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0. QT큐티체조.

간단설명.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 줄 기회를 찾고 있을 때,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제자 중 한 사람 곧 자신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 자신을 팔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성경본문. 마가복음 14:10-21
한글본문.
10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12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10 Then Judas Iscariot, one of the Twelve, went to the chief priests to betray Jesus to them. 11 They were delighted to hear this and promised to give him money. So he watched for an opportunity to hand him over. 12 On the first day of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when it was customary to sacrifice the Passover lamb, Jesus’ disciples asked him, “Where do you want us to go and make preparations for you to eat the Passover?” 13 So he sent two of his disciples, telling them, “Go into the city, and a man carrying a jar of water will meet you. Follow him. 14 Say to the owner of the house he enters, ‘The Teacher asks: Where is my guest room, where I may eat the Passover with my disciples?’ 15 He will show you a large upper room, furnished and ready. Make preparations for us there.” 16 The disciples left, went into the city and found things just as Jesus had told them. So they prepared the Passover. 17 When evening came, Jesus arrived with the Twelve. 18 While they were reclining at the table eating,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one of you will betray me–one who is eating with me.” 19 They were saddened, and one by one they said to him, “Surely not I?” 20 “It is one of the Twelve,” he replied, “one who dips bread into the bowl with me. 21 The Son of Man will go just as it is written about him. But woe to that man who betrays the Son of Man! It would be better for him if he had not been born.”

도움말.
기회(11절). 헬라어 ‘유카이로스’라는 단어로, 좋은 때, 좋은 시각, 좋은 시간이란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게 될 사람을 어떻게 밝히시는가(20절)?
⬇ 아래로 인간.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가(11절)?
? 물어봐. 예수님이 자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밝히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18, 20절)?
! 느껴봐. 나는 예수님을 통해 얻는 유익보다 예수님 자체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말씀 중 거듭해서 내게 주시는 경고는 어떤 것들인가?

Meditation. 기회 중의 기회
가룟 유다의 배신은 앞서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린 한 여인의 헌신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 물질을 바쳤지만, 유다는 물질을 위해 예수님을 팔았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기회를 찾으려 마음 졸였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한 몫 챙길 기회를 얻기 위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11절). 그런 유다에게 진짜 기회가 찾아 왔다.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 자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가 유다임을 암시하기도 하셨다(18, 20절). 회개하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을 얻을 수 있는 참된 인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뒤틀린 물질관, 가치관에 붙들려 결국 멸망의 길로 치달아 갔다.
당신은 때로 세상이 내어 놓는 유혹을 기회로 여기지는 않는가? 참된 기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주님(요 14:6),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가득한(골 2:3) 주님께 매 순간 나아가고 그분을 누리는 것이다. 이 최고의 기회를 누리기 위해 오늘 어떤 대가를 지불하겠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완성된 천국은 사후 가야할 저 세상이 아니라 다가올 세상이다.

아래의 글은 Lee MinKyu교수의 글입니다. [아직과 이미의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글에 이어 있는 글입니다.

필자가 처움 신학을 전공하면서 깜짝 놀란 일 중의 하나는 성경의 천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때 배운 성경구절들 때문에 죽어서 가는 저 천국에 대한 필자의 믿음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당시 구약학 교수가 구약에서 말하는 구원의 내용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이 사상은 모세 율법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에게서도 계속 나타난다. 바벨론 유수를 거쳐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그것이 구원이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가나안 땅에 언약백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나치게 영적으로 이해하여 죽어서 가는 저 하늘 어딘가의 “천국”에 대한 은유로 이해하지 말라고 했다. 말하자면 하나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곳이 천국이다. 물론 구약에는 천국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안나오지만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가 나오는데 신약의 천국과 사실 같은 맥락이다. 오히려 그간 상징적으로 보아왔던 본문을 더 문자적으로 믿으라 하는 것에 혼란이 왔다. 구약의 천국은 몹시 현세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인 이집트인나 바벨론 사람들이 살아서 온통 죽음 이후의 세계에 큰 관심을 두고 무지막지한 피라미드와 같은 무덤과 온갖 신화에 전 생애를 희생한 반면, 구약은 실제로 지금 여기서 잘살자에 중심을 두어 내세관이 무척 약하다(이방인들에게 이 때문에 무신론자라고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물론 사후 심판이나 운명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의 율법과 신앙은 온통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과 이웃과 어떤 충만하고 복된 관계로 살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유대인의 관심은 주로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으며 말씀대로 복되게 잘 사는 것이였다.

