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0.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본문은 다윗의 시로, 예수님의 성육신에 관한 예언이 들어 있다.

성경본문. 시편 40:1-8
한글본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5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6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영어본문.
1 I waited patiently for the LORD; he turned to me and heard my cry. 2 He lifted me out of the slimy pit, out of the mud and mire; he set my feet on a rock and gave me a firm place to stand. 3 He put a new song in my mouth, a hymn of praise to our God. Many will see and fear and put their trust in the LORD. 4 Blessed is the man who makes the LORD his trust, who does not look to the proud, to those who turn aside to false gods. 5 Many, O LORD my God, are the wonders you have done. The things you planned for us no one can recount to you; were I to speak and tell of them, they would be too many to declare. 6 Sacrifice and offering you did not desire, but my ears you have pierced , ; burnt offerings and sin offerings you did not require. 7 Then I said, “Here I am, I have come– it is written about me in the scroll. 8 I desire to do your will, O my God; your law is within my heart.”

도움말.
웅덩이와 수렁(2절). 웅덩이는 헤어 나오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를, 수렁은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을 가리킨다.

두루마리 책(7절). 구약, 특별히 율법 전체를 가리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은 무엇에 비유되고 있는가(2절)?
⬇ 아래로 인간.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고자 했는가(7-8절)?
? 물어봐. 순종 없는 제사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가(6절)?
! 느껴봐.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성육신까지 하신 주님의 순종은 내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낮은 곳에서 즐거이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Meditation.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예수님.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큰 은혜를 입은 다윗은 큰 제사를 베풀고 많은 제물을 드림으로 그 은혜를 갚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귀를 열어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순종임을 깨닫게 하셨다(6절).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늘 즐겁게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7-8절).
히브리서 기자는 이 구절을 예수님의 성육신에 적용했다(히 10:5-10).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구약에 예언된 대로 친히 성육신의 길을 자청하셨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림으로써 구약의 상징적인 제사들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완전 속죄를 이루셨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낮고 낮은 세상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며 당신이 더욱 낮은 자리에서 즐거이 섬겨야 할 일들은 없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2-19.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성탄 주간을 맞아 시편 속에 예언되어 있는 예수님에 관한 말씀들을 묵상해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그분을 영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성경본문. 시편 2편
한글본문.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영어본문.
1 Why do the nations conspire and the peoples plot in vain? 2 The kings of the earth take their stand and the rulers gather together against the LORD and against his Anointed One. 3 “Let us break their chains,” they say, “and throw off their fetters.” 4 The One enthroned in heaven laughs; the Lord scoffs at them. 5 Then he rebukes them in his anger and terrifies them in his wrath, saying, 6 “I have installed my King on Zion, my holy hill.” 7 I will proclaim the decree of the LORD : He said to me, “You are my Son ; today I have become your Father. 8 Ask of me, and I will make the nations your inheritance, the ends of the earth your possession. 9 You will rule them with an iron scepter ; you will dash them to pieces like pottery.” 10 Therefore, you kings, be wise; be warned, you rulers of the earth. 11 Serve the LORD with fear and rejoice with trembling. 12 Kiss the Son, lest he be angry and you be destroyed in your way, for his wrath can flare up in a moment. Blessed are all who take refuge in him.

도움말.
기름 부음 받은 자(2절). 메시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 명칭은 왕, 제사장, 선지자를 임명할 때 성령을 상징하는 올리브 기름을 부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입 맞추라(12절). 존경과 순종, 경배 등의 의미를 지닌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이 그의 아들에게 주신 권세는 무엇인가(7-9절)?
⬇ 아래로 인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가(4-6절)?
? 물어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12절)?
! 느껴봐. 나는 예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겸손히 그분을 영접하고 온전히 순종해야 할 일은 없는가?

