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7(일). 주일에는 읽는 QT.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16.

간단설명. 이 땅에서 가장 유용한 사람은 마음에 천국을 품은 사람이다. - 폴 스티븐스

한글본문.
창세기 37:26-27
26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창세기 49:8-10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Meditation. 마무리(Finishing) : 유다 이야기
아직 젊고 한창인 우리들은 창세기에서 야곱 이야기를 읽을 때 주로 야곱 생애의 전반부와 전성기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에 주목하면서 그의 생애 말년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대목은 대충 읽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초중반부만 보고 결말부를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미래를 바라보며 아들들을 축복한다. 축복 가운데 주목되는 두 사람이 있는데, 야곱의 두 아내가 낳은 요셉과 유다다. 미래는 장자 르우벤이 아닌 이 두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야곱은 사실상 장자권과 복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복을 (풍성함에 대한 약속과 함께) 요셉에게, 장자권과 그와 밀접한 리더십을 유다에게 준다. 약속받은 가족의 리더십은 유다가 물려받는데, ‘규’와 ‘통치자의 지팡이’는 왕의 명령을 상징한다. 요셉이 복을 받은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도대체 유다는 왜 그렇게 선택됐을까?”(253-5면)

바로 전 챕터에서 과부가 된 며느리를 창기로 알고 동침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는 중요한 순간에 형제들 가운데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결과적으로 열두 지파 가운데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마 1:2-3). 폴 스티븐스는 유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믿음의 삶을 시작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잘 마쳐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고 격려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일을 끝까지 잘해낼 수 있도록 필요한 힘과 끈기 그리고 인내를 주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16. QT큐티체조. 예레미야 애가 1:10-17.

간단설명. 시온의 멸망으로 인해 시인(예루살렘)이 겪는 고통을 노래한다.

성경본문. 예레미야 애가 1:10-17
한글본문.
10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12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13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14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15주께서 내 영토 안 나의 모든 용사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청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딸 유다를 내 주께서 술틀에 밟으셨도다 16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17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방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야곱의 대적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불결한 자가 되었도다

영어본문.
10.The enemy laid hands on all her treasures; she saw pagan nations enter her sanctuary– those you had forbidden to enter your assembly. 11.All her people groan as they search for bread; they barter their treasures for food to keep themselves alive. “Look, O LORD, and consider, for I am despised.” 12.”Is it nothing to you, all you who pass by? Look around and see. Is any suffering like my suffering that was inflicted on me, that the LORD brought on me in the day of his fierce anger? 13.”From on high he sent fire, sent it down into my bones. He spread a net for my feet and turned me back. He made me desolate, faint all the day long. 14.”My sins have been bound into a yoke ; by his hands they were woven together. They have come upon my neck and the Lord has sapped my strength. He has handed me over to those I cannot withstand. 15.”The Lord has rejected all the warriors in my midst; he has summoned an army against me to crush my young men. In his winepress the Lord has trampled the Virgin Daughter of Judah. 16.”This is why I weep and my eyes overflow with tears. No one is near to comfort me, no one to restore my spirit. My children are destitute because the enemy has prevailed.” 17.Zion stretches out her hands, but there is no one to comfort her. The LORD has decreed for Jacob that his neighbors become his foes; Jerusalem has become an unclean thing among them.

도움말.
진노하신 날(12절). 직역하면 ‘코가 뜨거운 날’이다.
골수(13절). 뼈를 말한다.
외롭도다(16절). 황폐하게 되다는 뜻이다.
불결한 자(17절). 히브리어 ‘니다’는 여성의 생리 또는 오물, 혐오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시온 사방에 있는 자들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는가(17절)?
⬇ 아래로 인간. 시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징계를 당하는가(13-15절)?
? 물어봐. 시인의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흘러내리는 이유는 무엇인가(16절)?
! 느껴봐. 나는 요즘 어디서 위로를 찾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 안에서 참된 위로를 발견하려면 내겐 어떤 변화와 결단이 필요할까?