물론 점진적 계시를 통해 신약은 구약보다 훨씬 더 많이 사후세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에 큰 관심을 둔다. 그러나 그 핵심은 구약과 연속성을 지닌다.그 계시의 내용이 신자들의 몸의 부활이며 세상의 새창조/갱신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세상은 절대 신플라톤적 초월적인 실체인 죽음 이후 이곳을 떠나서 가야 할 “저 천국”이 아닌 앞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후 다가올 영적이고 물리적인 통합적인 세계, 새하늘 새땅이다.

실제로 성경은 영화 “사랑과 영혼” , 그리고 불교의 극락, 수 많은 대중소설에 나오는 신플라톤주의적인 “천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천국에 다녀왔다는 간증은 그냥 은혜로운 소설일 뿐이니 너무 믿지 말라. 사도바울이나 사도요한처럼 하늘 환상을 본 것일 수는 있어도, 그곳은 천국이 아니다. 천국은 주님되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발견해야 한다.

P.S. 천국과 하늘에 대한 혼돈에 대하여.
물론 사후 신자들의 영혼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낙원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누가복음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한 회개한 강도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게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약속한다(낙원이란 용어는 신약에서 체계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것을 부활 이전까지 대기상태로 설명한다.

성경에 나오는 하늘에 대한 다양한 용어사용을 오해하면 안된다. 예를 들어 (마 6:20)”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무슨 뜻일까요? 마태복음에서 하늘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기를 꺼려한 유대인들이 사용한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천국이 아닙니다. 보물을 하나님께 쌓아두라는 말이니다(물론 간접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 있지요.).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서 보화가 네게 주어지리라는 뜻입니다. 하늘은 주로 영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사후에 관한 질문은 성경에서 애매모호하지만 아마도 하나님 백성의 영혼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하늘에서 몸의 부활 때까지 함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요한복음 14:2에서 예수님이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할 때 “처소”로 번역된 헬라어가 자주 “잠시 머무는 곳”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하늘을 부활 때까지 대기장소로 이해했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하지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 후 하나님의 최후심판(그리스도의 심판대)을 거쳐 계시록에서 새하늘 새땅으로 표현되는 완성된 상태의 천국에서 영원한 지복을 누리겠지요. 천사들도 부러워한다고 하네요.

페친 김도현전도사가 인용한 디트리히 본 회퍼의 글도 정말 정곡을 찌른 내용을 담고 있다.

“근동지방의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구약성서의 신앙은 구원종교가 아니다(이분법적이고 플라톤적인 영혼구원종교! 필자설명).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늘 구원종교라고 불리어진다. 여기에 근본적인 오류, 즉 그것에 으하여 그리스도가 구약성서에서 분리되어 구원신화들로부터 해석되어지는 그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구약성서 안에도 (이집트로부터의, 그리고 후에는 바빌로니아로부터의 ;(제 2이사야 참고) 구원이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그밖에는 어디에서나 구원 신화들은 바로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반면에, 여기에서는 ‘역사적’ 구원들이, 즉 죽음이라는 한계의 차안(diesseits)이 문제되고 있다고 반박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이다. 구원신화들은 비역사적으로 죽음 이후의 영원을 찾는다. ‘스올’, 즉 하데스는 형이상학이 만들어낸 것(Gebilde)이 아니라, 그림들(Bilder)로서, 그것들 아래에서는 현세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다만 그림자같이 현재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독교에서는 부활의 소망이 선포된다는 것, 따라서 그것에 의하여 진정한 구원종교가 발생하였다는 것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 때 중점이 죽음이라는 한계의 피안에 있다. 바로 여기에서 나는 오류와 위험성을 본다. 이 때 구원이란 보다 좋은 내세에서 걱정들, 곤경들, 불안들, 그리움들로부터의 구원,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복음서 기자들과 바울이 행한 그리스도 선포의 본질적인 내용이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기독교적 부활의 소망은, 그 소망이 전혀 새롭고 구약성서에 비하여 더욱 예리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이 땅 위에 있는 그의 삶으로 향하도록 지시한다는 점에서 신화적 부활의 소망과 구별된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신화들을 믿는 자들처럼 현세적 과저들 및 어려움들로부터 영원으로 도피할 마지막 탈출로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와 같이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현세의 삶을 남김없이 완전히 맛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십자가에 달렸던 분, 그리고 부활한 분이 그와 함께하며,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또 부활하는 것이다. 차안은 너무 이르게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는 굳게 결합되어 있다. 구원신화들은 인간의 한계 경험들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인간을 그의 삶의 한 가운데서 붙잡는다.

