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지성 안에 있고, 소망은 의지 안에 있다… 믿음은 지성을 명령하고 인도하는… 교훈이요 지식이다. 소망은 권면이다. 소망은 마음이 용기를 얻고 굳은 결심을 하도록 북돋아 악의 와중에서도 담대하고 참을성 있고 끊기 있도록 하고 더 나은 것을 바라보게 한다. 믿음은 오류와 이단에 항거하여 투쟁하고 영들과 교리들을 심판하는 신학자이자 심판자라면, 소망은 환난과 십자가, 조급함과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 모욕 당한 감정에 항거하여 투쟁하는 지휘관으로서 기쁨과 용기로써 악과 투쟁한다… 믿음은 그 대상으로 진리 (truth) 를 가진다. 믿음은 확실하고 굳게 진리에 매달리라고 가르친다. 믿음은 그 대상에 대한 말씀 (the word of the object), 즉 약속을 바라본다. 소망은 선 (goodness) 을 그 목적으로 가진다. 소망은 약속의 말씀이 가리키는 대상 (the obje…ct of the word) 을 바라본다. 약속된 대상, 믿음이 받으라고 명령하는 대상을 바라본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신중성과 불굴성은 다르다… 불굴성은 역경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용감하게 견디며 더 나은 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확고함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굴성이 신중성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경솔함이 되고 만다. 반대로 신중성에 불굴성을 더하지 않으면 신중성은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정치 영역에서 신중성은 불굴성이 없으면 무익한 것과 같이, 신학에 있어서도 믿음은 악의 와중에서도 견디고 이끌며 정복하는 소망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불굴성은 신중성이 없이는 경솔함이 되는 것처럼, 소망 역시 믿음 없이는 성령에 관해 주제 넘는 것이 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된다. 믿음이 가르치는 진리나 그리스도의 지식이 없는 소망은 눈 멀고 경솔한 불굴성이 되고 만다. 신자가 믿음의 인도를 받는 올바른 이해와 지성을 가질 때, 믿음이 명령하고 가르치는 최선의 것을 소망할 수 있게 된다.
믿음은 믿어야 할 모든 내용을 가진 변증법과 같다. 소망은 시험을 당할 때 확고하게 말씀을 붙들도록 강권하고 설득하는 수사학과 같다. 연설자는 변증의 논리가 없이는 아무 것도 확실하게 가르칠 수 없고, 논리학자는 수사학이 없이는 그의 청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처럼 변증학과 수사학은 서로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결합될 때에라야 비로소 설득력 있게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믿음과 소망은 서로 다르고 구별된 것이지만 서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변증법과 수사학이 서로를 위해 일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이 믿음과 소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신학에 있어서 믿음과 소망의 관계는 철학에 있어서 지성과 의지의 관계와 같고, 정치 영역에서 신중성과 불굴성의 관계와 같고, 공중 연설에서 변증법과 수사학의 관계와 같다.
믿음은 지성이 진리로 깨우침을 받을 때 생겨난다. 소망은 권면으로 생겨난다. 권면을 통해 고난 중에서도 솟아올라 악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행동하게 한다. 그러나 만일 믿음의 빛이 의지를 밝혀주지 않는다면, 소망만으로는 의지를 설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믿음으로 시작하고 소망으로 보존한다… 믿음은 소망에 앞서간다. 믿음은 생명의 시작이며 고난을 받기 전에 시작된다. 믿음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그리스도에 관해 배우며 그를 붙잡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는 즉시 분쟁과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이런 고난 속에서 믿음은 신학적 지혜와 신중성이라면, 소망은 신학적인 불굴성으로서… 육신적이며 영적인 모든 악을 정복하는 것이다.
출처: 장기영 받사님이 Luther’s Works 27: 20-27. 말틴 루터 저, 김선회 역, 말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 (1535판), 하권 (용인: 루터대학교출판부, 2003), p. 43-54 의 번역을 참고하되 매끄럽지 못한 곳을 부분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