Meditation. 극심한 징계 속에 주님만 붙들기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극심한 징계를 내린다. 시인은 예루살렘이 받는 것과 같은 고통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호소한다(12절). 이스라엘은 성전의 기구들과 그릇들을 빼앗기고(10절), 모든 백성은 갖고 있던 소중한 보물들을 다 양식을 구하는데 소진했다(11절). 그만큼 굶주림이 극심했다. 또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에 불을 보내시고, 어부가 물고기를 잡듯이 이스라엘 앞에 그물을 치셔서 대적들에게 잡히게 하셨고 황폐하게 하셨다(13절). 죄악의 멍에를 버거워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 멍에를 이스라엘의 목에 올리셔서 숨이 넘어갈 정도로 피곤하게 하셨다(14절). 이 모든 징계 과정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에 눈물이 물같이 줄줄 흘러내렸다(16절). 놀라운 것은 시인은 이 극심한 징계의 고통 속에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나는 극심한 고난 중에 어디서 위로를 찾는가? 힘든 중에도 소망 중에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15. QT큐티체조. 예레미야 애가 1:1-9.

간단설명, 대부분의 장을 ‘슬프다’로 시작하는,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탄식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노래이다.

성경본문. 예레미야 애가 1:1-9
한글본문.
1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3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4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5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7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영어본문.
1.How deserted lies the city, once so full of people! How like a widow is she, who once was great among the nations! She who was queen among the provinces has now become a slave. 2.Bitterly she weeps at night, tears are upon her cheeks. Among all her lovers there is none to comfort her. All her friends have betrayed her; they have become her enemies. 3.After affliction and harsh labor, Judah has gone into exile. She dwells among the nations; she finds no resting place. All who pursue her have overtaken her in the midst of her distress. 4.The roads to Zion mourn, for no one comes to her appointed feasts. All her gateways are desolate, her priests groan, her maidens grieve, and she is in bitter anguish. 5.Her foes have become her masters; her enemies are at ease. The LORD has brought her grief because of her many sins. Her children have gone into exile, captive before the foe. 6.All the splendor has departed from the Daughter of Zion. Her princes are like deer that find no pasture; in weakness they have fled before the pursuer. 7.In the days of her affliction and wandering Jerusalem remembers all the treasures that were hers in days of old. When her people fell into enemy hands, there was no one to help her. Her enemies looked at her and laughed at her destruction. 8.Jerusalem has sinned greatly and so has become unclean. All who honored her despise her, for they have seen her nakedness; she herself groans and turns away. 9.Her filthiness clung to her skirts; she did not consider her future. Her fall was astounding; there was none to comfort her. “Look, O LORD, on my affliction, for the enemy has triumphed.”

도움말.
슬프다(1절). 히브리어 ‘에카’로 ‘어떻게?’ 또는 ‘아이고!’ 정도에 해당하는 장송곡 또는 탄식노래의 첫 마디로 많이 사용되며, 동시에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렙으로 시작하는 글자다. 이는 1장이 히브리 알파벳 22자 순서대로 진행됨을 보여주는 실마리가 된다.
적막하게(1절). 히브리어 ‘바다드’로 홀로 떨어져, 격리되어 앉았음을 의미한다(레 13:46).
절기(4절). 이스라엘의 주요 절기인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등을 의미한다.
더러운 것(9절). 죄를 말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형통케 한 이유는 무엇인가(5절)?
⬇ 아래로 인간. 이스라엘 성의 비참한 상황은 어떠한가(1-3절)?
? 물어봐.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한 이유는 무엇인가(4절)?
! 느껴봐.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할 자는 누구인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히 필요한 영역은 어디인가?

Meditation. 오직 은혜밖에 없다 .
애가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슬픈 노래다. ‘슬프다’는 히브리 조가에 흔히 쓰는 표현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조가가 아니라 선민 공동체와 그들이 살던 성읍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조가다. 서두를 놀람이 가득한 슬픔으로 시작한 이유는 과거 이 성읍이 누렸던 영광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열국 중에 크게 여김을 받던 영광의 성읍이었지만, 이제는 열국의 노예로 전락해 많은 고난 가운데 살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시인은 예루살렘이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다고 선언한다(8절, 5절 참조). 더러운 죄가 옷깃 구석구석에 덕지덕지 묻었지만, 문제는 예루살렘이 도무지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겸손하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9절).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의지하는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오직 은혜밖에 없다고 인정하고 고백하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14. QT큐티체조. 사사기 21:19-25. 사사기 마지막입니다.

