이다. 소망은 마음이 용기를 얻고 굳은 결심을 하도록 북돋아 악의 와중에서도 담대하고 참을성 있고 끊기 있도록 하고 더 나은 것을 바라보게 한다. 믿음은 오류와 이단에 항거하여 투쟁하고 영들과 교리들을 심판하는 신학자이자 심판자라면, 소망은 환난과 십자가, 조급함과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 모욕 당한 감정에 항거하여 투쟁하는 지휘관으로서 기쁨과 용기로써 악과 투쟁한다… 믿음은 그 대상으로 진리 (truth) 를 가진다. 믿음은 확실하고 굳게 진리에 매달리라고 가르친다. 믿음은 그 대상에 대한 말씀 (the word of the object), 즉 약속을 바라본다. 소망은 선 (goodness) 을 그 목적으로 가진다. 소망은 약속의 말씀이 가리키는 대상 (the object of the word) 을 바라본다. 약속된 대상, 믿음이 받으라고 명령하는 대상을 바라본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신중성과 불굴성은 다르다… 불굴성은 역경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용감하게 견디며 더 나은 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확고함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굴성이 신중성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경솔함이 되고 만다. 반대로 신중성에 불굴성을 더하지 않으면 신중성은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정치 영역에서 신중성은 불굴성이 없으면 무익한 것과 같이, 신학에 있어서도 믿음은 악의 와중에서도 견디고 이끌며 정복하는 소망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불굴성은 신중성이 없이는 경솔함이 되는 것처럼, 소망 역시 믿음 없이는 성령에 관해 주제 넘는 것이 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된다. 믿음이 가르치는 진리나 그리스도의 지식이 없는 소망은 눈 멀고 경솔한 불굴성이 되고 만다. 신자가 믿음의 인도를 받는 올바른 이해와 지성을 가질 때, 믿음이 명령하고 가르치는 최선의 것을 소망할 수 있게 된다.

믿음은 믿어야 할 모든 내용을 가진 변증법과 같다. 소망은 시험을 당할 때 확고하게 말씀을 붙들도록 강권하고 설득하는 수사학과 같다. 연설자는 변증의 논리가 없이는 아무 것도 확실하게 가르칠 수 없고, 논리학자는 수사학이 없이는 그의 청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처럼 변증학과 수사학은 서로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결합될 때에라야 비로소 설득력 있게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믿음과 소망은 서로 다르고 구별된 것이지만 서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변증법과 수사학이 서로를 위해 일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이 믿음과 소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신학에 있어서 믿음과 소망의 관계는 철학에 있어서 지성과 의지의 관계와 같고, 정치 영역에서 신중성과 불굴성의 관계와 같고, 공중 연설에서 변증법과 수사학의 관계와 같다.

믿음은 지성이 진리로 깨우침을 받을 때 생겨난다. 소망은 권면으로 생겨난다. 권면을 통해 고난 중에서도 솟아올라 악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행동하게 한다. 그러나 만일 믿음의 빛이 의지를 밝혀주지 않는다면, 소망만으로는 의지를 설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믿음으로 시작하고 소망으로 보존한다… 믿음은 소망에 앞서간다. 믿음은 생명의 시작이며 고난을 받기 전에 시작된다. 믿음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그리스도에 관해 배우며 그를 붙잡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는 즉시 분쟁과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이런 고난 속에서 믿음은 신학적 지혜와 신중성이라면, 소망은 신학적인 불굴성으로서… 육신적이며 영적인 모든 악을 정복하는 것이다.”
출처: Luther’s Works 27: 20-27. 루터 저, 김선회 역, 말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 (1535판) 하권 (용인: 루터대학교출판부, 2003), 43-54 (번역을 부분 수정).

2. 칼빈

“하나님의 진실성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다 … 소망은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약속하셨다고 믿는 일들에 대한 기대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진실하시다고 믿으며, 소망은 하나님의 진실성이 밝히 나타내는 때를 기다린다.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믿으며, 소망은 그가 우리에게 항상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 예상한다. 믿음은 우리가 영생을 받았다고 믿으며, 소망은 영생이 언젠가는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 믿음은 소망의 토대요 소망은 믿음에 영향을 주며 힘을 준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미 믿은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의 약한 믿음은 오래 참는 소망과 기대에 의해서 지지되고 조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무력해지고 희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바른 말이다(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소망은 묵묵히 주를 기다리는 동시에 믿음이 너무 서두르다가 곤두박질하여 떨어지지 않도록 제어한다. 소망은 믿음에 힘을 주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거나,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도록 한다. 소망은 믿음의 생기를 회복시켜 지치지 않게 한다. 소망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믿음을 지탱해주어 도중에서, 심지어 출발점에서도 힘이 빠지지 않게 한다. 간단히 말하면, 소망은 끊임없이 믿음을 갱신하고 회복함으로써 믿음에 견인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믿음을 확립하기 위해서 소망의 지지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를 더 잘 알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닥치는 시험의 형태가 얼마나 많은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첫째로, 주께서는 약속하신 일을 연기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너무도 오랫동안 불안정한 상태로 두신다. 이런 때는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합2:3)고 한 예언자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소망의 기능이다. 어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치는 것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분명히 노여움을 보이신다. 이런 때에 소망이 우리를 도와서 다른 예언자가 말한 대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릴’(사8:17) 필요가 훨씬 더 절실하다. 또 베드로는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말한다(벧후3:3-4). 사실상 육과 세상은 꼭같은 말들을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런 때를 위해서 우리는 길이 참는 소망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강해야 한다. 천 년을 하루같이 여길 만큼(시9-:4, 벧후3:8) 우리의 소망을 영원한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와 유사점으로 인해 성경은 간혹 믿음과 소망이란 말을 서로 바꾸어 사용한다. 베드로가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가르칠 때(벧전1:5), 그는 소망에 해당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소망은 곧 믿음을 위한 자양분과 힘이라고 우리는 이미 가르쳤기 때문이다.

