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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한 구원일까요?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한 구원일까요?]
1. 현대인들은 이런 질문에 ‘예스’ 아니면 ‘노’로 답을 원합니다. 즉, 정확한 교리를 원하지요. 하지만 유대교가 교리주의에 관심이 없듯이, 신약의 저자들도 교리주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의 질문의 답은 ‘예스냐 노냐’가 아닙니다.
2. 성서의 저자들은 현대 서구인들이 아닙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성서를 읽고 해석할 때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자유의지’와 같은 몇 가지 가르침을 제외하면 체계적인 교리적 정립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고요.
신약의 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성삼위일체 교리, 구원론, 신론, 교회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초대교회에서도 매우 후대입니다. 이방신자들이 늘어나면서 헬라철학을 사용하여 이를 설명하기 시작하지요. 신약저자들은 이런 교리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치밀하고 모순 없는 가르침으로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유대인들이 교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중세시대에 마이모니데스가 정리한 13개 교리 이후입니다. 이 역시 중세 기독교의 영향력 때문이었지요. 이 13개 교리에 대하여도 치밀한 설명을 하려들지 않습니다.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종교에 관해 오토독시(정확한 교리)보다는 오토프락시스(정확한 실천)에 관심이 많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치밀한 교리가 아니라 치밀한 실천에 관심을 더 보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 예수님과 논쟁할 때도 교리보다는 ‘율법을 어떻게 지키는가’에 대한 행위들에 대한 이견이 많았지요. 그들은 ‘어떻게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4. 신약성경의 내용 역시 이런 영향으로 치밀하고 정확한 교리를 정립하고 체계화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절대적 의미, 절대적 잣대, 빈틈없는 교리보다는 관계성을 절대화합니다. 의, 구원, 칭의, 죄, 은혜 등은 관계적인 용어입니다. 수치화, 규격화, 범주화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은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올바른 관계를 원하시지, 가르침을 규격화, 범주화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냄새 나시는 하나님이시죠. 자비롭고, 봐주시고, 따뜻하시죠.
6. 히브리 방식은 이원론과 획일화를 싫어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서구인들이 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화하려 든다고 비웃을 거여요. 하나님까지 규격화하려 들고 구원방식도 규범화한다고요. 사복음서가 있는 것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를 함께 선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때론 헬라인들이 볼 때는 완전히 모순되는 내용을, 히브리인들은 동시에 맞는다고 수용합니다.
7. ‘100% 은혜냐 100% 믿음이냐?’ 이런 질문을 들으면 바울이 ‘껄껄’ 웃을 것 같아요. 그런 질문들 앞에 ‘참, 할 일도 없다’고 비웃을 것 같아요. 유대식 세계관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왕이면 1000%라고 하지 왜 하필 고작 100%냐고 비아냥거릴 거여요.
관계를 어찌 수치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구원, 언약, 사랑, 은혜를 교리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천만에요. 이는 우리의 관심일 뿐입니다. ‘천만 배 사랑해’란 표현이 수치일까요?
8.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냐? 아니냐?’ 이런 질문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신약은 이중적 태도를 취합니다. 교리적 접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자가 없고 끝까지 지켜주신다’와 ‘인침을 받은 자는 마지막 때까지 다 보호함을 받는다’고도 말씀하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믿음을 지켜내라’와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라’라고도 합니다. 문자적인 교리로 만들기엔 모순이 생기지요.
9. 신약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그리 강조해도 믿음과 상관없이 구원받은 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요한은 태아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자 어머니 뱃속에서 뛰노는 모습으로 선지자 노릇을 합니다. 바울도 자신의 의지와 정반대로 구원과 소명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는 의지가 꺾인 것이지요. 이런 차원에서 인간의 믿음보다 앞서는 예정설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이런 방식으로 구원과 소명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우시고 우리도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관계는 규범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지요.
신약의 저자: 그럼요 당연하죠.
# 예외는 없나요?
신약의 저자: 왜 없겠어요. 그야 하나님 맘이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이죠.
