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라헬을 향한 사랑으로 7년간 일한 야곱은 라반에게 아내를 요구한다. 그러나 라반은 첫날밤에 라헬 대신 언니인 레아를 들여보내고, 야곱은 라헬을 얻는 대가로 다시 7년을 섬기기로 한다.

성경본문. 창세기 29:21-30
한글본문.
21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영어본문.
21 Then Jacob said to Laban, “Give me my wife. My time is completed, and I want to lie with her.” 22 So Laban brought together all the people of the place and gave a feast. 23 But when evening came, he took his daughter Leah and gave her to Jacob, and Jacob lay with her. 24 And Laban gave his servant girl Zilpah to his daughter as her maidservant. 25 When morning came, there was Leah! So Jacob said to Laban, “What is this you have done to me? I served you for Rachel, didn’t I? Why have you deceived me?” 26 Laban replied, “It is not our custom here to give the younger daughter in marriage before the older one. 27 Finish this daughter’s bridal week; then we will give you the younger one also, in return for another seven years of work.” 28 And Jacob did so. He finished the week with Leah, and then Laban gave him his daughter Rachel to be his wife. 29 Laban gave his servant girl Bilhah to his daughter Rachel as her maidservant. 30 Jacob lay with Rachel also, and he loved Rachel more than Leah. And he worked for Laban another seven years.

도움말.
속이다(25절). 에서가 이삭에게 야곱이 한 일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단어다(27:35-36 참조).
칠 일을 채우라(27절). 결혼을 하면 7일 동안은 합방을 하는 당시의 관습을 반영한다. 이는 신랑의 의무였으며 이로써 온전한 결혼관계를 이뤘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의 공의는 야곱의 삶 가운데 어떻게 나타나는가(25절)?
⬇ 아래로 인간. 삼촌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큰 딸을 준 것에 대해 뭐라고 변명하는가(26절)?
? 물어봐. 야곱이 삼촌의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칠년을 더 일한 이유는 무엇인가(30절)?
! 느껴봐. 나는 타인이 상처받고 싫어하는 것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상처 주고 받는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를 돌아보고 고쳐야 할 삶의 자세와 태도는 무엇인가?

Meditation. 뛰는 야곱 위에 나는 라반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라반에게 속은 야곱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누구보다 약삭빠르고,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까지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고스란히 속임을 당한다. 그것도 자신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던 것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당한다. 야곱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해 아버지를 속였다. 형의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 형인 척 했던 것이다. 삼촌 라반은 야밤에 야곱이 잘 볼 수 없는 틈을 이용해, 언니 레아를 라헬인 것처럼 속였다. 자신이 가족을 속인 그대로 당한 것이다.
이 배후에는 야곱을 사랑하셔서 언약을 이루기 원하시지만 그의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다. 하나님은 죄인 야곱을 사랑하시지만 그의 죄는 미워하셨다. 하나님의 이런 인도하심 속에는 야곱의 잘못된 죄의 습관을 변화시켜 축복의 통로로 삼기 원하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었다.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잘못된 습관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그 백부장은 동성애자가 아니다 – 로마 노예제에 대한 오해와 이해.

동성애자에게는 복음이며, 가슴떨리는 감동이지만, 보수주의자에게는 악몽이며 신성모독이다. 최근 SNS 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마태복음 8 장에 나오는 “파이스” 가 백부장의 동성연인이라는 주장 말이다. 이 논쟁의 귀추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동성애 찬성 진영의 승리가 될 것 같다. 그런 허술한 글을 읽고 입장을 바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잽 펀치를 자주 맞으면 쓰러질 수 있는 법이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동성애와 성서에 관한 논쟁은 로마서 1장의 죄 목록에 등장하는 동성애 언급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동성애 찬성론자들이 아무리 맥락을 찬찬히 설명해 내어도, 근본적으로 불리한 게임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선을 마태복음 8 장으로 옮겨와서 불을 붙이는 것은 일거에 구도를 바꾸어 놓는 효과가 있다.

