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1. QT큐티체조. 마가복음 14:43-52.

간단설명. 예수님이 잡히시는 위기의 순간에 베드로의 행동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베옷을 입고 주님을 따르다가 도망친 제자의 모습에서 우리의 어떤 자화상을 발견하게 되는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14:43-52
한글본문.
43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영어본문.
43.Just as he was speaking, Judas, one of the Twelve, appeared. With him was a crowd armed with swords and clubs, sent from the chief priests,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elders. 44.Now the betrayer had arranged a signal with them: “The one I kiss is the man; arrest him and lead him away under guard.” 45.Going at once to Jesus, Judas said, “Rabbi!” and kissed him. 46.The men seized Jesus and arrested him. 47.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48.”Am I leading a rebellion,” said Jesus, “that you have come out with swords and clubs to capture me? 49.Every day I was with you, teaching in the temple courts, and you did not arrest me. But the Scriptures must be fulfilled.” 50.Then everyone deserted him and fled. 51.A young man, wearing nothing but a linen garment, was following Jesus. When they seized him, 52.he fled naked, leaving his garment behind.

도움말.
몽치(43절). 예수님을 체포하러 오는 무리는 예루살렘의 성전 수비대였을 것이다. 몽치는 폭도를 통제하는 데 유용했지만, 유월절 같은 거룩한 날에는 갖고 다니지 않았다.
베 홑이불을 버리고(52절).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벗은 몸을 혐오했다. 예루살렘은 고도가 높으므로 추위를 느꼈을 수도 있지만, 핵심은 서둘러 도망갔다는 것에 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인류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49절)?
⬇ 아래로 인간. 칼을 빼어 든 베드로의 모습에서 인간의 중심성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는가(47절)?
? 물어봐. 벗은 몸으로 도망치고 있는 청년의 모습에서 우리의 어떤 자화상을 보게 되는가(51-52절)?
! 느껴봐. 당신은 칼을 빼는 자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모습으로 도망치는 자인가?
➡ 옆으로 실천해. 위기의 순간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일상의 제자도에 어떻게 힘써야 하겠는가?

Meditation. 싸우고 도망치는 제자들
주님이 군병들에게 잡히는 위기의 순간에 베드로는 주님을 지키려고 칼을 뽑아서 대항했다.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내리쳐서 한 쪽 귀를 베었다. 얼마나 정확한 칼 솜씨인가? 위기의 순간에 보여주는 행동은 한 사람이 지닌 마음의 생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베드로의 중심에는 평화가 아닌 무력 중심적인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힘에는 힘으로, 칼에는 칼로 대항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주님은 그 말고의 귀를 치료해 주셨다(눅 22:51).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교훈까지 주시면서(마 26:52)…. 제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칼을 빼었다가 여의치 못하자 모두 도망쳤다. 벗은 몸으로 도망친 한 청년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허약한 제자도를 보여주는 자화상이지 않은가? 우리 마음 한 구석은 주님을 따르고 싶지만 더 깊은 곳에는 자신의 안전이 먼저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신은 어떤 제자인가? 당신은 신앙적 위기를 만날 때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3-20. QT큐티체조. 마가복음 14:32-42.

간단설명.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현장에 있던 제자들이 마음으로 함께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14:32-42
한글본문.
32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영어본문.
32.They went to a place called Gethsemane, and Jesus said to his disciples, “Sit here while I pray.” 33.He took Peter, James and John along with him, and he began to be deeply distressed and troubled. 34.”My soul is overwhelmed with sorrow to the point of death,” he said to them. “Stay here and keep watch.” 35.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to the ground and prayed that if possible the hour might pass from him. 36.”Abba, Father,” he said, “everything is possible for you.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37.Then he returned to his disciples and found them sleeping. “Simon,” he said to Peter, “are you asleep? Could you not keep watch for one hour? 38.Watch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body is weak.” 39.Once more he went away and prayed the same thing. 40.When he came back, he again found them sleeping, because their eyes were heavy. They did not know what to say to him. 41.Returning the third time, he said to them, “Are you still sleeping and resting? Enough! The hour has come. Look, the Son of Man is betrayed into the hands of sinners. 42.Rise! Let us go! Here comes my betrayer!”