같은 편지에서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1:21)고 한 것 같이, 믿음과 소망은 간혹 결합된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참고 소망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나타나기까지 우리 자신의 소원을 보류한다고 하여(빌1:20) 소망에서 기대가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이 모든 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귀절에서도 바울은 … 같은 뜻을 말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갈5:5). 즉, 값없이 주시는 사랑에 관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지금 소망 밑에 숨어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밝히 보여주실 때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소망의 목표와 믿음의 목표는 다르지 않다. 믿음의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이 자비이다 … 주의 자비에서 모든 것을 대망하라는 것이 주의 뜻이다…”
출처: 기독교강요, III. 2. 42-43.

 

2014-11-06.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지혜와 쾌락의 헛됨을 다룬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수고 역시 헛되다고 탄식한다.

성경본문. 전도서 2:18-26
한글본문.
18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영어본문.
18 I hated all the things I had toiled for under the sun, because I must leave them to the one who comes after me. 19 And who knows whether he will be a wise man or a fool? Yet he will have control over all the work into which I have poured my effort and skill under the sun. This too is meaningless. 20 So my heart began to despair over all my toilsome labor under the sun. 21 For a man may do his work with wisdom, knowledge and skill, and then he must leave all he owns to someone who has not worked for it. This too is meaningless and a great misfortune. 22 What does a man get for all the toil and anxious striving with which he labors under the sun? 23 All his days his work is pain and grief; even at night his mind does not rest. This too is meaningless. 24 A man can do nothing better than to eat and drink and find satisfaction in his work. This too, I see, is from the hand of God, 25 for without him, who can eat or find enjoyment? 26 To the man who pleases him, God gives wisdom, knowledge and happiness, but to the sinner he gives the task of gathering and storing up wealth to hand it over to the one who pleases God. This too i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도움말.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26절). 하나님이 죄인이 쌓아 놓은 것을 의인에게 주신다는 생각은 지혜서 여러 곳에서 나온다(욥 27:16-17, 잠 13:22, 28:8).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전도자가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24절)?
⬇ 아래로 인간. 전도자가 자기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21절)?
? 물어봐. 사람의 힘겨운 수고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22-23절)?
! 느껴봐. 세상의 헛된 수고와 달리, 주님 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할 주님의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흔들리지 말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라.
인간의 모든 수고도 결국엔 헛되다. 왜냐하면 평생 피땀 흘려 이룬 것을 언젠가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18-21절). 아들에게 물려줘도 그가 우매자이면 다 잃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엔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실제로 솔로몬의 우매한 후계자 르호보암은 왕국의 대부분을 우상숭배자 여로보암에게 뺏기고 말았다(왕상 12장).
이에 전도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권면을 한다. 언젠가는 다 놓고 떠날 건데 더 얻으려고 아등바등 애쓰지 말고, 오늘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이다(22-26절). 다만, 그런 일상적인 즐거움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해 아래에서의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국 헛되고 만다. 오직 ‘주 안에서의 우리의 수고’만이 결코 헛되지 않다. 그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흔들림 없이 주님의 일에 힘쓸 수 있다(고전 15:58). 당신이 열심을 품고 섬겨야 할 주님의 일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1-05.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지혜와 쾌락의 헛됨을 이야기한 데에 이어 다시 한 번 지혜의 한계에 관해 논한다.