Meditation. 하나님의 아들.
시인은 주변의 여러 이방 나라와 민족들 및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 다윗 왕가를 대적해도, 그들의 시도는 허사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1-3절). 이 왕은 하나님이 친히 세운 왕이며(5-7절), 하나님께 아들이라 불리면서 만국 통치권을 받았고(7-8절),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세상을 통치해 나가신다(9절). 이는 다윗 왕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참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 베드로는 본문을 인용해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이 다 합심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르고 있지만 그들의 시도가 말씀대로 헛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행 4:23-31).
하나님은 본문의 예언대로 그의 아들 예수께 열방의 교회를 유업으로 주셨고, 그는 구원의 복음으로 온 세상을 정복하고 계신다.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이 주간에 그분께 입 맞추며 더욱 온전히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10-12절)?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묵상하며: 누가복음 중심으로]

아마 여물통에 누워 있는 것이 이 아이가 장차 살아갈 운명에 대한 예언인지도 모른다. 가난, 고독, 배신, 그리고 젊은 나이의 죽음이 그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탄생,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삶, 그럼에도 이 아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웠던 삶을 산 분이었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행했고, 자유로웠으며 진리로 충만해 있었던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셨다.

그런데 제사장과 랍비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인류 구세주의 탄생을 예감하지 못했기에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오지 않았다. 가장 먼저 알아보고 찾아와 기뻐하며 경배해야 할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인가? 성경지식이 부족해서, 아니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정성이 부족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기도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기엔 너무나 종교적 거짓 열심과 독선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진리의 가면을 쓴 채 기득권을 지키며, 현실에 안주하여 살아가는 종교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는 이처럼 초라한 아기 예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구유에 누인 아기의 참 존재를 알아보고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뜻밖의 사람들이었다. 양치기들이었다. 양치기는 결코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당시 양치기는 세리들과 마찬가지로 경멸하던 부정하고 천박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났다. 제사장도 아닌 우리 같은 이들을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느냐고 생각했던 그들의 고정관념이 모두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천군 천사들이 그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을 일러주고, 한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다”라는 내용이었다(2:14)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이 노래는 아우구스트 황제가 태어날 때 헌정된 찬양 시와 흡사하였다.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na)라는 제단 안에 있는 기원전 9년에 세워진 프리네(Priene) 비석에는 그를 다음과 같이 칭송한다. “신은 우리의 삶을 위해 가장 완벽한 선을 창조하였다. 그(아우구스투스)를 인류의 유익을 위해 덕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우리와 우리 후에 올 사람들을 위해 전쟁을 끝내고 모든 것을 확립하실 구원자를 보내 주셨다…. 그리고 그 신(아우구스투스)의 생일은 그의 도래를 통해 복음(Good News, 유앙겔리온)이 이 세상에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해주는 날이었다.”(Orientis Graeci Inscriptiones Selectae, 2:458, N. Lewis & M. Reinhold, eds, Roman Civilization II. New York: Harper & Row, 1955, 64에서 인용).

정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탄생이 복음이고 온 세상에는 참 평화가 도래했을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평화일 뿐 양치기들의 평화는 아니었다. 삶은 계속 고달프고 주위에는 지주의 횡포로 노예와 거지로 전락하는 소작농들과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이웃만 늘어났을 뿐이었다. 사실 아무리 보아도 그가 이룩했다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폭력과 전쟁, 수많은 노예의 피로 얼룩진 가짜 평화일 뿐이었다.

그런데 천사의 노래는 양치기들에게 강한 전율로 다가왔을 것 같다. 정말 그 아기가 진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 땅에서 그의 백성에게 평화를 줄 존재일 것만 같았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비천하게 태어난 이 아기야말로 왕궁에 있는 황제보다 그들에게 진짜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왕이나 제사장이 아닌 양치기들이 메시아께 처음으로 경배한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 아이의 운명은 기구했다. 아마도 진리는 외롭고 험난한 길 속에만 있나 보다. 엘리사벳, 시므온, 그리고 안나와 같이 가난한 백성이지만 영성이 살아있던 이들만이 아기 예수를 보자마자 그 아이는 온 인류의 빛이 될 것이라 말했다(눅 2).

뜻밖에 무지렁이로 천대받는 이들은 그의 가르침에 무척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영적 엘리트라 주장하는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이라는 성전뿐만 아니라 회당예배 때에도 그의 가르침을 환영하지 않는 이가 많았다. 그가 세상의 정치나 제도화된 종교에는 존재할 수 없는 진리의 빛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그 역시 성전의 제사나 회당의 예배보다는 오히려 거리와 장터, 호숫가나 들과 산을 더 편안해했다. 그리고 그는 종교적 지도자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먹기를 탐하는 자요 술꾼”(눅 7:34)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지렁이(무리 oklos)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에게 진리를 강연하는 삶을 더 좋아했다(눅 15:2).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거룩한 척하는 위선자들보다는 오히려 가난한 자와 죄인들이 더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신앙이란 교리적 고백이나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행하는 삶에 있다는 것이다. 정통적 신앙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면서도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무시당하면서도 강도 만난 이를 도운 비정통 출신의 사마리아 인이 오히려 영생의 길을 걷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말이다(눅 10:30-37).

