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4.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유다 지파의 갈렙에게 헤브론이 분배된 내용에 이어,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이 소개되고 있다.

성경본문. 여호수아 15:1-12
한글본문.
1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 2또 그들의 남쪽 경계는 염해의 끝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3아그랍빔 비탈 남쪽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쪽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아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가에 이르고 4거기서 아스몬에 이르러 애굽 시내로 나아가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쪽 경계가 되리라 5그 동쪽 경계는 염해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쪽 경계는 요단 끝에 있는 해만에서부터 6벧 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쪽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7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 강 남쪽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들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8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쪽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쪽에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쪽 끝이며 9또 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 샘물까지 이르러 에브론 산 성읍들로 나아가고 또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으로 접어들며 10또 바알라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이켜 세일 산에 이르러 여아림 산 곧 그살론 곁 북쪽에 이르고 또 벧 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를 지나고 11또 에그론 비탈 북쪽으로 나아가 식그론으로 접어들어 바알라 산을 지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12서쪽 경계는 대해와 그 해안이니 유다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영어본문.
1 The allotment for the tribe of Judah, clan by clan, extended down to the territory of Edom, to the Desert of Zin in the extreme south. 2 Their southern boundary started from the bay at the southern end of the Salt Sea, 3 crossed south of Scorpion Pass, continued on to Zin and went over to the south of Kadesh Barnea. Then it ran past Hezron up to Addar and curved around to Karka. 4 It then passed along to Azmon and joined the Wadi of Egypt, ending at the sea. This is their southern boundary. 5 The eastern boundary is the Salt Sea as far as the mouth of the Jordan. The northern boundary started from the bay of the sea at the mouth of the Jordan, 6 went up to Beth Hoglah and continued north of Beth Arabah to the Stone of Bohan son of Reuben. 7 The boundary then went up to Debir from the Valley of Achor and turned north to Gilgal, which faces the Pass of Adummim south of the gorge. It continued along to the waters of En Shemesh and came out at En Rogel. 8 Then it ran up the Valley of Ben Hinnom along the southern slope of the Jebusite city (that is, Jerusalem). From there it climbed to the top of the hill west of the Hinnom Valley at the northern end of the Valley of Rephaim. 9 From the hilltop the boundary headed toward the spring of the waters of Nephtoah, came out at the towns of Mount Ephron and went down toward Baalah (that is, Kiriath Jearim). 10 Then it curved westward from Baalah to Mount Seir, ran along the northern slope of Mount Jearim (that is, Kesalon), continued down to Beth Shemesh and crossed to Timnah. 11 It went to the northern slope of Ekron, turned toward Shikkeron, passed along to Mount Baalah and reached Jabneel. The boundary ended at the sea. 12 The western boundary is the coastline of the Great Sea. These are the boundaries around the people of Judah by their clans.

도움말.
해만(海灣, 2절). 바다와 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8절). 예루살렘 서쪽에서 남쪽으로 둘러 있는 넓은 골짜기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이 요단 서편에서 제일 먼저 땅을 분배해준 지파는 어디인가(1절)?
⬇ 아래로 인간. 유다 지파의 동쪽 경계는 어디인가(5절)?
? 물어봐. 유다 지파의 서쪽 경계는 어디인가(12절)?
! 느껴봐. 앞선 형들보다 먼저 분배받은 유다 지파의 모습은 어떤 도전을 주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영적 장자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놓치지 말아야 할 자리.
유다 지파의 경계는 남쪽으로는 에돔 지경-가데스 바네아-애굽의 시내를 연결하는 지역이다(1-4절). 동쪽 경계는 사해(5a), 서쪽은 지중해였다(12절). 북쪽 경계는 요단강과 사해가 만나는 하구에서 지중해변의 얍느엘로 이어지는 지역이다(5b-11절).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제비를 뽑았고, 이처럼 요단강 서편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지역을 받은 이유는 유다가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지만 실질적인 장자였기 때문이다. 실제 장자인 르우벤은 자신의 서모인 빌하와 간음을 저질러 장자권을 박탈당했다(대상 5:1). 둘째와 셋째 아들인 레위와 시므온은 여동생 디나가 세겜의 추장 아들에게 겁탈당한 사건에 대한 복수로 그곳 남자들을 다 죽여 버림으로써 축복을 받지 못했다(창 49:5-7). 훗날 요셉 지파가 장자의 명분을 얻어 두 갑절의 복(에브라임, 므낫세)을 받지만 그와 더불어 유다는 넷째 아들임에도 역사를 주도하는 장자와 같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당신은 순간의 정욕이나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장자의 특권을 빼앗긴 르우벤, 레위와 시므온의 실수를 범하는 경우는 없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인격적인 계시와 명제화된 계시의 구분 및 성결 체험의 필요성], 간단명료하네요.