성서학자로서 나는 백부장 이야기의 동성애적 해석이 본문에 대한 왜곡일 뿐만 아니라, 주석적 엄밀성도, 논리적 정합성도, 그레코 로만 사회에 대한 필수 지식도 갖추지 못한 허술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나의 해석학적 입장은 성서가 열린 텍스트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성서 안에 여러 목소리가 있으며, 심지어 같은 본문도 읽는 사람과 그 정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독자 반응 비평이나, 제 3 세계의 성서해석을 주의깊게 경청하는 입장에 있다. 특별히 수십년 동안 진행되어져 온, 여성신학적 성서읽기가 초기 그리스도교의 면모를 밝히는 일에 끼친 공헌에 대해서는 비록 그 결과를 전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을 때에도, 머리숙여 경의를 표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들 중에는 성서가 열린 텍스트임을, 시대와 청중을 초월해서 권위와 적절성을 갖는 진리를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 준, 현대에 있어서 성서의 실질적 귄위를 높인 신앙의 영웅들이 많다.

그러나, 성서가 열린 텍스트라고 해서, 성서 본문을 가져다 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서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뜻을 가진 채 전달 된 이상, 그 본래 뜻을 헤아리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성서 본문을 놓고 가능한 하나의 해석을 제안하는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이 유일하게 옳은 해석임을 주장하는 닫힌 해석학적 입장에 있는 주장이라면 더욱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Mark Tyler Connoley와 Jeff Miner의 책 에 나오는 백부장 이야기 해석은 그런 해석의 일례이다. 논리의 중요한 골격은 아래와 같다.

파이스라는 단어가 세 가지 뜻으로 쓰였고, 누가복음에는 “엔티모스 둘로스” 라고되어 있으므로 (1) 아들은 아니고, 그러면 노예일 수 밖에 없다.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파이스라 불리고 있으니 (2) 보통 노예(ordinary slave) 는 아니고 각별한 노예일 것이다. 그러니 (3) 동성 애인 일 수 밖에 없다.

첫째로, 파이스의 해석 가능성을 위의 세 가지로 나열한 것은 옳다. 그러나,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세 해석이 다 동일한 비중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말은 아니다. 세 선택항 사이의 빈도 수와 비중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파이스는 압도적으로 아들, 소년 (사실은 딸, 소녀까지 포함하는 단어이다)등의 의미로 쓰였고, 노예라는 등으로 쓰인 적은 좀 더 적었지만 일반적이었고, 동성애인으로 쓰인 예는 극소수이다. 이 본문에서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맥락은 “노예”이다. “동성애인”은 지극히 드문 용례에 속하기 때문에, 이 해석을 선택할 경우에는 다른 경우 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이 쪽 해석의 저울에 올려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저자들의 저울은 빈약하다.

둘 째, 마태복음 저자의 신학과 문화적 정향 (orientation), 그리고 마태복음을 정경으로 받아들인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평균적 윤리의식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 대로의 마태와 신약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정경에 실었을 리는 만무하다. 아주 희박하지만, 논리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해석은 의외로 동성애 옹호론자인 마태가 동성애적 코드를 암호처럼 이 단어에 심어 놓았을 가능성이다. 이는 마치 유명한 스타 연예인이 눈을 찡긋하는 것을 보고 “저건 나에게 윙크한 것이야. 우리는 마음이 통해. 나는 분명히 알아” 라고 말하는 소녀 팬의 주장과 비슷하다. 뭐라고 하겠는가? 그게 사랑인데…. 그냥 놓아두는 수 밖에. 그러나, 이 주장이 객관적으로 인정 받으려면 최소한의 방증, 그 스타가 이 소녀에게 전화를 했다거나, 문자라도 한 번 보냈다거나, 이름이라도 안다는 정도의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가발전이다. 적어도 마태복음이 파이스에서 주는 힌트는 기껏해야 이 정도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세째로, Connoley와 Miner는 백부장이 9 절에서 종을 “둘로스”라 부르지만, 8 절에서 이 종을 “파이스”라고 부르기 때문에 다르게 취급하고 있는 것이며, 이 파이스는 “보통 노예 (Ordinary slave)”와 구별되는 특별한 노예였다고 주장한다. 명칭을 결정하는 것은 맥락이다. 9 절은 명령과 복종의 맥락이기 때문에 둘로스라는 일반적인 단어를 썼고, 8 절은 아픈 이가 자신에게 소중한 대상임을 호소하는 맥락이기 때문에 파이스를 썼다. 이 파이스가 다른 맥락에서 둘로스라 불리지 않았을거라는 증거는 없다. 나는 학교에서 교수라고 불리지만, 채플에 설 때는 목사로 불린다. 같은 예수님을 언제는 “주여” 했다가 언제는 “랍비여” 한다. 그게 맥락이다.

