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박의 크리스천 신혼 일기
골방남과 광장녀
박유진 – 카피라이터(Let it flow)
회사에서 집까지 한 시간 반을 만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곧 남편을 만날 생각에 그렇게 신이 났다. 남편이 늦는 날에도 하루 동안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 생각에 기다리는 게 마냥 즐거웠다. 몇 시에 와? 출발했어? 지금 어느 역이야? 문자를 수없이 날리다 보면 문밖으로 발소리가 들린다.
“남펴어어언∼∼, 어서 와!!!!”
아침에 보고 밤에 봐도 또 반가운 우리는 신혼부부. 들어오자마자 오늘 하루 수고를 치하하는 뜨거운 포옹을 날린다. 저녁 뭐 먹었어? 올 때 지하철에서 앉아 왔어? 어디서부터 앉아 왔어?! 나 지하철에서 누구 만났는지 알아?!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너무 많다.
그런데 빨간 미니 소파에 널부러지는 남편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저기, 있잖아, 나, 잠깐만 쉴게.”
“……어? 그럼 그럼, 쉬어야지. 뭐 마실래? 주스 줄까??
음료수를 내밀다 보니까, 잠깐, 뭔가 반가움의 온도가 다르다는 생각에 뾰로퉁해진다. “뭐야, 내가 안 반가워?!” 남편, 한참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연다.
“내가 사실은 집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에너지가 하나도 없어. 그래서 너를 충분히 반가워해줄 수가 없어…”
뭬야아앗! 뭐시라? 아니 반가워해주는 것에 무슨 에너지가 필요하다구? 아니 내가 꽃가루를 뿌리랬나, 현수막을 걸랬나, 그, 그냥 반가워하는 게… 힘들어? 우리 신혼인데?!!! 나, 이 결혼…잘못한 거야? 마음이 식었어? 나 사랑한다고 한 거 다 거짓이었어?!!!
1초 만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아 이야기한다. “아니, 나는 네가 반갑지. 그런데 충분히 그 마음만큼 반가워해 줄 에너지가 없다구. 생각해봐, 나는 저녁 내내 모임에 회의에 사람들 계속 만나다가 지하철에서도 계속 사람들 많은 데 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에너지가 다 바닥나 있는 상태라구. 그런데 너는 에너지도 많은 애가 하루 동안 있었던 얘기를 너무 하고 싶어 하잖아. 그걸 내가 충분히 받아주려면 잠깐 다시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나, 극 I성향(MBTI)이잖아.”
같은 공동체에서 섬기면서 익히 알았던 바, 우리는 극단의 내향성과 외향성을 가진 사람끼리의 만남이었다. 나는 한마디로 광장녀, 그는 골방남. 연애 때도 남의 결혼식에만 가면 그날은 꼭 다퉜는데,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을 만나는 나는 에너지가 충천해서 식장과 피로연장 곳곳을 날아다니는 반면, 그는 곧 그 광장의 에너지에 모든 힘을 빼앗기고 비실비실 구석탱이 화환들 옆에 앉아서 “빨리 가자.. 빨리 가자..” 경을 외우면서, 갈 생각이 전혀 없는 나의 종횡무진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곤 했다.
“그,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구…?”
다행히도 기질 차이에 대한 선이해 덕에 일단 대화의 파국(?)을 막을 수 있었다. 남편은 으흠∼하더니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뭐든 일단 말을 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나로서는 또 답답∼해지는 순간.
하긴 이 남자, 결혼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을 때, 그렇게 말했었지.
“혼자 있는 공간이 없어서 힘들어…”
우리 신혼집은 원룸 오피스텔이었다.
그날 이후,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남편이 먼저 들어온 날은 혼자 쉴 시간이 있으니 상관이 없었고, 나보다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그가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15분 동안 “왔어?” 이외의 별다른 말을 걸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 충전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침묵의 15분이 지나면 다시 뜨거운 재회의 포옹부터 시작하는 거다. 수고했어!! 오늘 별 일 없었어?! 내가, 내가 오늘은!!! 나로서는 기다려온 시간을 15분 유예함으로써 기다리던 반응 - 충분히 마음껏 반가워하는 - 을 얻으니 크게 손해도 아니었다. 잠깐씩 그의 조용한, 혼자만의 충전시간을 지켜주는 것으로 우리의 알콩달콩 신혼라이프는 다시 돌아왔다. 젖과 꿀이 흐르는 신혼의 가나안에도 광장과 골방의 큰 강은 존재했다. 그때 우리는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그 강을 건넜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