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5 주일은 읽는 QT. 그리스도인의 승부수, 은사 3

간단설명.
일상적인 삶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손길을 보라. 평범 속에 담긴 비범을 발견하라. - 마이클 프로스트

한글본문.
사무엘상 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사무엘상 16: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영어본문.
1 Samuel 17:40
Then he took his staff in his hand, chose five smooth stones from the stream, put them in the pouch of his shepherd’s bag and, with his sling in his hand, approached the Philistine.

1 Samuel 16:18
One of the servants answered, “I have seen a son of Jesse of Beth-lehem who knows how to play the harp. He is a brave man and a warrior. He speaks well and is a fine-looking man. And the LORD is with him.”

Meditation. 은사 개발의 장(場), 일상과 예배
다윗에게는 은사를 키워낸 두 모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상과 예배라는 두 장(場)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탁월한 물매 솜씨를 개발하고 훈련한 자리는 어디입니까? 컨퍼런스나 세미나가 아니었습니다. 목동으로서의 삶의 자리 곧 베들레헴의 들판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버지로부터 맡겨진 일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던 중에 그의 은사와 재능을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원하고 선택한 일이 아니라 강요된 일상에서도 은사가 발견되고 개발되었습니다. 일상은 분명 은사의 연구소이며 작업실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은사 개발 기회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목동의 양가죽 누더기를 뒤집어쓰고서도 그 속에서 무섭도록 놀라운 은사를 키워 낸 다윗의 영성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일상의 자리를 사명 준비의 장으로 삼으십시오. 일상의 스케줄 속에서 자신의 물매를 힘써 훈련하십시오.
또한 다윗의 수금 타는 솜씨가 개발된 자리는 어디입니까? 일상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임재 깊은 곳에 나아가 예배하던 중에 훈련된 것입니다. 사실 예배만큼 은사를 탁월하게 개발하고 훈련할 수 있는 장(場)도 없습니다. 예배 가운데 사용하는 은사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요1 2:27). 은사 위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역사하면 그 은사는 놀라운 부흥과 폭발을 경험하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탁월한 예술가들과 소위 한류 스타라고 불리는 연예인들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또한 예배 가운데서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했다고 고백합니다. 예배 가운데 나아갈 때마다 각자의 마음과 열정, 하물며 불평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 있다면, 간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은사의 시그널입니다. 당신의 수금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에게도 일상과 예배라고 하는 두 모판을 주셨습니다. 이 두 모판에서 받은 은사를 놀라운 은사로 개발하고 훈련해 열방의 마지막 동네에까지 그 가지를 뻗고 열매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의 양 손에는 물매와 수금이 들려 있습니까?

기도
“일상과 예배 속에 심어두신 하늘의 보화를 캐내어, 주신 은사를 더욱 부흥케 하는 복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요즘 안녕하시냐고 묻기에 ‘한나 아렌트(2012)’와 ‘마라톤 맨(1978)’으로 답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저서.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이었지만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유태인 숙청 광풍 속에서 가까스로 프랑스, 뒤이어 미국으로 탈출했다. [1]따라서 그녀는 홀로코스트에 실존적인 차원의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0년에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름이 하필이면…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했다.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아이히만은 기소되어 1961년 4월 11일 공개재판[2]이 진행되었는데, 한나 아렌트는 이를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사상을 주장하게 된다. 이 책이 바로 오늘날 명저로 평가받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1963년)>이다. 책의 형식은 아이히만의 재판 참관기이지만, 부제인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가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3][4]

아이히만은 슈츠슈타펠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5]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이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쉽게 말해서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악이 딱히 어떤 악마적인 것에 기원하는 게 아니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비판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바로 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아이히만의 사례를 들면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던 일이 타인(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아렌트의 의견과도 동일하다.

다만 아렌트의 주장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론 내용은 아이히만은 결코 아렌트가 주장한 대로 명령에만 충실하게 따르는 ‘평범한’ 관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주장은 그가 강한 반유대주의 성향을 보이는 급진적인 나치당원이었고, 인종적 정화에 집착했으며[6], 오스트리아에서 1933년에 독일로 이주하기 이전부터 이미 열성적인 친위대 행동원이었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의 범죄는 전체와 평범함으로 희석시킬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히만은 1956년부터 자신의 범죄를 변호할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받을 점이다. 애초에 계획적으로 자신을 불쌍한 이미지로 재판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다만 독일에서의 재판을 상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 이스라엘에서 잡힐줄은 몰랐겠지 잡았다 요놈! [7]