성경본문. 전도서 2:12-17
한글본문.
12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3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5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영어본문.
12 Then I turned my thoughts to consider wisdom, and also madness and folly. What more can the king’s successor do than what has already been done? 13 I saw that wisdom is better than folly, just as light is better than darkness. 14 The wise man has eyes in his head, while the fool walks in the darkness; but I came to realize that the same fate overtakes them both. 15 Then I thought in my heart, “The fate of the fool will overtake me also. What then do I gain by being wise?” I said in my heart, “This too is meaningless.” 16 For the wise man, like the fool, will not be long remembered; in days to come both will be forgotten. Like the fool, the wise man too must die! 17 So I hated life, because the work that is done under the sun was grievous to me. All of it i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도움말.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14절). 지혜로우면 제 앞이 보이고 어리석으면 어둠 속을 헤맨다고 했지만, 그래 보아야 둘 다 같은 운명에 빠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공동번역)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과 무관한 인간의 지혜는 결국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가(15절)?
⬇ 아래로 인간. 지혜는 우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어떻게 우월한가(13절)?
? 물어봐. 죽음은 우매에 대한 지혜의 우월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16절)?
! 느껴봐. 나는 사람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내 지혜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신앙이 지혜보다 낫다.
전도자는 지혜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 아래 지혜가 우매보다 낫다는 평가를 인정한다(13-14절). 지혜는 삶에 통찰력과 판단력을 제공한다. 지혜자는 빛 가운데 걸어가지만 우매자는 어둠 속에서 넘어진다. 그러나 우매에 대한 지혜의 상대적인 우월성은 절대적인 한계인 죽음 앞에서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피할 수는 없고, 그들도 결국엔 다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고 만다(15-16절). 결국에 가서는 지혜로운 사람의 운명이 어리석은 사람과 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다는 현실은 삶 자체를 혐오하게 할 만큼 허무한 일이다(17절).
지혜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절대 한계인 죽음 앞에서는 다 무력화되지만, 신앙은 오히려 죽음을 무력화시켜 버린다. 부활의 신앙은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당당히 외친다(고전 15:55). 지혜는 우매보다 낫고, 신앙은 지혜보다 낫다. 당신이 믿음으로 담대히 맞서 나가야 할 일은 없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1-04.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전도자는 지혜의 헛됨에 이어 쾌락의 헛됨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경본문. 전도서 2:1-11
한글본문.
1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3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4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10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영어본문.
1 I thought in my heart, “Come now, I will test you with pleasure to find out what is good.” But that also proved to be meaningless. 2 “La-ughter,” I said, “is foolish. And what does pleasure accomplish?” 3 I tried cheering my-self with wine, and embracing folly–my mind still guiding me with wisdom. I wanted to see what was worthwhile for men to do under heaven during the few days of their lives. 4 I undertook great projects: I built houses for myself and planted vineyards. 5 I made gardens and parks and planted all kinds of fruit trees in them. 6 I made reservoirs to water groves of flourishing trees. 7 I bought male and female slaves and had other slaves who were born in my house. I also owned more herds and flocks than anyone in Jerusalem before me. 8 I amassed silver and gold for myself, and the treasure of kings and provinces. I acquired men and women singers, and a harem as well–the delights of the heart of man. 9 I be-came greater by far than anyone in Jeru-salem before me. In all this my wisdom stayed with me. 10 I denied myself nothing my eyes desired; I refused my heart no pleasure. My heart took delight in all my work, and this was the reward for all my labor. 11 Yet when I surveyed all that my hands had done and what I had toiled to achieve, everything wa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nothing was gained under the sun.

도움말.
내가 내 마음으로…(3절). 지혜를 깨치려는 생각으로 나는 술에 빠져 보기도 하였다.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붙잡고 늘어져 보았다. 하늘 아래 이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알아 내려고 하였다. (공동번역)

노래하는 남녀들(8절). 잔치 자리에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삼하 19:35).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 없는 쾌락은 결국 무엇만을 남기는가(11절)?
⬇ 아래로 인간. 전도자의 부귀영화는 어느 정도였는가(6-7절)?
? 물어봐. 전도자가 쾌락을 누려보았던 목적은 무엇인가(1절)?
! 느껴봐. 나는 세상의 헛된 쾌락에 목말라 하며 살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목마른 사슴처럼 더욱 사모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

Meditation.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전도자는 시험적으로 즐거움을 누려봄으로써 그러한 즐거움이 인간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가 행해보았던 다양한 시도들이 나열된다. ①연회의 낙(3절, 왕상 4:22-23) ②일의 낙(4-6절) : 여러 건축 사업과 왕실 소유지의 개발(왕상 9:15-28) ③소유의 낙(7-8a) : 남녀노비, 소와 양, 은금과 온갖 보배들(왕상 10:14-29) ④성적인 낙(8b) : 칠백의 후궁과 삼백의 첩들(왕상 11:3)….
전도자는 쾌락추구의 절정까지 가보았지만(9-10절), 그 끝에 남는 것은 짙은 허무뿐이었다(2, 11절). 영혼의 내적 욕구는 육신의 외적 욕구를 아무리 충족시킨다 하더라도 결코 다 채워지지 않는다. 세상의 쾌락은 마치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더 큰 목마름만 남길 뿐이다. 주님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궁극적인 만족을 주신다. 오직 그분만이 목마른 수가성 여인 같은 우리의 영혼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신다(요 4:14). 영혼을 그분으로 가득 채워가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