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식 교수님의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12월 <활천(活川)>에 기고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신유 설교>입니다.
제가 읽은 설교 중 신유에 관한 가장 균형잡힌 설교 중 하나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명설교자의 신유설교(8)/ 마틴 로이드 존스
▪신유에 관한 설교는 어렵다. 지나치면 신자들이 기도만을 맹신하거나, 모자라면 병원만을 맹신하기 쉽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목회하는 동안 신유의 은혜를 경험하였다. 심방 중에 수 년동안 목디스크로 고생하던 신자가 간절한 기도 후 그날로 깨끗이 통증이 사라진 일이나 절망적인 실명의 상황에서 간절한 기도 후에 회복하게 해 주신 사건이나 대장암 투병을 하는 성도와 심장 이상으로 임종을 준비하던 노성도가 간절한 기도 후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기도의 힘이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모든 전후 상황과 자료들을 면밀히 조사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주시는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기도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감사할 따름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교회사에 보기 드물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학교를 졸업한 전문의 출신의 목회자이다. 뛰어난 의사요, 탁월한 성경강해자였던 로이드 존스는 신유에 대한 성경적이며 현대적인 메시지를 들려준다. 이 설교문은 필자가 읽은 신유에 관한 설교 중 가장 균형잡힌 설교 중 하나이다. 본 설교는 로이드 존스가 1971년 5월 기독 의사회 정기모임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행한 설교이다. 지면의 제한상 그가 제시한 많은 객관적 사례들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이 주제에 관한 성경적인 중요한 통찰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필자 주 ▪
<의학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것>
(야고보서 5:15)
그리스도인 의사들은 환자나 친척, 혹은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의학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독하여 의학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효과는커녕 병이 점점 더 악화될 경우, 대개 사람들은 ‘신유의 방법’을 권합니다. 결국 이 문제에 직면한 그리스도인 의사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신유에 대한 거부와 명백한 사실들
기독교인 중에는 신유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적과 같은 치유, 귀신론, 방언 등과 같은 것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그 주된 이유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심리적이거나 그와 유사한 것, 심지어는 그보다 훨씬 나쁜 것이라고 간주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주제를 고려해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어떤 이들은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서 이 입장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자연은 인과율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하며 자연 법칙상 신유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견해가 있는데, 성경에 따른 관점입니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교리적으로 기적과 같은 모든 영적 현상들은 사도들과 함께 끝났으며 신약의 정경이 완결되었을 때 이미 종료되었다는 견해를 취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많은 교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런데 신유라는 주제를 재검토해 보면 무엇보다 우리는 사실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들을 거부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비과학적인 것이며, 기독교인이 취할 입장이 못됩니다. 캐더린 쿨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믿기에 그녀는 20년 이상 피츠버그(Pittsburg)에 있는 한 침례교회의 목회자로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도시에 있는 목회자들과 또한 의사들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었는데, 그 의사들 중 몇 사람은 유명한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이들은 결코 비정상적인 열광주의자들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선천적인 병을 가진 사람들이 치료함을 받았다는 주장을 자신들이 입증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였으며 또한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캐더린 쿨만 박사의 업적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녀의 두번째 저서인 『하나님은 다시 그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God Can Do It Again)에 보면, 의사들에 의해 입증된 치유의 여러 가지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의사들의 이름과 병원 주소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사례들 중 한 두 가지 경우는 의사들 자신이 치유함을 받은 것을 기록한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에 대해서 저는 솔직히 그것들이 거짓이거나 속임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에 관해 알거나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증인들이요, 그들은 단지 그러한 것들을 사실로 믿고 말해야 할 의무감과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에 사실들을 기록하거나 지지했다는 점뿐입니다.