10. 사람들은 성경을 참으로 문자적으로 읽기를 좋아합니다. 성경을 무슨 정확하고 치밀하게 길을 알려주는 매뉴얼처럼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묘사들 중 다수는 뭉뚱그림으로 쓰였고 매뉴얼로 사용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치밀성이 없습니다. 저는 문자적으로 믿고 성경대로 해서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을 확신합니다. 예수님의 명령 그대로 목숨을 걸고 좁은 길을 가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식구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문자적인 가르침일까요? 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가 기독교인 중에도 얼마나 있겠습니까?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지혜로운 행동원리들이지, 규정과 교리 혹은 치밀하게 법으로 정할 수 있는 가르침들이 아닙니다.
11. 아버지가 불효하는 아들에게 ‘호적에서 파버리겠다. 나가 죽어라.’ 하고 야단치며 과장된 호통을 칠 때 이는 문자적으로 알아들을 내용이 아닙니다. 성경도 이런 과장법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12. ‘구원을 잃을 수 있나요?’ 관계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인간의 입장에서도 누구나 끊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맘이죠. 신약은 수많은 구절에서 구원의 상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누구나 돌아오면 다 받아주시고 구원의 길에 동행해 주십니다.
13. 구원의 길은 히브리 방식에 따라, 규격화되어 있지도 빈틈없이 교리화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살아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냐? 아니냐?’ 이런 질문이 교리에 관한 것이라면 성경은 답할 가치를 못 느낍니다. 초대교회는 주로 이스라엘의 운명이나 이방인 공동체에 관한 질문은 합니다만, 개인의 구원의 확신과 상실에 대하여는 교리적 질문을 던지지도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불순종의 대가를 당연히 전제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사는 성도라면 구원의 상실에 대한 위험을 알아야 하며,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성도라면 주님이 구원을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 결론:
– 하나님의 인자는 끝이 없지요?
– 신약의 저자들: 그럼요!
– 저는 의지도 연약하고 구원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 신약의 저자들: 염려마세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으니 반드시 지켜주실 거여요.
–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까? 배교하고 아무렇게나 살아도요.
– 신약의 저자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하나님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그런 자들은 영원한 멸망을 경험할 것입니다.
신약에서 영원한 구원은 교리가 아니라 관계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P.S. 교리화를 반대하거나 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택견을 발레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교리화하기엔 너무나 히브리적인 책입니다. 다만 현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리의 유익이 많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만 한계를 알아야지요.
굳이 교리화한다면 신약의 저자들은 칼메니언주의자들일 것입니다(칼빈주의 + 알메니언) <이민규 교수님의 펫북에서 퍼왔습니다>
2018-06-12. QT큐티체조. 사사기 21:1-7.
간단설명. 자신들이 수행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뒤늦게 깨달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의 후손들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를 고민한다.
성경본문. 사사기 21:1-7.
한글본문.
1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3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4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7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영어본문.
1.The men of Israel had taken an oath at Mizpah: “Not one of us will give his daughter in marriage to a Benjamite.” 2,The people went to Bethel, where they sat before God until evening, raising their voices and weeping bitterly. 3.”O LORD, the God of Israel,” they cried, “why has this happened to Israel? Why should one tribe be missing from Israel today?” 4.Early the next day the people built an altar and presented burnt offerings and fellowship offerings. 5.Then the Israelites asked, “Who from all the tribes of Israel has failed to assemble before the LORD ?” For they had taken a solemn oath that anyone who failed to assemble before the LORD at Mizpah should certainly be put to death. 6.Now the Israelites grieved for their brothers, the Benjamites. “Today one tribe is cut off from Israel,” they said. 7.”How can we provide wives for those who are left, since we have taken an oath by the LORD not to give them any of our daughters in marriage?”
도움말.
없어지게 하시나이까(3절). 원문으로 ‘결핍하다’, ‘빠지다’라는 뜻으로 전체에서 결원이 생겼다는 뜻이다.
뉘우쳐(6절). 히브리어 ‘뉘함’으로 뉘우치다, 마음을 돌이키다는 뜻과 함께 불쌍히 여기다는 뜻이다.
끊어졌도다(6절). 원문으로는 ‘찍혀버려지다’는 뜻으로, 주로 도끼나 칼로 나무나 우상을 찍어버리거나 잘라내는 것을 묘사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베냐민 지파를 진멸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는가(3절, 20:28 참조)?
⬇ 아래로 인간. 전쟁 후 이스라엘 백성의 고민은 무엇인가(7절)?
? 물어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딸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1절)?
! 느껴봐. 나는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뒤늦게 후회하고 뉘우치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경솔한 맹세를 피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실하게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매 순간 주를 보라.
