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5. QT큐티체조. 요한1서 1 John 2:18-25.

간단설명.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는 이 마지막 때에 진리 안에 거할 것을 권면한다.

성경본문. 요한1서 1 John 2:18-25.
한글본문.
18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영어본문.
18.Dear children, this is the last hour; and as you have heard that the antichrist is coming, even now many antichrists have come. This is how we know it is the last hour. 19.They went out from us, but they did not really belong to us. For if they had belonged to us, they would have remained with us; but their going showed that none of them belonged to us. 20.But you have an anointing from the Holy One, and all of you know the truth. 21.I do not write to you because you do not know the truth, but because you do know it and because no lie comes from the truth. 22.Who is the liar? It is the man who denies that Jesus is the Christ. Such a man is the antichrist–he denies the Father and the Son. 23.No one who denies the Son has the Father; whoever acknowledges the Son has the Father also. 24.See that what you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remains in you. If it does, you also will remain in the Son and in the Father. 25.And this is what he promised us–even eternal life.

도움말.
적그리스도(18절). 사람들에게 진리를 떠나도록 미혹하는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인물(Antichrist)을 가리킨다.
기름 부음(20절). 헬라어 ‘크리스마’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요한일서에만 2회 등장하는데(27절 참조), 구약에서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돼 사용할 때 행해졌고(출 29:7, 30:25 참조), 여기서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됐다. 그리스도(헬. 크리스토스)는 기름 부음을 받은 분이다.
거하면(24절) 계속해서 거하며 이를 붙들고 충실하게 고수하는 것(remain faith-ful-NLT)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22, 25절)?
⬇ 아래로 인간. 마지막 때의 특징은 무엇인가(18절)?
? 물어봐.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 아버지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23절, 요 14:6, 9-10, 17:21 참조)?
! 느껴봐. 나는 확실한 신앙고백 안에 거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진리의 말씀 안에 어떻게 좀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

Meditation.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라.

마지막 때의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18절). 한때 신앙공동체에 속해 있다가 나간 이들은(19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 시대의 유일한 구원자인 것을 부인한다(22-23절). 물론 처음부터 대놓고 부인하지는 않고, 특별한 깨달음의 말씀이 있으니 성경공부부터 하자고 유혹해 결국 예수님을 참된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자로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이 시대에 새롭게 일어난 다른 한 인물(혹은 선생님, 보혜사 등등)을 진정한 구원자로 믿게 한다(22-23절). 이렇게 우리나라에 일어난 적그리스도가 약 200명, 그중에서 따르는 무리가 제법 되는 나름 성공한 거짓 메시아가 4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요 14:6). 이 진리를 교묘히 거부하는 것은 결국 그가 진리에서 떠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흔들림 없이 굳건한 복음 위에 서 있는가? 진리의 말씀 안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8-09-14. QT큐티체조. 요한1서 1 John 2:12-17.

간단설명. 교회 안의 다양한 신앙 계층을 격려하며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성경본문. 요한1서 1 John 2:12-17
한글본문.
12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영어본문.
12.I write to you, dear children, because your sins have been forgiven on account of his name. 13.I write to you, fathers, because you have known him who is from the beginning. I write to you, young men, because you have overcome the evil one. I write to you, dear children, because you have known the Father. 14.I write to you, fathers, because you have known him who is from the beginning. I write to you, young men, because you are strong, and the word of God lives in you, and you have overcome the evil one. 15.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16.For everything in the world–the cravings of sinful man, the lust of his eyes and 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does–comes not from the Father but from the world. 17.The world and its desires pass away, but the man who does the will of God lives forever.

