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6. QT큐티체조. 마가복음 10:13-16.

간단설명.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을 꾸짖는 모습과, 주님이 그런 제자들을 꾸짖는 모습에서 아이들에 대해 어떤 견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10:13-16
한글본문.
13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영어본문.
13.People were bringing little children to Jesus to have him touch them, but the disciples rebuked them. 14.When Jesus saw this, he was indignant. He said to them,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15.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wi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little child will never enter it.” 16.And he took the children in his arms, put his hands on them and blessed them.

도움말.
어린 아이들(13절). 어린이는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연령층으로, 어린이에 대한 태도는 사람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는 새로워져야 했다. 이러한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치 부여는 제자들에게 매우 큰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시는가(14절)?
⬇ 아래로 인간. 사람들의 연령에 따른 차별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13절)?
? 물어봐.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어린 아이의 태도로 귀결시키신 이유는 무엇인가(15절)?
! 느껴봐. 자신은 복음이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또 믿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신이 차별적인 시각을 수정해야 할 어린아이와 같은 대상은 누구인가?

Meditation.애들은 가라!
우리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무시하고, 힘을 가진 자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기 쉽다. 힘없는 어린 아이들은 더 그렇다. 제자들에게서도 당시 유대 사회의 계층 구조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면서 그런 제자들을 크게 꾸짖으셨다. 하나님 나라는 남녀, 민족, 국적, 나이를 불문하고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다. 그 중심은 마음의 태도이지 어떤 외형적인 것이 아니다. 전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순수하게 추구하는 자들의 것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적인 적은 온갖 종류의 차별(discrimination)이다. 사람은 모두 차별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복음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복음의 출발은 어린 아이에 대한 가치의 변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들의 순수함에서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혹 사람을 외적이고 사회적인 조건으로 차별하지 않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2-15. QT큐티체조. 마가복음 10:1-2.

간단설명.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대화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결혼의 핵심적인 원리는 무엇인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10:1-12
한글본문.
1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영어본문.
1. Jesus then left that place and went into the region of Judea and across the Jordan. Again crowds of people came to him, and as was his custom, he taught them. 2.Some Pharisees came and tested him by asking, “Is it lawful for a man to divorce his wife?” 3.”What did Moses command you?” he replied. 4.They said, “Moses permitted a man to write a certificate of divorce and send her away.” 5.”It was because your hearts were hard that Moses wrote you this law,” Jesus replied. 6.”But at the beginning of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7.’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8.and the two will become one flesh.’ So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9.Therefore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let man not separate.” 10.When they were in the house again, the disciples asked Jesus about this. 11.He answered, “Anyone who divorces his wife and marries another woman commits adultery against her. 12.And if she divorces her husband and marries another man, she commits adultery.”

도움말.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2절). 바리새인들의 이 질문은 예수님을 잔인한 분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유도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을 지지하며 따르고 있었는데, 만약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그대로 긍정했더라면 여자들에게 예수님은 잔인한 분으로 인식되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리새인들이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혼에 대해 그런 율법을 주셨는지 취지를 설명하신 것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는가(6절)?
⬇ 아래로 인간. 남녀를 한 부부로 짝지어주는 주체는 누구인가(9절)?
? 물어봐. 예수님은 이혼과 간음에 대해 어떤 교훈을 주시는가(11-12절)?
! 느껴봐. 당신은 결혼의 주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가?
➡ 옆으로 실천해. 당신에게 결혼에 대해 더 견고한 믿음이 필요한 영역은 무엇인가?

Meditation. 중매쟁이 하나님
하나님의 창조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사람 창조였다. 사람 창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결혼식이었다. 사람의 신비는 하나님이 남녀로 각각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 둘을 하나로 결합시키셨다는 것이다. 소위 ‘이위일체’가 적용되는 순간이다. 결혼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와 성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혼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짝지어주시는 의식이다(9절). 이에 비해 이혼은 하나님의 언약적 주권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파기하는 행위이다. 이혼은 인간의 완악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결혼과 관련해 우리에게 두 가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의 배우자를 인도하신다는 것과, 우리 자신이 결혼 생활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주님이 어떤 사람은 독신으로 인도하시기도 한다, 마 19:12).
당신은 결혼의 주체가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래서 결혼이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책임의 시작인 것을 믿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2-14. QT큐티체조. 마가복음 9:38-50.