떠돌이 방랑자와 같은 삶을 살면서도, 소유도 별로 없이 무보호의 안정되지 못한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진리에 헌신한 사람이 되면 참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 누가 이해할까! (마 6:1 눅 6:24-25). 왕궁의 좋은 침대가 아니라 구유에 누인 불쌍한 아기, 참담한 운명을 맞아야 하는 이 아기가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행복했던 사람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성탄절 날, 이 아기의 모습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은 참된 진리 속에 거하는 삶에 있음을 배워야 하리라.

오늘날 우리는 신성을 숨기고 온 이 아기를 얼마나 경배하는가? 오늘날 돈이 전부가 되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와 안정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여기면서 우리는 과연 이 아기를 만유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경배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탄절을 앞두고 숙연해진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우리 인생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숙연해졌으면 좋겠다.
<이민규 교수님의 펫북에서>

 

[예언에 대한 오해들]

* 예언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것일까?

성경에서 예언의 핵심은 어느 대학에 합격하고 못하고, 이번에 승진하고 안 하고 언제 누구랑 결혼하고 안하고, 북한이 언제 몇시에 남침을 하고 안하고를 맞추는 점을 치는 행위가 아니다. 즉, 길흉화복을 점치며 재앙을 피하고 요행과 재수를 얻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성경의 예언의 내용은 섭리적인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물론 성경의 예언에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포함되지만(행 11:27-28; 계 1:1-2),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지배하에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내용을 인간의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서 예언의 핵심 내용은 주로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알 수 없는 죄를 책망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고(고전 14:24-25) 교회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이다(고전 14:1)

물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점을 치는 것이 구약 백성에게서 완벽하게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울이 암나귀를 잃어버렸을 때 선견자 사무엘을 찾아가 은전을 주고 도움을 청한다(삼상 9:3-10). 백성 사이에 활동한 이름없는 선견자나 점쟁이들은 어느 문화나 늘 있었다. 은잔으로 점을 친 것으로 추정되는(?) 요셉의 역할에서 이를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은 내 주인(요셉)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창 44:5).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언자의 역할을 점을 치는 것과는 멀어진다. 성경에서 예언의 우선적인 뜻은 점을 치는 것,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예언자(선지자)로 번역된 헬라어(‘프로페테스’)이나 히브리 낱말(‘나비’)에는 앞의 일을 예고한다는 뜻이 전혀 없다.

* 예언자란?

예언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비”의 뜻은 첫째,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을 외쳐 널리 알리는 사람, 그리고 둘째,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영에 ‘징발당한’ 사람을 의미한다. 폭넓게는 이스라엘 정신세계의 대표자를 뜻하기도 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때론 자신들이 바라는 것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야 했다. 그들이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것은 틀림없어도, 점쟁이처럼 미래의 베일을 벗겨보려고 한 것은 아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출애굽 구원 사건을 근거로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며 현재의 모습에 따라 앞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나타날 것을 말한다. 그들의 메시지의 핵심은 현재에 대한 비판이다. 지금 변화하라는 요구다. 후기로 갈수록 그 내용이 매우 사회 비판적이고 신학적이다. 위선적이고 거짓된 종교현상을 비판하며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착취하고 괴롭히지 말고 악을 버리고 돌이키고 나눔을 실천하는 언약 중심의 정의사회 구현을 자주 명령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언자의 메시지는 어때야 할까?

* 신약의 예언자는 구약의 예언자와 같을까?

예언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신약의 예언자를 구약의 예언자와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성경이 된 구약 예언자들의 예언들은 무오하며 절대적 권위를 가졌다. 이 권위는 신약의 예언자들이 아니라 정경의 전통과 연관된 사도들이 계승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마치 하나님처럼 말한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의 방식은 신약의 예언자에게는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다.

*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예언은 같은 권위를 지니지 않는다.