도움말.
태초부터 계신 이(13절). 생명의 말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1).
흉악한 자(14절). 사탄을 말한다.
세상(15절). 사탄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 곧 하나님과 그의 뜻을 미워하고 방해하는 자들로 구성된 체제를 가리킨다.
육신의 정욕(16절). 육체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죄된 영역을 가리킨다.
안목의 정욕(16절). 소유를 갈망하고 축적하려는 죄를 의미한다(창 3:6, 삼하 11:2-3 참조).
이생의 자랑(16절). 지위나 소유에 집착하는 마음과 외적 교만을 가리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우리가 어떠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지 못하는가(15절)?
⬇ 아래로 인간.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의 특징은 무엇인가(16절)?
? 물어봐. 아비, 청년, 아이들이 갖는 신앙의 특징은 각각 무엇일까(12-14절)?
! 느껴봐. 나의 신앙은 성숙해 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세상에 있는 것들 중 내 믿음을 가장 많이 흔드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

Meditation.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라.
교회 안에는 다양한 신앙의 모습들이 있다. 아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신뢰하는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청년처럼 영적 싸움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말씀으로 이겨나가는 이들이 있다(13-14절). 반면 이제 막 죄사함의 확신을 갖고 일어서려는 이들도 있다(12절). 어떤 모습이든지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세상은 항상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서 성도들을 유혹한다. 세상의 본질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데(16절), 우리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포장해 성도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유혹한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마 4:1-11), 이 세상이 대단한 것처럼 과장해 유혹했다(마 4:8-9 참조). 이런 유혹의 끝은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사탄을 경배하는 것이다(15절).
요즈음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떠나도록 유혹하거나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온전히 주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을까?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9-13. QT큐티체조. 요한1서 1 John 2:7-11.

간단설명.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사랑의 새 계명에 대해 설명한다.

성경본문. 요한1서 1 John 2:7-11.
한글본문.
7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영어본문.
7.Dear friends, I am not writing you a new command but an old one, which you have had since the beginning. This old command is the message you have heard. 8.Yet I am writing you a new command; its truth is seen in him and you, because the darkness is passing and the true light is already shining. 9.Anyone who claims to be in the light but hates his brother is still in the darkness. 10.Whoever loves his brother lives in the light, and there is nothing in him to make him stumble. 11.But whoever hates his brother is in the darkness and walks around in the darkness; he does not know where he is going, because the darkness has blinded him.

도움말.
새 계명(7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다(요 13:34).
옛 계명(7절).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는 구약의 계명을 말한다.
지나가고 … 비침이니라(8절) 현재형 시제로 악의 영역은 사라져가고 그리스도의 영역은 더 왕성해져 감을 의미한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11절). 거짓 교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거부하고 미워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새 계명의 본질적인 특성은 무엇인가(7절)?
⬇ 아래로 인간. 어둠에 있는 자가 갖고 있는 착각은 무엇인가(9절)?
? 물어봐. 옛 계명이 새 계명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7-8절)?
! 느껴봐. 내 안에 지체를 향한 미움과 원망이 있진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의 사랑을 내 주변 지체들에게 어떻게 지혜롭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Meditation. 새로움을 발견하는 자리
새로움은 종종 익숙했던 옛 자리에서 발견된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게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요한 공동체가 붙든 새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약시대부터 익숙했던 계명이었다(요 13:34, 마 22:37-40, 갈 5:14). 이것이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먼저 사랑하신 그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웃을 마땅히 사랑해야 한다. 이전에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둠은 점점 사라지고, 찬란한 진리의 빛이 비추어 우리 안의 어둠을 점점 몰아내고(8절), 사랑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의 빛된 행동들이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지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가? 이들을 향한 적극적인 사랑의 행동들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9-12. QT큐티체조. 요한1서 1 John 2:1-6.

간단설명. 우리에게 있는 대언자를 기억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쓸 것을 권면한다.

성경본문. 요한1서 1 John 2:1-6
한글본문.
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영어본문.
1.My dear children, I write this to you so that you will not sin. But if anybody does sin, we have one who speaks to the Father in our defense–Jesus Christ, the Righteous One. 2.He is the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and not only for ours but also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 3.We know that we have come to know him if we obey his commands. 4.The man who says, “I know him,” but does not do what he commands is a liar, and the truth is not in him. 5.But if anyone obeys his word, God’s love is truly made complete in him. This is how we know we are in him: 6.Whoever claims to live in him must walk as Jesus did.

