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자신의 사도적 정당성에 대한 논증을 마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재물과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었음을 강조하고 이 모든 헌신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임을 밝힌다.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12:11-21
한글본문.
11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6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7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8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영어본문.
11 I have made a fool of myself, but you drove me to it. I ought to have been commended by you, for I am not in the least inferior to the “super-apostles,” even though I am nothing. 12 The things that mark an apostle–signs, wonders and miracles–were done among you with great perseverance. 13 How were you inferior to the other churches, except that I was never a burden to you? Forgive me this wrong! 14 Now I am ready to visit you for the third time, and I will not be a burden to you, because what I want is not your possessions but you. After all, children should not have to save up for their parents, but parents for their children. 15 So I will very gladly spend for you everything I have and expend myself as well. If I love you more, will you love me less? 16 Be that as it may, I have not been a burden to you. Yet, crafty fellow that I am, I caught you by trickery! 17 Did I exploit you through any of the men I sent you? 18 I urged Titus to go to you and I sent our brother with him. Titus did not exploit you, did he? Did we not act in the same spirit and follow the same course? 19 Have you been thinking all along that we have been defending ourselves to you? We have been speaking in the sight of God as those in Christ; and everything we do, dear friends, is for your strengthening. 20 For I am afraid that when I come I may not find you as I want you to be, and you may not find me as you want me to be. I fear that there may be quarreling, jealousy, outbursts of anger, factions, slander, gossip, arrogance and disorder. 21 I am afraid that when I come again my God will humble me before you, and I will be grieved over many who have sinned earlier and have not repented of the impurity, sexual sin and debauchery in which they have indulged.

도움말.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11절). 그리스도의 참된 사도들 곧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스스로를 바울보다 우월한 사도라고 주장한 순회설교자들을 가리킨다(2:17, 11:5).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바울이 믿고 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21절)?
⬇ 아래로 인간. 바울이 자신을 해명한 이유는 무엇인가(19절)?
? 물어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구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14절)?
! 느껴봐. 나의 언행심사는 나의 덕이 아닌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나의 덕이 아닌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 지금 내가 계획하는 일들 중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과 더욱 힘써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Meditation. 부모의 심정으로 너끈히 품은 공동체
바울에 대한 악성 루머가 유포될 때 고린도 성도들은 그를 변호해주지 않았다. 바울 스스로 억지 변호를 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11절). 이에 비방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일축하기 위해 그들의 방식 곧 ‘자기 자랑’으로 대응하면서 참된 ‘사도의 표’를 개진한다(12절). 또한 고린도 교회의 생활비 지원을 사양한 것에 대해서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고 문제 삼자,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동기가 있었음을 밝히며 양해를 구한다(13절). 받아도 문제요, 받지 않아도 문제다. 이에 오히려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품는다. 영적 부모로서 재물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내어주겠다는 사랑의 결심을 더욱 확고히 밝힌다(14절). 바울이 진정으로 얻기 원한 것은 사람이었고, 하기 원한 것은 그들의 덕을 세우는 것이었다(19절).
진심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당신의 진심을 말씀의 돋보기로 살펴보라. 공동체 안에서 당신이 진정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토록 힘쓰고 애쓰는 것이 스스로의 입지를 세우기 위함인가, 주님의 몸과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함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선교의 핵심

mission
선교의 핵심
알코올 중독자의 모임에서 연사로 초청된 사람이 큰 유리 통 두 개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각 유리통 안에는 벌레가 있었다.
연사는 알코올 중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두 개의 유리통 안에는 벌레들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이 첫 번째의 유리통에 물을 붓겠습니다.” 물을 부으니 유리통 안에 있는 벌레들이 헤엄을 치면서 돌아다녔다. 연사가 이번에는 두 번째 통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알코올을 붓겠습니다.” 하며 알코올을 붓자 벌레가 죽어서 둥둥 알코올 위로 떠다녔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연사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그러자 한 사람이 손을 들어 대답한다. “술을 마시면 내 몸 안에 있는 모든 벌레가 모두 죽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대답이 사실인가? 아니다. 그 사람은 핵심을 놓쳤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핵심을 놓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하나님께서 왜 교회를 두셨으면 교회로 하여금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모른 채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행하러 오신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으셨다. 이것이 선교이다. 영어로 선교를 의미하는 mission은 특별한 임무를 받고 파송되는 것을 뜻한다. 영어의 ‘mission’ (선교)와 ‘missionary’(선교사)는 라틴어 ‘mitto’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선교의 실행은 가는 것
어느 날 새끼 낙타가 엄마 낙타에게 물었다. “엄마, 왜 나는 이렇게 커다란 발가락이 3개나 되나요?” 엄마 낙타가 대답했다.