신약의 은사적 예언은 절대적 권위를 지니지 않고 신약에서 은사적 예언의 내용은 분별하여야 한다(고전 14:29). 신약의 예언은 종종 중대한 결정을 함에서 도움이 되는 참조사항이지 절대로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여러 그리스도 예언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였지만, 바울은 고난에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행 21:4 이하). 예언의 은사는 소중하지만 중대한 결정에 있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지 않는다.

예언과 설교는 같은 것인가?

어떤 이는 오늘날 성경이 유일한 예언이고 설교가 예언의 사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로서 예언은 성경의 가르침과 영감 받은 설교와는 다르다(고전 12-14). 설교와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예언은 전혀 자신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직관적인 내용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신약의 예언은 영적인 은사 중의 하나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의 내주 하심이 있기에 누구나 예언의 체험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체험이 있다고 누구나 예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은사자가 되는 것과 특정한 기회에 은사체험을 하는 것은 다르다. 예언자는 사역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자기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바를 선포하는 사람이다(고전 14:26-32). 그리고 예언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가 기독교보살이나 쪽집게 점쟁이가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하는 의식있는 영의 사람인지 말이다.

계속하여…
<이민규 교수님의 펫북에서 https://www.facebook.com/minkyul1?fref=nf>

 

2014-12-1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신랑과 신부의 사랑은 위기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졌고, 서로를 향한 더 깊은 사랑을 고백하며 아가서는 끝을 맺는다.

성경본문. 아가 8:8-14
한글본문.
8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9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11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13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14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영어본문.
8 We have a young sister, and her breasts are not yet grown. What shall we do for our sister for the day she is spoken for? 9 If she is a wall, we will build towers of silver on her. If she is a door, we will enclose her with panels of cedar. 10 I am a wall, and my breasts are like towers. Thus I have become in his eyes like one bringing contentment. 11 Solomon had a vineyard in Baal Hamon; he let out his vineyard to tenants. Each was to bring for its fruit a thousand shekels of silver. 12 But my own vineyard is mine to give; the thousand shekels are for you, O Solomon, and two hundred are for those who tend its fruit. 13 You who dwell in the gardens with friends in attendance, let me hear your voice! 14 Come away, my lover, and be like a gazelle or like a young stag on the spice-laden mountains.

도움말.
성벽이라면…문이라면(9절).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성벽은 여인의 정숙함을,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은 여인의 방탕함을 상징한다.

바알하몬(11절). 잇사갈 지파의 영역 남쪽, 수넴에 인접한 지역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신랑이 신부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13절)?
⬇ 아래로 인간. 신랑을 향한 신부의 바람은 무엇인가(14절)?
? 물어봐. 성벽과 문의 비유를 통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9절)?
! 느껴봐.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날마다 더욱 깊어져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Meditation. 마라나타
오빠들의 철저한 보호 아래, 여인은 문 하나 없는 성벽처럼 순결을 지킨 처녀로 성장했다(8-9절). 이제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신부가 되었다. 신부는 자신을 달콤한 포도열매가 가득한 포도원에 비유한다. 솔로몬에게 많은 포도원들(후궁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참 사랑을 받는 포도원은 자신뿐이라고 노래한다(10-12절).
아가서는 신부와 신랑의 애틋한 대화로 마무리된다. 먼저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 노래를 청한다. 신랑은 신부의 사랑 노래를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더 듣고 싶다. 주님을 향한 교회의 찬양은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부가 신랑에게 말한다. 신부는 신랑에게 향기로운 산과 같은 자신에게, 노루와 사슴처럼 빨리 달려오라고 청한다. 신부는 신랑과 영원히 둘만의 깊은 사랑을 나누길 원한다. 교회는 지금도 간절히 신랑을 부르며 기다린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아가서를 다시 읽어보며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 더 깊은 사랑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2-1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처음 사랑을 꽃 피웠던 여인의 고향 마을에 찾아온 신랑과 신부는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성경본문. 아가 8:1-7
한글본문.
1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4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5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6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영어본문.
1 If only you were to me like a brother, who was nursed at my mother’s breasts! Then, if I found you outside, I would kiss you, and no one would despise me. 2 I would lead you and bring you to my mother’s house– she who has taught me. I would give you spiced wine to drink, the nectar of my pomegranates. 3 His left arm is under my head and his right arm embraces me. 4 Daughters of Jerusalem, I charge you: Do not arouse or awaken love until it so desires. 5 Who is this coming up from the desert leaning on her lover? Under the apple tree I roused you; there your mother conceived you, there she who was in labor gave you birth. 6 Place me like a seal over your heart, like a seal on your arm; for love is as strong as death, its jealousy unyielding as the grave. It burns like blazing fire, like a mighty flame. 7 Many waters cannot quench love; rivers cannot wash it away. If one were to give all the wealth of his house for love, it would be utterly scorned.

