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휴거”를 주장하지 않는다. 휴거 사상은 성경에 없다. 어디서도 마지막 날 성도들이 갑자기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고 남은 자들은 대환란을 겪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휴거에 대한 상상과 믿음은 정말 세계적이다. 휴거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는 성도들을 보는 것은 드물지 않다. 이는 역사적 상황과 문화, 문맥을 무시한 채 데살로니가전서 4:17 한 구절만 읽어서 생긴 문제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본문에는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세 가지 이미지가 사용된다.
1)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구름 가운데 만나는 장면(혹은 하나님 임재가 성막에 충만함을 의미할 때, 예수님이 변화산에 계실 때도 구름이 나온다.),
2) 인자(하나님의 백성)가 구름 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면(단 7). 다니엘서에서 이는 현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악한 짐승의 제국을 이기는 인자로 묘사된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신학적 메시지를 주기 위한 상징들이 많이 사용되는 묵시문학적인 표현이다. 신약에서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참여한다.
3) 로마 황제가 예를 들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올 때 시민들이 도시 밖에 나가 환영하며 그를 영접(파루시아)하는 모습.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은 “공중”이란 표현이다. 왜 하늘로 승천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공중을 끌려 올라간다고 했을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에서 공중이란 우리 말의 “공중”혹은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베소에서 “공중에 권세잡은 통치자”라 할 때 이는 마귀와 그 졸개들이 지배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영적인 영역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엡 2:2).
공중은 상징적으로 사탄과 마귀가 거하는 장소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 때 우리가 하늘과 땅 사이의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첫째, 재림 때 그곳의 마귀들은 다 제압당할 것이다. 이는 마귀가 지배하던 영적 영역인 “공중”이 더는 마귀의 영역이 아니라는 승리의 소식이다. 예를 들어 2차대전 때 독일 수도인 베를린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연합군 사령관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적지의 수도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령관을 만난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둘째, 이 말은 우리가 지상적인 것을 뛰어넘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직접 영접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공중은 영적인 공간이다. 결코, 우리가 슈퍼맨처럼 하늘로 날아 올라가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휴거는 없다. 데살로니가 전서 4:7절 본운은 주님의 재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휴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중 재림(3차원적인 space), 공중 부양같은 엉뚱한 상상하지 말기를.
신약의 구조는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신 예수님의 초림, 심판 주로 오실 예수님의 재림, 심판, 새하늘 새 땅입니다.
계속하여…
<이민규 교슈님의 펫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