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2. QT큐티체조.

간단설명. 겟세마네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깨어 있을 것을 명하신 후, 땅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고난의 잔을 옮겨주시기보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실 것을 간절히 구하신다.

성경본문. 마가복음 14:32-42
한글본문.
32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영어본문.
32 They went to a place called Gethsemane, and Jesus said to his disciples, “Sit here while I pray.” 33 He took Peter, James and John along with him, and he began to be deeply distressed and troubled. 34 “My soul is overwhelmed with sorrow to the point of death,” he said to them. “Stay here and keep watch.” 35 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to the ground and prayed that if possible the hour might pass from him. 36 “Abba, Father,” he said, “everything is possible for you.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37 Then he returned to his disciples and found them sleeping. “Simon,” he said to Peter, “are you asleep? Could you not keep watch for one hour? 38 Watch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body is weak.” 39 Once more he went away and prayed the same thing. 40 When he came back, he again found them sleeping, because their eyes were heavy. They did not know what to say to him. 41 Returning the third time, he said to them, “Are you still sleeping and resting? Enough! The hour has come. Look, the Son of Man is betrayed into the hands of sinners. 42 Rise! Let us go! Here comes my betrayer!”

도움말.
겟세마네(36절). ‘기름 짜는 틀’이란 뜻을 가진, 감람 산 서쪽 기슭에 있는 동산으로서, 자주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여 기도한 곳이다(눅 22:39, 요 18:2).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극심한 슬픔(33절)과 고민(34절) 속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시는가(36절)?
⬇ 아래로 인간.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무엇을 했는가(37절)?
? 물어봐. 시험에 들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는 방법은 무엇인가(38절)?
! 느껴봐. 나는 주로 시험에 들기 전에 기도하는가, 시험에 든 후에 기도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나의 기도 생활의 발전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시험을 이기는 백신, 기도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심히 슬퍼하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동행한 제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신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38절)고 거듭 당부하시지만, 피곤에 겨운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겟세마네 동산을 야영장으로 삼아 잠에 빠져든다. 홀로 땅에 엎드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신 예수님은 ‘아빠 아버지’의 신실하신 부성에 호소하며 그 고난의 잔이 옮겨지기를 구하시지만, 결국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며 기도를 마치신다. 그리고 이내 기도로 무장하신 예수님과 기도하지 않아 무장해제 된 제자들 앞에 일생일대의 시험이 다가온다.
주님은 기도만이 시험을 넉넉히 견디고 이기게 하는 백신임을 강조하신다. 당신은 지금 기도하라는 주님의 요청을 듣고 따르고 있는가? 눈을 들어 하늘 보좌를 바라보는가? 하나님의 뜻으로 마음을 무장하고 세상을 향해 나서고 있는가? 피곤한 일상 가운데서도 기도의 무릎을 하나님 앞에 꿇기 위해 어떠한 생활의 변화가 필요하겠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3-11.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예수님은 떡과 잔으로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시고, 감람 산으로 가는 길에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베드로가 이를 부정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가 부인할 것을 예고하신다.

성경본문. 마가복음 14:22-31
한글본문.
22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영어본문.
22 While they were eating, Jesus took bread, gave thanks and broke it, and gave it to his disciples, saying, “Take it; this is my body.” 23 Then he took the cup, gave thanks and offered it to them, and they all drank from it. 24 “This is my blood of the covenant, which is poured out for many,” he said to them. 25 “I tell you the truth, I will not drink again of the fruit of the vine until that day when I drink it anew in the kingdom of God.” 26 When they had sung a hymn, they went out to the Mount of Olives. 27 “You will all fall away,” Jesus told them, “for it is written: ” ‘I will strike the shepherd, and the sheep will be scattered.’ 28 But after I have risen, I will go ahead of you into Galilee.” 29 Peter declared, “Even if all fall away, I will not.” 30 “I tell you the truth,” Jesus answered, “today–yes, tonight–before the rooster crows twice you yourself will disown me three times.” 31 But Peter insisted emphatically, “Even if I have to die with you, I will never disown you.” And all the others said the same.