간단설명.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 그룹에 함께하지 않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다는 보고를 받은 주님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9:38-50
한글본문.
38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없음)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없음) 47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38.”Teacher,” said John, “we saw a man driv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old him to stop, because he was not one of us.” 39.”Do not stop him,” Jesus said. “No one who does a miracle in my name can in the next moment say anything bad about me, 40.for whoever is not against us is for us. 41.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gives you a cup of water in my name because you belong to Christ will certainly not lose his reward. 42.”And if anyone causes one of these little ones who believe in me to sin, it would be better for him to be thrown into the sea with a large millstone tied around his neck. 43.If your hand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life maimed than with two hands to go into hell, where the fire never goes out. 45.And if your foot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life crippled than to have two feet and be thrown into hell. 47.And if your eye causes you to sin, pluck it out.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the kingdom of God with one eye than to have two eyes and be thrown into hell, 48.where ” ‘their worm does not die,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49.Everyone will be salted with fire. 50.”Salt is good, but if i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you make it salty again? Have salt in yourselves, and be at peace with each other.”

도움말.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49절).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모든 제물에는 소금이 뿌려져야 했다. 이를 소금 언약이라고도 하는데(레 2:13), 하나님이 모든 소제물에 누룩이나 꿀을 금지하신 것과 대비되는 개념이다(레 2:11-12). 누룩이나 꿀은 인간의 측면에서는 아주 유용한 첨가제이지만 죄를 의미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제물은 성결이 핵심 개념이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궁극적으로 사람들 관계에 가져온 것은 무엇인가(50절)?
⬇ 아래로 인간. 사람들 간의 화목을 가로막는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인가(43, 45, 47절)?
? 물어봐.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49절)?
! 느껴봐. 당신은 화목이 곧 영생인 것을 알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당신이 주위 사람들과 화목하기 위해 버려야 할 죄된 요소는 무엇인가?

Meditation. 수용적 공동체 vs. 배타적 공동체
요한의 보고에 주님은 기대와 다른 대답을 하신다(39절). 주님은 요한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주님의 공동체를 생각하고 계셨다. 공동체를 방해하는 가장 암적인 요소는 바로 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죄가 사람들을 향해 배타적인(exclusive) 자세를 취하게 한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용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타적인 자세로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우를 경계해야 한다(42절). 격려와 섬김이 가장 좋은 태도일 것이다(41절). 공동체의 화목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손과 발이라도 자를 각오를 해야 한다. 이 공동체의 화목은 단지 이 세상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으로 부르셨다(마 6:13).
당신은 얼마나 짠 맛을 내는 소금으로 존재하는가? 당신은 화목하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분열하게 하는 사람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2-13. QT큐티체조. 마가복음 9:30-37.

간단설명.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이며, 이 사건은 섬기는 것의 중요성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

성경본문. 마가복음 9:30-37
한글본문.
30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영어본문.
30.They left that place and passed through Galilee. Jesus did not want anyone to know where they were, 31.because he was teaching his disciples. He said to them,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the hands of men. They will kill him, and after three days he will rise.” 32.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meant and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it. 33.They came to Capernaum. When he was in the house, he asked them, “What were you arguing about on the road?” 34.But they kept quiet because on the way they had argued about who was the greatest. 35.Sitting down, Jesus called the Twelve and said, “If anyone wants to be first, he must be the very last, and the servant of all.” 36.He took a little child and had him stand among them. Taking him in his arms, he said to them, 37.”Whoever welcomes one of these little children in my name welcomes me; and whoever welcomes me does not welcome me but the one who sent me.”

도움말.
쟁론하였음이라(34절). 헬라어는 디알레고마이, 영어로는 dispute(KJV)를 사용하고 있다. 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당시에도 사람들 사이에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유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섬기는 자(35절). 제자들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깨닫지 못한 결과,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섬기는 분으로 세상에 오셨으며(마 20:28), 그것이 제자들이 배워야 할 핵심적인 제자도였다. 섬김은 경쟁으로 치닫게 하는 세상을 향한 유일한 해독제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주님은 섬김의 가치를 세상에서 어떻게 보여주셨는가(35-37절)?
⬇ 아래로 인간. 십자가의 섬김에 비해 제자들의 주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34절)?
? 물어봐. 왜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깨닫지 못했는가(32절)?
! 느껴봐.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핵심이 섬김(serving)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당신이 오늘 섬김을 실천해야 할 어린아이와 같은 대상은 누구인가?