– 인격적인 계시와 명제화된 계시의 구분 및 성결 체험의 필요성 – 장기영 박사님의 펫북에서<서울신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이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계시를 하나님께서 인격적 만남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신뢰나 헌신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둘째, 계시를 하나님께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명제들로 이해할 수 있는데, 명제로서의 계시에 대한 신앙은 명제에 대한 지적 동의로서 나타난다.

전자의 의미에서 계시는 후자의 의미에서 계시의 바탕이 된다. 즉, 하나님과의 주관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만, 신학적 작업으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변화가 생겨난다. 하나님과의 만남 자체는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만남을 가진 사람은 그 만남을 통한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먼저 자신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객관적인 언어로 정리해보고자 노력하게 되는데,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명제적 진리 (객관적 진리) 로 정리하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 즉 자신이 통제 가능한 지식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경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인격적 계시의 명제적 진리화는 진리를 이해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라는 것이다. 인격적인 계시 (주관적 진리) 를 객관화 (명제화) 하지 않고 진리를 명확하게 하고 또 보존하고 공유할 방법이 없다.

부정적인 측면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지식을 객관적 언어로 표현 (명제화)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보다 못한 어떤 대상으로 축소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이해와 언어적 표현은,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데 부족하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진 사람이 이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표현해보려고 노력할 때 인간은 이해의 한계 및 표현의 한계라는 제약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종합하면, 인격적인 계시의 명제화는, 인격적인 계시를 인간의 이해와 표현의 한계 속에 제한시키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는 하나님의 인격적 계시를 이해하고 표현하고 전달함으로써 계시를 보존하는 방법이 된다.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계시가 객관적 명제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인격적 계시는 개인적 체험과 주관주의적 계시 해석의 함정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계시는 타인에게 전달될 수도, 그들로부터 지적 동의로서의 신앙을 일으킬 수도 없다. 따라서, 만약 계시가 개인의 이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유와 전달까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인격적인 계시는 객관화 (명제화) 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인격적 계시가 객관적 명제화의 과정을 거쳐 표현되고 전달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속에서 경험되었던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가 신학적 객관화 (명제화) 과정을 거쳐 표현되고 타인에게 전달되었다고 해보자. 믿지 않는 자에게는 명제로서의 계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신앙으로 명제로서의 계시를 수용하는 자에게는, 이 계시는 믿는 자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 결과 비록 처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격적으로 나타내신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던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처럼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명제화된 계시에 대한 동의로서의 신앙은 신자와 하나님 사이에 간접적인 “나와 그” (I-He) 의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격적인 계시를 신학적으로 설명한 명제로서의 계시는, 그 만남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전달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로 인해 크게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명제화된 계시를 믿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간접적인 관계 즉 “나와 그” (I-He) 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관계 즉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만큼 직접적이고, 충만하고, 신비롭고, 은혜로울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명제화된 계시를 받아들임으로써 맺어지는 간접적인 “나와 그” (I-He) 의 관계, 즉 인간의 제한된 이해 능력과, 제한된 표현 능력, 제한된 전달 능력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계시가 크게 축소된 채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과 직접적인 “나와 당신” (I-Thou) 의 관계에서 인격적인 계시를 받았던 사람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직접적이고, 충만하고, 신비롭고, 더 은혜롭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처음에 언급한 계시와 신앙의 구분을 통해 설명하면, 두 번째 의미의 계시, 즉 하나님께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명제들로서의 계시에 대한 지식과 동의에서 그치지 말고, 첫 번째 의미의 계시, 즉 하나님께서 직접적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계시를 간절히 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자신을 직접적이고 충만하고 신비롭고 더 은혜롭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제적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인격적 계시로 나아가야 한다. 중생한 사람은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

참고: 밀라드 J. 에릭슨 저, 『복음주의 조직신학 (상)』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7), p. 218-226. 내용상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정통주의의 계시 이해를 다룬 에릭슨의 “특별계시: 명제적인가 아니면 인격적인가?”, 그리고 “계시로서의 성경” 을 읽은 후, 웨슬리가 강조한 성결 체험의 필요성에 대한 insights를 얻어서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