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은 자로 살아가는 인생
성경본문. 에베소서 1장 1절~6장 24절, 빌레몬서, 시편 106편
새해가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해를 인도하실까’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이는 개인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고, 나라와 민족을 향한 기대일 수도 있습니다. 2019년 1월 우리는 에베소서, 빌레몬서, 시편 106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실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며 나아가고자 합니다. 개인의 구원과 교회의 하나 됨, 그리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보여 주시고 은혜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반응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은혜로 받은 선물, 구원(엡 1~2장)
에베소서는 에베소교회뿐 아니라 소아시아지역 독자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저술된 바울의 편지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1:1) 썼다는 구절에서도 확인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의 핵심 진리를 알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의 긴장 관계가 완화되기를 원했습니다.
먼저 1장에서 바울은 인사말(1:1~2) 이후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을 드립니다(1:3~14). 여기서 중심이 되는 단어는 ‘예정’과 ‘구원’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1:3, 4, 7, 11, 12, 20) 이뤄졌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예정’에 의해 창세전에 결정된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임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께서 그 어떤 일도 행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으로 진행됩니다(1:4~10). 이를 위해 바울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인 ‘예정’과 ‘구원’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할 교회의 의무를 언급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주권과 능력이 행사돼야 할 곳이라고 설명하며, 어떤 악한 세력도 흔들 수 없으며,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23).
2장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다루며, 교회 내에 일어난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신분 변화를 설명합니다. 과거 그들은 혈통과 상관없이 진노의 자녀였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신분이 회복된 큰 사랑을 받은 자가 됐음을 가르칩니다(2:3~7).
바울은 이 같은 신분 변화를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일어난 일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 은혜받은 자로 그 은혜로 하나님의 권속이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8~19). 바울은 진노의 자녀였던 자들이 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의 권속이 됐음을 자각하고, 함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모두가 알기 원했습니다(2:20~22).
이처럼 우리는 나의 구원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렇게 모인 성도들이 함께 지어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됐다는 사실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교회 안의 분쟁과 다툼은 사라지게 됩니다.
은혜받은 자가 드리는 기도(엡 3장)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에게 주신 비밀과 그가 맡은 직분에 대해 말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라는 말은 바울의 사도직을 의미하며,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상속자’ 또는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됐음을 의미합니다(3:2~6).
바울은 자신의 직분을 은혜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성도들의 영적 강건함과 사랑이 더욱더 충만해질 것을 간구합니다(3:14~19). 이처럼 3장은 사도라는 직분을 은혜로 감당하게 된 바울이 성도들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기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은혜받은 자들의 모임(엡 4:1~16)
에베소서 1~3장이 교리적인 내용을 다뤘다면, 4~6장은 실질적 부분을 다룹니다.
먼저 교회의 하나 됨과 교회를 위해 주신 다양한 은사를 잘 감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핵심 비결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서는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4:2).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용납입니다. 기본적으로 성도 간의 갈등은 자신에게 있어서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바울은 이 같은 갈등을 봉합하며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는 데에는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용납하는 마음이 우선임을 가르칩니다. 또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 세상 풍조에 휘둘리지 않는 장성한 분량의 믿음에 이른다고 알려 줍니다(4:11~16).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믿음의 분량을 더욱 확장시키고, 지체 안에서 용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함께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은혜받은 자답게 사는 법(엡 4:17~6:24)
바울은 은혜받은 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과거 이교도로 살았을 때의 옛 모습을 버리고,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돼야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4:17~24).
이를 위해 실생활에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일과 선한 말을 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자신이 은혜받은 자임을 알았다면 실생활에서도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뜻입니다(4:25~32). 또한 지혜 있는 자, 곧 주의 뜻을 중히 여기는 자로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이 삶의 핵심되는 기준입니다(5:21). 사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상전과 종의 경우, 비록 대상은 다르지만 주께 하듯 상대방을 대하면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전신 갑주를 입고 악의 영들과 대적할 것을 요구하는데, 바로 이 같은 무장 이후에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이 기도와 간구임을 강조합니다. 은혜받은 자로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선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바르게 착용하고, 성령 안에서 깨어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6:10~24).
받은 은혜를 다시 베푸는 삶(몬 1장)
빌레몬서는 바울의 개인 서신으로 빌레몬에게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기를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복음으로 인한 오네시모의 변화를 설명하며, 오네시모의 잘못을 용서해 주기를 권고합니다. 빌레몬도 바울에게 이미 복음의 큰 빚을 진 자였기에, 바울은 빌레몬이 받은 사랑을 오네시모에게도 베풀기를 바랐습니다.
바울 역시 예수님께 은혜받은 자이기에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 다른 동역자도 이 같은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레몬이 이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빌레몬의 순종을 확신했던 것으로 봐서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길 바라는 바울의 마음을 빌레몬 또한 이해했으리라 봅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 은혜를 누군가에게 다시 베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이 같은 내리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영혼의 쇠약 상태에서 벗어나라(시 106편)
시편 106편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대한 서사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자신의 백성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실하신 하나님과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스스로 영혼의 쇠약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시인은 영혼의 쇠약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금 은혜받은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지키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죄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온전히 사는 길을 선택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대신해 죗값을 대신 치르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바울도 이런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오네시모가 치러야 할 죗값에 대해 은혜 베풀기를 요구합니다. 이런 일들이 세상의 이해타산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허황된 이야기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랑과 용서를 통한 구원 역사를 펼쳐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답게 받은 은혜를 값없이 나누는 은혜받은 자의 삶이 우리 안에 온전히 뿌리내리기를 소원합니다.
<날솟샘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