도움말.
오라비 같았더라면(1절). 당시엔 남녀 간엔 부부라도 공개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흉이 되었다. 단 남매 간에는 가벼운 입맞춤이나 포옹이 허락되었다. 신랑이 차라리 오라비였으면 좋겠다는 신부의 토로는 언제 어디서든 신랑을 향해 애정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잘 표현한 것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신랑을 향한 신부의 적극적인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1절)?
⬇ 아래로 인간. 신랑을 향한 신부의 뜨거운 사랑은 어떻게 고백되고 있는가(6-7절)?
? 물어봐. 신부가 신랑을 이끈 곳은 어디인가(5절)?
! 느껴봐.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갈수록 더 뜨거워져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을 향한 사랑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이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가?

Meditation. 죽음같이 강한 사랑.
솔로몬의 가마를 타고 오는 신부를 보고 예루살렘 성민들이 놀랬던 것처럼(3:6), 솔로몬과 함께 금의환향하는 신부를 보고 고향 사람들이 놀란다(5a). 검게 그을린 얼굴로 포도원에서 일하던 시골 처녀(1:5-6)가 왕의 신부가 되어 돌아왔다. 신부는 신랑을 사과나무 아래로 인도한다(5b). 그녀는 연애할 때 신랑을 사과나무에 비유했었다(2:3). 사과나무는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 깃든 곳이다.
그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녀는 신랑을 향한 강렬한 사랑을 고백한다(6-7절). 그녀는 이제 그의 전부가 되길 원한다. 그녀의 사랑은 죽음과 같고 무덤과 같아서, 신랑은 결코 그것을 피할 수도 없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그 사랑의 불길은 온 세상의 물을 다 쏟아부어도 꺼뜨릴 수 없고, 그 사랑은 세상 모든 것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다. 당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세상 무엇도 끊을 수 없듯이(롬 8:38-39), 주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도 그러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낼 수 있겠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2-16.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서로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한 신랑과 신부는 신부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다.
성경본문. 아가 7:10-13
한글본문.
10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11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12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13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영어본문.
10 I belong to my lover, and his desire is for me. 11 Come, my lover, let us go to the countryside, let us spend the night in the villages. 12 Let us go early to the vineyards to see if the vines have budded, if their blossoms have opened, and if the pomegranates are in bloom– there I will give you my love. 13 The mandrakes send out their fragrance, and at our door is every delicacy, both new and old, that I have stored up for you, my lover.

도움말.
합환채(13절). 성욕을 자극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식물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신랑에게 신부는 어떤 고백을 드리는가(10절)?
⬇ 아래로 인간. 신부는 신랑에게 무엇을 제안하는가(11절)?
? 물어봐. 신부의 적극적인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13절)?
! 느껴봐. 나는 주님과 갖는 시간을 인색해 하진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주님과 함께 더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결단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주님과 떠나는 밀월여행.
신부는 신랑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자신에 대한 신랑의 사랑 역시 다시 한 번 확신한다(10절). 신랑의 사랑 안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신부는 신랑에게 한적한 고향마을로의 여행을 제안한다(11-12절). 2:10-13에서는 신랑이 신부를 봄의 들판으로 초대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신부가 신랑을 봄의 동산으로 초대한다. 동산에 피어난 포도꽃, 석류꽃은 신부 자신의 마음을 상징한다. 신랑의 사랑은 그녀의 마음에 다시 봄이 찾아오게 했고, 사랑이 활짝 꽃 피게 했다.
한층 성숙해진 신부는 이제 사랑의 합환채 향기로 신랑을 이끌며, 그를 향해 기쁨의 동산의 문을 활짝 연다. 신부는 그곳에서 지금껏 키워온 사랑의 열매를 마음껏 신랑에게 줄 것이다(13절). 때로는 잠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과 단둘이 밀월여행을 떠날 필요도 있다. 며칠간 오직 주님께만 집중해서 깊고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주님을 향해 한적한 곳으로의 여행을 제안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