도움말.
축복(22절). 당시에 식사 때에 “이 땅에서 떡을 얻게 하신 주 우리 하나님, 당신은 복되십니다.”라고 고백하던 의식을 의미한다.
또 잔을 가지사(23절).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에서는 네 잔을 마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친히 나누신 떡과 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셨는가(22-24절)?
⬇ 아래로 인간.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예고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29, 31절)?
? 물어봐. 베드로의 반응을 살펴볼 때, 그가 붙들지 못하고 놓친 말씀은 무엇인가(28절)?
! 느껴봐. 나는 주님의 말씀보다 나의 결심을 더 앞세우지는 않는가(29, 31절)?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말씀을 좀 더 온전하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 할 삶의 모습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소통의 핸디캡, 선택적 듣기
고난을 앞두고 감람 산 밤길을 오를 때에도 찬양을 잃지 않으신 예수님(26절)의 심정을 이해한 제자는 없었다. 결국 걸음을 멈추신 예수님은 자신이 체포되고 고난을 당하게 될 때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 것과 그 후 부활하신 후에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을 예고하신다. 그러나 이번에도 끝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급히 입을 연 베드로는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다른 제자들도 여기에 합세한다. 그들은 정작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가실 것에 대한 말씀까지 잘 경청해야 했고, 그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여쭈어야 했다.
선택적 듣기는 분명 소통의 핸디캡이다. 제자도의 완성은 말씀에 대한 적극적 경청과 전인적인 반응으로만 가능하다. 당신의 귀는 주님의 말씀을 향해 온전히 열려 있는가? 주님의 말씀을 수신하는 데에 있어 난청지역은 없는가? 주님의 말씀을 더욱 잘 경청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들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3-10. QT큐티체조.

간단설명.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 줄 기회를 찾고 있을 때,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제자 중 한 사람 곧 자신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 자신을 팔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성경본문. 마가복음 14:10-21
한글본문.
10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12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10 Then Judas Iscariot, one of the Twelve, went to the chief priests to betray Jesus to them. 11 They were delighted to hear this and promised to give him money. So he watched for an opportunity to hand him over. 12 On the first day of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when it was customary to sacrifice the Passover lamb, Jesus’ disciples asked him, “Where do you want us to go and make preparations for you to eat the Passover?” 13 So he sent two of his disciples, telling them, “Go into the city, and a man carrying a jar of water will meet you. Follow him. 14 Say to the owner of the house he enters, ‘The Teacher asks: Where is my guest room, where I may eat the Passover with my disciples?’ 15 He will show you a large upper room, furnished and ready. Make preparations for us there.” 16 The disciples left, went into the city and found things just as Jesus had told them. So they prepared the Passover. 17 When evening came, Jesus arrived with the Twelve. 18 While they were reclining at the table eating,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one of you will betray me–one who is eating with me.” 19 They were saddened, and one by one they said to him, “Surely not I?” 20 “It is one of the Twelve,” he replied, “one who dips bread into the bowl with me. 21 The Son of Man will go just as it is written about him. But woe to that man who betrays the Son of Man! It would be better for him if he had not been born.”

도움말.
기회(11절). 헬라어 ‘유카이로스’라는 단어로, 좋은 때, 좋은 시각, 좋은 시간이란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게 될 사람을 어떻게 밝히시는가(20절)?
⬇ 아래로 인간.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가(11절)?
? 물어봐. 예수님이 자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밝히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18, 20절)?
! 느껴봐. 나는 예수님을 통해 얻는 유익보다 예수님 자체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말씀 중 거듭해서 내게 주시는 경고는 어떤 것들인가?