▲과학자들의 변해가는 태도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몇 년 동안 과학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특한 변화의 움직임입니다. 물론 제가 과학을 완전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논리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19세기의 지배적인 이론은 그 시각에 있어서 결정론적, 기계적, 그리고 정적이었습니다.이러한 이론은 데카르트(Descartes)와 아이작 뉴턴(I. Newton)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견해의 시조였으며 그 견해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실상 복음주의적 전통을 고수한다고 하는 우리들도 대부분 이 견해를 수용했으며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진정 유일한 참 과학적 태도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의 과학적 견해들은 이제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A. Einstein)과 다른 이들의 공로로 말미암아 상대성 원리와 양자론 등이 발견되자, 오늘날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 소위 최고의 과학자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이제 자연 법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이 현상계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거나 현상계의 인과율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기존의 자연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없는 이 현상계를 벗어난 어떤 다른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개연성(probability)이라고 말하지, 확실성(certainty)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쉽게 무시해버리지만 사실상 건강과 질병의 메카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범주 속에 나는 ‘신앙’을 포함시키고자 합니다. 내가 말하는 신앙이란 모든 종류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그 어떤 종류의 신앙도 이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치유란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분명한 사실은 많은 요소들이 질병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요소들이 치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뿐만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신앙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신앙, 심리학적인 요소, 강한 감정, 충격, 악령의 역사 등 수많은 요소들 중 그 어떤 것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치유에 대한 성경의 주장들
사람들이 신유와 같은 현상들을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할 때, 저 개인적으로는 신약시대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모든 현상들이 사도 시대와 더불어 끝났다고 하는 일반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성경에는 그러한 구절들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결과를 동의하는 구체적인 성경본문이나 심지어 간접적인 성경의 진술도 없습니다.
더욱이 성경을 보면 이러한 기적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어떤 일정한 주기적 현상(periodicity)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는 분명히 그러한 현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이적들은 명백한 이유와 함께 특정한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신약에서도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이 모든 일의 주인 되시며 그 분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은사들을 나누어 주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어느 때에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감히 이러한 일의 발생 시기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그러한 사건들은 지속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이 발생했었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사도 시대 이후로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동의할수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교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났던 위대한 부흥의 시기 동안에 나타난 주된 현상들은 이적이나 신유의 역사에 있었다기보다 설교의 강한 역사, 절대적인 확신,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 등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주권(the Lordship of the Spirit)하에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태도와 원리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가 언급했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 때문에 우리는 기적적인 것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기적이란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따라서 어느 때에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나는 새로운 과학적 안목 때문에, 그리고 건강과 질병을 새로이 보게 되었기 때문에 기적을 믿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믿는 것은 성경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와 갈릴레오(Galileo)에게 범했던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크게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은 객관적인 사실들을 그들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해 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우리의 이론이 불가능한 것으로 내세운다 해서 사실들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것들에 대해서 건전한 비판 자세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 치유에 대한 위임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신유에 관한 일반적인 원리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 원리로, 여러분께서는 성경의 기적들 중 며칠 전에 미리 알려진 기적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례들을 통해서 기적이 사람 또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즉각적인 위임(an immediate commission)이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에게 행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찬가지로 바울이 루스드라에 있는 앉은뱅이에게 행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들은 자신들이 기적을 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즉각적인 위임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시험삼아 해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는 그들이 실패했다는 기록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항상 확신과 믿음과 담대함이 넘쳐흘렀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신적인 위임(the divine commission)의 결과라고 확신합니다.
또 다른 원리를 살펴본다면, 기적이 일어난 경우 대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거나 때로는 두려움에 가득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늘 우리는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하거나 그 권능과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신유 집회에서 볼 수있는 모습은 웃음과 경박한 언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지도자들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모든 표시는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며 그 어떠한 경솔함이나 천박함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
나는 “신유”(faith healing)라는 말 속에 있는 “믿음”의 의미에 대해 서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야고보서에 기록되어 있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약 5:15)라는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마가복음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막 11:22~24) 우리 주님과 야고보 사도께서 “믿음의 기도”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믿음이란 곧 주어진 믿음(a given faith)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러한 믿음을 사도들이나 사도 시대 이후로 이적을 행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위임(commission)과 동일한 범주 속에 포함시킵니다. 이러한 믿음은 결코 실험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주일날에 “다음 주 목요일에 신유집회가 있을 예정입니다”라고 광고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참된 기적들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기도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적이란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일반적인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성경적인 태도
이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환자나 질병을 치료할 때 일상적인 방편들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질병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은 바로 이러한 수단과 방법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부여하신 치유 능력과 자연 속에 풍부하게 담겨 있는 약 등을 통해서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고치시는 방법을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 왔던 다른 요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에 대해 놀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떤 현상 때문에 우리의 신학이 영향을 받거나 우리의 성경적 입장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한 교훈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1). 우리는 놀라서도 안될 것이며 무비판적으로 경솔하게 믿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소멸’하거나 우리의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죄를 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손동식 교수님의 펫북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2018.12.04>
Monthly Archives: December 2018
2018-12-05. QT큐티체조. 다니엘 Daniel 9:13-19.
