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았다는 표현의 위험성: 구원파식 단박구원이란 없다!

[구원받았다는 표현의 위험성: 구원파식 단박구원이란 없다!]
오해: 구원받았다.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성화의 과정이다!
진실: 성화는 구원 이후의 과정이 아니라 구원의 현재적 과정이다. 성경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과거 시제적이거나 현재완료적 표현은 몇몇 본문에 나온다(예 엡 2:5-8, 행 2:47, 이외에도 영생을 얻었다 등이 있다). 그러나 구원에 관한 내용의 시제 중 다수는 대체로 현재와 미래다. 이에 반해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란 표현을 매우 많이 쓴다. 그러나 구원은 진행형이지 소유로 보긴 어렵다. 이런 잘못된 관점이 구원파식 구원론을 가능하게 만든다.
보통 미국에서 유행해 전 세계에 퍼진 사영리 전도폭팔은 다음과 같은 구원 공식을 사용한다.
이러이러한 가르침을 믿으십니까?(동의하시나요?). “네”
영접기도 합시다. 따라하세요. “네”
이제 이후로 당신은 구원 받으셨습니다. “아멘”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믿음과 구원은 과연 어디까지 성경적일까?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이스라엘에 장가를 드셨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다라고 할 때, 그럼 이런 논리가적용이 될까?
서로 처음 만난 사이고 결혼에 관심이 있다.
결혼에 관한 이러이러한 교리를 믿으세요?(동의의 의미) “네”
결혼 서약 기도합시다. 따라하세요. “네”
이제 이후로 우리는 부부입니다. “아멘”
결혼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도 마찬가지다. 신뢰와 사귐은 기본이다.
구원은 근본적으로 종말론적 사건으로 그 핵심은 사실 우리에겐 미래의 일이다. 그리고 그 미래를 향한 여정을 신자들은 이미 시작하였다.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과정 가운데 순례자의 여정을 요구하는 시작과 끝이 있는 터널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받고 있으며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에 이 여정을 못마치지나 않을까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신실함을 믿고 따르는 이는 D-day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있다.
구원의 기본적인 의미는 안전, 위험으로부터의 구출, 혹은 병자를 고침 등이다. 구약에서는 흔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가리켰다.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신 것, 그리고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 병, 귀신들림, 부정, 기아, 차별,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구원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모두 사용된다. 영생을 얻었나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표현과 같이 구원의 시작, 혹은 미래의 구원이 너무나 확실하여 이미 완료적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약 본문 대부분은 구원(혹은 영생, 혹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에 관해 현재 아니면 미래의 사건으로 묘사한다.
구원의 과거 시제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현재완료수동태)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과거분사)
*개역성경은 구원받는 사람으로 번역.
구원의 현재시제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who are being saved).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이미 자녀됨).
구원의 미래 시제.
로마서 13 :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로마서 13 :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질문: 사도바울이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다면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립보서 3:21)
하나님께서는 주를 살리셨으니, 그 분의 능력으로 우리도 살리시리라(고린도전서 6:14)
베드로전서 2: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질문: “구원에 이르도록”은 무슨 뜻일까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브리서 10:35-39).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24:13).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개역 계 3:5)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개역 계 3:11)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개역 계 3:12)
아쉽게도 오늘 날 다수의 교인이 구원파적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단박에 구원받고 구원은 소유이고, 인간에겐 아무 의무가 없고, 그냥 믿기(동의)만 하면 다 구원받고…
단박 구원이란 없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구원은 소유가 아니다. 구원은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아무 의무가 없지 않다. 구원 교리에 동의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주여 주여 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영원한 처소에 못 들어가고 오히려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개정 마 7:21)
<이민규 교수님 펫북에서 퍼왔습니다.08.1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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