Connoley와 Miner는 이 파이스가 보통 노예인가 아니면 동성애인이가 이항대립을 제시하고 보통 노예일수 없기 때문에 동성애인임에 틀림없으며, 다른 가능성은 없다라는 형식논리적 논증을 하고 있다. 이는 로마사회 노예제도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해석이다. 노예제 사회를 인구의 25% 이상이 노예인 사회로 정의한다면, 역사상 이 분류하에 들어가는 사회는 여섯 개 밖에 없다. 그 중의 두 개가 미국의 노예해방 이전시대와 로마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의 로마 노예제에 대한 선입견은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상식을 로마 사회에 대입해 넣은 그림이다. 그러나, 로마의 노예 제도는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노예들이 사회의 최하층에서 최상층까지 골고루 포진해 있었고, 노예들에게만 한정된 직업도 없었고, 노예들에게 원천적으로 제한된 직업도 드물었다. 로마군으로 복무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예도 사유재산을 가졌고, 많은 노예들을 거느리기도 했고, 사회의 최상층에 포진한 엘리트 노예들도 다수 있었다. 대표적인 이들이 황제의 노예들 (“가이사 집 사람들”) 이었다.

로마인들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산 노예와 자신의 집에서 태어난 노예들을 구별했다. 집에서 태어나 집안에 머무르며 일하는 노예를vernae 라 불렀으며, 들에서 농사일을 하는 노예들과는 상당히 다른 대우를 했다. Vernae 들과 개인적인 친밀감을 발전시킨 예들은 많다. 아래는 공화정 말기의 유명한 정치가요 연설가였던 키케로의 동생이 키케로에게 보낸 편지이다.

친애하는 마르커스 ….. 나는 형님이 티로에게 해준 일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형님이 그의 이전 신분이 그가 받아야 할 응분의 대우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노예가 아닌 우리의 친구로 삼기로 선택한 결정 말입니다. 내 말을 믿어 주세요. 나는 형님과 티로의 편지를 읽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Epistulae and Familiares 16.6. K. Bradley “Slavery and Society at Rome. 1 면에서 재인용).

형이 티로라고 하는 노예를 해방시키기로 결정한 것을 편지로 전해 듣고 기쁨과 감사를 표현한 편지다. 형인 마르커스 키케로 역시 티로에 대한 애틋한 정이 담긴 편지를 많이 남겼다. 그런가 하면, 로마인들이 노예를 극단적으로 가혹하게 다루었던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요점은 로마의 노예제도가 상당히 복잡한 제도이며, 노예들 중에서도 사회적 지위나 주인과의 관계에 엄청난 차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위의 책, 1-4면). 결국, 로마사회에서 “보통노예 (ordinary slave)” 라는 개념자체가 있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다.

미국의 노예제도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신약성서에 나온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1:1).” 아들이 종과 다름 없다니, 무슨 말인가? 당시에 유복한 집들에서는 자녀를 유모의 손에서 키웠으며, 유모가 노예일 경우 노예의 자녀들, 가족들과 함께 노예들의 생활공간에서 함께 살게 했다. 유모들이 어머니보다 더 깊은 정서적 유대를 가진 경우도 많았으며 (참조, 살전 2:7) 주인의 자녀들과 노예들이 형제처럼 가까운 연대감을 형성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쩌면, 마태복음 8 장의 백부장이 여성노예의 방에 드나들었으며, 얼마 후에 그 방에서 백부장을 닮은 아들이 태어났고, 이 노예 아이를 “파이스”라 했을 가능성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나는 이럴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보지만, 최소한 파이스를 동성애인으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유력한 시나리오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성서는 열린 텍스트이다. 사회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면밀한 주석적 연구는 본문을 새로운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 주며,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일수록 딱 부러진 대답을 못하는 것이 이유가 있다!). “일반 노예”냐 “동성 연인”이냐 하는 질문을 본문에 강요하여, “동성연인”이라는 결론을 압박해 내는 것은 본문에 폭력을 가하는 행위이다. 분명한 것은 헬라어 파이스의 해석이 사전이 제시하는 1, 2, 3 번 중에서 하나를 기계적으로 골라내는 작업은 아니며, 이 의미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가능성들, 그 의미 영역들이 서로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짧은 지식과 보수적인 상상력이 그려내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이 파이스는 백부장의 집에서 태어난 종(vernae)이다. 아들과 함께 먹고 자고, 친구처럼 자랐을 것이다. 긴요한 종이었기에 먼 원정길에도 따라 왔을 것이다. 혹 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들은 감당하지 못할 슬픔에 빠질 것이다. 백부장 역시 이 파이스를 아들같이 아끼고 돌보고 사랑했다. 아들같이 아끼고 키운 종 이야기는 한국에도 많지 않은가? 이 아이는 다른 노예들 같이 둘로스로 불리기도 했지만, 백부장은 자주 이 아이를 파이스로 불렀다.