– 본회퍼-

2014-03-09. 주일에는 읽는 QT큐티. 일곱교회 이야기6. 사데교회.

간단설명. 하나님은 잠자기를 좋아하고 몽매함에 빠지기를 원하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신다. - 마틴 로이드 존스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3:1-6
한글본문.
1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영어본문.
1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Sardis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him who holds the seven spiritsof God and the seven stars. I know your deeds; you have a reputation of being alive, but you are dead. 2 Wake up! Strengthen what remains and is about to die, for I have not found your deeds complete in the sight of my God. 3 Remember, therefore, what you have received and heard; obey it, and repent. But if you do not wake up, I will come like a thief, and you will not know at what time I will come to you. 4 Yet you have a few people in Sardis who have not soiled their clothes. They will walk with me, dressed in white, for they are worthy. 5 He who overcomes will, like them, be dressed in white. I will never blot out his name from the book of life, but will acknowledge his name before my Father and his angels. 6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Meditation. 사데교회 : 다시 살아나라
사데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와 함께 주님께 칭찬을 듣지 못한 교회입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더라도 한두 가지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시고 칭찬하시고 격려하십니다. 하지만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눈은 아주 매섭습니다. 칭찬 한마디 없이 이렇게 꾸짖기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데교회가 명목상의 교회일 뿐 실제로는 죽은 교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본인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참된 성도가 아닌데 본인들은 열렬한 신자이고, 생명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제자들이라고 자부했던 것입니다.

죽은 교회가 행한 일을 평가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사데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분명한 진단을 내려 그들이 죽어 있음을 알리고, 주님 안에서 다시 살아나야 함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매섭게 꾸중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칭찬을 허락하시지 않은 이유는 하나의 강력한 충격 요법인 셈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흔들어 깨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준엄한 책망은 5개의 명령으로 이어집니다. ‘일깨워라, 굳게 서라, 생각하라, 지키라, 회개하라.’ 우리는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강력한 권면을 들으면서, 그들에게는 칭찬이 없을 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4절). 이들은 사데교회가 다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주님이 남겨두신 희망의 불씨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로 인해 주님은 사데교회를 완전히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약 사데교회가 진정으로 돌아서서 회개한다면 흰 옷을 입게 하실 것이고,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해 주실 것입니다(5절). 생명력을 잃어가는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바라보고 낙심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되어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를 흔들어 깨워주시옵소서. 그래서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Yuo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기도의 중심은 당신이 아니다.

prayer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기도를 한다. 가끔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기도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기도 한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가 무슨 역사를 일으키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답을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각이 고양이 신학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잠시 고양이 신학과 강아지 신학의 차이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강아지는 주인을 모시고 고양이는 종을 거느린다는 말이 있다. 즉, 강아지는 주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살지만, 고양이는 주인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며, 때문에 같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다.

강아지는 주인이 자기를 먹여주고, 귀여워해 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주는 걸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분명 하나님이에요!’ 그러나 고양이는 다르다. ‘당신이 내게 먹을 것을 주고, 귀여워해 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주는 걸 보니 분명 하나님이에요!’

