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3.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밝히시면서, 날씨를 예측하는 것처럼 이 시대를 분간하고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할 것을 권고하신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12:49-59
한글본문.
49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49 “I have come to bring fire on the earth, and how I wish it were already kindled! 50 But I have a baptism to undergo, and how distressed I am until it is completed! 51 Do you think I came to bring peace on earth? No, I tell you, but division. 52 From now on there will be five in one family divided against each other, three against two and two against three. 53 They will be divided, father against son and son against father, mother against daughter and daughter against mother, mother-in-law against daughter-in-law and daughter-in-law against mother-in-law.” 54 He said to the crowd: “When you see a cloud rising in the west, immediately you say, ‘It’s going to rain,’ and it does. 55 And when the south wind blows, you say, ‘It’s going to be hot,’ and it is. 56 Hypocrites! You know how to interpret the appearance of the earth and the sky. How is it that you don’t know how to interpret this present time? 57 “Why don’t you judge for yourselves what is right? 58 As you are going with your adversary to the magistrate, try hard to be reconciled to him on the way, or he may drag you off to the judge, and the judge turn you over to the officer, and the officer throw you into prison. 59 I tell you, you will not get out until you have paid the last penny.”

도움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50절). 예수님이 받으실 세례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며(막 10: 38), 바울도 이 사실을 재차 확언하고 있다(롬 6:4).

분쟁하게(51절). 헬라어 ‘디아메리조’로서 나누다, 구분하다, 싸우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한 푼(59절). 헬라어 ‘레프톤’으로 그리스의 최소 청동화폐다. 음가를 따라 ‘렙돈’(막 12:42)이라고도 표기했으며, 로마의 최소 청동화폐인 ‘고드란트’의 절반의 가치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무엇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가(49, 51절)?
⬇ 아래로 인간. 예수님이 지적하고 계시는 ‘외식하는 자’의 특징은 무엇인가(56-57절)?
? 물어봐.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쟁’은 어떤 의미일까(51-53절)?
! 느껴봐. 나는 매사에 주님 편에 서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을 따르는 구별된 삶을 위해 더욱 힘써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분쟁과 화해의 접점 위에 살기.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는 분쟁(51-53절)과 화해(58절)의 두 프레임(frame)이 공존한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분리와 분쟁을 경험해야 하고(49-53절), 이 땅에 다실 오실 예수님 때문에 화해와 연합을 체험해야 한다(54-58절). 이것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을 살고 있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역설적 삶의 원리다. 예수님의 존재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분수령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세상과 구별되고 분쟁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화해의 삶도 추구해야 한다. 재판장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 서는 날을 위해 이 시대를 분간하며 옳게 판단하고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화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당신은 매순간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되고 있는가? 그것이 분쟁을 야기하게 될 때라도 즐거이 감당할 수 있는가? 또한 주님으로 인해 당신은 세상과 화해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매사에 세상으로부터도 옳다 인정함을 받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믿음은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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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7가지의 기적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보도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쓰인 책입니다. 요한복음 4:46~54절에는 아들의 위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온 한 사람도 이와 같은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신하는 사두개인이자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로 여겨진다. 그가 사두개인이라면, 이성의 논리로 자신을 가둔 자였을 것이며, 초자연적인 역사를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 앞에 간절하면서도 절박한 마음으로 아들이 있던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가나까지의 30여 킬로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 아들이 죽게 된 절박한 위기상황 가운데 있었던 그에게는 체면도, 상황도, 대상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삶에 불쑥 찾아온 위기가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했고, 예수님은 당신 앞으로 나온 그 신하의 아들을 결국 살려주신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드러난 이러한 표적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를 향하여, 무엇을 신뢰하며,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 것일까?

첫째, 우리의 믿음은 기적이 아닌 그것을 행하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한다. 사람마다 주님 앞으로, 혹은 교회에 나오게 되었던 이유와 동기는 다를 수 있다. 인생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문제와 어려움 등, 대부분 자신이 직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생고구마와 같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왔음에도 하나님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방법과 과정 등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아들이 죽게 된 위급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오고 은혜를 경험하게 된 신하처럼 말이다. 이렇듯 믿음의 시작은 다양한 동기와 그에 따른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여러 가지 역사 때문에 시작이 되곤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목표나 목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시작점일 뿐입니다. 문제 때문에, 아픔 때문에, 위기 때문에 주님께 나와 그것이 해결되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시작으로 또 다른 해결, 표적과 기적들을 찾고 메달리기 보다는 그러한 일을 하실 있는 주님, 오직 한 분 되시는 주님께 시선과 마음을 옮겨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표적과 기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물을 구하러 온 사마리아 여인이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죽음에 직면한 아들 때문에 예수님께 나온 왕의 신하가 영원한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 참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에드리언 로저스는 “믿음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믿음을 사용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위해 믿음을 사용하기 원하신다. 내가 원하는 것, 표적을 향한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주시고 해결하실 수 있는 주님을 향하여 믿음이 성장해 가야 한다.

둘째, 우리의 이성으로 주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성장해야 한다. 예수님 앞에 나온 왕의 신하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있었다. 먼저는 장소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내려오셔서(v.47)” 라고 요청하는데, 예수님께서 열병으로 죽게 된 자신의 아들과 같은 장소에 있어야지만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로는 능력에 대한 선입견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 죽기 전에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v.49). 아들이 죽고 나면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믿는다고 하면서 이러한 선입견을 품을 때가 잦다. 그래서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는 지금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재촉하면서 우리의 때와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이성으로 주님의 능력의 한계를 정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대해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방법과 시기를 지정해야 할 필요가 없다. 제한해야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결국에는 그분의 능력과 방법으로 그분의 때에 주님이 직접 해결해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 말미암는 선입견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예수님이 이미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행동)하는 믿음으로 성장해야 한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나아와 “청하였다”(v.47). ‘청하되’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로타오’ 로서 ‘간청하다’는 의미인데, 이 표현은 진행 중이거나, 계속 반복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모든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의 목적, 즉 아들을 살리기 위해 체면을 버리고 예수님이 들어주실 때까지 청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주님을 찾고 부르짖는 것이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어 주님께 매달리는 그를 향해 예수님은 “가라” (v.50)고 말씀하셨다. 그의 믿음이 추상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도록 기회를 주셨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다. 주님이 제시하시는 명령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으로 행동했다. 순종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결국에는 목격한다. 왕의 신하의 순종, 행동하는 믿음이 아들을 살렸다기 보다는, 아들이 살아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신하의 믿음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증명되었던 것이다. “~하면 ~해 주겠다”는 순종을 전제로 한 하나님의 역사라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행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발걸음을 옮길 것에 대한 요청이었고, 행동을 통한 순종을 통해 주님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레와 같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아들이 살아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자신이 예수님을 경험함은 물론 그 온 집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순종의 믿음이 온 집이 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어려운 문제와 장애물을 우리 삶에 끼워 넣으시고, 그 문제 때문에 급하게 주님께 나오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상황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게끔 하신다. 우리의 믿음이 표적이 아닌 그것을 행하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성장한다. 우리의 이성으로 주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말씀을 믿고 행동을 통해 순종하는 믿음으로 성장해야 한다.
[디모데성경연구원: 사람을 세우는 사람 3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