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9. 주일에는 읽는 QT. 영성훈련 3.

간단설명. 내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잃어 버렸을진대, 어느 성소에 가서 하나님을 찾아본들 무슨 소용이랴. - 앤소니 드 멜로

한글본문. 요한일서 1:1-4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영어본문.
1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at and our hands have touched–this we proclaim concerning the Word of life. 2 The life appeare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has appeared to us. 3 We proclaim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4 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Meditation. 하나님을 찾습니다
『종교 박람회』에 나오는 참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웃 사람이 보고 다가가 묻습니다.
“뭘 찾고 계십니까?”
“열쇠를 잃어버렸다오.”
둘이 함께 쭈그리고 앉아 잃어버린 열쇠를 계속 찾았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이웃 사람이 물었습니다.
“열쇠를 어디서 잃어버리셨지요?”
“집에서요.”
“허! 그런데 어째서 여기서 찾고 있습니까?”
“여기가 더 밝으니까요.”

어거스틴은 원죄가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이고, 둘째는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탐욕이고, 셋째는 비록 행복이 있는 곳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들의 샘으로 삼은 것이다.”(렘 2:13, 새번역)

지금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을 찾고는 있습니까? 모든 것의 답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며, 그 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방황하고 있는 것이며, 행복해지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공허할 뿐입니다. 우리의 영적 행복과 참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며 만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무지하고, 탐욕이 가득하고, 나약합니다. 도우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을 찾게 하옵소서.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1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땅의 제사장들과 달리 예수님은 영원하셔서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땅의 제사장들은 그들 역시 죄인이기에 자기 죄를 먼저 속죄해야 했지만 예수님은 단번에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7:23-28
한글본문.
23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영어본문.
23 Now there have been many of those priests, since death prevented them from continuing in office; 24 but because Jesus lives forever, he has a permanent priesthood. 25 Therefore he is able to save completely those who come to God through him, because he always lives to intercede for them. 26 Such a high priest meets our need–one who is holy, blameless, pure, set apart from sinners, exalted above the heavens. 27 Unlike the other high priests, he does not need to offer sacrifices day after day, first for his own sins, and then for the sins of the people. He sacrificed for their sins once for all when he offered himself. 28 For the law appoints as high priests men who are weak; but the oath, which came after the law, appointed the Son, who has been made perfect forever.

도움말.
합당하니(26절). 헬라어 ‘프레포’로서 합하다, 적당하다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분과 사역의 적절성과 충분성을 시사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살아계신 예수님이 지금도 하고 계시는 일은 무엇인가(25b)?
⬇ 아래로 인간. 온전한 구원을 누리기 위해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가(25a)?
? 물어봐. 율법과 맹세의 말씀의 차이는 무엇인가(28절)?
! 느껴봐. 내가 가진 담대함은 율법을 지킨 공로로부터 나오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버려야 할 율법적 공로의식이나 율법적 기준은 무엇인가?

Meditation. 멀티태스커(multi-tasker) 대제사장.
예수님의 탁월성과 우월성이 다시 논증된다. 땅의 제사장들에 비해 적어도 두 가지 존재론적 특성에서 우위를 점하신다. 땅의 제사장들은 본질적으로 수명의 제약이 있다. 그들의 수효가 많아야만 하는 이유다(23절). 또한 땅의 제사장들은 성소로 들어갈 때 자신의 죄 문제를 반드시 선결해야 한다(27절). 그러나 예수님은 본질상 영원하시기에 그 대제사장 직분도 영원한 것이며(24절), 스스로 죄가 없으시기에 단번에 제사를 완성하신다(27절). 존재론적 특성 또한 일당백(一當百)을 감당하는 멀티태스커시다. 예수님 한 분으로 인해 온전하고 충분한 구원이 이루어졌다. 그뿐 아니라 하늘 은혜의 보좌 앞에 지금도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외친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다”(26절).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누릴 수 있다. 그 안에서 지금도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합당하신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당신은 지금 그 구원의 풍족함을 만끽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1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아론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들을 통해 온전함에 이를 수 없었기에 새로운 제사장이 세워져야 했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새로운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7:11-22
한글본문.
11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영어본문.
11 If perfection could have been attained through the Levitical priesthood (for on the basis of it the law was given to the people), why was there still need for another priest to come–one in the order of Melchizedek, not in the order of Aaron? 12 For when there is a change of the priesthood, there must also be a change of the law. 13 He of whom these things are said belonged to a different tribe, and no one from that tribe has ever served at the altar. 14 For it is clear that our Lord descended from Judah, and in regard to that tribe Moses said nothing about priests. 15 And what we have said is even more clear if another priest like Melchizedek appears, 16 one who has become a priest not on the basis of a regulation as to his ancestry but on the basis of the power of an indestructible life. 17 For it is declared: “You are a priest forever, in the order of Melchizedek.” 18 The former regulation is set aside because it was weak and useless 19 (for the law made nothing perfect), and a better hope is introduced, by which we draw near to God. 20 And it was not without an oath! Others became priests without any oath, 21 but he became a priest with an oath when God said to him: “The Lord has sworn and will not change his mind: ‘You are a priest forever.’ ” 22 Because of this oath, Jesus has become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도움말.
언약(22절). 헬라어 ‘디아데케’로서, 17회 사용되며 유언, 서약, 의지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의지’를 가리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22절)?
⬇ 아래로 인간. 성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19절)?
? 물어봐. 율법은 어떤 특징과 기능을 가지는가(12, 18-19a)?
! 느껴봐. 나는 예수님을 율법보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변화되어야 할 생각과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