간단설명. 이스라엘은 베냐민에게 모자란 처녀 200명을 구하기 위해 실로의 축제에 참여하는 여인을 납치하기로 결정한다.

성경본문. 사사기 21:19-25.
한글본문.
19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영어본문.
19.But look, there is the annual festival of the LORD in Shiloh, to the north of Bethel, and east of the road that goes from Bethel to Shechem, and to the south of Lebonah.” 20.So they instructed the Benjamites, saying, “Go and hide in the vineyards 21.and watch. When the girls of Shiloh come out to join in the dancing, then rush from the vineyards and each of you seize a wife from the girls of Shiloh and go to the land of Benjamin. 22.When their fathers or brothers complain to us, we will say to them, ‘Do us a kindness by helping them, because we did not get wives for them during the war, and you are innocent, since you did not give your daughters to them.’ ” 23.So that is what the Benjamites did. While the girls were dancing, each man caught one and carried her off to be his wife. Then they returned to their inheritance and rebuilt the towns and settled in them. 24.At that time the Israelites left that place and went home to their tribes and clans, each to his own inheritance. 25.In those days Israel had no king; everyone did as he saw fit.

도움말.
붙들어 가지고(21절). 히브리어 ‘하타프’는 맹수가 연약한 짐승을 사냥하듯 잡아채가는 모습을 의미한다(시 10:9 참조).
시비하면(22절). 법정용어(히. 리브)로 ‘논쟁하다’ 혹은 ‘소송을 제기하다’는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이스라엘에 참된 왕이 없을 때 사람은 어떻게 행하는가(25절, 17:6 참조)?
⬇ 아래로 인간. 이스라엘은 남은 처녀를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20-21절)?
? 물어봐. 이스라엘은 왜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처녀를 직접 납치해 베냐민 땅으로 가라고 했을까(22절)?
! 느껴봐. 나는 내가 기획하고 저지른 잘못을 마치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버려야 할 ‘내가 복음’은 무엇인가?

Meditation. 진정한 왕에게 지도를 받으라.
신앙생활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절에 춤추러 오는 여인들을 납치하기로 결정하고, 베냐민에게 이들을 납치해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20절). 베냐민에게 직접 하라고 함으로써 자신들은 납치된 딸의 부모로부터 제기되는 법적 책임을 면하려는 계산이다. 구약에서 납치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다(출 21:16 참조).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했던 맹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7, 18절 참조). 이스라엘은 베냐민에게 납치된 딸의 부모가 와서 항의하면 축제에 온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피의 복수를 감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부모가 자의로 딸을 내준 것이 아니기에 이스라엘의 맹세를 깬 것이 부모의 탓이 아니라는, 결국 부모에게는 죄가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라고 부추긴다(22절). 내게는 신앙생활을 잘 지도해줄 수 있는 이가 주변에 있는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엉뚱하게 ‘내가 복음’만 붙들고 있지는 않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13. QT큐티체조. 사사기 21:8-17.

간단설명. 이스라엘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야베스 길르앗을 쳐들어가 모든 사람을 진멸하고 처녀 사 백명만을 살려 데리고 와서 베냐민 지파에게 준다.

성경본문. 사사기 21:8-17.
한글본문.
8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13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16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영어본문.
8.Then they asked, “Which one of the tribes of Israel failed to assemble before the LORD at Mizpah?” They discovered that no one from Jabesh Gilead had come to the camp for the assembly. 9.For when they counted the people, they found that none of the people of Jabesh Gilead were there. 10.So the assembly sent twelve thousand fighting men with instructions to go to Jabesh Gilead and put to the sword those living there, including the women and children. 11.”This is what you are to do,” they said. “Kill every male and every woman who is not a virgin.” 12.They found among the people living in Jabesh Gilead four hundred young women who had never slept with a man, and they took them to the camp at Shiloh in Canaan. 13.Then the whole assembly sent an offer of peace to the Benjamites at the rock of Rimmon. 14.So the Benjamites returned at that time and were given the women of Jabesh Gilead who had been spared. But there were not enough for all of them. 15.The people grieved for Benjamin, because the LORD had made a gap in the tribes of Israel. 16.And the elders of the assembly said, “With the women of Benjamin destroyed, how shall we provide wives for the men who are left? 17.The Benjamite survivors must have heirs,” they said, “so that a tribe of Israel will not be wiped out.