차이가 보일 것이다. 고양이 신자는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우주의 중심에서 살아간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영광 플러스’(Unveilin GLORY,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 사역의 모태가 되는) 사역을 통해 교회 안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 일어난 다음과 같은 일들에 대해 말해준다. 태양이 멈추고, 병을 고침 받고,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적군을 물리치고, 기름이 끝없이 솟아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 심지어 예수님은 우리에게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을 약속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가 기도한다고 산이 옮겨지지도,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도, 우리를 위해 기름이 계속 솟아나지도, 적군이 물러나지도, 가뭄을 끝내는 단비가 내리지도, 병이 낫지도 않으며, 지구가 멈추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기도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 같아 양심에 찔린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반만 진실인 판타지 세상, 속임수로 가득한 사이비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는 기도가 무언가를 이루어낸다고 믿는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기도함에도 종종 의지할 곳 없는 겁쟁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 우리의 기도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심도 하지 말고 기도할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경향이 그러한 가르침과 배치되더라도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런 모순의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생활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동시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와 관련된 문제는 대개 기도하는 사람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의도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초점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언어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관계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책은 응급처방전을 발행하지 않는다. 기도를 효력 있게 만들어주는 신비한 공식이나 주문 같은 것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힘으로 기도를 효력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 힘으로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강물은 하나님이 조절하시며, 그분만이 기도가 효력 있게 하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당신을 강물을 안내하여 그 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당신이 그 흐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를 소개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우리 자신에 관한 초점을 바로잡는 데 주력할 것이다. 고양이 신자들은 자신에 대해서만,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하면서 왜 자기들은 강아지 성도들처럼 응답받지 못하는지 의아해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은 미야우(MEow, 야옹)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분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커다란 바아크(BARK, 멍멍, Being all-Reliant on the King, 왕이신 그분을 철저히 의지하기) 소리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진실이다.

위 글은 도서출판 디모데의 신간인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의 기도] (저자:밥 쇼그린 & 제럴드 로비슨)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디모데 성경연구원 게시판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3-0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나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자 소동이 일어나는데, 예수님은 그 여인이 자신의 장례를 준비했다고 칭찬하신다.

성경본문. 마가복음 14:1-9
한글본문.
1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1 Now the Passover and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were only two days away, and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ere looking for some sly way to arrest Jesus and kill him. 2 “But not during the Feast,” they said, “or the people may riot.” 3 While he was in Bethany, reclining at the table in the home of a man known as Simon the Leper, a woman came with an alabaster jar of very expensive perfume, made of pure nard. She broke the jar and poured the perfume on his head. 4 Some of those present were saying indignantly to one another, “Why this waste of perfume? 5 It could have been sold for more than a year’s wages and the money given to the poor.” And they rebuked her harshly. 6 “Leave her alone,” said Jesus. “Why are you bothering her? She has done a beautiful thing to me. 7 The poor you will always have with you, and you can help them any time you want.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8 She did what she could. She poured perfume on my body beforehand to prepare for my burial. 9 I tell you the truth, wher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도움말.
나병환자 시몬(3절).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이미 예수님께 치료받은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별칭은 그대로 따라다녔을 것이다.
한 여자(3절).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로 여겨진다(요 12:1-3).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향유를 부은 여인의 헌신을 어떻게 칭찬하셨는가(8-9절)?
⬇ 아래로 인간. 일부 사람들은 그 여인의 헌신을 어떻게 평가했는가(4절)?
? 물어봐. 허비(4절)와 준비(8절)를 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6절)?
! 느껴봐. 나는 넘치도록 헌신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적은 없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나의 물질관과 재정 활용 방법에 있어서 변화되어야 할 점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허비와 준비를 구별하는 시금석
유월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때를 따라 기념하는 구약의 유월절이 아니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영원한 대속의 제물로 드려지는 바로 그 유월절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예고를 듣고 그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한 여인뿐이었다. 그는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무산될 뻔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제자들이 향유를 허비한다며 분개했기 때문이다. 준비(8절)와 허비(4절)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 때 예수님은 준비와 허비를 가리는 시금석이 무엇인지를 보이신다. 다름 아닌 ‘내게 좋은 일’(6절) 곧 그 일이 예수님께 좋은 일인가의 여부가 준비와 허비를 판가름하는 기준임을 분명히 밝히신다.
인생의 자원들이 허비가 아닌 준비가 되게 하기 위해선 매사에 그것이 ‘주님께 좋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당신은 자신에게 좋은 일을 선택하고 있는가, 주님께 좋은 일을 선택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아직과 이미의 천국과 하나님 나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지식 중의 하나는 천국에 관한 내용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천국은 저 세상 어디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임재하고 이루어져야 할 현실이었다. 히브리 전통은 유별날 정도로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구약은 내세보다는 현세의 삶의 소중함을 훨씬 더 많이 강조한다. 그래서 대조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아니고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이다.