Meditation. 기회 중의 기회
가룟 유다의 배신은 앞서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린 한 여인의 헌신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 물질을 바쳤지만, 유다는 물질을 위해 예수님을 팔았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기회를 찾으려 마음 졸였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한 몫 챙길 기회를 얻기 위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11절). 그런 유다에게 진짜 기회가 찾아 왔다.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 자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가 유다임을 암시하기도 하셨다(18, 20절). 회개하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을 얻을 수 있는 참된 인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뒤틀린 물질관, 가치관에 붙들려 결국 멸망의 길로 치달아 갔다.
당신은 때로 세상이 내어 놓는 유혹을 기회로 여기지는 않는가? 참된 기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주님(요 14:6),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가득한(골 2:3) 주님께 매 순간 나아가고 그분을 누리는 것이다. 이 최고의 기회를 누리기 위해 오늘 어떤 대가를 지불하겠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완성된 천국은 사후 가야할 저 세상이 아니라 다가올 세상이다.

아래의 글은 Lee MinKyu교수의 글입니다. [아직과 이미의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글에 이어 있는 글입니다.

필자가 처움 신학을 전공하면서 깜짝 놀란 일 중의 하나는 성경의 천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때 배운 성경구절들 때문에 죽어서 가는 저 천국에 대한 필자의 믿음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당시 구약학 교수가 구약에서 말하는 구원의 내용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이 사상은 모세 율법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에게서도 계속 나타난다. 바벨론 유수를 거쳐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그것이 구원이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가나안 땅에 언약백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나치게 영적으로 이해하여 죽어서 가는 저 하늘 어딘가의 “천국”에 대한 은유로 이해하지 말라고 했다. 말하자면 하나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곳이 천국이다. 물론 구약에는 천국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안나오지만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가 나오는데 신약의 천국과 사실 같은 맥락이다. 오히려 그간 상징적으로 보아왔던 본문을 더 문자적으로 믿으라 하는 것에 혼란이 왔다. 구약의 천국은 몹시 현세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인 이집트인나 바벨론 사람들이 살아서 온통 죽음 이후의 세계에 큰 관심을 두고 무지막지한 피라미드와 같은 무덤과 온갖 신화에 전 생애를 희생한 반면, 구약은 실제로 지금 여기서 잘살자에 중심을 두어 내세관이 무척 약하다(이방인들에게 이 때문에 무신론자라고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물론 사후 심판이나 운명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의 율법과 신앙은 온통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과 이웃과 어떤 충만하고 복된 관계로 살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유대인의 관심은 주로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으며 말씀대로 복되게 잘 사는 것이였다.

물론 점진적 계시를 통해 신약은 구약보다 훨씬 더 많이 사후세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에 큰 관심을 둔다. 그러나 그 핵심은 구약과 연속성을 지닌다.그 계시의 내용이 신자들의 몸의 부활이며 세상의 새창조/갱신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세상은 절대 신플라톤적 초월적인 실체인 죽음 이후 이곳을 떠나서 가야 할 “저 천국”이 아닌 앞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후 다가올 영적이고 물리적인 통합적인 세계, 새하늘 새땅이다.

실제로 성경은 영화 “사랑과 영혼” , 그리고 불교의 극락, 수 많은 대중소설에 나오는 신플라톤주의적인 “천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천국에 다녀왔다는 간증은 그냥 은혜로운 소설일 뿐이니 너무 믿지 말라. 사도바울이나 사도요한처럼 하늘 환상을 본 것일 수는 있어도, 그곳은 천국이 아니다. 천국은 주님되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발견해야 한다.

P.S. 천국과 하늘에 대한 혼돈에 대하여.
물론 사후 신자들의 영혼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낙원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누가복음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한 회개한 강도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게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약속한다(낙원이란 용어는 신약에서 체계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것을 부활 이전까지 대기상태로 설명한다.