동족 베냐민을 진멸하듯 살해하고 보니 한 지파가 거의 소멸하다시피하고 남자만 겨우 600명이 남았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스라엘 12지파가 자칫 11지파로 전락하게 생겼다. 이스라엘 백성은 벧엘에 모여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앉아 큰 소리로 울며 어찌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사라지게 하시냐고 원망어린 탄식을 늘어놓는다(3절). 그러나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하셨지만, 동족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20:28 참조). 이스라엘 스스로 베냐민을 진멸하기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그들과의 결혼을 금지시키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들과의 통혼을 금지시키고 맹세까지 한 것이다(1, 7절). 결국 이스라엘은 자기 소견에 사로잡혀 그릇 행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회개하지만,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나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행하는가? 경솔한 결단이나 맹세를 피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실하게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11. QT큐티체조. 사사기 20:38-48.
간단설명. 전쟁은 이스라엘의 큰 승리로 끝난다. 베냐민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과의 전투 장면으로 결국 베냐민은 패해 600명만이 남는다.
성경본문. 사사기 20:38-48.
한글본문.
38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약속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솟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39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쳐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틀림없이 처음 싸움 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40연기 구름이 기둥 같이 성읍 가운데에서 치솟을 때에 베냐민 사람이 뒤를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41이스라엘 사람은 돌아서는지라 베냐민 사람들이 화가 자기들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42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려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에서 진멸하니라 43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싸고 기브아 앞 동쪽까지 추격하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44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만 팔천 명이니 다 용사더라 45그들이 몸을 돌려 광야로 도망하였으나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 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그 뒤를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 명을 죽였으니 46이 날에 베냐민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가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 명이니 다 용사였더라 47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을 지냈더라 48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영어본문.
38.The men of Israel had arranged with the ambush that they should send up a great cloud of smoke from the city, 39.and then the men of Israel would turn in the battle. The Benjamites had begun to inflict casualties on the men of Israel (about thirty), and they said, “We are defeating them as in the first battle.” 40But when the column of smoke began to rise from the city, the Benjamites turned and saw the smoke of the whole city going up into the sky. 41.Then the men of Israel turned on them, and the men of Benjamin were terrified, because they realized that disaster had come upon them. 42.So they fled before the Israelites in the direction of the desert, but they could not escape the battle. And the men of Israel who came out of the towns cut them down there. 43.They surrounded the Benjamites, chased them and easily overran them in the vicinity of Gibeah on the east. 44Eighteen thousand Benjamites fell, all of them valiant fighters. 45.As they turned and fled toward the desert to the rock of Rimmon, the Israelites cut down five thousand men along the roads. They kept pressing after the Benjamites as far as Gidom and struck down two thousand more.
46.On that day twenty-five thousand Benjamite swordsmen fell, all of them valiant fighters. 47.But six hundred men turned and fled into the desert to the rock of Rimmon, where they stayed four months. 48.The men of Israel went back to Benjamin and put all the towns to the sword, including the animals and everything else they found. All the towns they came across they set on fire.
도움말.
진멸(42절). 히브리어 ‘헤렘’으로 적과 적의 성읍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가축을 죽이고 성과 성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파괴해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쉬는 곳에서(43절). 쉬지 않고 추격해 짓밟았다는 뜻이다.
이삭 줍듯(45절). 싸울 힘과 능력이 없는 이들을 손쉽게 무찔렀다는 뜻이다.
만나는, 닥치는(48절) 동일한 히브리어 ‘니므차’로 ‘발견하는 것’은 모두 멸망시켰다는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교만한 베냐민을 어떻게 심판하셨는가(47-48절)?
⬇ 아래로 인간. 이스라엘은 베냐민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42, 48절)?
? 물어봐. 베냐민 사람들이 심히 놀란 이유는 무엇인가(41절)?