파이스가 동성애인이라는 해석의 중요한 전제는 보통 하인이라면 그러한 사랑의 대상이 되었을 리가 없다는 완고한 선입견이다. 동성연애 지지그룹의 생각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기계론적 사고이다. 노예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에로틱한 사랑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깊이,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겠다고 하셨으며,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말하셨다. 비슷한 사랑을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한 적이 있다 종이 친구로 바뀌는 것은 위의 키케로의 편지에서도 확인한 바다. 종이 그 주인과 대등한 우정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주종관계 또한 넘어서게 한다. 신약성서의 증거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주종관계 철폐가 복음 안에서 가능한 변화의 대표적 사례임을 보여준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 하나이다 (갈 3:28; 빌레몬서). 마태복음의 저자는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한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면서, 예수에 대한 전폭적 신뢰 뿐 아니라,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 종(둘로스)를 아들(파이스)처럼 사랑한 그 태도 역시, 예수의 칭찬을 받아 마땅한, 모범적인 신앙의 내용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이스가 동성애인임을 주장하지 않고도, 이 본문은 인류애라는 보편적인 시각에서 가슴 떨릴 정도로 아름다운 내용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파이스가 동성애인을 뜻할 가능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거리가 있다. 예수님이 그 아이를 고쳐 주신 것이 동성연애를 수긍하고 지지하신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이라면 동성연애가 옳지 않다 생각하셨어도, 그를 고쳐 주셨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동성애자인가, 아닌가 따져야 하겠는가? 예수님은 “동성애자는 저리 가라” 하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애인이면 너에게 중요한 상대겠구나. 그러면 내가 고쳐주마” 라고 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만에 하나, 파이스가 백부장의 성적정체성을 고백하는 단어라 하더라도 (다시 말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성적 정체성 (sexual orientation)” 과 관계없이 아픈 이를 위해 간청하는 그의 마음을 귀하게 여겼을 것이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그런 분이다. 동성 연애 주창자나 반대자가 공히 본받아야 할 예수님이 이런 분이라고 생각한다.

성서가 열린 텍스트라는 말은 성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더 나은 통찰이 있을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텍스트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를 주장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선의 연구자도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은 그 동안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성서본문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동성애자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하는데 일조해 왔음을, 또 그것을 정치적 목적이나 종파의 이익을 위해서 악용해 왔음을 회개해야 한다. 기독교는 그 죄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문화적인 주도권이 완전히 동성애 찬성 쪽으로 넘어갔고, 이제는 역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이 핍박받을 걱정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5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한국의 내일이 어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이 일 아니어도, 기독교는 여러 방면에서 문화적 주도권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

나는 사회에서 특별한 억압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눈으로 성서를 더 잘 읽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동성애자도 이러한 해석학적 특권을 부여받은 그룹이다. 그러나, 아무 말이나 해도 좋다는 전권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파이스 동성애인론은 상당히 넓은 의미의 합리성도 벗어난 주장이다. “독자 반응 비평” 같은 용어로 변호해 주려하는 이들도 있는 듯 하나, Connoley와 Miner의 논리는 독자 반응 비평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섬세함이나 개방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성서를 왜곡하여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밉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쨌거나 성서로 얘기하자고 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이들이 성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성서의 영향력을, 기독교의 문화적 주도권을 인정한다는 말이니까….

이제 기독교 신학은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을 만나고 있다. 우리는 열린 자세로 이 과제에 응답해야 한다. 이미 하나님의 뜻을 다 알고 있으니, 목소리 높여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가 아니라, 문화변동과 최선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포함한 시대의 도전들에 주체적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양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하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생명 같이 여기는, 그러한 신학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때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오늘의 신학자들은 날마다 탄식한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2015년 6월 16일 오전 6:41,

2015-06-1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하란으로 피신한 야곱은 삼촌 라반을 만나 한 혈육임을 확인한다.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제안하고, 야곱은 라반의 작은 딸 라헬을 요구한다.