도움말.
대언자(1절).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로 보혜사로 번역하기도 한다(요 14:16, 26, 15:26, 16:7). 이는 하늘 법정에서 우리를 대신해 변호하는 변호자 역할을 의미한다.
화목제물(2절). 헬라어 ‘힐라스모스’로, 대속죄일 또는 속죄제물을 의미한다.
세상(2절). 그리스도 밖에 거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계명(3절). 요한일서에서 계명은 구약의 율법조항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계명을 의미한다(4:16-21 참조).
온전하게 되었나니(5절). 완료형으로, 요한일서에서는 사랑의 완성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가(1-2절)?
⬇ 아래로 인간.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통해 드러나는가(3-4절)?
? 물어봐. 요한일서가 기록된 중요한 목적은 무엇일까(1절)?
! 느껴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마음을 다해 지키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좀 더 온전해져야 하겠는가?

Meditation. 깊이 알수록 포용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경쟁을 통해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지식을 배워 왔다. 주변의 경쟁자들을 밟고 더 높은 등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알아갈수록 주변 사람들을 배제하는 독성이 있는 게 있고, 알수록 주변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해독제 같은 지식이 있다. 당시 요한 공동체를 혼란케 했던 영지주의자들의 지식은 일부의 깨달음을 얻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성도들을 일절 배제하는 독이 든 지식이었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지 않다. 죄를 범한 성도, 더 나아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이들까지 모두 포용하는 해독제 같은 지식이다. 더 나아가 이 지식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게 한다. 복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형제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알고, 주변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산다.
나는 복음을 제대로 알고 확신하는가? 내가 아는 이 복음은 주변 사람을 살리고 품는가, 아니면 배제하고 밀어내는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더 온전하게 포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2018-09-11. QT큐티체조. 요한1서 1 John 1:5-10.

간단설명. 빛 가운데 사는 성도에게는 서로 사귐이 있고 반복적인 회개가 있다.

성경본문. 요한1서 1 John 1:5-10
한글본문.
5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영어본문.
5.This is the message we have heard from him and declare to you: God is light; in him there is no darkness at all. 6.If we claim to have fellowship with him yet walk in the darkness, we lie and do not live by the truth. 7.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purifies us from all sin. 8.If we claim to be without sin, we deceive ourselves and the truth is not in us. 9.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and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purify us from all unrighteousness. 10.If we claim we have not sinned, we make him out to be a liar and his word has no place in our lives.

도움말.
어둠(5절). 죄와 악을 상징한다.
스스로 속이고(8절). 헬라어 ‘플라나오’로 ‘길을 잃게 하다’ 혹은 ‘타락시키다’, ‘우상숭배에 빠뜨리다’라는 의미이다.
자백(9절). 자기 허물이나 죄를 스스로 고백하거나 인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미쁘시고(9절). 신실하다, 신뢰할만하다는 뜻이다.
범죄하지 아니하였다(10절). 현재 직설법 완료시제로 현재 죄 없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발견하면서 반복적으로 회개할 때마다 어떻게 하시는가(9절)?
⬇ 아래로 인간. 요한 공동체에 만연했던 이단적 주장은 무엇인가(8, 10절)?
? 물어봐. 예수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9-10절)?
! 느껴봐. 나는 빛 가운데 거짓 없이 진리를 말하고 행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나의 중심을 날마다 정결하게 지키려면 어떤 담대한 변화가 필요한가?

