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8. 주일에는 읽는 QT. 성숙을 향한 영적 여정 2.

간단설명. 기억하는 행위는 과거의 사건들로부터 시간적으로 떨어진 세대를 위해서 과거를 현재화하는 행위다. - 버나드 차일즈

한글본문.
요한복음 16:7, 13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영어본문.
7 But I tell you the truth: It is for your good that I am going away. Unless I go away, the Counselor will not come to you; but if I go, I will send him to you. … 13 But when he, the Spirit of truth, comes, he will guide you into all truth. He will not speak on his own; he will speak only what he hears, and he will tell you what is yet to come.

Meditation. 기억, 지지하는 힘
인생이 고단하다 해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지금 곁에 없다면? 그럴 때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생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특히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주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겐 실제적인 문제겠지요.

엘리 비젤은 『벽 너머 마을』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설 수 있도록 지지하는 힘은 눈에 보이는 ‘친구’에게서가 아니라 ‘친구에 대한 기억’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미카엘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의 기억 속에 살아 있던 베드로 때문에 견뎌냅니다. 그 - 그에 대한 기억이 - 가 벼랑 끝 같은 환경 속에 있던 미가엘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주인공 덕수가 힘들었던 격변의 시대, 고단한 인생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곁에 있는 아버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흥남부두에서 헤어져 그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생을 견딜 수 있도록 지지해줍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상처에 대한 기억과 연결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악을 되풀이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처럼, 순간순간 누리는 사랑에 대한 기억 또한 매일의 고투 속에서 우리를 성숙으로 도약시킬 수 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현재 안에 재현시켜 그것을 지금 여기서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은 실제적인 ‘참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절망의 소리로 가득 차 출구를 발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기억된 사랑-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동경하는 회상이 아니라 현재 우리를 지지하는 힘으로서의 사랑-안에서 구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기억을 통해 시간의 제약을 초월하고 삶의 어느 순간에도 우리를 지지하며 희망을 제공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지지자로 서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지지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지지를 받으며 생을 꾸려갑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이 시간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내 기도 패턴이 5가지 정도 바뀌었다.

기도는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절박함이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했다. 중고등학교 때 안양 갈멜산 뒤의 산에 올라가 기도하곤 했으며, 대학생 때는 매주 삼각산에 올라가 밤을 새며 기도하곤 했었다. 갓 전도사가 되었을 때는 집에 가지 않고 5년간 교회에서 자면서 기도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기도하는 패턴이 상당 부분 변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5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 바뀐 부분은 통성기도보다 묵상기도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 때나 청년 때는 부르짖는 기도를 많이 했다. 온 힘을 다해 소리 내어 기도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통성기도를 싫어하지 않으며 많은 부분에서 통성기도를 한다. 그러나 전체 분량으로 따져볼 때 묵상으로 드리는 기도의 시간도 통성 기도를 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다.

두 번째 바뀐 부분은 개인적인 것을 구하는 기도보다 한국 교회와 나라를 위한 기도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내 기도의 내용이 대부분 나 자신과 관련된 것들 위주였다. 아버지를 변화시켜달라는 기도, 지혜를 달라는 기도, 설교 할 때 능력 있게 해달라는 기도 등. 그런데 지금은 이 나라를 붙들어달라는 기도, 한국 교회를 깨워달라는 기도가 많다. 뇌종양 수술을 앞두고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고 한국 교회를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었다.

세 번째 바뀐 부분은 무언가를 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정한 것을 구하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있다. 그런데 갈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는 의식이 커져가고 있다. 그 어떤 것이 아니어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로 바뀐 부분은 이런저런 것을 가지고 구하기보다 그냥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졌다. 하나님과 함께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그렇다고 멍 하니 있는 것과는 또 다르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로 많은 시간 기도하는 것이 겨우겨우 하는 것이 아닌 너무 수월한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네 번째 바뀐 부분과 관련이 깊다. 하나님 앞에 머물고 있는 시간이 평안하고 행복하다 보니 그러고 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쑥쑥 지나간다. 새벽기도 갔다 오고 아침 식사를 한 후 기도한다고 앉아있다 보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가는 식이다.

가면 갈수록 뭔가 많은 일을 해내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이전에 빠지지 않고 나가던 모임이나 회의도 이제는 선별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곳에만 참여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인데 그 역시도 조절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상대방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크리스찬 뷰/안희환목사(기독교 싱크탱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