도움말.
아빠 아버지(36절). 아람어 아바는 매우 친밀하고 애정 어린 존경을 표시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이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시험에 들지 않게(39절). 단순한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너희가 곧 당하게 될 시험(testing)에 무너지지 않도록이란 의미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는가(36절)?
⬇ 아래로 인간. 방금 전에 충성을 맹세했던 제자들의 한계는 무엇이었는가(37-38절)?
? 물어봐. 깨어 기도해야 할 시간에 더 피로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38, 40절)?
! 느껴봐. 당신은 위기와 고난의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어려운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하겠노라는 내 믿음의 표현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Meditation. 동상이몽(同床異夢)
제자들에게 곤고한 심정을 토로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의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제자들은 주께서 곧 죽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믿지 못했다. 주님은 지금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계신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다. 그것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말이다.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마 28:20)? 또한 우리가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상이몽이란 말처럼 물리적으로는 주님과 함께 있지만 마음은 함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얼마나 쉽게 경험하는가?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의 미션을 통해 주님을 따르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깨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신은 쉽지 않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을 힘써 따르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3-19. QT큐티체조. 마가복음 14:22-31.

간단설명. 제자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의미의 유월절 만찬을 주님과 나누었다. 그리고 곧 바로 그들이 모두 주님을 버릴 것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의 배신이 지닌 이중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14:22-31
한글본문.
22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영어본문.
22.While they were eating, Jesus took bread, gave thanks and broke it, and gave it to his disciples, saying, “Take it; this is my body.” 23.Then he took the cup, gave thanks and offered it to them, and they all drank from it. 24.”This is my blood of the covenant, which is poured out for many,” he said to them. 25.”I tell you the truth, I will not drink again of the fruit of the vine until that day when I drink it anew in the kingdom of God.” 26.When they had sung a hymn, they went out to the Mount of Olives. 27.”You will all fall away,” Jesus told them, “for it is written: ” ‘I will strike the shepherd, and the sheep will be scattered.’ 28.But after I have risen, I will go ahead of you into Galilee.” 29.Peter declared, “Even if all fall away, I will not.” 30.”I tell you the truth,” Jesus answered, “today–yes, tonight–before the rooster crows twice you yourself will disown me three times.” 31.But Peter insisted emphatically, “Even if I have to die with you, I will never disown you.” And all the others said the same.

도움말.
내 몸이니라 … 언약의 피니라(22, 23절).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익숙한 유월절 빵과 포도주가 대속 사건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구속의 모델인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의 의미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감란 산으로 가니라(26절). 성전 동쪽에 있었던 산으로 올리브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저녁에 그 곳에서 쉬시곤 하셨다(눅 21:37). 그래서 유다도 잘 알고 있었던 지역이었다(요 18:2). 예수님은 유다가 군병들과 그 곳으로 와서 자신을 체포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그 곳으로 가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떡과 잔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22, 24절)?
⬇ 아래로 인간. 베드로는 어떤 호언장담을 하는가(29, 31절)?
? 물어봐. 주님은 제자들과 베드로의 배신을 어떻게 예고하시는가(27절)?
! 느껴봐. 주님께 대한 내 충성은 얼마나 확실하고 견고한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께 헌신하고 충성하겠노라는 결심과 각오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Meditation. 거룩한 대속 의식, 천박한 충성 맹세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제 주님이 유월절을 완성시키려 어린양이 되신 것이다. 그 유월절 만찬을 먹는 날 밤이 바로 권능의 날이었다. 그러나 곧 바로 주님은 제자들이 모두 자신을 버리고 달아날 것을 예고하셨다. 제자들은 모두 충성 맹세를 하고, 충성심이 지나쳤던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잘난 체까지 한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그가 주님을 부인할 것을 단호히 말씀하셨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탓이었을까? 아직 제자들은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주님은 베드로가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 믿음을 더하시길 기도하셨다(눅 22:32). 우리가 주님께 충성을 다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결단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믿음뿐이다.
당신은 주님에 대한 충성이 필요할 때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가(히 12:2)?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성결교회 사중복음 설교 3. 웨슬리의 “신유” 설교