그리고 성경의 천국은 이를 반영한다. 그러기에 천국은 미래에 다가올 세상이지 결코 저 세상이 아니다. 그런데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에 들어보면서 천국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 어딘가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죽음 이후 가야 하는 그곳, 내 영혼이 몸을 빠져나갈 때 갈 수 있는 천국! 천국은 오로지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영의 세계다. 그런 천국을 강조할 수록 사람들은 이 세상에 관심이 적어진다. 그럼 빨리 죽는 것이 복이 된다. 빨리 천국가는데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을까? 어차피 빨리 천국에 가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성경의 천국은 이 땅에 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구분한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나라,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 지는 곳이란다. 사실일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마태복음 18:23-24절을 보라. 이 두 용어는 의미상 같은 내용이기에 교차하여 사용할 수 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고대 유대인들이 꿈꾸던 천국을 보여주는 예전에 부르던 찬송이 기억난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리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 되리라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이 찬양은 이사야의 천국(하나님 나라)에 대한 환상에 근거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사야 11:6~8

주님이 다스리는 천국이 이 땅에 도래하면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고 귀먹은 자의 귀가 열린다. 다리를 절던 사람은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자의 혀가 노래를 부르게 된다. 모든 피조물의 세계에도 평화가 이루어진다. 이 사역을 예수님이 시작하셨다는 사실은 그가 바로 천국을 이 땅에 임재하게 하신 주님이라는 뜻이다.

5 그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6 그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8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은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사 35:5-9).

예수님을 잉태한 처녀 마리아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루어질 천국을 구약의 하나님의 통치에 비추어 표현한다.

51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눅 1:52-54).

이런 나라는 오직 하나님만이 왕으로 통치하실 때 회복시켜 주실 수 있는 천국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다. 그리고 이런 나라는 시작되었다. 회개하는 자에게 죄 용서가 주어진다. 교만한 자는 천국에서 배제되고 비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도 천국이 허락된다. 굶주린 자들에게 예수님은 때론 기적적인 방법으로 빵을 나누어 주셨고 초대교회에서는 주로 경제적인 나눔과 보살핌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부자들에계 예수님은 엄한 경고를 하시고 재물을 나누어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셨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다(마 4:23).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천국은 옷 두벌을 가진 자는 한 벌을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가난한 자와 나누어야 하며 더 이상 가진 자의 비리와 횡포가 용납되지 않는 곳이다.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이다.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3 요한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
14 또 군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겨라.”(눅 3:11-14).

세리장 삭개오의 회심은 단순 영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는 토색한 것은 4배로값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기로 결심한다(눅 19). 참으로 그간 힘없어 당하고만 살았던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삭개오의 회심 이야기는 개인의 구원 문제를 넘어 천국이 어떻게 이 땅에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예수님과 함께 천국이 도래했다. 예수님은 사탄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고 광풍과 같은 자연현상도 압제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이미와 아직”이란 중간 단계 속에 완성된 천국은 아직 미래에 있다. 초대교인들처럼 우리도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기도해야 하는 것은 결국 천국은 우리가 죽음 후에 가야하는 저곳이 아니라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천국소망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부활소망을 말한다. 썩지 않을 몸에 대한 소망!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아니다. 죽음은 죄로 인해 발생한 사탄의 권세이기 때문에 인류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질병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해답은 저 천국이 아니라 부활이다. 예수님은 죽음의 원인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

54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고전 15:54-55).

