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3.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기를 열망한다.
성경본문. 빌립보서 1:19-26

한글본문.
19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영어본문.
19 for I know that through your prayers and the help given by the Spirit of Jesus Christ, what has happened to me will turn out for my deliverance. 20 I eagerly expect and hope that I will in no way be ashamed, but will have sufficient courage so that now as always Christ will be exalted in my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22 If I am to go on living in the body, this will mean fruitful labor for me. Yet what shall I choose? I do not know! 23 I am torn between the two: I desire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which is better by far; 24 but it is more necessary for you that I remain in the body. 25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I will continue with all of you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26 so that through my being with you again your joy in Christ Jesus will overflow on account of me.

도움말.
구원(19절). 여기서는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의미한다(욥 13:16-16 참조).
육신으로 사는 이것(22절). 이 땅위에서 사는 삶을 가리킨다.
열매(22절). 과제, 부과된 의무의 결과를 말한다.
떠나서(23절). 죽음을 가리키는 헬라적 표현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그리스도는 바울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가(20-21절)?
⬇ 아래로 인간. 바울이 가까운 장래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19, 25절)?
? 물어봐. 바울이 고민하는 것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22-24절)?
! 느껴봐.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가?
➡ 옆으로 실천해. 매일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와 더욱 친밀하게 동행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겠는가?

Meditation.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바울에게는 감옥에서 나가는 것보다 더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 감옥에 있든지 나가든지,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와 함께 동행하시는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다(20절). 이는 그리스도가 바울 안에 깊숙히 자리하셔서 함께 살고 다스리셨기 때문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통치 가운데서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필요로 하고(25절),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저들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며 친밀한 사귐을 영원토록 나누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사실 이것이 바울의 사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천이었다.
그리스도를 향한 깊은 사랑에서 나오는 돌봄과 설교, 전도는 풍성한 열매로 이어지게 한다. 내게는 이런 사랑과 친밀한 교제가 있는가?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며 생각하는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