— 활천, 성결교회 사중복음 설교 3. 웨슬리의 “신유” 설교 —

(신유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가르침은 은사 중지론으로 요약될 수 있다. 루터는 말년에 자신의 기도를 통해 후계자 멜랑히톤이 죽음을 벗어나는 신유의 은혜를 경험했으며, 죽기 전 해인 1545년에는 야고보서의 치유의식에 관해 “우리는 이러한 일을 행하는 데 익숙합니다 … 우리는 이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정신착란으로 고통 당하는 한 가구상을 치유했습니다” 라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젊었을 때는, 성경의 기록이 완료된 후에는 “새롭고 특별한 계시나 기적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기적은 끝났고, 신유라고 말하는 기적들은 악마의 술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칼빈 역시 『기독교강요』에서 “사도 시대에 안수함으로써 주시던 기적적인 권능과 나타난 역사는 이미 중단되었다”고 단언했다. 그들은 교황의 사도적 영감 주장이나 중세 교회가 꾸며낸 기적으로 혹세무민하는 것에 대항해 은사 중지론을 주장했으나, 오늘날에는 그 상황이 아닌 논증만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서 반복된다. 교리사적 측면에서 간헐적 주장이나 체험으로써만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은사 중지론을 극복해낸 사람은 존 웨슬리이다. 이 설교는 웨슬리의 설교 “더 좋은 길”, 소책자 “메소디스트의 원리 추가 설명”, 일지(Journals)와 편지 등의 내용을 요약해 재구성한 것이다 – 필자주)

………………………

제목: “믿음의 기도로 병든 자를 구원하라” (약 5:15)

나는 메소디스트 집회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은사나 기적에 관해 계속 질문을 받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요?” “모두가 조장해낸 속임수 아니요?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일은 대낮에 공개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비밀스럽게 소수에게 일어나지요?” 또 많은 사람은 내게 편지로 “환상이나 꿈을 중시하지 마시오. 부르짖거나 눈물 흘리거나 외적인 고백을 한다 해서 그들이 죄를 용서받았다고 착각하지 마시오.”라며 셀 수 없이 경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나는 거의 매일 이런 일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때문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이 한 순간 두려움과 공포, 절망의 영에서 사랑과 기쁨, 평화의 영으로, 또 그들을 지배했던 죄의 욕망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순수한 열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던 중 갑자기 쓰러져 힘을 잃고 격렬한 고통에 휩싸였습니다. 어떤 이는 칼이 자신을 관통하는 느낌, 다른 이는 엄청난 무게로 땅속으로 짓눌리는 느낌, 심장이 터지는 느낌이나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말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다양하게 감동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찔러 자신의 외적인 죄 뿐 아니라 내적인 죄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옥의 불이 이미 저의 가슴에 붙었고, 온 몸은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 있는 듯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다가옴을 보고 심판을 두려워했기에 비탄에 빠져 크게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찔림을 받은 뒤 굳은 신앙을 갖게 된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변화가 참된 것인지 검토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가 자신 위에 흘러내리거나 가슴과 심장에 뜨겁게 퍼부어졌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온 평화와 기쁨과 사랑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또는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변화가, 평화와 기쁨과 사랑으로 역사하신 성령의 활동의 결과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판단의 척도가 되는 것은 거룩한 열매, 즉 그들의 삶의 변화입니다. 악한 죄인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바뀐 것입니다. 맹수에서 양으로, 술주정뱅이에서 단정한 사람으로, 호색가에서 육체의 죄를 혐오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산증인들입니다. 나는 이런 현상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 외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 은사들 중 특히 신유 사건은 많은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1739년 9월 28일, 질병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한 여성이 많은 사람의 기도로 즉시 치유된 일, 1742년 3월 31일, 열병으로 말할 수 없었던 안 캘컷이 기도로 즉시 말문이 열리고 속히 회복된 일, 1740년 11월 16일, 집회 후 병으로 죽게 된 여러 사람이 회복된 일, 1742년 12월 15일, 의사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한 메이릭 씨가 많은 사람의 합심기도로 즉시 회복된 일, 1750년 4월 8일, 심한 열병으로 살 가망이 없었던 루넬 씨가 집회에서 나를 보자마자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린 후 바로 회복된 일, 1778년 10월 16일, 수개월 앓으며 거동하지 못한 여인이 합심기도로 즉시 치유된 일, 1785년 5월 31일, 4주 동안 심한 두통을 앓던 여인이 내 안수 기도로 즉시 고침 받은 일 등 내가 일지에 적은 신유 기록들에 대해서는 많은 산증인들이 있습니다.