도움말.
큰 용사(10절). 싸움을 잘 하고 용맹한 용사를 말한다.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11절). 히브리어 ‘헤렘’을 해석한 것으로 ‘헤렘’에는 ‘진멸하다’는 뜻과 함께 ‘바치다’는 뜻이 들어있다.
멸절(16절). 멸망하여 완전히 없어졌다는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이 베냐민에게 아내를 주는 자를 저주한다고 생각했을까(18절)?
⬇ 아래로 인간. 이스라엘은 쳐녀를 얻기 위해 길르앗 주민들을 어떻게 하는가(10-11절)?
? 물어봐. 이스라엘은 왜 동족 야베스 길르앗을 진멸했을까(7, 12절)?
! 느껴봐. 나는 내 이익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섣불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삶의 영역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악의 사슬을 끊고 선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자기 소견 대로가 초래한 비극
이스라엘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또 다른 동족의 진멸을 택한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백성들을 조사해 야베스 길르앗을 지목한 후, 처녀를 제외하고 그 성읍을 진멸하도록 한다(10-11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실수를 벌충할 궁리만 했다. 그래도 처녀가 모자라니 베냐민을 위해 어떻게 또 다른 처녀를 데려올까만을 궁리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의 처녀 주기를 꺼려했는데, 이미 하나님 앞에 처녀를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이 맹세 역시 잘못된 맹세였다(18절). 자신의 것을 내주기는 인색하고, 처녀를 구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은 결국 베냐민 지파와 다를 바 없는 동일한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가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지 않는가? 반복되는 악의 패턴을 끊고 선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한 구원일까요?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한 구원일까요?]
1. 현대인들은 이런 질문에 ‘예스’ 아니면 ‘노’로 답을 원합니다. 즉, 정확한 교리를 원하지요. 하지만 유대교가 교리주의에 관심이 없듯이, 신약의 저자들도 교리주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의 질문의 답은 ‘예스냐 노냐’가 아닙니다.
2. 성서의 저자들은 현대 서구인들이 아닙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성서를 읽고 해석할 때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자유의지’와 같은 몇 가지 가르침을 제외하면 체계적인 교리적 정립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고요.
신약의 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성삼위일체 교리, 구원론, 신론, 교회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초대교회에서도 매우 후대입니다. 이방신자들이 늘어나면서 헬라철학을 사용하여 이를 설명하기 시작하지요. 신약저자들은 이런 교리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치밀하고 모순 없는 가르침으로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유대인들이 교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중세시대에 마이모니데스가 정리한 13개 교리 이후입니다. 이 역시 중세 기독교의 영향력 때문이었지요. 이 13개 교리에 대하여도 치밀한 설명을 하려들지 않습니다.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종교에 관해 오토독시(정확한 교리)보다는 오토프락시스(정확한 실천)에 관심이 많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치밀한 교리가 아니라 치밀한 실천에 관심을 더 보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 예수님과 논쟁할 때도 교리보다는 ‘율법을 어떻게 지키는가’에 대한 행위들에 대한 이견이 많았지요. 그들은 ‘어떻게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4. 신약성경의 내용 역시 이런 영향으로 치밀하고 정확한 교리를 정립하고 체계화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절대적 의미, 절대적 잣대, 빈틈없는 교리보다는 관계성을 절대화합니다. 의, 구원, 칭의, 죄, 은혜 등은 관계적인 용어입니다. 수치화, 규격화, 범주화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은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올바른 관계를 원하시지, 가르침을 규격화, 범주화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냄새 나시는 하나님이시죠. 자비롭고, 봐주시고, 따뜻하시죠.
6. 히브리 방식은 이원론과 획일화를 싫어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서구인들이 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화하려 든다고 비웃을 거여요. 하나님까지 규격화하려 들고 구원방식도 규범화한다고요. 사복음서가 있는 것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를 함께 선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때론 헬라인들이 볼 때는 완전히 모순되는 내용을, 히브리인들은 동시에 맞는다고 수용합니다.
7. ‘100% 은혜냐 100% 믿음이냐?’ 이런 질문을 들으면 바울이 ‘껄껄’ 웃을 것 같아요. 그런 질문들 앞에 ‘참, 할 일도 없다’고 비웃을 것 같아요. 유대식 세계관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왕이면 1000%라고 하지 왜 하필 고작 100%냐고 비아냥거릴 거여요.
