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슬리가 1759.4.13 일 일지에 소개한 한 임종 사건 (하나님께서 순간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 은총의 사건의 한 사례입니다) —
역사 속에서 오늘 일어난 일을 말하자면, 독일에서 베르겐 전투 이후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ort on the Maine)으로 옮겨진 많은 부상자들 중에 프랑스 왕을 섬긴 작센 부대의 장군이었던 남작 조지 찰스 디컨(the Right Honorable George Charles Dykern)이 있었다. 그는 1710년 4월 10일에 실레지아(Silesia)의 오래 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자기 생일 날에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행정 각료로서나 전장의 장군으로서 똑같이 유능했다. 젊은 시절 그는 대학에서 정규 과정을 마쳤고 철학, 특히 수학에 능통하였다. 이후 그는 신학 논쟁(polemic divinity)을 연구하였는데, 결국 자신은 무신론자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는 병상에 있는 동안 의사가 자기 시종에게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신앙적 교제나 진지한 설교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종은 그 주인에게 목사가 방문해주기를 요청하지 않을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감동을 받아 “내가 그분들을 번거롭게 할 수 없네. 나는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고 또 행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네”라고 대답했다. 시종은 단념하지 않고 ‘주인님, 제가 주인님을 섬기는 동안 언제라도 저의 의무를 행하는 일에 있어 부족하다고 여기신 적이 있으셨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네”라고 대답했다. 시종은 “그러시다면, 저는 지금도 주인님을 섬기는 일에 부족하고 싶지 않습니다. 의사는 주인님께서 회복하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주인님께 그것을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주인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계십니다. 주인님, 목사님이 오시도록 간청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곧 그 시종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의 정직함에 감사했고, 그는 사람을 보내어 나(각주: 여기서 “나”는 프랑크푸르트의 목사회의 고참 프레세니우스박사를 말한다)를 초청하도록 그에게 지시했다.
내가 오자 그는 장군이 자칭 불신자임을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들어가서 잠깐 인사를 나눈 후 “저는 각하께서 죽음이 가까우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솔직하게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영혼은 당신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을 품고 있는 상태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근거 위에 소망을 두고 계십니까?’ 그는 ‘저는 어떤 고의적인 죄도 범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약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의 아들의 공로를 믿고 그가 나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말들, 특히 ‘그의 아들의 공로”라는 말을 할 때 그는 매우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이 가장 나쁜 죄악들로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의도적인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것이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만약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당신이 죄로 완전히 부패하였으며 하나님의 저주와 영원한 형벌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의 아들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소원하는 것에 대해 제가 감히 여쭙는 것은, 당신은 하나님께는 독생자가 있으시고, 그 아들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입으셨으며, 그의 직분을 이행하시기 위해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겸손하셨고, 이로써 그는 우리를 위해 충만한 배상을 하심으로, 천국에 합당한 자격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는 ‘제 영혼의 참된 상태를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박사님, 저는 상당한 철학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 지식에 의해 저 자신의 구원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존재 중 존재이신 분이 자비롭게 저를 받아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 가운데 언제나 제 힘이 닿는 한 최대한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를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하면, 저의 이러한 방법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로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만약 당신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여기신다면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오 하나님, 당신께서는 내가 성경을 당신의 말씀이라고 여겨서 그렇다고 말하게 하실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만약 당신의 남은 생명이 그리 짧지 않다면, 나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들에서부터 시작해서 기독교의 신적 근원을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와 이유들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지금 우리는 그렇게 장황한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비틀거리는 가련한 죄인에게는 근거와 이유를 찾을 시간이 없습니다. 차라리 믿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반드시 믿음을 주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이러한 말들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는 자신의 모자를 벗고 자신의 눈과 손을 들어 ‘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불쌍하고 저주받은 죄인, 천벌 받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신 주 예수님, 당신께서는 나의 죄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을 통해서입니다. 오! 저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소서!’라고 부르짖었다.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였기에, 그는 더 이상 기도할 수 없게 되었다.
잠시 후 그는 ‘구원을 위해서는 믿음만으로 충분한가요?’ 하고 물었다. ‘네. 만약 살아있는 믿음이라면 그렇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는 “저는 믿음이 이미 주어졌고, 이제 더욱 그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너무나 힘이 없는 것을 알고는 그를 좀 쉬게 해주려고 옆 방으로 비켜주었다. 그러나 그는 곧 사람을 보내 나를 불렀다. 나는 그가 기도하고 있었고, 오직 예수님만을 간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언급하는 몇몇 성경말씀들을 상기시켜주었고, 그는 그 말씀들로 인해 크게 기뻐하였다. 참으로 그는 예수님의 은혜에 온전히 휩싸여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저의 생애에서 단 한번도 이런 변화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부인했던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그를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 나의 예수님, 주님은 제게 어찌도 이리 자비로우신지요!’ 하고 외쳤다.
정오 쯤 나는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즉시 사람을 보내 나를 불러서 나는 제대로 식사할 시간조차 없었다. 우리 둘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같은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로서 기쁨으로 충만하여, 마치 몇 년 동안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 같았다. 군대의 많은 장교들이 계속해서 그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찾아온 사람들 모두에게 쉴새 없이 그들이 예수를 만났는지, 그리고 행복한 변화가 일어나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예수에 대해, 그의 안에서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그리고 그를 통해 부으시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오후에 그는 성찬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감동과 찬양과 기쁨의 마음으로 성찬을 받았다. 그 날의 남은 시간 동안에도 그는 동일한 마음의 상태를 지속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 그는 마치 그의 죽음이 가까운 듯 내가 그에게 와 주기를 바랐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아침이 되도록 나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그의 시종은 나에게 그가 몇 시간 동안 잘 숙면한 후 일어나 한참 동안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보배로운 피에 대해 말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러 장교들이 그의 회심 사실을 의회(폴란드 왕의 의회)에 알리기를 원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한동안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어제 이후로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에 대해 가졌던 당신의 생각이 달라지거나 모호해지지는 않으셨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제 생각은 달라지거나 모호해지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어떤 의심도, 아주 작은 의심조차도 들지 않습니다. 마치 제가 언제나 믿어왔고 의심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제나 지금이나 저의 상태는 똑같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저에게 얼마나 은혜로우신지요’라고 대답했다.
둘째 날에도 그는 기도와 믿음을 발휘하는 일에 있어 지치지 않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죽어가고 있었고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에 있었다. 나는 때때로 평안을 주는 말씀들을 그에게 들려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후로는 나는 그와 또 함께 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들 중 일부는 명문가의 고위직 사람들이었다. 그 후 나는 보통 때와 같이 안수함으로 그를 축복했는데, 안수가 끝나자 그는 곧 숨을 거두었다. 거기에 있었던 황태자(작센의 자비에 왕자, Prince Xavier, of Saxony)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머지 장교들은 그들의 장군을 잃은 것을 몹시 슬퍼하면서도, 그에게 그 같은 자비를 보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모든 일을 적어 그의 어머님께 보냈고, 즉시 회답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72세의 훌륭한 신앙을 가진 부인이었다. 그녀는 자비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께서 11년 동안 한번도 쉬지 않았던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지금 응답해주셨다고 말하였다.”
<서울신학대학교 장기영 박사님의 홈피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