나 자신도 신유의 은혜를 자주 경험했습니다. 1741년 3월 21일, 기도로 심한 복통을 고침 받은 일, 1741년 5월 8일, 두통과 허리 통증, 고열로 며칠을 앓고 주일에 드러누워 종일 기침한 후 말조차 할 수 없었을 때 간절한 간구로 많은 사람 앞에서 즉시 치유 받은 일, 1746년 11월 12일, 의사가 고칠 수 없다던 탈장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스피어 씨의 간증을 듣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 치통을 즉시 고쳐주신 일, 1746년 3월 17일과 1781년 9월 2일, 1783년 5월 23일 등 여행 중 세 차례나 다리 부상으로 더 이상 걷지 못하는 말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즉시 치유해주셔서 사역지로 무사히 이동한 일 등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인 신유, 예언, 방언, 통변 등을 설명하면서, 이런 은사들이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에게도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사들을 통해 신자나 불신자에게 유익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200-300년이 지나자 교회에는 이런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온 세상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은사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런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당시 인구 중 그리스도인은 채 이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은사가 멈추어버린 진정한 이유는 많은 사람,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방인과 다를 바 없이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보셨을 때 세상에서 믿음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들이 기독교 교회 내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은 진정한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같이 되어 죽은 껍데기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신유의 은사는 다른 기적적인 은사들이 멈춘 후에도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신유의 은혜마저 소실된 것은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가톨릭교회가 꾸며낸 도유식은 치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예식으로서, 신유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은사가 참으로 지속되게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가장 많은 은사를 받은 사람인 장로들에게 신유의 은사를 활용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 중 두 가지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칠 것이다”(고전 13:8)라고 말씀한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들을 폐할 시점은 온전한 것이 와서 부분적인 것들을 폐할 그 때, 즉 온전한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입니다(고전 13:9-13). 성경은 그 때가 오기도 전에 미리 초자연적 은사와 기적이 폐할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 끝 날까지 어느 시대, 어느 순간, 어떤 정도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기적 행하시기를 멈추실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적이 사도 시대나 특정 시기에 한정될 것이라고 가르치는 구절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위험한 태도는 고함이나 경련, 환상, 입신 같은 특이한 현상을 지나치게 중시해 그것들이 내적인 역사에 필수적이라고 여겨, 그런 것들이 없으면 내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위험한 태도는 그런 현상을 지나치게 경계해 그 모두를 정죄하고, 그것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가 된다고 억측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흉내 내 영적 은사에 대해 불신을 심어줍니다. 그렇다고 은사를 단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역사 전부를 포기하는 것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처음에 이런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아직도 부분적으로 그렇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와 마귀 역사를 분별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위선에 빠져 하나님의 은사를 흉내 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서 그것이 성령의 참된 역사를 부인하거나 평가절하 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림자는 실체에 해를 끼칠 수 없고, 위조 다이아몬드가 있다 해서 진짜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까? 교만을 조심해야 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은사와 기적이라면 무조건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비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적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아직 폐하지 않은 한 종류의 기적이 있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역사와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자연적 원인을 초월하는 것으로 악한 영들이 행하는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한, 여러분 중 이 기적이 그칠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진리의 하나님께서 마귀보다 덜 일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왜 하나님께서 그 탁월한 지혜와 위대하심을 따라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구원은 단지 죽은 후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현재적 구원이자, 우리 영혼이 최초의 건강한 상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 정의와 자비, 진리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위대한 의사이신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영혼과 함께 육체까지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 이중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신자에게 신유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믿음으로 간구하는 여러분들께 주님께서 내적이고 외적인 건강 모두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울신대에서 강의하시는 장기영 박사님의 글입니다. 그의 펫북에서 퍼왔습니다>

