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왜 주셨을까? 현대용어버전.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왜 주셨을까요? 오해는 이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나 율법이 부당한 게 아니라 지키지 못하는 우리 형편이 참혹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걸 모른다는 사실이고 율법이 하는 한 가지 기능은 바로 이 점을 각성시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율법 자체가 정당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참혹한 처지로부터 벗어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소스코드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소스코드는 ‘그리스도’이고 접속 암호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라는 소스코드에 접속하면 ‘은혜’가 다운로드됩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신자가 전에 죄에 매여 종노릇할 때는 지킬 수 없었던 율법을 지키게 하는 에너지이며, 우리 DNA에 감염된 바이러스 곧 ‘죄’를 퇴치하는 ‘백신’이며 하나님이 애시당초 약속하셨던 복과 풍요를 누리게 하는 솔루션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소스코드에 ‘믿음’이란 접속 암호로 접속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100 byte 수준 어떤 사람은 1 메가 또 다른 사람은 10 메가 혹은 100메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속도저하의 직접적 원인은 재리와 일락등이 기운을 막거나 그리스도라는 소스코드에 접속했다기보다 처음부터 약간의 와이파이를 나눠쓰는 일반은총의 빛아래 있어서 환란이 닥치매 소스코드와 연결이 끊어져 결실치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지런히 영적 디바이스 즉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해서 접속과 다운로드를 반복하지 않으면 누구도 승리할 수 없으며 율법은 지킬 수 없습니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기준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없다는 논쟁은 그런 점에서 출발선상이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루이스의 펫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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