“사막을 지날 때 모래 위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있는 거란다.” “그럼, 눈썹은 왜 이렇게 길어요?” “사막을 지나는 동안 모래가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지.” “그럼, 등에 혹은요?” “그건 건조한 사막을 지날 때 물을 저장해 두기 위해서란다.” 새끼 낙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멋있어요, 엄마. 큰 발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고, 긴 눈썹이 있어
서 눈에 모래도 안 들어가고, 혹이 있어서 물을 저장해 둘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엄마 ….” “응, 아가야?” “왜 우리는 지금 동물원에 있나요?”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복음을 세상의 힘든 지역에까지 전달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안락하고 안전한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 울타리 밖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나오지 않는 한 선교는 시작되지 않는다. 추수할 곳이 있는 곳 어디든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은총이 필요한 곳에 가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선교는 탁상공론이 아니다. 선교는 안락한 곳을 떠나서 선교의 대상에게 가는 것이다. 가지 않는 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교의 동기는 불쌍히 여김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 당시 독일군은 곳곳에 가스실에서 유대인들을 무수히 죽였다. 그때 쉰들러는 가스실에서 벌거벗은 유대인 엄마가 아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어가면서도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가스를 덜 마시게 하려고 그를 품에 안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유대인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돈으로 수천 명의 유대인을 구하고 자신은 무일푼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금반지로 한 명을 더 구할 수 있었고, 자기 차로 10명을 더 구할 수 있었고, 금 핀으로 2명을 더 구할 수 있었다고 탄식하며 애통한다. 그는 영혼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선교를 위한 최상의 동기는 천국 밖에서 멸망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있었기에 무리를 먹이시고 소경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시며 아들을 잃은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들을 살려주시며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다. 그리고 귀신 들린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영적 필요를 돌보셨다. 예수님은 보고 느끼시고 행동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 그것이 선교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언제 영혼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는가?
예수님의 동기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심이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보고,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잃은 영혼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선교는 대상에 대해서 긍휼이 여기는 마음, 그들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교의 능력은 기도
오늘날 지구에 24,000 여 개의 민족, 또는 종족이 있다. 언어는 6,809개이다. 14,000여개의 종족(48억)에게 복음이 들어갔지만 그 중 20억은 아직 비신자이다. 10,000여개의 종족에게는 교회가 없고 복음이 안 들어 갔다. 그 인구가 19억이다. 이들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모국어로 된 성경이 없다. 약 40억 인구가 비신자이다. 전체 67억 인구 중의 반 은 복음을 듣지도 못했다. 이 은혜의 추수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심판의 다음 추수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루에 전세계에서 15만 명 이상이 죽는다. 1분에 약 100명꼴이다. 그 중 10만 명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죽는다. 즉, 지옥에 떨어진다. 1분에 65명 정도가 지옥에 간다.
추수할 곳은 너무나 많다. 그런데 우리는 가지도 않고 별로 관심도 없다. 긍휼의 마음이 없고, 또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일꾼을 위해 기도하되 가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종종 우리의 사역이 인간중심이고, 사업적일 때가 많다. 사업처럼 전략은 잘 짜는 데 가장 중요한 자원인 기도를 소홀히 할 때가 있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그분이 하신다. 우리를 통해 하신다. 우리의 우선적 임무는 기도이다. 기도는 선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 유일한 통로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인적자원, 물적자원, 방법, 그리고 영적전쟁에서의 승리도 가져다 주신다. 10장에 보면 12명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들을 내 보내신다. 열 두 명 중에 늘 베드로가 가장 먼저 나온다. 제자들 중에 수장격이다. 베드로에 대해 잘 안다. 그는 충동적이다. 혈기 왕성하다. 엉성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다. 초점은 베드로를 사용하셨다면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다. 나는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신다. 그리스도인의 핵심은 다름 아닌 선교이다. 이것이 교회공동체의 핵심이다. 선교에 있어서 성공의 열쇠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일과 기도에 더 가까이 가는 일이며 실행하는 것이다. 선교의 실행은 가는 것이고, 선교의 동기는 긍휼이고, 선교의 능력은 기도이다.
선교가 갖춰야만 하는 구색이 아닌 잃은 영혼들에 대해 가지셨던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같은 마음을 갖고 기도하며 나갈 때 주께서 기뻐하시고 더 많은 영혼을 추수하실 것이다.
Worldteach Tbm<사람을 세우는 사람 2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