성경에 나오는 하늘에 대한 다양한 용어사용을 오해하면 안된다. 예를 들어 (마 6:20)”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무슨 뜻일까요? 마태복음에서 하늘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기를 꺼려한 유대인들이 사용한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천국이 아닙니다. 보물을 하나님께 쌓아두라는 말이니다(물론 간접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 있지요.).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서 보화가 네게 주어지리라는 뜻입니다. 하늘은 주로 영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사후에 관한 질문은 성경에서 애매모호하지만 아마도 하나님 백성의 영혼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하늘에서 몸의 부활 때까지 함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요한복음 14:2에서 예수님이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할 때 “처소”로 번역된 헬라어가 자주 “잠시 머무는 곳”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하늘을 부활 때까지 대기장소로 이해했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하지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 후 하나님의 최후심판(그리스도의 심판대)을 거쳐 계시록에서 새하늘 새땅으로 표현되는 완성된 상태의 천국에서 영원한 지복을 누리겠지요. 천사들도 부러워한다고 하네요.

페친 김도현전도사가 인용한 디트리히 본 회퍼의 글도 정말 정곡을 찌른 내용을 담고 있다.

“근동지방의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구약성서의 신앙은 구원종교가 아니다(이분법적이고 플라톤적인 영혼구원종교! 필자설명).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늘 구원종교라고 불리어진다. 여기에 근본적인 오류, 즉 그것에 으하여 그리스도가 구약성서에서 분리되어 구원신화들로부터 해석되어지는 그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구약성서 안에도 (이집트로부터의, 그리고 후에는 바빌로니아로부터의 ;(제 2이사야 참고) 구원이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그밖에는 어디에서나 구원 신화들은 바로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반면에, 여기에서는 ‘역사적’ 구원들이, 즉 죽음이라는 한계의 차안(diesseits)이 문제되고 있다고 반박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이다. 구원신화들은 비역사적으로 죽음 이후의 영원을 찾는다. ‘스올’, 즉 하데스는 형이상학이 만들어낸 것(Gebilde)이 아니라, 그림들(Bilder)로서, 그것들 아래에서는 현세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다만 그림자같이 현재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독교에서는 부활의 소망이 선포된다는 것, 따라서 그것에 의하여 진정한 구원종교가 발생하였다는 것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 때 중점이 죽음이라는 한계의 피안에 있다. 바로 여기에서 나는 오류와 위험성을 본다. 이 때 구원이란 보다 좋은 내세에서 걱정들, 곤경들, 불안들, 그리움들로부터의 구원,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복음서 기자들과 바울이 행한 그리스도 선포의 본질적인 내용이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기독교적 부활의 소망은, 그 소망이 전혀 새롭고 구약성서에 비하여 더욱 예리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이 땅 위에 있는 그의 삶으로 향하도록 지시한다는 점에서 신화적 부활의 소망과 구별된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신화들을 믿는 자들처럼 현세적 과저들 및 어려움들로부터 영원으로 도피할 마지막 탈출로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와 같이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현세의 삶을 남김없이 완전히 맛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십자가에 달렸던 분, 그리고 부활한 분이 그와 함께하며,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또 부활하는 것이다. 차안은 너무 이르게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는 굳게 결합되어 있다. 구원신화들은 인간의 한계 경험들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인간을 그의 삶의 한 가운데서 붙잡는다.

– 본회퍼-

2014-03-09. 주일에는 읽는 QT큐티. 일곱교회 이야기6. 사데교회.

간단설명. 하나님은 잠자기를 좋아하고 몽매함에 빠지기를 원하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신다. - 마틴 로이드 존스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3:1-6
한글본문.
1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영어본문.
1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Sardis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him who holds the seven spiritsof God and the seven stars. I know your deeds; you have a reputation of being alive, but you are dead. 2 Wake up! Strengthen what remains and is about to die, for I have not found your deeds complete in the sight of my God. 3 Remember, therefore, what you have received and heard; obey it, and repent. But if you do not wake up, I will come like a thief, and you will not know at what time I will come to you. 4 Yet you have a few people in Sardis who have not soiled their clothes. They will walk with me, dressed in white, for they are worthy. 5 He who overcomes will, like them, be dressed in white. I will never blot out his name from the book of life, but will acknowledge his name before my Father and his angels. 6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Meditation. 사데교회 : 다시 살아나라
사데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와 함께 주님께 칭찬을 듣지 못한 교회입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더라도 한두 가지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시고 칭찬하시고 격려하십니다. 하지만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눈은 아주 매섭습니다. 칭찬 한마디 없이 이렇게 꾸짖기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데교회가 명목상의 교회일 뿐 실제로는 죽은 교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본인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참된 성도가 아닌데 본인들은 열렬한 신자이고, 생명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제자들이라고 자부했던 것입니다.

