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30.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믿음으로만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게 된다. 믿음의 선진들도 이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11:1-7
한글본문.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영어본문.
1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2 This is what the ancients were commended for. 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formed at God’s comman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what was visible. 4 By faith Abel offered God a better sacrifice than Cain did. By faith he was commended as a righteous man, when God spoke well of his offerings. And by faith he still speaks, even though he is dead. 5 By faith Enoch was taken from this life, so that he did not experience death; he could not be found, because God had taken him away. For before he was taken, he was commended as one who pleased God. 6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7 By faith Noah, when warned about things not yet seen, in holy fear built an ark to save his family. By his faith he condemned the world and became heir of the righteousness that comes by faith.

도움말.
실상(1절). 헬라어 ‘휘포스타시스’로서, 직역하면 아래에 세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곧 기초, 실체, 확증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증거(1절). 헬라어 ‘엘렝코스’로서, 객관적 증거 혹은 증명을 의미하는 법률용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믿음으로 바라는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6절)?
⬇ 아래로 인간. 믿음의 선진들이 증거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1-2절)?
? 물어봐. 눈앞에 보이는 것들의 기원과 근거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3절)?
! 느껴봐. 나는 보이는 것들만 실체로 여기고 그것들만 의지하려는 경향은 없는가?
➡ 옆으로 실천해. 이 땅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기원을 깨달았다면 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겠는가?

Meditation. 믿음의 명예의 전당.
믿음으로 그 약속의 실상과 증거를 획득했던 선조들의 면면이 드러난다(1-2절). 소위 ‘믿음의 명예의 전당’이다. 믿음의 거장들의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모두 한결같이 ‘믿음으로’(11:4-5, 7-8, 11, 20, 22, 24, 29, 31)라는 명제가 견인한다. 원문도 동일하다. ‘피스테이’ 곧 믿음으로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가장 앞세운다. 믿음의 거장들의 삶은 그들의 감정과 생각보다 믿음이 앞섰고 믿음이 끌어갔음을 증언한다. 감정이 생기기도 전에, 이성으로 점검해 보기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이 먼저 일한 것이다. 그 당당한 믿음의 걸음 뒤에 결국 이성과 감정도 뒤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믿음의 역사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성과 감정의 눈치만 살펴서는 역사하는 믿음이 일어날 수 없다. 계산과 느낌과 경험을 통한 자기 확신이 득세하는 자리에 능력 있는 믿음은 설 자리가 없다. 참된 믿음은 이것들에 매여서는 안 된다. 이것을 거스르고 다스리는 것이 참 믿음이다. 당신의 믿음은 어떠한가? 감정과 이성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순도 높은 믿음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29.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더욱 담대하게 인내하여 마침내 큰 상을 얻고 약속하신 것을 얻어야 한다. 오실 이가 지체하지 않고 오실 것이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10:26-39
한글본문.
26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영어본문.
26 If we deliberately keep on sinning after we have received the knowledge of the truth, no sacrifice for sins is left, 27 but only a fearful expectation of judgment and of raging fire that will consume the enemies of God. 28 Anyone who rejected the law of Moses died without mercy on the testimony of two or three witnesses. 29 How much more severely do you think a man deserves to be punished who has trampled the Son of God under foot, who has treated as an unholy thing the blood of the covenant that sanctified him, and who has insulted the Spirit of grace? 30 For we know him who said, “It is mine to avenge; I will repay,” and again, “The Lord will judge his people.” 31 It is a dreadful thing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living God. 32 Remember those earlier days after you had received the light, when you stood your ground in a great contest in the face of suffering. 33 Sometimes you were publicly exposed to insult and persecution; at other times you stood side by side with those who were so treated. 34 You sympathized with those in prison and joyfully accepted the confiscation of your property, because you knew that you yourselves had better and lasting possessions. 35 So do not throw away your confidence; it will be richly rewarded. 36 You need to persevere so that when you have done the will of God, you will receive what he has promised. 37 For in just a very little while, “He who is coming will come and will not delay. 38 But my righteous one will live by faith. And if he shrinks back, I will not be pleased with him.” 39 But we are not of those who shrink back and are destroyed, but of those who believe and are saved.