성경본문. 창세기 29:1-20
한글본문.
1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15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16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9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영어본문.
1 Then Jacob continued on his journey and came to the land of the eastern peoples. 2 There he saw a well in the field, with three flocks of sheep lying near it because the flocks were watered from that well. The stone over the mouth of the well was large. 3 When all the flocks were gathered there, the shepherds would roll the stone away from the well’s mouth and water the sheep. Then they would return the stone to its place over the mouth of the well. 4 Jacob asked the shepherds, “My brothers, where are you from?” “We’re from Haran,” they replied. 5 He said to them, “Do you know Laban, Nahor’s grandson?” “Yes, we know him,” they answered. 6 Then Jacob asked them, “Is he well?” “Yes, he is,” they said, “and here comes his daughter Rachel with the sheep.” 7 “Look,” he said, “the sun is still high; it is not time for the flocks to be gathered. Water the sheep and take them back to pasture.” 8 “We can’t,” they replied, “until all the flocks are gathered and the stone has been rolled away from the mouth of the well. Then we will water the sheep.” 9 While he was still talking with them, Rachel came with her father’s sheep, for she was a shepherdess. 10 When Jacob saw Rachel daughter of Laban, his mother’s brother, and Laban’s sheep, he went over and rolled the stone away from the mouth of the well and watered his uncle’s sheep. 11 Then Jacob kissed Rachel and began to weep aloud. 12 He had told Rachel that he was a relative of her father and a son of Rebekah. So she ran and told her father. 13 As soon as Laban heard the news about Jacob, his sister’s son, he hurried to meet him. He embraced him and kissed him and brought him to his home, and there Jacob told him all these things. 14 Then Laban said to him, “You are my own flesh and blood.” After Jacob had stayed with him for a whole month, 15 Laban said to him, “Just because you are a relative of mine, should you work for me for nothing? Tell me what your wages should be.” 16 Now Laban had two daughters; the name of the older was Leah, and the name of the younger was Rachel. 17 Leah had weak eyes, but Rachel was lovely in form, and beautiful. 18 Jacob was in love with Rachel and said, “I’ll work for you seven years in return for your younger daughter Rachel.” 19 Laban said, “It’s better that I give her to you than to some other man. Stay here with me.” 20 So Jacob served seven years to get Rachel, but they seemed like only a few days to him because of his love for her.

도움말.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9절). ‘그’는 여성형이며 여자 목자로서 양들을 치고 있었다는 의미다.
칠 년(18절). 당시 신부의 결혼 지참금은 보통 신랑의 1년 치 삯이었다.
더 사랑하므로(18절). 원문에는 비교급이 나오지 않고, 라헬을 사랑했다는 표현만 나온다. 즉 레아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야곱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4-9절)?
⬇ 아래로 인간. 삼촌 라반은 야곱을 어떻게 대하는가(13-15절)?
? 물어봐. 야곱은 어떻게 7년을 며칠 같이 여기며 일할 수 있었는가(18, 20절)?
! 느껴봐. 지금 내가 일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일에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Meditation. 성도에게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인도에 우연은 없다. 모든 걸음이 그분의 예비하심과 섭리 속에 있을 뿐이다. 야곱은 먼 길을 여행한 끝에 하란 부근 우물가에서 장차 아내가 될 라헬을 만난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을 만난다. 그의 이전 행동을 볼 때(24:29 이하), 야곱이 특별한 선물을 가져왔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야곱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함께 지내며 그에게 얻을 특별한 유익이 없는 것을 보고 그에게 삯을 정하자고 제안한다.
야곱은 당시 신부 지참금에 해당하는 1년 치 삯보다 무려 7배나 되는 조건을 내걸고 라헬을 달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는 라반과 라헬, 이 두 사람을 통해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 라헬을 통해서는 7년을 며칠처럼 여길 정도로 순수한 열정과 동기를 배운다. 장자권을 빼앗고자 고민하며 형을 속이고 살았던 야곱으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또한 라반을 통해서는 간교하게 사람을 속이는 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한다. 이처럼 야곱의 피난은 성품과 영성을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 당신 주변의 관계 하나하나를 감사하고 그 가운데 감추어진 섭리를 발견하라.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6-16.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야곱은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다가 해가 져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잔다. 그는 꿈 가운데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사다리가 맞닿은 것을 보고 깨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성경본문. 창세기 28:10-22
한글본문.
10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영어본문.
10 Jacob left Beersheba and set out for Haran. 11 When he reached a certain place, he stopped for the night because the sun had set. Taking one of the stones there, he put it under his head and lay down to sleep. 12 He had a dream in which he saw a stairway resting on the earth, with its top reaching to heaven, and the angels of God were ascending and descending on it. 13 There above it stood the LORD, and he said: “I am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 Abraham and the God of Isaac. I will give you and your descendants the land on which you are lying. 14 Your descendants will be like the dust of the earth, and you will spread out to the west and to the east, to the north and to the south.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and your offspring. 15 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 16 When Jacob awoke from his sleep, he thought,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 not aware of it.” 17 He was afraid and said, “How awesome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than the house of God; this is the gate of heaven.” 18 Early the next morning Jacob took the stone he had placed under his head and set it up as a pillar and poured oil on top of it. 19 He called that place Bethel, though the city used to be called Luz. 20 Then Jacob made a vow, saying, “If God will be with me and will watch over me on this journey I am taking and will give me food to eat and clothes to wear 21 so that I return safely to my father’s house, then the LORD will be my God 22 and this stone that I have set up as a pillar will be God’s house, and of all that you give me I will give you a tenth.”