Meditation. 반복적인 회개가 있어야 한다.
요한 공동체에 만연했던 이단적 가르침 중 하나는 바로 ‘반복적 회개’의 불필요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속이고 진리를 벗어나는 일이다(8, 10절). 이런 이단은 오늘 우리 주변에도 있다. 이들은 죄사함의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다 사해졌기에 더 이상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죄가 없다며 회개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진리를 거부하는 행위다. 예수를 믿고 의롭다함을 얻었지만,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의 오염된 자아는 계속해서 죄의 실효적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며 나아가야 한다. 넘어질 때마다 우리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한다(9절). 어떤 이단은 여기서 말씀하는 ‘자백’이 ‘회개’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분명 죄에 대한 인정과 뉘우침, 즉 회개다. 이런 회개의 자백이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하게 설 수 있다.
나는 날마다 회개하며 나 자신을 정결하게 지켜 나아가는가? 빛 가운데 거짓 없이 진리를 행하려면 어떤 점을 더욱 힘써야 할까?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9-10. 요한1서 1 John 1:1-4.

간단설명.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의 사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성경본문. 요한1서 1 John 1:1-4.
한글본문.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영어본문.
1.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at and our hands have touched–this we proclaim concerning the Word of life. 2.The life appeare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has appeared to us. 3.We proclaim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4.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도움말.
태초부터 있는(1절). 말씀(로고스)의 선재성을 나타낸다.
사귐(3절). 헬라어 ‘코이노니아’로, 교제, 참여, 연보(물질적 나눔)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말씀은 우리에게 나타나기 전에 어떤 상태로 있었는가(2절)?
⬇ 아래로 인간. 성도는 이 말씀을 어떻게 경험했는가(1절)?
? 물어봐.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3-4절)?
! 느껴봐. 나는 그리스도와 또한 지체 간에 얼마나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좀 더 생생하고 깊이 경험할 수 있겠는가?

Meditation. 말씀과 더불어 사귀라.
교회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깊은 사귐이 있는 곳, 즉 코이노니아의 터전이다. 여기서 맛보는 기쁨은 어둠이 조금도 없고 충만하고 생명력 있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교회가 붙들고 있는 생명의 말씀 때문이다. 교회에 깊은 수준의 교제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생생하게 경험한 것을 서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여전히 성도들의 삶 가운데 역사해 이들로 충만한 기쁨과 생명력을 경험하게 한다. 이 말씀은 태초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교회에 나타나신 바 된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경험하며, 이를 기반으로 교제를 나눌 때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심오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내가 생명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얼마나 되는가? 혹 피상적인 즐거움에만 머무는 관계들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는가? 말씀과 더불어 더 깊은 교제를 나누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9-09. 주일에는 읽는 큐티QT. 살아 있는 교회 11.

간단설명.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직접 먹이지 않는다. 그 대신 양들이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멋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한다. - 존 스토트

한글본문.
베드로후서 3:15-16
15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신명기 29: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Meditation. 권위적인 동시에 잠정적인 Authoritative & Tentative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간혹 자신도 이 말씀의 깊은 뜻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설교자를 만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배나 존경이 더해집니다. 우리도 큐티나 성경을 공부할 때 어려운 구절과 문맥을 만나듯, 설교자들도 모든 본문에 척척박사, 만능 리모컨은 아니기에 어려운 구절에 대해선 어렵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듣는 우리는 이런 설교가들을 위해 더 기도하고 더 응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위와 잠정성, 교리와 불가지론, 절대 무오한 말씀과 오류가 있는 해석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노력해야 한다. 나는 우리 설교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비밀로 하신 것 앞에서는 더욱 침묵하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에 대해서는 더욱 확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절대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계시에 속한 권위와 함께, 오류 가능성이 있는 인간 해석자들에 합당한 겸손과 망설임을 보고 싶다.”(121-2면)

모든 본문을 칼로 무 자르듯이 청산유수로 해석하기보다는 석의(exegesis)에 최선을 다하되 겸손하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설교자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듣는 우리가 그런 설교자들을 선호하면서 요구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달하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는 설교자들이 담대한 확신과 겸손한 망설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가도록 어떻게 응원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실천해 보십시오.

“매주일 우리가 듣는 설교가 권위와 겸비함이 균형 잡힌 설교가 되도록 설교자들을 도와주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