간단설명. 다니엘 기도의 후반부로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한다.
성경본문. 다니엘 Daniel 9:13-19
한글본문.
13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영어본문.
13.Just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all this disaster has come upon us, yet we have not sought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by turning from our sins and giving attention to your truth. 14.The LORD did not hesitate to bring the disaster upon us, for the LORD our God is righteous in everything he does; yet we have not obeyed him. 15.”Now, O Lord our God, who brought your people out of Egypt with a mighty hand and who made for yourself a name that endures to this day, we have sinned, we have done wrong. 16.O Lord, in keeping with all your righteous acts, turn away your anger and your wrath from Jerusalem, your city, your holy hill. Our sins and the iniquities of our fathers have made Jerusalem and your people an object of scorn to all those around us. 17.”Now, our God, hear the prayers and petitions of your servant. For your sake, O Lord, look with favor on your desolate sanctuary. 18.Give ear, O God, and hear; open your eyes and see the desolation of the city that bears your Name. We do not make requests of you because we are righteous, but because of your great mercy. 19.O Lord, listen! O Lord, forgive! O Lord, hear and act! For your sake, O my God, do not delay, because your city and your people bear your Name.”
도움말.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13절). 여호와의 은총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주의 얼굴 빛(17절).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보호의 임재를 말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는가(14-15절)?
⬇ 아래로 인간. 다니엘이 간구하는 중보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16-17절)?
? 물어봐. 다니엘은 왜 하나님 자신을 위해 역사해달라고 기도했을까(19절)?
! 느껴봐. 내게는 이 나라와 겨레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다니엘을 본받아 나의 중보기도의 제목과 자세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는가?
Meditation. 중보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
다니엘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한 기도였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다시 긍휼을 구하는 것은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었다(신 30:1-10, 왕상 8:46-53 참조).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기도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넘겨주신 것은 공의의 하나님께 은총을 구하지 않고 그 목소리를 듣지 않고 범죄한 것에 대해 심판하셨기 때문이다(13-14절). 다니엘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알았기에 이제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해 기도한다(18절). 여기서 인간의 행위와 공로는 배제된다.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한 기도였다(17, 19절). 하나님의 백성의 흥망은 여호와의 명예와 직결되므로 하나님 자신을 위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다니엘의 기도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 말씀 중심적 중보기도였다.
나는 공동체와 주변 지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가? 다니엘의 중보기도를 통해 배워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12-02. 다시 시작 첫예배.
2018-12-04. QT큐티체조. 다니엘 Daniel 9:1-12.
간단설명. 다니엘은 예레미야서의 예언을 깨닫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한다.
성경본문. 다니엘 Daniel 9:1-12
한글본문.
1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영어본문.