! 느껴봐. 내가 교만하여 방심할 때는 언제인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절제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Meditation. 허락하신 승리에서 끝까지 절제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를 맛보았다. 베냐민을 맹렬하게 공격하고(41절), 승기를 잡은 이스라엘은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전장에서 1만 8천명을 진멸한다(42절). 진멸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방민족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할 때 사용했던 단어다. 하지만 여기서는 동족 베냐민을 칠 때 사용한다. 진멸은 한 부족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세를 몰아 림몬 바위로 가는 길에서 4천명을 쉽게 죽이고, 계속해서 뒤를 추격해 2천명을 죽여 모두 2만 5천명을 진멸했다. 뿐만 아니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듯 베냐민 자손의 성읍으로 들어와 부녀자와 아이들과 가축을 닥치는 대로 다 치고 불사르며 진멸했다(48절). 허락하신 승리 안에 겸손해야 했건만, 이들은 절제하지 못하고 끔찍한 악을 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내가 교만하여 방심할 때는 언제인가? 하나님이 주신 승리 가운데 겸손하게 절제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10. 주일에는 읽는 QT.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15.
간단설명. 그리스도인이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가식이나 속임이 아니라, 각 사람이 하나님의 독특한 창조물임을 기념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 캐서린 로크하트
성경본문.
창세기 38:12-19
13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 18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Meditation. 옷입기(Dressing): 다말 이야기
야곱의 아들 유다와 과부가 된 맏며느리 다말 이야기에는 사소해 보이는 옷이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성경이 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하게 옷 이야기를 하나 할 수도 있지만, 야곱 자신은 물론이고(형 에서의 옷을 입고 아버지를 속였고), 레아(동생의 옷을 입고 결혼 장막에 들어갔고), 유다(동생의 채색옷에 숫염소 피를 묻혀 동생이 죽었다고 믿게 했고), 그리고 다말 이야기에서 옷은 여러 차례 변장과 관련해 사용되었습니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이는 옷이 어떤 인상을 준다는 말이다. 이 인상은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어떤 모습인 경우가 많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옷을 입는 것으로는 거짓말을 못한다. 옷은 자신에 대한 진실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하여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것 같이, 의복도 우리의 내면을 보여 준다. 한편 의복은 유혹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말이 나오는 지저분한 사건에서 다시 한 번 옷은 속임수에 사용된다.”(244면)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실제 옷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입을 새 옷에 대해 여러 가지 중요한 성품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패셔니 스타가 되는 것보다 이런 성품들을 매일 새옷처럼 갈아입으면서 우리 내면과 외면을 바꾸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09. QT큐티체조. 사사기 20:29-37.
간단설명. 이스라엘은 베냐민과 세 번째 전쟁에 나선다. 이번에는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고 베냐민을 유인한다.
성경본문. 사사기 20:29-37
한글본문.
29이스라엘이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이스라엘 자손이 셋째 날에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추매 31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쪽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쪽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33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만 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5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36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37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로 돌격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영어본문.
29.Then Israel set an ambush around Gibeah. 30.They went up against the Benjamites on the third day and took up positions against Gibeah as they had done before. 31.The Benjamites came out to meet them and were drawn away from the city. They began to inflict casualties on the Israelites as before, so that about thirty men fell in the open field and on the roads–the one leading to Bethel and the other to Gibeah. 32.While the Benjamites were saying, “We are defeating them as before,” the Israelites were saying, “Let’s retreat and draw them away from the city to the roads.” 33.All the men of Israel moved from their places and took up positions at Baal Tamar, and the Israelite ambush charged out of its place on the west of Gibeah. 34.Then ten thousand of Israel’s finest men made a frontal attack on Gibeah. The fighting was so heavy that the Benjamites did not realize how near disaster was. 35.The LORD defeated Benjamin before Israel, and on that day the Israelites struck down 25,100 Benjamites, all armed with swords. 36Then the Benjamites saw that they were beaten. Now the men of Israel had given way before Benjamin, because they relied on the ambush they had set near Gibeah. 37.The men who had been in ambush made a sudden dash into Gibeah, spread out and put the whole city to the sword.
도움말.
매복(29절). 상대편의 동태를 살피거나 불시에 습격하기 위해 적당한 곳에 몰래 숨어있는 행위다.
꾀임에 빠져(31절). 유인을 당했다는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베냐민을 무찌른 주체는 누구인가(35절)?
⬇ 아래로 인간. 이스라엘은 베냐민과 어떻게 싸우는가(29, 31절)?
? 물어봐. 베냐민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 알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34절)?
! 느껴봐. 내게 연속적인 패배가 좋은 경험이 되었던 적은 없는가?
➡ 옆으로 실천해. 겸손을 늘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Meditation.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라.