Meditation. 최고의 언약의 보증.
더 좋은 소망이 왔다(19절). 새 언약이다. 연약하고 무익한 율법이 주장하는 옛 언약은 폐하고(18-19절) 더 좋은 언약 새 언약이 수립되었다. 새 언약이 더 좋은 소망이 되는 이유는 그 보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보증이 되신다(22절). 그가 탁월한 보증이 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자신의 맹세로 세우셨기 때문이다(20절). 그 외에 어떤 제사장도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지지 않았다. 오직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만 하나님의 맹세가 담겼다. 이보다 확실한 인감도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맹세로 세우신 보증인을 대제사장으로 의지하고 나아가면 때를 따라 돕는 하늘 은혜의 보좌는 떼놓은 당상이다.
하나님의 보증과 맹세가 있는 더 좋은 언약이 세워졌다. 폐한 옛 언약에 묶일 이유가 없다. 새 언약 속에 담긴 약속들을 누리기에도 인생은 짧다. 블루칩만 잡으면 된다. 지금 당신이 붙잡고 있는 약속은 무엇인가? 그 약속에는 하나님의 보증서가 있는가? 식언(食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맹세가 동반된 것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16.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아브라함이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아브라함 안에서 모든 레위 지파가 함께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을 의미한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7:1-10
한글본문.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영어본문.
1 This Melchizedek was king of Salem and priest of God Most High. He met Abraham returning from the defeat of the kings and blessed him, 2 and Abraham gave him a tenth of everything. First, his name means “king of righteousness”; then also, “king of Salem” means “king of peace.” 3 Without father or mother, without genealogy, without beginning of days or end of life, like the Son of God he remains a priest forever. 4 Just think how great he was: Even the patriarch Abraham gave him a tenth of the plunder! 5 Now the law requires the descendants of Levi who become priests to collect a tenth from the people–that is, their brothers–even though their brothers are descended from Abraham. 6 This man, however, did not trace his descent from Levi, yet he collected a tenth from Abraham and blessed him who had the promises. 7 And without doubt the lesser person is blessed by the greater. 8 In the one case, the tenth is collected by men who die; but in the other case, by him who is declared to be living. 9 One might even say that Levi, who collects the tenth, paid the tenth through Abraham, 10 because when Melchizedek met Abraham, Levi was still in the body of his ancestor.

도움말.
의의 왕(2절). 문자적으로 나의 왕은 의롭도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여호와 우리의 공의’(렘 23: 6)로 부른 것과 연결된다.
살렘 왕(2절). ‘살렘’이라는 지명은 평강을 의미하는 ‘샬롬’과 동일한 어근에서 비롯된 단어로 평화, 평강으로 번역된다. 장차 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평강의 왕(사 9:6)이라 칭한 것과 연관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과 멜기세덱은 어떠한 면에서 서로 닮았는가(1-3절)?
⬇ 아래로 인간. 영적인 축복의 원리는 무엇인가(7절)?
? 물어봐.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준 것은 어떤 의미인가(2, 9-10절, 메디테이션 참조)?
! 느껴봐.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축복의 통로인 것을 늘 확신하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의 중보에 맡겨 드려야 할 나의 삶의 문제는 무엇인가?

Meditation. 아브라함 안에서 누리는 축복.
멜기세덱의 이름 뜻은 ‘의의 왕’이며, 또한 살렘 땅의 왕이기에 ‘평강의 왕’이라 칭한다. 또한 부모의 이름도 없이 신비롭게 역사의 무대에 출현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3절). 상천하지에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의 예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예표인 멜기세덱에게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드리고 그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그의 허리에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나왔다(10절). 제사장 지파의 선조인 레위 역시 아브라함에게서 비롯되었기에, ‘대표성의 원리’에 입각해 결국 모든 제사장들이 아브라함 안에서 멜기세덱을 섬겼고, 그에게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 예표적 논증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지위가 절대적임을 확증한다.
믿음의 족보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후손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절대적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만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축복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 오늘 당신을 생명으로 인도할 대제사장은 누구인가? 당신에게 진정한 축복의 통로는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7-15. QT큐티체조.