1.In the first year of Darius son of Ahasuerus (a Mede by descent), who was made ruler over the Babylonian kingdom- 2.in the first year of his reign, I, Daniel, understood from the Scriptures,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given to Jeremiah the prophet, that the desolation of Jerusalem would last seventy years. 3.So I turned to the Lord God and pleaded with him in prayer and petition, in fasting, and in sackcloth and ashes. 4.I prayed to the LORD my God and confessed: “O Lord, the great and awesome God, who keeps his covenant of love with all who love him and obey his commands, 5.we have sinned and done wrong. We have been wicked and have rebelled; we have turned away from your commands and laws. 6.We have not listened to your servants the prophets, who spoke in your name to our kings, our princes and our fathers, and to all the people of the land. 7.”Lord, you are righteous, but this day we are covered with shame–the men of Judah and people of Jerusalem and all Israel, both near and far, in all the countries where you have scattered us because of our unfaithfulness to you. 8.O LORD, we and our kings, our princes and our fathers are covered with shame because we have sinned against you. 9.The Lord our God is merciful and forgiving, even though we have rebelled against him; 10.we have not obeyed the LORD our God or kept the laws he gave us through his servants the prophets. 11.All Israel has transgressed your law and turned away, refusing to obey you. “Therefore the curses and sworn judgment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the servant of God, have been poured out on us, because we have sinned against you. 12.You have fulfilled the words spoken against us and against our rulers by bringing upon us great disaster. Under the whole heaven nothing has ever been done like what has been done to Jerusalem.
도움말.
갈대아 나라 왕(1절). 바벨론 왕을 가리킨다.
책(2절). 예레미야서를 말한다.
고관(8절). 이스라엘 사회의 상류 지배층을 가리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다니엘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4절)?
⬇ 아래로 인간.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끌려온 것을 무엇 때문이라 고백하는가(9-11절)?
? 물어봐. 다니엘이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2-3절)?
! 느껴봐. 내게는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한 애통과 회개가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민족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결단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던 중,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그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보고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이 포로 가운데 있게 된 지 약 60년이 지나고, 포로시기를 종결할 때가 10년 남짓 남았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의 약속대로 이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해 달라면서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기도한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것을 인정하며 철저한 참회의 기도를 드림을 보여준다. 다니엘의 기도는 민족을 위한 참회의 기도였다. 자신들이 주께 죄를 범했고(8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저주가 임했음을 회개하며 고백한다(9-11절). 이런 철저한 회개와 결단은 포로 귀환을 위한 영적 준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내게는 공동체와 나라, 동포를 위한 애통과 회개가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굳은 기도의 결단, 애통의 결단, 순종의 결단이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12-03. QT큐티체조. 다니엘 Daniel 8:15-27.
간단설명.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다니엘이 본 환상의 뜻을 알려준다.
성경본문. 다니엘 Daniel 8:15-27
한글본문.
15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16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17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18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19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20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21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2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에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의 권세만 못하리라 23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24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26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27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영어본문.
15.While I, Daniel, was watching the vision and trying to understand it, there before me stood one who looked like a man. 16.And I heard a man’s voice from the Ulai calling, “Gabriel, tell this man the meaning of the vision.” 17.As he came near the place where I was standing, I was terrified and fell prostrate. “Son of man,” he said to me, “understand that the vision concerns the time of the end.” 18.While he was speaking to me, I was in a deep sleep, with my face to the ground. Then he touched me and raised me to my feet. 19.He said: “I am going to tell you what will happen later in the time of wrath, because the vision concerns the appointed time of the end.
The two-horned ram that you saw represents the kings of Media and Persia. 20.The shaggy goat is the king of Greece, and the large horn between his eyes is the first king. 21.The four horns that replaced the one that was broken off represent four kingdoms that will emerge from his nation but will not have the same power. 22.”In the latter part of their reign, when rebels have become completely wicked, a stern-faced king, a master of intrigue, will arise. 23.He will become very strong, but not by his own power. He will cause astounding devastation and will succeed in whatever he does. He will destroy the mighty men and the holy people. 24.He will cause deceit to prosper, and he will consider himself superior. When they feel secure, he will destroy many and take his stand against the Prince of princes. Yet he will be destroyed, but not by human power. 25.”The vision of the evenings and mornings that has been given you is true, but seal up the vision, for it concerns the distant future.”
I, Daniel, was exhausted and lay ill for several days. Then I got up and went about the king’s business. I was appalled by the vision; it was beyond understanding.
도움말.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15절). 직역하면 ‘그 뜻을 분별하려고 분투했다(sought-ESV)’는 뜻이다.