도움말.
짐짓 죄를 범한 즉(26절). 현재분사 시제로, 의도적으로 계속해 죄짓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34절). 헬라어 ‘휘파르크시스’로서 재산, 기업, 생활 등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주님은 어떻게 오시는가(37절)?
⬇ 아래로 인간. 새 언약을 가진 성도는 어떠한 사람들인가(39절)?
? 물어봐. 믿음의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36절)?
! 느껴봐. 나는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음을 늘 인식하고 소망하며 살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더 낫고 영구한 소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Meditation. 앞에 있는 두 가지 약속, 심판과 소유.
앞에 두고 기다려야 할 두 가지 약속이 있다. 하나는 ‘심판’(27, 30절)이며, 다른 하나는 ‘소유’(34절)다. 누가 약속된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짐짓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다(26절). 이들은 예수님을 짓밟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한다(29절). 맑은 물(10:22)이 아니라 맹렬한 불(27절)이 그 위에 부어질 것이다. 그러나 약속된 영구한 소유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하늘의 빛을 받은 후에 고난과 환난을 견뎌내고(32절), 믿음의 공동체와 신실히 교제하며(33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유를 빼앗기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34절). 그들은 빼앗겼던 소유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더 낫고 영구한 소유를 약속받았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앞에 있다. 하늘에서 누릴 영원한 기업이다. 예수님이 그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달려오신다(37절). 뒤로 물러나지 말고 믿음의 담대함과 인내를 품고 그 주님을 마중하며 달려가야 한다. 당신은 지금 손안에 가지고 있는 것보다 영원한 기업을 더 바라보며 인내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2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기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뿐 아니라, 믿는 도리의 소망을 붙들고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10:19-25
한글본문.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영어본문.
19 Therefore, brothers, since we have confidence to enter the Most Holy Place by the blood of Jesus, 20 by a new and living way opened for us through the curtain, that is, his body, 21 and since we have a great priest over the house of God, 22 let us draw near to God with a sincere heart in full assurance of faith, having our hearts sprinkled to cleanse us from a guilty conscience and having our bodies washed with pure water. 23 Let us hold unswervingly to the hope we profess, for he who promised is faithful. 24 And let us consider how we may spur one another on toward love and good deeds. 25 Let us not give up meeting together, as some are in the habit of doing, but let us encourage one another–and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approaching.

도움말.
담력(19절). 헬라어 ‘파레시아’로서,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휘장(20절). 지성소 앞에 드리워진 두 번째 휘장을 말한다.
맑은 물(22절).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물이다(민 5:17, 겔 36: 25).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된 내적 정결의 외적 표징인 세례를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십자가에서 찢어지신 예수님의 육체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20절)?
⬇ 아래로 인간.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은 이들은 서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23-24절)?
? 물어봐. 하늘 성소에 들어갈 담력은 무엇에 근거하는가(19절)?
! 느껴봐. 나는 하늘 성소로 나아갈 때 혼자 나아가지 않고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오늘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Meditation. 하늘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
길이 열렸다. 성소를 가리고 있던 두터운 휘장 가운데를 관통해 하늘의 지성소에 이르는 첩경이 드러났다. 새로운 길이며 생명의 길이다(20절). 그러나 피 없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는 법! 궁극의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지성소에 들어갈 권리와 담력을 얻게 된다(19절). 그 길에 큰 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정결한 물을 뿌리고 이끄신다(21-22절). 가질 것은 오직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다(22절). 그리고 하늘 지성소로 가는 그 길에 함께 붙여주신 믿음의 ‘형제들’(19절)과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며 가야 한다. 함께 하늘 지성소를 삶에서 누려야 한다(25절).
길이 있다.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매 순간 하늘 지성소 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땅의 삶을 넉넉히 이기는 하늘의 도리를 만날 수 있다.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그 지성소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당신은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그 하늘의 지성소를 향해서 걷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2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그리스도께서 드린 한 영원한 제사로 인해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영원히 온전해 다시 죄를 위해 제사드릴 것이 없다. 그들 안에는 새 언약의 법이 역사한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10:11-18
한글본문.
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영어본문.
11 Day after day every priest stands and performs his religious duties; again and again he offers the same sacrifices, which can never take away sins. 12 But when this priest had offered for all time one sacrifice for sins, he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God. 13 Since that time he waits for his enemies to be made his footstool, 14 because by one sacrifice he has made perfect forever those who are being made holy. 15 The Holy Spirit also testifies to us about this. First he says: 16 “This is the covenant I will make with them after that time, says the Lord. I will put my laws in their hearts, and I will write them on their minds.” 17 Then he adds: “Their sins and lawless acts I will remember no more.” 18 And where these have been forgiven, there is no longer any sacrifice for sin.

도움말.
증언하시되(15절). 헬라어 ‘마르튀레오’로서 현재 시제로 표현되었다. 곧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렘 31: 33-34)을 성도들에게 현재적으로 상기시키고 적용하는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뜻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이 드리신 제사의 특징은 무엇인가(12, 14절)?
⬇ 아래로 인간.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의 특성은 어떠한가(11절)?
? 물어봐. 새 언약의 법은 어디에 두어져 있으며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16절)?
! 느껴봐. 나는 내 생각과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의 법을 늘 상기하며 지키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새 언약의 법이 나의 삶을 더욱더 힘 있게 주장하게 하려면 어떤 결단과 변화가 필요한가?