죽은 교회가 행한 일을 평가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사데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분명한 진단을 내려 그들이 죽어 있음을 알리고, 주님 안에서 다시 살아나야 함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매섭게 꾸중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칭찬을 허락하시지 않은 이유는 하나의 강력한 충격 요법인 셈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흔들어 깨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준엄한 책망은 5개의 명령으로 이어집니다. ‘일깨워라, 굳게 서라, 생각하라, 지키라, 회개하라.’ 우리는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강력한 권면을 들으면서, 그들에게는 칭찬이 없을 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4절). 이들은 사데교회가 다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주님이 남겨두신 희망의 불씨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로 인해 주님은 사데교회를 완전히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약 사데교회가 진정으로 돌아서서 회개한다면 흰 옷을 입게 하실 것이고,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해 주실 것입니다(5절). 생명력을 잃어가는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바라보고 낙심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되어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를 흔들어 깨워주시옵소서. 그래서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Yuo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기도의 중심은 당신이 아니다.

prayer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기도를 한다. 가끔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기도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기도 한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가 무슨 역사를 일으키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답을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각이 고양이 신학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잠시 고양이 신학과 강아지 신학의 차이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강아지는 주인을 모시고 고양이는 종을 거느린다는 말이 있다. 즉, 강아지는 주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살지만, 고양이는 주인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며, 때문에 같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다.

강아지는 주인이 자기를 먹여주고, 귀여워해 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주는 걸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분명 하나님이에요!’ 그러나 고양이는 다르다. ‘당신이 내게 먹을 것을 주고, 귀여워해 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주는 걸 보니 분명 하나님이에요!’

차이가 보일 것이다. 고양이 신자는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우주의 중심에서 살아간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영광 플러스’(Unveilin GLORY,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 사역의 모태가 되는) 사역을 통해 교회 안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 일어난 다음과 같은 일들에 대해 말해준다. 태양이 멈추고, 병을 고침 받고,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적군을 물리치고, 기름이 끝없이 솟아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 심지어 예수님은 우리에게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을 약속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가 기도한다고 산이 옮겨지지도,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도, 우리를 위해 기름이 계속 솟아나지도, 적군이 물러나지도, 가뭄을 끝내는 단비가 내리지도, 병이 낫지도 않으며, 지구가 멈추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기도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 같아 양심에 찔린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반만 진실인 판타지 세상, 속임수로 가득한 사이비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는 기도가 무언가를 이루어낸다고 믿는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기도함에도 종종 의지할 곳 없는 겁쟁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 우리의 기도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심도 하지 말고 기도할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경향이 그러한 가르침과 배치되더라도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런 모순의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생활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동시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와 관련된 문제는 대개 기도하는 사람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의도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초점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언어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관계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책은 응급처방전을 발행하지 않는다. 기도를 효력 있게 만들어주는 신비한 공식이나 주문 같은 것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힘으로 기도를 효력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 힘으로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강물은 하나님이 조절하시며, 그분만이 기도가 효력 있게 하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당신을 강물을 안내하여 그 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당신이 그 흐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를 소개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우리 자신에 관한 초점을 바로잡는 데 주력할 것이다. 고양이 신자들은 자신에 대해서만,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하면서 왜 자기들은 강아지 성도들처럼 응답받지 못하는지 의아해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은 미야우(MEow, 야옹)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분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커다란 바아크(BARK, 멍멍, Being all-Reliant on the King, 왕이신 그분을 철저히 의지하기) 소리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진실이다.

위 글은 도서출판 디모데의 신간인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의 기도] (저자:밥 쇼그린 & 제럴드 로비슨)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디모데 성경연구원 게시판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