도움말.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10절). 약 900킬로미터의 거리로, 한 달은 더 걸리는 여정이다.
한 곳(11절). 특정하지 않은 어떤 장소를 말한다.
사닥다리(12절). 성경에 단 한 번,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사닥다리 또는 계단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당시의 건축물 지구라트의 계단을 연상시키는 단어다.
벧엘(19절). 하나님의 얼굴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도망가는 야곱에게 어떻게 나타나시는가(12-15절)?
⬇ 아래로 인간.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하는 내용 세 가지는 무엇인가(21b-22절)?
? 물어봐. 야곱이 서원하기 전 내건 조건은 무엇인가(20-21a)?
! 느껴봐.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조차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버려야 할 인간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Meditation.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
야곱은 하란으로 가는 길 중간에 날이 저물자 벧엘에서 누워 잠을 청한다. 브엘세바에서 벧엘은 약 100킬로미터, 즉 2-3일을 가야 하는 거리다. 이곳에서 야곱은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되었다는 생각에 무서워 떨던 바로 그곳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집이었던 것이다.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13-14절). 이 약속을 다 이루기까지 야곱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증시켜 주신다(15절).
잠에서 깬 야곱은 이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서원한다. 먼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둘째 하나님의 집을 세울 것이며, 셋째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길을 지키시고 평안히 돌아오게 하셔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20-21절). 하나님이 그의 행위 또는 공로와 상관없이 먼저 찾아오셨음에도 조건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당신도 야곱처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은혜를 조건적인 거래로 바꾸려 하지 않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6-15.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리브가는 위기 가운데 있는 야곱을 오빠 라반에게 피신 보내며 집안사람 중에 아내를 구하라고 당부한다.

성경본문. 창세기 27:46-28:9
한글본문.
46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28:1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영어본문.
27:46 Then Rebekah said to Isaac, “I’m disgusted with living because of these Hittite women. If Jacob takes a wife from among the women of this land, from Hittite women like these, my life will not be worth living.” 28:1 So Isaac called for Jacob and blessed him and commanded him: “Do not marry a Canaanite woman. 2 Go at once to Paddan Aram, to the house of your mother’s father Bethuel. Take a wife for yourself there, from among the daughters of Laban, your mother’s brother. 3 May God Almighty bless you and make you fruitful and increase your numbers until you become a community of peoples. 4 May he give you and your descendants the blessing given to Abraham, so that you may take possession of the land where you now live as an alien, the land God gave to Abraham.” 5 Then Isaac sent Jacob on his way, and he went to Paddan Aram, to Laban son of Bethuel the Aramean, the brother of Rebekah, who was the mother of Jacob and Esau. 6 Now Esau learned that Isaac had blessed Jacob and had sent him to Paddan Aram to take a wife from there, and that when he blessed him he commanded him, “Do not marry a Canaanite woman,” 7 and that Jacob had obeyed his father and mother and had gone to Paddan Aram. 8 Esau then realized how displeasing the Canaanite women were to his father Isaac; 9 so he went to Ishmael and married Mahalath, the sister of Nebaioth and daughter of Ishmael son of Abraham, in addition to the wives he already had.