천국은 플라톤 주의처럼 물리적인 것이 배재된 곳이 아니다. 천국은 지금 이 세상이 하나님의 새창조로 말미암아 완벽하게 갱신된 곳이다.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회복에 들어서고 있다. 천국은 시작됐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 완성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통치를 받은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제발 천국을 저 세상으로 보고 이 세상을 외면하는 잘못된 신플라톤주의를 벗어나 다시 성경의 믿음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돌보고 다스려야 하는 제사장들로 부름받았다.

그럼 기독교의 하늘은 어떤 뜻인가? 우리는 천국(하늘나라)과 하늘을 구별하지 않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계속하여 글은 [완성된 천국은 사후 가야할 저 세상이 아니라 다가올 세상이다]로 이어집니다.

<MinKyu Lee 교수님의 펫북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3-0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예수님은 세상의 마지막 날과 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늘의 아버지만 아시기에 주의하여 깨어 있어 잠들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성경본문. 마가복음 13:28-37
한글본문.
28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28 “Now learn this lesson from the fig tree: As soon as its twigs get tender and its leaves come out, you know that summer is near. 29 Even so, when you see these things happening, you know that it is near, right at the door. 30 I tell you the truth, this generation will certainly not pass away until all these things have happened. 31 Heaven and earth will pass away, but my words will never pass away. 32 “No one knows about that day or hour,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 33 Be on guard! Be alert! You do not know when that time will come. 34 It’s like a man going away: He leaves his house and puts his servants in charge, each with his assigned task, and tells the one at the door to keep watch. 35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when the owner of the house will come back–whether in the evening, or at midnight, or when the rooster crows, or at dawn. 36 If he comes suddenly, do not let him find you sleeping. 37 What I say to you, I say to everyone: ‘Watch!’ “

도움말.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30절).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당시 생존해 있던 이들이 예루살렘 멸망을 보게 된다는 것, 둘째, 세상 마지막 때만을 가리킨다는 것, 셋째, 예루살렘의 파멸과 마지막 때를 동시에 의미하며 예루살렘 파괴 자체에 종말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구절에서 ‘세대’라는 말에 쓰인 헬라어 ‘게네아’는 세대(마 11:16)만 아니라 시대(눅 16:8), 대대(눅 1:50, 엡 3:21), 만대(골 1:26) 등을 모두 의미하는 독특한 단어라는 점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시는가(32절)?
⬇ 아래로 인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재림을 어떠한 자세로 기다려야 하는가(35-36절)?
? 물어봐. 진정으로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31절)?
! 느껴봐. 나의 삶의 관점과 방식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으로 합당한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사람으로서 힘써 갖추어야 할 관점과 방식은 무엇인가?

Meditation. 말세 견디기 프로젝트(2): 깨어 있기
예수님은 재림을 기다리며 믿음의 인내를 감당하는 제자는 ‘그 날과 때’(when) 자체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어떻게’(how) 그 날과 때를 맞이할 것인가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특히 말세를 견디는 삶은 소극적으로 도망하고 삼가는 삶(14-23절)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 곧 깨어 있는 삶을(33, 35, 37절) 감당해야 한다고 세 번이나 강조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타국으로 여행하는 주인이 맡긴 사무를 행하며 부여한 권한을 따라 주인의 출타 중에도 그 집을 흥왕하게 하는 종과 문지기들 같이,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 주신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삶이다.
재림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며, 그 때에는 돌이키거나 무언가를 더할 만한 단 일 초의 여유도 없을 것이다. 당신이 살아가던 그 일상으로 인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당신은 말세를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가? 내게 맡겨 주신 것들을 성실히 행하며 재림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재림을 준비하는 청지기로서 성실히 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