Meditation. 내면에 각인된 새 언약의 법.
땅의 제사장들은 율법을 따라 같은 제사를 매일 서서 드렸다. 그럼에도 죄를 없게 하지는 못했다(11절). 반면 새 언약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12절). 또한 옛 언약 시대의 제사는 제사를 드리는 이들에게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3절), 새 언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더 이상 하나님으로 하여금 죄를 기억하지 않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7절). 그러므로 새 언약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외적인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다. 이마와 팔 마저도 그 율법 조항을 기록한 끈에 묶일 이유가 없다. 사람의 중심인 그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법 곧 그 말씀이 기록되어 역사하기 때문이다(16절).
새 언약 시대를 살아가는 법이 내면 깊은 곳에 새겨졌다. 그 법이 인생을 만들어간다. 마치 디스크에 새겨진 정보와 데이터가 플레이어의 헤드 면과 만나서 재생되듯이, 그 법과 만나면 새 언약에 합당한 삶이 일상에 재생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과 처세의 방식은 새 언약의 법과 늘 만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26 주일에는 읽는 QT. 영성훈련 4.

간단설명. 침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마음이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한글본문. 요한복음 6:8-15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영어본문.
8 Another of his disciple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spoke up, 9 “Here is a boy with five small barley loaves and two small fish, but how far will they go among so many?” 10 Jesus said, “Have the people sit down.” There was plenty of grass in that place, and the men sat down, about five thousand of them. 11 Jesus then took the loaves, gave thanks, and distributed to those who were seated as much as they wanted. He did the same with the fish. 12 When they had all had enough to eat, he said to his disciples, “Gather the pieces that are left over. Let nothing be wasted.” 13 So they gathered them and filled twelve baskets with the pieces of the five barley loaves left over by those who had eaten. 14 After the people saw the miraculous sign that Jesus did, they began to say, “Surely this is the Prophet who is to come into the world.” 15 Jesus, knowing that they intended to come and make him king by force, withdrew again to a mountain by himself.

Meditation. 입에서 피하라
위대한 사막의 교부였던 마카리우스가 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형제들을 축복하며 기도해준 후에 그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형제들이여, 피하라.” 연장자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나와 이곳 사막에 있는데, 어떻게 이곳보다 더 멀리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마카리우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에 대고 “이 입에서 피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침묵하며 하나님의 현존 안에 들어가는 기도 훈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입을 다물고 있다고 침묵이 아닙니다. 성격상 과묵한 사람이 있습니다. 침묵하기 좋은 환경에 사는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할 때에 상대방과 사고방식이 맞지 않아 침묵할 수도 있습니다. 영성 훈련에서의 침묵은 이러한 침묵이 아닙니다. 말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속마음은 장날의 저잣거리처럼 시끄럽고 소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안토니 불룸은 침묵이란 단순히 소음이 없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나를 둘러싸는 하나님의 깊이에 빠져본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까지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현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영성훈련의 시작과 끝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는데, 주님은 침묵이 하나님의 현존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늘 침묵 가운데 홀로 기도하셨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습니다(마 14:23, 26:63, 눅 5:16, 요 6:15).

16세기 위대한 영성가였던 십자가의 성 요한의 조언으로 우리의 영성생활을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은 책이나 설교가 아닙니다. 다만 침묵과 실천뿐입니다. 침묵은 깊은 내적 생활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입니다. 항상 말하고 싶어 하고 언제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해야 하는 영혼은 지체 없이 침묵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 들끓는 소음으로부터 피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내 속에서 들끓는 소음, 세상의 소란에 현혹되는 나의 귀를 닫아주시고, 잠잠히 하나님의 현존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귀를 열어 주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25.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율법은 새 언약의 그림자와 같다. 제사를 반복해야 하는 이유는 짐승의 피로는 능히 속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오셨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10:1-10
한글본문.
1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영어본문.
1 The law is only a shadow of the good things that are coming–not the realities themselves. For this reason it can never, by the same sacrifices repeated endlessly year after year, make perfect those who draw near to worship. 2 If it could, would they not have stopped being offered? For the worshipers would have been cleansed once for all, and would no longer have felt guilty for their sins. 3 But those sacrifices are an annual reminder of sins, 4 because it is impossible for the blood of bulls and goats to take away sins. 5 Therefore, when Christ came into the world, he said: “Sacrifice and offering you did not desire, but a body you prepared for me; 6 with burnt offerings and sin offerings you were not pleased. 7 Then I said, ‘Here I am–it is written about me in the scroll– I have come to do your will, O God.’ ” 8 First he said, “Sacrifices and offerings, burnt offerings and sin offerings you did not desire, nor were you pleased with them” (although the law required them to be made). 9 Then he said, “Here I am, I have come to do your will.” He sets aside the first to establish the second. 10 And by that will, we have been made holy through the sacrifice of the body of Jesus Christ once for all.