2018-03-18. 주일에는 읽는 QT.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3.

간단설명. 하나님은 현실에 안주하는 종들보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가진 아들 딸들을 원하신다. - 폴 스티븐스

성경본문. 창세기 25:29-34
한글본문.
29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Meditation. 야곱의 추진력, 하나님의 열심
창세기를 읽어가다 보면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야곱의 면모를 자주 보게 됩니다. 기다리기보다는 들이대는데 익숙하고 무언가를 추구하고 추진하면서 급기야 일을 만들고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단순히 기질이 그렇다기보다는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폴 스티븐스는 하나님의 복을 알고 받고자 하는 열망이 야곱의 삶을 움직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봤습니다.

“야곱의 추진력은 하나님의 복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다 … 누구나 인정하듯 그의 동기는 순수하지 않았다. 우리와 똑같다. 그러나 그는 복을 간절히 원했다 … 복을 추구하는 것은 야곱의 이야기에서 믿음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 복을 얻기 위해서 야곱은 앉아서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하나님과 겨룬다 … 그는 하나님을 찾아 나서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닦달한다 … 내가 항상 주목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의 심장부는 인류에게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결심이다.”(20-23면)

놀라운 것은 야곱의 열심과 열정의 진원지가 기실 하나님의 열심과 통하는 면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이런 하나님의 열정을 팀 켈러는 ‘탕부 하나님’(Prodigal God)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도 허무에 사로잡혀 위축되고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오뚝이처럼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 주님께 나아가는 삶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새번역으로 창세기 25-35장을 통으로 읽어보십시오.

“우리에게 복 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 우리도 주님의 복을 힘껏 추구하면서 즐거이 누리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3-17. QT큐티체조. 마가복음 14:12-21.

간단설명. 제자들과 유월절 밤을 보내실 장소를 찾고, 또한 하필 유월절 밤 모임에서 그 중 하나가 자신을 팔 것을 예고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14:12-21
한글본문.
12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12.On the first day of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when it was customary to sacrifice the Passover lamb, Jesus’ disciples asked him, “Where do you want us to go and make preparations for you to eat the Passover?” 13.So he sent two of his disciples, telling them, “Go into the city, and a man carrying a jar of water will meet you. Follow him. 14.Say to the owner of the house he enters, ‘The Teacher asks: Where is my guest room, where I may eat the Passover with my disciples?’ 15.He will show you a large upper room, furnished and ready. Make preparations for us there.” 16.The disciples left, went into the city and found things just as Jesus had told them. So they prepared the Passover. 17.When evening came, Jesus arrived with the Twelve. 18.While they were reclining at the table eating,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one of you will betray me–one who is eating with me.” 19.They were saddened, and one by one they said to him, “Surely not I?” 20.”It is one of the Twelve,” he replied, “one who dips bread into the bowl with me. 21.The Son of Man will go just as it is written about him. But woe to that man who betrays the Son of Man! It would be better for him if he had not been born.”

