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별아저씨의 집(우종학 Jong-Hak Woo)의 글을 퍼왔습니다. 성경으로 업을 삼는 사람으로 고민하고 즐기는 내용입니다.
http://solarcosmos.tistory.com/662
[책] The Evolution of Adam by Peter Enns (아담의 진화)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오전 12:57:10 |
지난 추수감사절 휴일에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이제야 올립니다. 풀러신학교 서점에 놀러갔다가 고른 책 중의 하나인데요 Peter Enns 교수가 쓴 The Evolution of Adam 입니다. 2012년에 Brazos Press에서 출판되었네요.
이 책은 인간의 기원, 특히 아담과 관련해서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혹은 아담에 관해서 창세기가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지 않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핵심질문으로 삼아 풀어가는 책입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주로 창세기에 대한 이해를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바울이 아담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다룹니다.
현대인들이 고대나 중세 때와는 다르게 창세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저자는 3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는 바로 과학의 발전 때문입니다. 19세기에 늘어난 과학지식은 자연의 역사 그리고 우주와 생물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과거에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던져주었고 그래서 예전에 창세기를 읽던 방식이 도전을 받았으며 새로운 읽기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얘기입니다.
둘째는 19세기의 성서신학 혹은 성서비평의 발전 때문입니다. 성서신학이 발전하면서 창세기 사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성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기 때문에 창세기 이해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던져준 것이죠. 가령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이야기가 꽤나 다른데 이 두가지는 다른 문서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알려졌지요. 결국 성서신학의 깊이를 통해 창세기를 바르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세번째로는 성서고고학의 발전입니다. 고대 바벨로니아의 문서들의 발견이라든지 근동지역의 문화비교라든지 고고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두번째가 성경 내적인 요소라면 세번째는 성경 외적인 요소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두가지는 성경, 특히 창세기를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물론 성서비평이나 성서고고학의 단점들이나 부작용들도 있지만 수용할만한 학문적 결과들은 결국 창세기에 대한 이해를 깊이있게 해줍니다. 거꾸로 말하면 창세기를 얼마나 엉뚱하게 잘못 읽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성경공부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한 공부를 꼭 해야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창세기를 재조명하고 창세기에 담긴 아담에 대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간단하게 훑어볼까요?
전반부는 창세기가 언제 쓰여졌고 근동지방의 다른 창조이야기와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창세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다룹니다. 저자가 보는 관점은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사적 서술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대근동지역의 다른 신들과 달리, 이스라엘이 믿었던 그 신은 누구인가라는 관점에서 창세기 1,2장이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메세지는 이스라엘의 신만이 진정한 창조주이라는 것이죠. 가령, 창세기 1장의 서술을 보면 다른 민족들의 창조설화와 비슷한 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다른 신들과의 차이점들을 드러냄으로써 이스라엘의 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 1,2장의 서술은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서의 아담을 제시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점으로서 즉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서의 아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믿는 그 신이 누구인가,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창세기의 핵심 메세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과 목적을 이해하면 창세기 1,2장으로부터 자연과 인간의 기원 과정을 세밀하게 (가령 과학적으로) 읽어내려고 하는 독자들의 시도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내용을 읽어내려는 실수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신약의 바울이 아담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다룹니다. 구약 창세기가 역사적 아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신약에서 바울은 아담을 역사적 인물로 기술했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요즘 논란이 되는 새관점과도 관련이 될 수 있을텐데요. 후반부에서는 바울 당대의 랍비들이 구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관련된 내용들 그리고 바울이 제시한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한 원죄와 구속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다룹니다.
저자의 관점을 요약해 보면 로마서에서 바울이 아담을 “인류의 조상”으로 제시한 이유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같은 위치에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이 구원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조상이 되는 아담을 통해서 죄가 들어왔다는 “아담-그리스도”라는 구조를 통해서 창조적으로 제시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실제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깨달음을 갖게 된 뒤에 가능했던 창조적 서술입니다. 바울은 당대의 해석학적 기법들과 스스로 경험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토대로 창세기 2장을 재해석하여 원죄와 구속의 신학을 아담-그리스도의 틀로 풀어서 제시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입니다.
요약을 해보면 이렇습니다.
저자는 인류의 조상으로서 역사적 아담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첫째, 창세기 자체가 인류의 조상, 혹은 인류의 기원을 메세지로 담은 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창세기 1,2 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역사적 서술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서 아담을 제시하고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 원죄와 구속에 대한 바울의 신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입니다. 역사적 아담을 인정하지 않으면 죄와 구속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인 것이죠. 저자는 구원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유효함이 바울이 아담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달려있지 않다고 봅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조상으로서의 아담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신학적 차원에서 아담을 유대인과 이방인의 조상으로 제시했다고 보는 것이죠.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창세기에 제시된 창조스토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해서 많은 부분 저자에 공감합니다. 결국은 신학적 맥락을 봐야 합니다. 성경은 신학적 텍스트니까요. 창세기 1,2장이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가 무엇이었는가를 성서신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 바울이 어떻게 아담을 이해했는가에 관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궁금증을 가질 것 같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성경의 무오성이나 권위, 해석 등등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지겠지요. 가령, 창세기가 아담을 인류의 조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닌데 신약의 바울은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서 바울을 제시하는 것이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와 같은 질문이겠지요. 사실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구약본문의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차용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당대의 해석학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는 이런 사실들이 충격일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성경을 코란이나 혹은 무슨 마법의 책으로 생각하지 말고 “책”으로서의 성경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거꾸로 역설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 중에서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들과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남아있습니다. 가령, 기존에 제시된, 진화한 한 인간(혹은 한 쌍, 혹은 무리)을 하나님이 택해서 영적인 존재로 (영혼을 불어넣었다고 해도 좋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좋습니다만) 만들었다는 관점은 저자가 왜 받아들일 수 없는지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일독을 하셔야 겠습니다. 보수적인 관점은 아니지만 저자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 덧붙여서, 책의 제목은 아담이 진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담에 관한 우리의 이해가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의미합니다.
다음에 읽을 책은 12월 초에 따끈따끈하게 출간된 Four Views on The Historical Adam 입니다. 이 책은 4명의 저자가 역사적 아담에 관해서 서로 다른 관점의 견해를 펼치는 책입니다. 기능적 창조를 제시했던 칼빈대학의 John Walton도 저자 중의 한명이고 John Collins도 저자 중의 한명이군요. 성탄절 프로젝트가 되겠네요. 4개의 관점이 어떻게 다르게 제시되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