도움말.
죄(2절). 문자적으로 양심의 죄를 뜻하며 율법이 정결케 할 수 없었던 내적인 죄를 가리킨다.
단번에(2, 10절). 헬라어 ‘에파팍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나타냄과 동시에 구속 사역의 완전성을 암시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하시기 위함인가(9절)?
⬇ 아래로 인간. 해마다 짐승으로 드린 제사는 어떤 한계가 있는가(3-4절)?
? 물어봐. 율법은 새 언약과 비교해 어떤 특성이 있는가(1절)?
! 느껴봐. 내가 드리는 예배는 과연 율법으로부터 자유한가?
➡ 옆으로 실천해. 율법에 매이지 않고 예수님이 단번에 영원히 이루신 그 속죄의 은혜에 붙들려 예배 드리기 위해 고쳐야 할 부분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양자택일(兩者擇一), 몸과 그림자.
율법은 그림자다. 장차 올 참 형상의 그림자일 뿐이다(1절). 따라서 율법에 매여 있는 제사는 온전할 수 없다. 죄를 깨닫고 기억나게 할 뿐이다(2-3절). 짐승의 피로 드리는 율법적 제사로는 양심의 죄를 능히 없애지 못하기 때문이다(4절). 필연적으로 ‘한 몸’이 와야 했다(5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가져 올 참된 형상, 예수 그리스도의 몸(10절)이 필요했다. 그 몸만이 완전히 죄를 해결할 수 있다. 그 몸의 성육신과 능동적 순종을 통해서 단번에 613가지 율법 조항이 성취되었다. 참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몸(5, 10절)으로 613개 율법의 문들이 열리게 되었다. 참된 마스터키(master key)다.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침내 율법의 문을 통과해 거룩한 존재로 인침을 받는다(10절).
실체가 왔다. 그림자만에 설레며 대망하던 바로 그 참된 몸, 완전한 형상이 왔다. 예수 그리스도시다. 실체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그림자만을 좇을 것인가? 지금 당신은 무엇을 따라 걷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24. QT 큐티체조.

간단설명. 모형 장막에서는 짐승의 피로 정결하게 했다. 그러나 하늘의 장막은 그보다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한다. 사람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단번에 자신을 드린 예수님이 그 제물이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9:23-28
한글본문.
23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영어본문.
23 It was necessary, then, for the copies of the heavenly things to be purified with these sacrifices, but the heavenly things themselves with better sacrifices than these. 24 For Christ did not enter a man-made sanctuary that was only a copy of the true one; he entered heaven itself, now to appear for us in God’s presence. 25 Nor did he enter heaven to offer himself again and again, the way the high priest enters the Most Holy Place every year with blood that is not his own. 26 Then Christ would have had to suffer many times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But now he has appeared once for all at the end of the ages to do away with sin by the sacrifice of himself. 27 Just as man is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28 so Christ was sacrificed once to take away the sins of many people; and he will appear a second time, not to bear sin, but to bring salvation to those who are waiting for him.

도움말.
제물(23절). 원문에는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한 번의 제사로서 속죄 사역이 완전하게 성취되었음을 나타내는 의도적인 표현이다.
세상 끝(26절). 구속사역을 성취하는 때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리킨다.
죄와 상관 없이(28절). 문자적으로 죄 없이라는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앞으로 하실 일은 무엇인가(28절)?
⬇ 아래로 인간. 모든 사람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27절)?
? 물어봐. 손으로 만든 성소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24절)?
! 느껴봐. 나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늘 지성소까지 매일 담대히 나아가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하늘 지성소를 더욱 누리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하겠는가?

Meditation. 궁극의 제물, 예수 그리스도.
‘더 좋은 제물’이 드려졌다(23절). 옛 언약의 제물들에 비할 수 없이 탁월한 제물, 예수 그리스도가 드려졌다. 그로 인해서 나뉘었던 하늘과 땅이 다시 어우러졌고, 하나님과 사람이 만났다. 예수님은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니라 하늘 성소로 친히 들어가셔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24절)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있도록 중보자가 되셨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 끝 구속의 때에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26절). 사람에게 정해진 죽음 뒤의 심판을 거두셨다. 그리고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마지막 때에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해서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28절).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세 번 ‘나타나심’(24, 26, 28절)으로 둘 사이에서 온전한 중보자가 되셨다.
더 좋은 제물로 인해 더 좋은 길이 열렸다. 또 다른 제물은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라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과 삶의 도리를 따를 때 하늘 장막과 성소 앞에 일상이 펼쳐진다. 당신은 예수님을 따라 가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