도움말.
유월절 양 잡는 날(12절). 유월절은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에게 독립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그 날의 핵심은 구원을 이루게 한 유월절 어린양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했다(요 1:29).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14절). 주님이 유월절의 주인이심을 의미하는 질문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의 초월적인 예지를 보여주심으로써 하나님이 보내신 유월절 어린양임을 나타내려 하셨다. 이 일에 훗날 사도들의 리더가 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셨다(요 22:8).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주님이 유월절 양 잡는 날의 ‘그 희생양’이 되신 이유는 무엇인가(12, 18절)?
⬇ 아래로 인간. 주님이 유월절에 다락방을 구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지시하신 이유는 무엇인가(13-15절)?
? 물어봐. 주님이 자신을 팔 자에 대해 예고하신 이유는 무엇인가(18절)?
! 느껴봐. 당신은 주님의 유월절을 준비하는 자인가, 아니면 주님을 팔아넘기는 자인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유월절을 예비했던 사람처럼 주님의 구원 역사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다락방 주인처럼
드디어 주님이 제자 중 하나에게 팔려서 대제사장에게 넘겨질 때가 다가왔다. 이 일 전에 주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드셔야 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서의 언약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늘상 있어왔고 익숙한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은 무언가 달랐다. 주님은 누가 자신과 제자들의 유월절 만찬을 예비할지 미리 아셨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신다.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이 얼마나 가슴 섬뜩한 말씀인가? 주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바로 그 자이다. 그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해 준 한 사람이 있었다. 주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구속하시는 일에 귀하게 사용된 사람이었다.
당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는 자인가, 아니면 주님의 구속 역사를 시중들고 돕는 자인가?

2018-03-16. QT큐티체조. 마가복음 14:1-11.

간단설명. 여인이 향유를 주님께 붓는 일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것은 어떤 대조를 이루는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14:1-11
한글본문.
1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영어본문.
1.Now the Passover and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were only two days away, and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ere looking for some sly way to arrest Jesus and kill him. 2.”But not during the Feast,” they said, “or the people may riot.” 3.While he was in Bethany, reclining at the table in the home of a man known as Simon the Leper, a woman came with an alabaster jar of very expensive perfume, made of pure nard. She broke the jar and poured the perfume on his head. 4.Some of those present were saying indignantly to one another, “Why this waste of perfume? 5.It could have been sold for more than a year’s wages and the money given to the poor.” And they rebuked her harshly. 6.”Leave her alone,” said Jesus. “Why are you bothering her? She has done a beautiful thing to me. 7.The poor you will always have with you, and you can help them any time you want.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8.She did what she could. She poured perfume on my body beforehand to prepare for my burial. 9.I tell you the truth, wher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10.Then Judas Iscariot, one of the Twelve, went to the chief priests to betray Jesus to them. 11.They were delighted to hear this and promised to give him money. So he watched for an opportunity to hand him over.

도움말.
유월절과 무교절(1절). 유월절(逾越節)은 출애굽 때 죽음의 천사가 양의 피를 바른 집은 ‘넘어갔다’(passover)는 뜻에서 붙여진 절기이다. 또한 무교절(無酵節)은 유월절 때 누룩을 넣지 않은 반죽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절기 이름이다.
나드 한 옥합(3절). 이스라엘은 귀한 손님이 오면 머리에 향유를 발라주는 것이 풍습이었다. 또한 장례에도 사용되었다(막 16:1). 나드는 원료가 히말라야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값이 매우 비쌌다고 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여인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시는가(6, 8절)?
⬇ 아래로 인간. 예수님을 향한 여인과 유다의 행위는 어떻게 대비되고 있는가(4-5, 10절)?
? 물어봐. 왜 사람들은 여인의 행위에 화를 내면서 허비라 규정했을까(4절)?
! 느껴봐. 당신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여인처럼 온 힘을 다해 기리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을 섬기는 내 태도나 자세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겠는가?

Meditation. 여인의 헌신, 제자의 배신
한 여인이 엄청나게 많은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었다. 방 안은 향유 냄새로 가득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일을 책망했다. 경제적으로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였을까? 여인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오라비 나사로를 살린 분이신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요 12:3) 일년치 연봉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겨우 은전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마 26:15).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두 사람의 이름이 거론된다. 한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지금도 유다처럼 주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죽음에 몰아넣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수님을 자신의 경건의 이익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우리 자신도 두 경우에서 늘 선택해야 한다.
당신은 주님을 경배하며 헌신하는가, 혹 주님을 팔아넘기는 자는 아닌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