세 번째 전투에 나서는 이스라엘은 신중하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지만(28절), 이전처럼 힘 대 힘으로 싸우는 전면전에 나서지 않고 군사를 매복시키고 전략을 짠다(29절). 하나님이 승리를 약속하셨다 하더라도 이전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두 번의 승리로 교만해져 있는 베냐민을 유인하는데(31-32절), 두 번의 패배가 이스라엘에게는 겸손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약이 된 것이다. 반면 베냐민에게 두 번의 승리는 결정적인 패배를 맛보는 치명적인 독이 됐다. 이전에 승리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승리하리라는 교만이 스스로 수세에 몰리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34절). 교만은 완전히 패배하고 나서야 우리 눈에 씌운 비늘을 벗겨 버린다(36절). 하나님은 베냐민의 교만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겸손을 동시에 들어 쓰셨다(35절).
나는 쓰임받기 위해 얼마나 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가? 혹 그동안 잘 해왔다는 자만심이 눈을 가리지는 않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6-08. QT큐티체조. 사사기 20:17-28.
간단설명. 온 이스라엘이 베냐민과 전투를 벌인다. 숫적으로 우세였던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두 번 연속 크게 패한다.
성경본문. 사사기 20:17-28.
한글본문.
17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영어본문.
17.Israel, apart from Benjamin, mustered four hundred thousand swordsmen, all of them fighting men. 18.The Israelites went up to Bethel and inquired of God. They said, “Who of us shall go first to fight against the Benjamites?” The LORD replied, “Judah shall go first.” 19.The next morning the Israelites got up and pitched camp near Gibeah. 20.The men of Israel went out to fight the Benjamites and took up battle positions against them at Gibeah. 21.The Benjamites came out of Gibeah and cut down twenty-two thousand Israelites on the battlefield that day. 22.But the men of Israel encouraged one another and again took up their positions where they had stationed themselves the first day. 23.The Israelites went up and wept before the LORD until evening, and they inquired of the LORD. They said, “Shall we go up again to battle against the Benjamites, our brothers?” The LORD answered, “Go up against them.” 24.Then the Israelites drew near to Benjamin the second day. 25.This time, when the Benjamites came out from Gibeah to oppose them, they cut down another eighteen thousand Israelites, all of them armed with swords. 26.Then the Israelites, all the people, went up to Bethel, and there they sat weeping before the LORD. They fasted that day until evening and presented burnt offerings and fellowship offerings to the LORD. 27.And the Israelites inquired of the LORD. (In those days the ark of the covenant of God was there, 28.with Phinehas son of Eleazar, the son of Aaron, ministering before it.) They asked, “Shall we go up again to battle with Benjamin our brother, or not?” The LORD responded, “Go, for tomorrow I will give them into your hands.”
도움말.
칼을 빼는 자(17절). 무장한 군인을 가리킨다.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18절). 원문에는 ‘갈지니라’는 동사가 없이 ‘먼저다’ 혹은 ‘시작이다’로 되어있다.
엎드러뜨렸으나(21절). 멸망시켰다 또는 죽였다는 뜻이다.
치러 나아가매(24절). 히브리어 ‘카라브’는 ‘가까이 가다’는 뜻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감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18, 23, 28절)?
⬇ 아래로 인간. 두 번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결과를 맛보았는가(21, 25절)?
? 물어봐. 세 번째 기도와 비교할 때 이스라엘의 첫 번째, 두 번째 기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18, 23, 28절)?
! 느껴봐. 나는 결론부터 미리 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진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려면 어떤 중심의 변화가 필요할까?
Meditation. 결론부터 내고 기도하지 말라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기다리지도 않고 미리 내린 결론을 관철시키는 식으로 기도했다. 이미 싸울 것을 결론내리고 누가 먼저 갈까를 묻는 기도였다. 이에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라고 응답하시는데, 순서가 먼저라고 했지 먼저 가서 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두 번째 기도도 싸울까 말까를 겸손하게 묻는 게 아니라, 다시 가서 싸우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묻는 기도다. 하나님이 올라가라고 하신 것은 승리의 응답이 아니라, 싸우러 가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이는 사사기 처음에 유다에게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고 하신 응답과 분명한 차이가 난다(1:2 참조). 마침내 유다는 처음부터 다시 묻는다. 제대로 묻는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시며 베냐민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약속하신다(28절).
나는 미리 결론을 내리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결론을 유보하고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묻는가? 결론부터 내고 기도하는 함정에 유의하라.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