간단설명.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하나님보다 큰 분이 없기 떄문이다. 그 맹세의 실체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시며, 이 소망이 영혼의 닻이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6:13-20
한글본문.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영어본문.
13 When God made his promise to Abraham, since there was no one greater for him to swear by, he swore by himself, 14 saying, “I will surely bless you and give you many descendants.” 15 And so after waiting patiently, Abraham received what was promised. 16 Men swear by someone greater than themselves, and the oath confirms what is said and puts an end to all argument. 17 Because God wanted to make the unchanging nature of his purpose very clear to the heirs of what was promised, he confirmed it with an oath. 18 God did this so that, by two unchangeable things in which it is impossible for God to lie, we who have fled to take hold of the hope offered to us may be greatly encouraged. 19 We have this hope as an anchor for the soul, firm and secure. It enters the inner sanctuary behind the curtain, 20 where Jesus, who went before us, has entered on our behalf. He has become a high priest forever, in the order of Melchizedek.

도움말.
보증하셨나니(17절). 헬라어 ‘메스토오’로서, ‘둘 사이의 간격을 가득 채우거나 충만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이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13절)?
⬇ 아래로 인간. 아브라함은 어떻게 약속을 받았는가(15절)?
? 물어봐. 우리가 큰 안위를 누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17-18절)?
! 느껴봐. 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오래 참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오늘 더욱 인내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Meditation. 깊이 내려야 할 영혼의 닻.
하나님이 약속 위에 맹세를 더하셨다(13절). 최후 확정이다(16절). 새 언약 속에서 약속하신 구원의 풍요로움을 확고한 의지로 담보하셨다. 그 맹세의 내용과 실체는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이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성소로 우리 앞서 들어가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맹세의 내용이다(20절). 길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이제 하늘 소망의 길이 열렸다. 이제 할 일은 소망의 닻을 오직 하나님의 약속 위에 던져두고 큰 안위를 누리며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19절).
맹세가 더해진 확고부동한 이 약속에 대한 소망이 영혼의 닻이다. 세상의 격랑 속에서도 이미 천성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정박할 수 있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조류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파도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것도 아니다. 소망의 닻을 하나님의 약속에 내리는 것이다. 믿음의 좌표를 흔드는 거친 세류가 밀려드는 세상 속에서 당신의 소망의 닻은 지금 어디에 내려져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15-07-14.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은혜의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체험한 후에도 다시 타락하는 사람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있게 된다. 끝까지 부지런함으로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서 약속을 기업으로 받아 누려야 한다.

성경본문. 히브리서 6:4-12
한글본문.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영어본문.
4 It is impossible for those who have once been enlightened, who have tasted the heavenly gift, who have shared in the Holy Spirit, 5 who have tasted the goodness of the word of God and the powers of the coming age, 6 if they fall away, to be brought back to repentance, becauseto their loss they are crucifying the Son of God all over again and subjecting him to public disgrace. 7 Land that drinks in the rain often falling on it and that produces a crop useful to those for whom it is farmed receives the blessing of God. 8 But land that produces thorns and thistles is worthless and is in danger of being cursed. In the end it will be burned. 9 Even though we speak like this, dear friends, we are confident of better things in your case–things that accompany salvation. 10 God is not unjust; he will not forget your work and the love you have shown him as you have helped his people and continue to help them. 11 We want each of you to show this same diligence to the very end, in order to make your hope sure. 12 We do not want you to become lazy, but to imitate those who through faith and patience inherit what has been promised.

도움말.
이보다 더 좋은 것(9절). 옛 언약에 비교해 새 언약의 우월함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10절)?
⬇ 아래로 인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11-12절)?
? 물어봐.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본 뒤에 타락하는 것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4-6절)?
! 느껴봐. 나의 최고의 기업은 하나님의 약속들임을 확고히 믿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그 약속을 기업으로 믿고 바라는 사람으로서 지금 다시 결정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참된 기업, 구원 안에 보장된 약속들.
하늘의 빛을 한 번 얻고서도 결국 타락해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한 사람들을 향한 무서운 경고가 쏟아진다(1-3절). 당시 초대 기독교 공동체를 떠나 유대교로 돌아간 배교자들에 대한 저주다. 그들은 하늘의 비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음에도 결국 가시와 엉겅퀴를 낸 사람들로서 종국에 불사름을 받게 될 것이다(8절). 반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합당한 채소를 낸 사람들은 복을 받게 될 것이다(7절). 그리고 ‘이보다 더 좋은 것’(9절) 곧 옛 언약에 보장된 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로 충만한 새 언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옛 언약으로 돌아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 구원 안에는 모든 약속들이 있다. 그 안에 있을 때 날마다 믿음(12절), 소망(11절), 사랑(10절)의 삼중창을 부를 수 있다.
성도의 참된 기업은 구원에 보장된 하나님의 약속들이다(9절). 구원은 천국비자만이 아니다. 오늘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약속들이다. 그 안에 나의 감정을, 관계를, 구습을, 처세의 방식까지 변화시키는 약속들이 있다. 당신은 그 약속의 쿠폰북(coupon book)을 지금 활용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