이런 역사학자들의 반론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렌트는 역사학자라기 보단 윤리 철학자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렌트의 목적은 아이히만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라는 주장하에서 아이히만을 예로 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아렌트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극도로 분개하지 않은 것 때문에 유대 공동체들로부터 과도하게 비난을 받은 것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8] 그냥 철학자들은 우리랑 다른 생각하는 부류라고 치자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가 분석하고 관찰한 아이히만은 권력욕이 세고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이었고, 그의 반유대주의 사상이나 나치즘은 이러한 명예욕을 실현시킬수 있는 수단이었다. 실제로 그가 유대인 이주정책을 맡았던 1938년은 나치의 최종 해결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1941년 이전이었으며, 38년 당시에는 시온주의자들과의 모종의 협력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독일계 유대인들도 수천명가량 존재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동정으로 인해 유태인들을 유럽 바깥으로 이주시킨것도 아니었으며 이후 최종 해결책이 시행됬을 때에도 유태인에 대한 증오때문에 홀로코스트를 자행한것이 아니라고. 다만 중요한 것은,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생각하지 않은 죄”라고 했다고 해서 그의 사형선고 자체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히만은 사형선고를 받고 1962년 5월 31일 교수대에서 황천길로 갔다. 그의 죄를 전혀 후회하지 않으면서. [9]

참고로 아렌트는 ‘이것은 유대인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앞으로 등장할 미증유의 인류 범죄를 다루기 위한 선례를 위해서라도 국제법정으로 처리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왕따라든가 기타 작은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각종 악행들을 살펴보면 위의 사례와 유사한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12월 연말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의 사례에서 가해자 학생의 부모가 피해자 학생의 부모에게 “제 자식을 제가 잘 몰랐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낸 것을 보자. 부모에겐 착하고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자식이 그런 엄청난 짓을 했다는 데 충격이 역력한 이 문자를 통해서도 악의 평범성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내 아이가 왕따 가해자입니다.

—-
[1] 정확히는 프랑스에서 한번 체포되었다가 간신히 탈출해 포르투갈 리스본 항구에서 미국으로 탈출했다.
[2] 전세계에 생중계를 허가했다.
[3] 영어 제목은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이다. 영단어 banality는 “너무나 흔하여 쉽게 예측 가능한 대상”이라는 뜻이므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악이 평범하다기보다는 그만큼 도처에 악이 평범할 정도로 널려 있다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4] banality는 평범성, 일상성, 진부함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뒤의 두 단어는 (학살이 너무나 자주 행해져 이에)익숙해짐, 적응됨 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어 평범성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5] 일설에 따르면 개인적으로 그는 유태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고, 유태인 친척이 있었던 탓에 반유태주의자도 아니었다고 한다. 심약한 학살자
[6] 1938년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유대인 축출 및 이주계획의 전문가, 권위자로 꼽혔다. #
[7]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히만은 1937년 팔레스타인에 파견되어 유대인들의 이주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으나, 아랍계 지도자는 물론 영국조차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생기고…
[8] 한나 아렌트는 독일의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뒤에 나치 협력 혐의를 받은 마르틴 하이데거와 모종의 연인관계에 있었으나, 나치에 긍정적이었던 하이데거에 환멸감을 느끼고 그를 떠나 역시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칼 야스퍼스에게 지도받아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 그러나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어서, 이후 하이데거 청문회에서 “하이데거의 사상과 철학은 전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그를 변호하기도 했다.
[9] 가장 유력한 유언이 이렇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나하고 연고가 있는 이 세 나라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쟁 규칙과 정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나는 준비되었다” 그리고 이 유언 뒤에 참관자들을 향해 이야기했다고 알려진 유언이 있다. “여러분, 또 만납시다. 이게 운명이라는 거요. 나는 지금까지 신을 믿으며 살아왔고, 신을 믿으면서 죽을 거요.”(런던대의 저명한 홀로코스트 역사가 다비드 케사라니의 설.

2013-12-14 QT큐티체조

간단설명.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 받는 복을 노래한 시다.
성경본문. 시편 128편
한글본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영어본문. 1 Blessed are all who fear the LORD, who walk in his ways. 2 You will eat the fruit of your labor; blessings and prosperity will be yours. 3 Your wife will be like a fruitful vine within your house; your sons will be like olive shoots around your table. 4 Thus is the man blessed who fears the LORD. 5 May the LORD bless you from Zion all the days of your life; may you see the prosperity of Jerusalem, 6 and may you live to see your children’s children. Peace be upon Israel.
도움말.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1절). 길은 교훈과 진리를 말한다.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가(2절)?
⬇ 아래로 인간. 복된 가정의 아내와 아이들은 각각 무엇으로 비유되었는가(3절)?
? 물어봐. 복된 가정과 하나님의 성전은 어떻게 연관되는가(5-6절, 메디테이션 참조)?
! 느껴봐.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즐거이 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

Meditation.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복은 수고를 면해주는 것이 아니라, 수고가 결실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로소득이 아니라, 수고하는 손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가정에도 복을 주셔서 그의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이 되게 하신다. 그 아내는 가정을 달콤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며 기쁘게 하는 포도나무와 같다. 그의 자녀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생기 있고 푸르게 높이 자라가는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 가정의 행복은 가정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흘러 들어온다. 이 사실을 알기에 순례자들은 가정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전으로 오른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복은 그 자신에게서만 끝나지 않고, 그와 그 자식을 넘어 그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이어지며, 그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그가 속한 교회와 사회에까지 미친다. 당신이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