Meditation. 경쟁이 아니라 섬김이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주제로 논쟁했다. 그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면 리더십의 개념이 달랐던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섬기는 모습으로 답을 보여주셨고, 궁극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인간들을 섬기셨다. 섬김은 주님이 세상의 죄를 도말하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또한 십자가의 도는 죄로 인해 인간들이 서로 경쟁함으로 왜곡된 관계를 바로 잡는 섬김의 사건이었다. 특별히 어린아이처럼 이권에 관계없는 섬김이 가장 순수한 섬김이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경쟁에 익숙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도 ‘경쟁의 도’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는 분명히 ‘섬김의 도’이다.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계획을 깨닫지도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한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경쟁 중심적인 세계관’에 함몰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섬기는 사람인가, 아니면 아직도 경쟁하는 사람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2-12. QT큐티체조. 마가복음 9:14-29.

간단설명. 제자들이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며, 주님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요구하신 한 가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주제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본문. 마가복음 9:14-29
한글본문.
14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14.When they came to the other disciples, they saw a large crowd around them and the teachers of the law arguing with them. 15.As soon as all the people saw Jesus, they were overwhelmed with wonder and ran to greet him. 16.”What are you arguing with them about?” he asked. 17.A man in the crowd answered, “Teacher, I brought you my son, who is possessed by a spirit that has robbed him of speech. 18.Whenever it seizes him, it throws him to the ground. He foams at the mouth, gnashes his teeth and becomes rigid. I asked your disciples to drive out the spirit, but they could not.” 19.”O unbelieving generation,” Jesus replied, “how long shall I stay with you? How long shall I put up with you? Bring the boy to me.” 20.So they brought him. When the spirit saw Jesus, it immediately threw the boy into a convulsion. He fell to the ground and rolled around, foaming at the mouth. 21.Jesus asked the boy’s father, “How long has he been like this?” “From childhood,” he answered. 22.”It has often thrown him into fire or water to kill him. But if you can do anything, take pity on us and help us.” 23.” ‘If you can’?”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24.Immediately the boy’s father exclaimed, “I do believe;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25.When Jesus saw that a crowd was running to the scene, he rebuked the evil spirit. “You deaf and mute spirit,” he said, “I command you, come out of him and never enter him again.” 26.The spirit shrieked, convulsed him violently and came out. The boy looked so much like a corpse that many said, “He’s dead.” 27.But Jesus took him by the hand and lifted him to his feet, and he stood up. 28.After Jesus had gone indoors, his disciples asked him privately, “Why couldn’t we drive it out?” 29.He replied, “This kind can come out only by prayer.”

도움말.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22절). 귀신들이 행하는 일을 명확히 묘사하고 있다.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은 점치는 소녀에게서 귀신을 내쫓은 적이 있다(행 16:16-18). 에베소는 아데미 우상의 기지였는데, 바울은 2년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행 19:12-19). 귀신들의 활동과 사람들의 타락은 우상숭배로 이어지는데, 선교의 핵심적인 목표는 사람들을 귀신들의 영향력에서 구출하는 것이다(고후 4:4).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29절). 귀신을 내어 쫓는 방법만이 아니라 능력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타락한 귀신들도 예수님께는 늘 순종해야 했다. 귀신을 내어 쫓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삼위 하나님이시며, 기도는 그 분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가(20절)?
⬇ 아래로 인간. 귀신들린 아이의 모습과 인간들의 곤경은 어떻게 유사한가(18, 22절)?
? 물어봐.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예수님의 물리적 부재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28절)?
! 느껴봐. 당신은 지금도 귀신들이 이 세상에서 강력히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귀신들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기도, 능력의 통로
주님이 세 제자와 변화산에 올라간 사이에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달라고 부탁받았지만 하지 못했다. 주님이 함께 계시지 않아서일까? 아직은 수련이 부족한 탓인가? 주님은 이 상황에 대해 매우 분개하셨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능력을 행하도록 선발한 것인데 말이다(막 3:14-15). 아이의 아버지에게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견된다. 할 수 있거든…. 제자들도 동일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귀신에게 명해서 나가면 좋고, 안 나가면 할 수 없고…. 주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마귀들에게 유린당하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고, 그 일을 위해서는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셨어야 했다. 십자가에서 그 일을 이루셨지만(창 3:15) 아직도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들이 활동하고 있다.
당신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령들과의 싸움임을 정확히 인식하면서(엡 6:12) 기도와 간구로 매일 영적 전투를 치르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2-11. 주일에는 읽는 QT. 균형 잡힌 제자도 2.