관계를 어찌 수치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구원, 언약, 사랑, 은혜를 교리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천만에요. 이는 우리의 관심일 뿐입니다. ‘천만 배 사랑해’란 표현이 수치일까요?
8.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냐? 아니냐?’ 이런 질문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신약은 이중적 태도를 취합니다. 교리적 접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자가 없고 끝까지 지켜주신다’와 ‘인침을 받은 자는 마지막 때까지 다 보호함을 받는다’고도 말씀하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믿음을 지켜내라’와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라’라고도 합니다. 문자적인 교리로 만들기엔 모순이 생기지요.
9. 신약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그리 강조해도 믿음과 상관없이 구원받은 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요한은 태아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자 어머니 뱃속에서 뛰노는 모습으로 선지자 노릇을 합니다. 바울도 자신의 의지와 정반대로 구원과 소명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는 의지가 꺾인 것이지요. 이런 차원에서 인간의 믿음보다 앞서는 예정설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이런 방식으로 구원과 소명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우시고 우리도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관계는 규범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지요.
신약의 저자: 그럼요 당연하죠.
# 예외는 없나요?
신약의 저자: 왜 없겠어요. 그야 하나님 맘이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이죠.
10. 사람들은 성경을 참으로 문자적으로 읽기를 좋아합니다. 성경을 무슨 정확하고 치밀하게 길을 알려주는 매뉴얼처럼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묘사들 중 다수는 뭉뚱그림으로 쓰였고 매뉴얼로 사용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치밀성이 없습니다. 저는 문자적으로 믿고 성경대로 해서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을 확신합니다. 예수님의 명령 그대로 목숨을 걸고 좁은 길을 가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식구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문자적인 가르침일까요? 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가 기독교인 중에도 얼마나 있겠습니까?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지혜로운 행동원리들이지, 규정과 교리 혹은 치밀하게 법으로 정할 수 있는 가르침들이 아닙니다.
11. 아버지가 불효하는 아들에게 ‘호적에서 파버리겠다. 나가 죽어라.’ 하고 야단치며 과장된 호통을 칠 때 이는 문자적으로 알아들을 내용이 아닙니다. 성경도 이런 과장법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12. ‘구원을 잃을 수 있나요?’ 관계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인간의 입장에서도 누구나 끊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맘이죠. 신약은 수많은 구절에서 구원의 상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누구나 돌아오면 다 받아주시고 구원의 길에 동행해 주십니다.
13. 구원의 길은 히브리 방식에 따라, 규격화되어 있지도 빈틈없이 교리화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살아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냐? 아니냐?’ 이런 질문이 교리에 관한 것이라면 성경은 답할 가치를 못 느낍니다. 초대교회는 주로 이스라엘의 운명이나 이방인 공동체에 관한 질문은 합니다만, 개인의 구원의 확신과 상실에 대하여는 교리적 질문을 던지지도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불순종의 대가를 당연히 전제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사는 성도라면 구원의 상실에 대한 위험을 알아야 하며,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성도라면 주님이 구원을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 결론:
– 하나님의 인자는 끝이 없지요?
– 신약의 저자들: 그럼요!
– 저는 의지도 연약하고 구원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 신약의 저자들: 염려마세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으니 반드시 지켜주실 거여요.
–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까? 배교하고 아무렇게나 살아도요.
– 신약의 저자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하나님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그런 자들은 영원한 멸망을 경험할 것입니다.
신약에서 영원한 구원은 교리가 아니라 관계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P.S. 교리화를 반대하거나 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택견을 발레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교리화하기엔 너무나 히브리적인 책입니다. 다만 현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리의 유익이 많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만 한계를 알아야지요.
굳이 교리화한다면 신약의 저자들은 칼메니언주의자들일 것입니다(칼빈주의 + 알메니언) <이민규 교수님의 펫북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