도움말.
싫어졌거늘(46절).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하거나 몹시 끔찍해할 정도로 싫은 것을 의미한다.
밧단아람(2절).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유브라데 강 상류에 위치한 하란 땅을 가리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어떤 일을 가능하게 하는가(28:3)?
⬇ 아래로 인간. 리브가가 에서 때문에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무엇인가(27:46)?
? 물어봐. 결혼으로 부모에게 근심을 줬던 에서는(27:46) 또 어떤 결혼생활을 선택하는가(28:9)?
! 느껴봐.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내가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가?

Meditation. 그릇부터 준비하라.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것이 야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장자의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오히려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 왔다. 그의 결혼 생활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장자의 축복은 단순히 물질적 축복과 권위의 문제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정과 족속을 이룰 때 따라오는 모든 것이다. 축복의 중심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문제가 들어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을 위해 종을 친족이 사는 하란(밧단아람)으로 보내기까지 했다. 같은 족속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과 믿음의 가정을 꾸리는 것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한 선제조건이자, 축복을 담는 그릇이었던 것이다.
에서는 일찍부터 그릇 준비하기를 소홀히 했다(26:34, 27:46). 부모님이 야곱을 보내며 아내 구하는 문제를 간곡히 부탁하는 것을 보고도(28:6), 에서는 또 다시 언약과 상관없는 이스마엘 족속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28:9). 하나님의 복을 원한다면 담을 그릇부터 준비하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는 복이 와도 엉뚱한 곳에 다 흘려버릴 것이다.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5-06-14. 주일에는 읽는 QT. 믿음의 사칙연산 2.

간단설명.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 - 윌리엄 캐리

한글본문.
창세기 17:15-19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영어본문.
15 God also said to Abraham, “As for Sarai your wife, you are no longer to call her Sarai; her name will be Sarah. 16 I will bless her and will surely give you a son by her. I will bless her so that she will be the mother of nations; kings of peoples will come from her.” 17 Abraham fell facedown; he laughed and said to himself, “Will a son be born to a man a hundred years old? Will Sarah bear a child at the age of ninety?” 18 And Abraham said to God, “If only Ishmael might live under your blessing!” 19 Then God said, “Yes, but your wife Sarah will bear you a son, and you will call him Isaac.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him as an everlasting covenant for his descendants after him.

Meditation. 믿음의 뺄셈: 사래 -‘이’= 사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이름이 바뀝니다. 사래의 뜻은 ‘나의 귀한 여인, 나의 존귀한 어머니’입니다. 좋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굳이 새 이름을 주십니다. ‘사라’입니다.

사래가 사라가 되는 데는 모음 하나가 탈락합니다. 탈락한 모음 ‘이’는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어로 ‘나의’라는 뜻을 가진 소유격 어미입니다. 소유격 어미가 없어져 사라가 됩니다. 소유의 개념으로부터 그의 실존이 해제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이름 뜻이 ‘나의 귀한 여인’에서 ‘열국의 존귀한 여인’으로, ‘나의 귀한 어머니’에서 ‘열국의 존귀한 어머니’가 됩니다(16절). 사명이 바뀝니다. 목적이 변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언약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되고, 또 그 계보에서 왕들이 나고, 결국 상천하지의 대왕 예수 그리스도가 나십니다. 마침내 열국으로부터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귀한 여인입니다. 우리 모두의 존귀한 어머니입니다”라는 고백을 듣게 된 것입니다.
관건이 무엇입니까? ‘나의’라는 뜻의 소유격 어미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한 남자의 여인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여인입니다. 한 가족의 어머니가 아니라 열방의 어머니입니다. 물론 사래라는 이름도 귀합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귀한 여인, 나의 존귀한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내 붙들 이름은 아닙니다. 가장 복된 이름은 사래를 넘어 사라, 곧 하나님 나라의 지경으로 펼쳐진 열방을 위한 사명자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라의 사명을 감당하고 사라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사람의 소유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핵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야 합니다. 때로는 민족의 지경도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사라의 사명과 복이 열립니다.

사래를 넘어 사라의 사명을 가지고 일어서야 합니다. 기도와 긍휼과 섬김과 사랑의 지경을 열방 끝까지 확장해 나아가는 사라와 같은 사명자를 주님과 세계는 찾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의 자리에는 이 거룩한 뺄셈이 풀어지고 있습니까?

기도
“주님, 결코 이 땅에 얽매이거나 연연하지 않는 거룩하고 자유한 하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