간단설명. 모든 제자도의 기본은, 예수님을 합당한 호칭으로 부를 뿐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이다. - 존 스토트

한글본문.
디모데후서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3:14-15
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Meditation. 가르칠 수 있는 동시에 배울 수 있어야
우리는 왕왕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말아야 한다거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계적 중립을 균형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균형은 이런 게 아니라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마음을 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실제적이면서 동시에 수준 높은 제자도입니다.

대학 시절 필드에서 은퇴를 앞둔 어느 외국인 노 선교사가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힘쓰고 애썼던 균형 잡힌 제자도를 말하는 한 페이지짜리 짧은 아티클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영어 기독교 잡지 이름이나 필자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강렬한 도전과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고, 이후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는 동시에 저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그의 9가지 권면은 조금 과중해 보이기도 하지만, 균형 잡힌 제자도를 묵상하는 우리에게 빼놓을 수 없는 신선한 자극과 격려 그리고 도전을 줍니다. 먼저 다음 세 가지 자질 가운데 이번 주간 내가 좀 더 실천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1.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동시에 배울 수 있어야 한다.
2. 뚜렷한 확신의 사람이 되는 동시에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한다.
3. 앞장서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즐겨 남을 따를 줄 알아야 한다.

“균형 잡힌 제자의 삶이 얼마나 힘이 있고 본이 되는지를 묵상하면서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힘을 다해 추구하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02-10. QT큐티체조. 마가복음 9:2-13.

간단설명. 주님이 세 제자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일은 훗날 제자들이 대위임령을 수행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성경본문. 마가복음 9:2-13
한글본문.
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2.After six days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with him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where they were all alone. There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3.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whiter than anyone in the world could bleach them. 4.And there appeared before them Elijah and Moses, who were talking with Jesus. 5.Peter said to Jesus, “Rabbi,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put up three shelter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6.(He did not know what to say, they were so frightened.) 7.Then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8.Suddenly, when they looked around, they no longer saw anyone with them except Jesus. 9.As they were coming down the mountain, Jesus gave them orders not to tell anyone what they had seen until the Son of Man had risen from the dead. 10.They kept the matter to themselves, discussing what “rising from the dead” meant. 11.And they asked him, “Why do the teachers of the law say that Elijah must come first?” 12.Jesus replied, “To be sure, Elijah does come first, and restores all things. Why then is it written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uch and be rejected? 13.But I tell you, Elijah has come, and they have done to him everything they wished, just as it is written about him.”

도움말.
엘리야, 모세(4절). 유대인들에게 모세는 율법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엘리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으며 말라기 이후에 하나님이 보내리라고 예언하셨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말 4:5, 막 9:11-13). 특히 엘리야는 메시아의 도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10절). 아직도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구속은 제자들에게도 의문스럽고 신비로운 일이었다(고전 2:6-9).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3절)?
⬇ 아래로 인간. 신적인 임재 가운데 느꼈던 베드로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5-6절)?
? 물어봐. 주님이 세 제자들에게 모세, 엘리야와 만나는 장면을 보게 한 목적은 무엇일까(2, 4절)?
! 느껴봐. 당신은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으며, 또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당신이 주님의 영광을 본 후에 내려가서 섬겨야 할 삶의 현장은 어디인가?

Meditation. 제자들이 내려가야 할 곳
주님은 수제자 셋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셨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영적인 엑스타시, 위대한 영적 거장들을 만난 것이다. 한국인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만난 경우라고 할까? 세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눅 9:31). 오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이루시려던 구속의 정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 제자들은 그 동안 주님께 들어 왔던 구속에 대한 이야기를 엘리야와 모세를 통해서도 듣고 있다. 제자들에게는 훨씬 더 체감도를 높이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대화를 듣고 베드로가 반응한 것은 고작 여기에 초막 셋을 짓자는 것이었다. ‘여기가 좋다’는 것이다. 주님의 의도는 여기가 아니고 저기, ‘많은 고난과 멸시가 있었던’(12절) 골고다였는데 말이다.
당신도 제자들처럼 변화산에서만 머무르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주님처럼 기꺼이 골고다로 향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