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끊임없이 재림 이전에 징조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인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바른 성경해석은 정확한 가르침을 찾는 많은 이에게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시원한 생수가 되지만 성경의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너무나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이에게는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종말에 관한 가르침들이 유별스럽게도 이를 확증한다. 종말에 대한 가르침은 절대로 성경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지고 검증되어야지, 성경 특정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온갖 공상과 그럴듯한 상상이란 모래 위에 세우면 안 된다.
마태복음 24:3절에서 제자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한다. 하나는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징조이고 하나는 재림의 때에 대한 징조에 관한 것이다. 24:3절은 “또”라는 용어로 청중들에게 제자들이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첫 번째 질문)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두 번째 질문)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그리고 예수님은 첫 번째 질문을 답하신다. 예루살렘 멸망의 시기에 관한 징조들을 주신다. 마태복음 24:35 절까지는 분명히 다른 징조들과 무화과나무 비유의 징조를 통해 설명된 예루살렘 멸망의 시기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36절에서는 “그러나”를 사용하여 제자들의 두 번째 질문 즉, 주의 임하심(재림)과 세상의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에 대한 답을 주신다. 헬라어의 “그러나”는 종종 사건의 변환을 의미한다. 본문의 경우다. 즉, 본문에서는 이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재림 때의 징조에 관한 예수님의 답은 예루사렘 멸망의 때에 대한 답과 확연히 다르다. 재림 때는 어떤 징조도 주어지지 않으며 아버지 이외에는 누구도 그 시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재림에 관한 한 절대 징조가 없으니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계속 반복된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 24:42-43).
이후 충성스러운 종의 비유와 결혼식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징조가 없으니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하다. 이 두 비유 후의 결론은 마 25:3절이다.
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3)
도대체 예수님도 하늘의 천사도 모르는 때와 시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이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계선을 왔다갔다 하는 이들도 잇다. 비록 날짜나 시점을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재림이 임박했다”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표현으로 성도들을 임박한 재림론자들로 만드는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지금 우리 세대에도 (어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우리 때에 올 것이라는 뜻으로 변질시킨다. 성경 어디에도 절대 그 때와 시를 밝히지를 않는다. 성도들에게 재림의 징조에 대한 힌트조차 없다는 점을 복음서는 못박는다. 그 징조를 알아내느라 힘빼지 말고 무조건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재림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이다.마라나타! 예수님이 우리 때에 오실까? 답은 모르니까 깨어있으라 밖에는 없다. 백번 천번을 물어도 답은 동일할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와 시는 몰라도 그 년도는 알 수 있지 않나? 대략이라도 가까이 온 것은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한다. 성경에서“때”는 단순 “날짜”와 “시간”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모든 “시기”에 관한 의미다. 이는 연도도 당연히 포함된다.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런지, 밤중일런지, 닭 울 때일넌지, 새벽일런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막 13:33-37).
사도 바울도 이에 대하여 동일한 말씀을 전하다.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2).
당시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징조를 재림에 관한 징조로 오해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재림의 징조는 없다.
지금이 말세라는 말, 참으로 구렁이 담넘어 가는 표현이다. 2000년 전에도 말세였고 현재도 미래도 늘 말세일 것이다. 말세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때까지의 기간이지 어떤 시점이 아니다. 지금이 말세라는 말로 사람들 현혹하는 것도 사실 준이단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람들 겁주고 이상한 위기감을 조성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늘 믿음으로 살면 된다. 내가 내일 죽을지 모래 죽을지 개인적인 종말이 우주적 종말보다 먼저 올 수도 있다. 예수님은 언제라도 오실 수 있다. 징조? 그런 것은 없다.
계속하여….
<이민규 교수님의 펫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