사람(15절). 일반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는 ‘아담’과 달리 장정의 힘과 권능을 강조하는 단어인 ‘게베르’가 사용됐다. 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언어유희라 할 수 있다.
가브리엘(16절). 하나님(히. 엘)의 용사(히. 게베르)라는 뜻이다.
깊이 잠들매(18절). 의식을 잃고 실신한 상태를 말한다.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19절). 직역하면 ‘진노의 훗날’ 또는 ‘진노의 마지막 날’(the latter end of indignation-ESV)이다.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23절). 환상 속의 작은 뿔(9절)을 말하며,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를 말할 가능성이 크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두려워하는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17-18절)?
⬇ 아래로 인간. 환상을 본 다니엘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15, 17, 18, 27절)?
? 물어봐.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은 이유는 무엇일까(27절, 18절 참조)?
! 느껴봐. 나는 나라의 뿔(권세)을 허락하시고 경영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듣기 위해서 내게 어떤 변화가 필요하겠는가?
Meditation. 주의 마음을 나눈 자, 다니엘
다니엘이 본 환상은 마지막 때에 관한 것이다.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 왕들이고, 털이 많은 숫염소는 헬라 왕인데, 큰 뿔은 얼마 가지 못해 꺾이고, 네 뿔이 일어나지만 그 권세는 먼저 난 뿔만 못하다(22절). 이는 이후 일어날 네 나라를 상징한다. 네 나라 마지막 때에 작은 뿔(9절) 곧 한 왕이 일어나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고 파렴치한 속임수를 쓰면서(23절) 제멋대로 행하며 많은 무리를 멸하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것이다(25절). 이 왕의 만행들을 환상으로 목격한 다니엘은 그만 지쳐 쓰러져 여러 날을 앓았다(27절). 이 땅에 임할 재앙으로 인한 안타까움과 놀람 때문인데, 다니엘 개인의 감정과 함께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며 아파하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다.
나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확신하는가? 그 과정 중에 고통당하고 아파하는 백성들의 신음에 함께 공감하면서 체휼할 수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12-02. 주일에는 읽는 QT. 탕자의 귀향 1 – 렘브란트의 그림과 함께
간단설명. 큰아들의 상실감과 작은아들의 방황을 삶에서 모두 체험했던 렘브란트는 만년에 <탕자의 귀향>을 그리면서 두 아들을 모두 화폭에 올렸다. 둘 다 용서와 치유가 필요했다. - 헨리 나우웬
성경본문. 누가복음 15:11-16
한글본문.
11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Meditation. 렘브란트의 그림과 함께
성탄과 연말이 있는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묵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성경 이야기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인데,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한 이야기라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말씀은 늘 그렇듯이, 읽을 때마다 새롭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고 관점을 바꾸게 만듭니다. 누가복음 15장을 여러 번 읽으면서(가능하면 새번역, 메시지 성경, 영어성경 등으로도 비교하면서) 곰곰 본문 가운데로 들어가 머물다 보면 등장인물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만듭니다.
탕자의 비유를 묵상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이 그랬듯이,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가 그린 같은 이름의 그림 이미지나 포스터를 옆에 놓고 감상하는 것입니다. 렘브란트가 죽기 1년 전인 1668년에 그린 유화 실제 크기는 가로 1.8m, 세로 2.4m의 사람 키보다 큰 작품이라고 하는데, 친구의 사무실에 붙어 있는 이 그림 포스터를 처음 본 순간을 헨리 나우웬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친밀감, 붉은 망토의 온화한 톤, 소년의 겉옷에서 반사되는 황금빛, 그리고 양쪽을 한꺼번에 휘감고 있는 신비로운 광채에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일찍이 느낀 적이 없는 감동을 주었던 건 무엇보다도 소년의 어깨를 감싸쥔 노인의 두 손이었습니다.”(『탕자의 귀향』, 13면)
“12월 한 달 동안 탕자가 돌아오는 이야기에 나오는 본문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관찰하고 경험하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